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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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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만보] ‘도시의 꿈’이 모인 곳, 귀신시장

화요일 밤마다 서는 베이징 ‘귀신시장’,
정부는 벼랑 끝 소상공인들의 ‘노점경제’가 국제도시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네
등록 2020-09-12 08:02 수정 2020-09-16 01:20
매주 화요일 밤 9시 개장하는 ‘다류수 귀신시장’.

매주 화요일 밤 9시 개장하는 ‘다류수 귀신시장’.

최근 베이징에서 개봉된 중국 독립 다큐멘터리영화 <도시의 꿈>은 노점상 일가족 이야기다. 왕톈청은 우한에서 가장 유명한 ‘노점왕’이다. 일흔이 넘은 그는 뇌중풍 환자고, 아내는 살날이 몇 달 남지 않은 말기암 환자, 외동아들은 사고로 오른팔을 잃은 장애인이다. 이 가족은 허난성의 가난한 농촌 출신 농민들이다. 고향에서는 먹고살 길이 막막해서 ‘생존을 위해’ 중국 중부 지역 최대 도시 우한으로 왔다. 대도시에선 노점상을 해서라도 입에 풀칠이나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기일 때 아빠 품에 안겨 우한으로 온 손녀 핑핑은 그새 자라 중학교 2학년이 되었고, 공부도 아주 잘한다. “손녀는 우리 가족의 유일한 희망이다. 그 아이는 반드시 이 도시에서 결혼해 뿌리를 내려 도시인이 되어야 한다.” 왕 노인과 핑핑 부모의 간절한 소망은 자신들의 유일한 혈육인 핑핑이 ‘농민’ 신분이 아니라 ‘도시민’ 신분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도시 극빈층으로, 노점상을 하며 품고 있는 ‘도시의 꿈’이다.

“도시는 발전해야 한다…”

그러나 ‘도시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매일 악몽 같은 전쟁을 치러야 한다. 왕 노인 가족은 거리에서 매일 청관(城管·거리 미화 등 도시관리를 맡는 행정기구로 주로 노점상 등을 단속)과 격렬한 전투를 하며, 말 그대로 ‘목숨 걸고’ 노점을 사수한다. 왕 노인은 그들과의 전투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우한 청관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도 바로 왕 노인이다. 

왕 노인이 작심하고 ‘발악적인 항거’를 하기 시작하면 청관도 속수무책이다. 2006년 선전에서는 노점상을 폭력적으로 단속하다가 청관 한 명이 분노한 노점상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2009년 선양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뒤 청관들의 폭력적인 노점 단속 방식이 사회문제가 되면서, 각 지방정부에서는 청관들에게 ‘절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폭력적인 단속을 피하라’라는 지침을 내렸다. 베이징에선 청관들에게 “상대방(노점상) 얼굴에 피가 보이게 해서는 안 되고, 몸에 상처를 내서도 안 되고, 주변에 사람이 몰려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새로운 ‘노점상 단속 지침 방안’을 내렸다.

2004년 이후 중국 공산당과 정부는 ‘조화로운 사회 건설’을 내세우며 ‘민주와 법치에 따른 통치’ ‘인민 내부의 모순과 사회 모순을 공평과 정의의 잣대에 따라 처리’하는 방침을 사회 통치 이념의 핵심 가치로 내세운다. 정부는 최대한 비폭력적이고 합법적인 방식으로 단속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더군다나 스마트폰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보편화하면서 예전과 달리 수많은 ‘거리의 눈’이 청관들의 폭력적인 단속을 감시하고 있기에 최대한 잡음과 충돌을 피해야 한다.

어느 날 왕 노인은 ‘또’ 찾아온 젊은 청관의 멱살을 붙잡고 뺨까지 툭툭 쳐가며 모욕적인 언행으로 ‘항거’를 시작했다. 웃통을 벗어젖힌 왕 노인이 “너희는 그렇게도 할 일이 없냐? 왜 가난한 사람들만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거냐!”고 호통치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입술을 앙다물고 왕 노인의 온갖 모욕적인 언사와 폭력을 참아내던 젊은 청관이 입을 떼고 한마디 한다. “그래도 도시는 발전해야 합니다. 도시는 발전해야 한다고요….”

