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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관계 ‘옥토버 서프라이즈’ 오나

미 대선 한 달 앞두고 ‘10월 3차 정상회담’ 가능성 촉각
등록 2020-07-18 07:14 수정 2020-07-21 01:14
서훈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7월9일 청와대 귀빈접견실에서 만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서훈 국가안보실장(오른쪽)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7월9일 청와대 귀빈접견실에서 만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미숙한 대응으로, 11월 치러질 미국 대선의 판도가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쪽으로 기울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실시한 여러 여론조사에서, 전국은 물론 경합주에서도 바이든이 앞선다. 6월28일~7월14일 전국여론조사 평균값에서 바이든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48.3% 대 40.2%로 이길 뿐 아니라 6개 경합주에서도 모두 우세를 보였다.

대선까진 아직 100일 정도 남았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현직’ 프리미엄을 최대로 살려 현재의 불리한 여론을 뒤집으려 할 것이다. 트럼프의 최대 선거 대책은 코로나19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고 경기를 부양해 실업자를 줄이는 것이다. 대선을 코앞에 둔 10월에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열어 깜짝쇼를 벌이는 ‘옥토버 서프라이즈’도 점쳐지고 있다.

한-미 군사연습 축소될까

북한은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의 7·10 담화를 통해 “제3차 북-미 정상회담이 올해에는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일어나서도 안 된다”면서도 “두 수뇌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모른다고 여지를 두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에서 반드시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원한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인사를 전하며 트럼프의 재선을 기대한다는 속내도 내비쳤다.

김여정의 담화는 3차 북-미 정상회담 기대를 감추지 않으면서도 미국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 ‘선결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 한 북-미 정상회담이 실현되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먼저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 북-미 대화를 재개한 뒤,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열어 ‘제재 완화’ 이외의 상응 조처를 갖고 나와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말하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은 북한인권보고서, 테러지원국 재지정, 경제제재, 한-미 군사연습, 전략자산 반입, 주한미군 주둔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하다. 북한이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선결 조건을 처음 제시한 것은 2019년 10월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미 실무회담 때다. 이 자리에서 김명길 북쪽 대표는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이후 추가된 15개 대북제재, 한-미 군사연습 실시, 전쟁장비 반입을 적대시 정책으로 지목했다.

미 국방부는 3월 취소된 기동훈련을 포함하는 대규모 군사연습을 하기 희망한다. 그러나 현재 주한미군 10명 중 1명꼴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생겨나, 기동훈련 실시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우리 국방부는 ‘전시작전권 전환’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제2단계 완전운용능력(FOC) 검증평가에 국한된 훈련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기동훈련 없이 축소된 지휘소 연습만 진행할 수 있다.

북 ‘비핵화 범위’, 미 ‘체제안전 보장’ 제시해야

북-미 대화가 재개된다고 해도 3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얻으려면 북한이 취해야 할 비핵화 범위가 제시돼야 한다. 또 비핵화 조처에 대한 미국 쪽 상응 조처로 군사위협 해소와 체제안전 보장 방안도 나와야 한다. 김여정이 7·10 담화에서 제재 완화 문제를 더는 거론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는 “원치 않는다”기보다 “협상의 주의제로 삼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따라서 비핵화 상응 조처는 대북제재 완화를 포함하는 포괄적 안전 보장 방안이 될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비핵화에 얼마나 진전된 자세를 보일지, 미국이 어떻게 포괄적 안전 보장을 법적으로 보장할지 하는 점이다. 비핵화 범위는 우선 영변핵지구와 우라늄농축 의혹 시설로 정하고, 차기 미 행정부에서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하는 단계적 이행 방식이 현실적일 것이다. 포괄적 안전 보장 방안도 비핵화 진전에 따라 우선은 한-미 군사연습 중지와 상징적 종전 선언, 핵 선제공격 대상 제외 등이 포함될 수 있다.

현재 미 연방의회의 하원의원은 435석(공화 197+2석, 민주 233+2석, 무소속 1석), 상원은 100석(공화 53, 민주 45, 무소속 2)으로, 상원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이 필요한 ‘조약’ 방식의 대북 안전 보장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미국 대선과 함께 치르는 하원 선거에서도 민주당이 과반수를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럴 경우, 집권 공화당 행정부가 발의하고 연방 하원과 상원의 과반수 지지가 필요한 의회행정 협정도 민주당 의원들이 일부 동참하지 않는다면 하원에서 통과되기 힘들다.

‘옥토버 서프라이즈’가 일어날지, 일어나더라도 그것이 3차 북-미 정상회담이 될지는 알 수 없다. 3차 정상회담이 현실화하려면 김정은 위원장 뜻에 못지않게 트럼프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다. 깜짝쇼를 상쇄하기 위해 미 민주당이 한반도 종전선언 촉구결의안을 추진하는 것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대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트럼프는 굳이 3차 정상회담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

미 독립기념일 DVD 요청에 담긴 기대와 경고

오히려 ‘옥토버 서프라이즈’는 북한의 전략 도발로 나타날 수도 있다. 북한은 2019년 12월 말 당 전원회의에서 “머지않아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김여정은 7·10 담화에서 ‘미국 독립절(7월4일) 기념행사를 수록한 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으려 한다며 김정은 위원장의 허락을 받았다고 밝혔는데, 이것도 트럼프의 결단에 대한 ‘기대’와 함께 전략 도발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취소해야 한다는 여론과 참모들의 만류에도 트럼프가 독립기념일 행사를 강행했듯이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도 트럼프의 과감한 결단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상기시키며,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또다시 무력시위를 할 수 있다는 경고다. 북한은 미국 독립기념일 즈음에 맞춰 대포동 2호를 포함한 탄도미사일 6발(2006년), 탄도미사일 7발(2009년),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2017년)을 쏘아댄 바 있다.

아직은 3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과 북한은 동상이몽이다. 비핵화와 상응 조처에 관한 양쪽의 입장 차이도 매우 크다. 당장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한-미 군사연습에 대한 입장을 조율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몫이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복원하기 위해, 이제 새 외교안보 라인이 실력을 보여줘야 할 때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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