왕 노인 일가가 14년째 ‘불법 점거’를 하며 노점상을 운영하던 거리는 우한시 도시발전계획에 따라, 조만간 ‘보석상점 거리’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그러려면 먼저 노점상들을 ‘밀어내야’ 한다. 왕 노인 일가를 제외하고 다른 노점상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서 ‘위법 활동에 따른 법적 제재’를 운운하며 ‘합법적인’ 협박을 일삼는 청관들에게 일찌감치 백기투항을 했다. 하지만 왕 노인은 쉽게 물러서거나 투항하지 않는다.

청관이 왕 노인을 쉽게 ‘제압’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 가족이 중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 계층’인 가난한 농민인데다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사회 모순의 뇌관을 건드릴 수도 있기 때문에 도시관리 당국 입장에서도 곤혹스럽다. 당국은 청관 몇 명을 노점상으로 위장 잠입시켜, 왕 노인 가족이 하루에 노점상으로 버는 평균 수입이 얼마인지를 조사한다. 도시관리 당국은 왕 노인 일가가 노점상 수입만으로도 막대한 불법 치부를 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 조사 결과를 가지고 노점 철거를 통보한다. 그러자 왕 노인은 온 거리가 떠나갈 듯이 대로하면서 소리를 지른다. “너희 눈에는 우리가 노점상을 해서 치부하는 것으로 보이냐? 이렇게 사는 게 어떻게 치부했다는 거냐? 나는 언제든지 죽을 계획이 있다. 장강에 빠져 죽든지 할복자살을 하든지… 이 노인네가 원하는 건 그저 먹고사는 것이라고!” 

들불처럼 번져간 ‘노점경제’

2020년 5월28일, 리커창 중국 총리는 기자회견 석상에서 ‘노점경제’를 언급했다. 1월 이후 중국에 코로나19가 퍼지면서 수많은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벼랑 끝에 내몰리고 경제발전에 빨간불이 켜지자, “서부 도시 청두에선 코로나19로 서민 경제가 나빠지자, 당국이 나서서 이동 노점상 약 3만6천 개를 마련해줬다. 그 결과 하룻밤 사이 10만 명에 이르는 취업 효과가 나타났다”고 소개했다. 그 뒤 6월1일, 산둥성 옌타이시를 방문한 자리에서 리커창 총리는 “노점경제는 직업 창출의 중요한 근원이며 사람 사는 세상의 (경제적) 연기와 같은 것으로, 중국 경제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며 노점경제를 장려하는 정책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리 총리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중국 전역에 노점경제가 들불처럼 번졌다.

베이징에서도 리커창 총리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길거리에 다시 노점상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줄어든 수입을 충당하기 위해, 저녁에 퇴근한 뒤 자신의 자가용 트렁크에 과일이나 잡화류 등을 싣고 거리에서 ‘노점상 알바’를 하는 시민과 회사원도 많았다. 취업하지 못한 청년들도 거리에 나와 꽃과 장난감, 의류 등을 팔았다. 하지만 리 총리의 노점경제 발언이 나오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베이징시 당국은 ‘공개 반대’를 표명했다. 

도시는 계속 발전해야 하기에

6월7일 <베이징일보>는 ‘노점경제는 베이징에 적합하지 않다’는 기사를 통해 “베이징은 중국을 상징하는 수도이자 얼굴이기 때문에 환경과 위생, 교통 등 여러 문제를 고려할 때 노점경제는 적합하지 않다”고 발표했다. 뒤이어 <중국중앙텔레비전>(CCTV)도 비슷한 내용을 보도했다. 경제특구인 선전시에서도 6월8일치 <선전특구보> 기사에서 “현대화한 국제 대도시인 선전시의 도시 미관, 발전 계획과 노점경제는 부합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리 총리의 체면이 구겨진 것은 물론이고, 다시 한 번 ‘먹고살기 위해’ 거리로 나왔던 수많은 노점상이 연기를 피워보기도 전에 쫓겨났다. 특히 베이징시 당국은 전국에서 가장 강경하게 노점경제를 ‘저지’했다. 다시 밀려난 노점상들은 낮에는 숨어 있다가 청관이 퇴근하는 밤을 노려 기습적으로 노점을 여는 ‘귀신 작전’을 펼치고 있다.

베이징에는 정확하게 언제부터 생겼는지 알 수 없는 ‘귀신시장’이 있다. 변두리에 있는, ‘다류수(大柳树) 귀신시장’이란 곳이다. 이곳은 매주 화요일 밤 9시쯤 본격적인 개장을 해서 다음날 동트기 전에 문을 닫는다. 일주일에 딱 하루, 야간에만 장사한다고 해서 귀신시장이라고 부르는데 중고 생활물품과 가짜 골동품, 잡화 등 ‘없는 것 빼고’ 다 판다.

문을 여는 화요일이 되면, 베이징 곳곳에서 몰려든 노점상이 서로 목 좋은 곳을 잡기 위해 오후 2~3시부터 ‘자리 점유’를 한다. 밤 9시면 시장 안은 발 디딜 틈 없는 인파로 북적대고, 주변의 임시 노점 식당들도 ‘귀신 손님’의 끊임없는 발길로 ‘하룻밤 치부’를 한다.

이 귀신시장은 노점상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 베이징시에서 거의 유일하게 일주일에 한 번 ‘눈감아주는’ 허용된 노점시장이다. 이 시장이 베이징의 명물 시장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주변 경제에도 긍정적 효과를 주기 때문에 ‘도시 미관과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어도 묵인해주고 있다. 물론 이곳도 왕 노인의 노점상 거리처럼, 언제 갑자기 ‘보석상가 거리’ 같은 새로운 ‘발전계획’이 세워질지 알 수 없다. ‘도시는 계속 발전해야 하기 때문에’ 이 귀신시장도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운명이다.

왕 노인은 결국 도시관리 당국과 청관들에게 백기를 들었다. “너희가 이겼다. 투항하겠다”고 선언하며 청관이 소개한 ‘덜 번화한’ 거리에 있는 임시 노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한시적’이라는 단서가 붙었다. 임시 자리라도 얻어내기 위해 왕 노인 일가는 허난성 고향 마을에 내려가 관계 당국에서 ‘극빈계층’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했다. 그리고 도시관리국에 긴 ‘사과문’을 제출했다. “이 도시에 불편을 끼치고 발전에 장애가 되는 성가신 일을 일으켜서 죄송합니다. (…) 앞으로 우리 가족은 ‘중국몽’을 실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몇 달 뒤 말기암 환자인 왕 노인의 아내가 사망했다. 결사항전으로 노점을 사수해온 ‘노점왕’ 왕 노인은 청관에게 허리 굽혀 감사 인사를 하는 ‘순종적인’ 노점상이 됐다. 그는 마침내 인정했다. “도시는 발전해야 하고 말고요. 모든 사람이 노점상을 한다고 거리로 몰려나오면 도시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투항하는 왕 노인, 하마스 혹은 귀신시장

어떤 사람들에게 거리는 생존의 장소다. 생존을 위한 모든 장소에는 권력관계가 작용한다.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을 상대로 벌이는 ‘영토 전쟁’과 마찬가지로, 왕 노인이 청관을 향해 펼친 전투도 ‘생존을 위한’ 영토확보 전쟁이다.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전투의 결말은 물론 ‘권력을 가진 쪽’의 승리로 끝난다. 그리고 패배한 자들은 왕 노인처럼 투항해서 순종하거나,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되거나, 또 아니면 밤에만 출몰하는 귀신시장으로 간다.

왕 노인의 장애인 아들은 자신들이 못다 이룬 ‘도시의 꿈’을 이뤄줄 딸과 국수를 먹으며 그래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에게 행복이란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거예요. 함께 먹는 밥 한 그릇만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베이징(중국)=글·사진 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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