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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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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년 역사의 성소피아, 정치에 휘둘리는 기구한 운명

대성당에서 모스크로, 박물관 거쳐 다시 모스크로
등록 2020-07-18 06:29 수정 2020-07-19 01:57
7월10일 터키 최고행정법원이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소피아를 모스크에서 박물관으로 바꾼 1934년 내각 결정이 무효라는 결정을 내리자, 이를 반기는 이슬람교도 시민들이 아야소피아 앞 광장에 모여 기도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7월10일 터키 최고행정법원이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소피아를 모스크에서 박물관으로 바꾼 1934년 내각 결정이 무효라는 결정을 내리자, 이를 반기는 이슬람교도 시민들이 아야소피아 앞 광장에 모여 기도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우리는 ‘아야소피아’를 인류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보존하면서 모든 경배자가 찾는 모스크로 개방할 것입니다. 입장료는 무료가 될 겁니다.”

7월10일, 터키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소피아를 모스크(이슬람 사원)로 개조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텔레비전 연설을 했다. 1934년 모스크에서 공공 박물관으로 변신한 아야소피아를 모스크로 되돌려놓겠다는 선언이다. 이날 터키 최고행정법원이 “아야소피아를 박물관으로 지정한 1934년 내각회의 결정을 취소한다”고 결정한 직후 나온, 예고된 폭탄이었다. 법원은 “아야소피아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옛 이름)을 정복한 술탄 메흐메트 2세의 개인 재산이었으며, 터키공화국 수립 이후 술탄의 재산을 관리하는 재단 소유물로, 모스크 이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1500년 역사를 새긴 문화유산

아야소피아는 고대 로마제국에서 오늘날 터키에 이르기까지 1500년 역사를 오롯이 새긴 문화유산이자 비잔틴 건축 양식의 걸작이다. 1985년 유엔은 아야소피아가 있는 이스탄불 역사지구를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2019년 한 해에만 전세계에서 관광객 370만 명이 찾았다.

아야소피아는 6세기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수도 콘스탄티노플에 대성당으로 건립한 이래 916년 동안이나 동방정교회의 총본산이었다. 라틴어로는 산타 소피아,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이다.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뒤를 이은 콘스탄티누스 2세가 360년 성모 마리아를 비유한 ‘지혜의 신’에게 헌정해 세웠다. 이후 군중 폭동(404년)과 대화재(532년)로 재건과 소실을 반복한 끝에, 537년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돔형 건축물로 재건했다.

1453년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뒤 성소피아 성당은 황실 모스크로 바뀌었다. 본당 주변엔 4개의 거대한 미너렛(모스크 건물 외곽의 첨탑)이 신축됐고, 기독교 상징물과 황금 모자이크에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글귀와 문양이 덧씌워졌다. 오스만제국은 500년 가까이 존속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3년 뒤인 1922년 터키의 국부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케말 파샤)가 이끈 독립 혁명으로 소멸했다. 신생 터키공화국은 ‘국가와 종교는 별개’라는 강력한 세속주의를 표방했다. 1935년 아야소피아 모스크를 박물관으로 개조한 것은 그런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조처였다.

본당의 웅장한 돔을 비롯해 빼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아야소피아의 건축은 그 자체로 보물급 문화유산이다. 황제 일가와 수행원만 드나든 ‘황제의 문’, 역대 술탄들의 전용 기도실과 영묘, 본당 천장의 돔과 벽면을 장식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 알렉산드로스 황제(비잔틴) 등 역사적 인물들의 전신 모자이크 같은 내부 시설물도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크다. 그렇게 장구한 세월에 걸쳐 성당, 모스크, 박물관으로 변신해온 아야소피아가 85년 만에 다시 종교시설로 바뀌게 되었다.

케말의 ‘세속주의’ 부정하는 상징적 조처

에르도안 정부의 전격적인 조처는 자신의 강력한 지지 기반인 이슬람주의자들의 오랜 요구이기도 했다. 그러나 터키의 세속주의 원칙을 지지하는 야당과 시민들은 강한 우려와 비난을 쏟아냈다. 아야소피아에 역사적·문화적 지분을 가진 유럽 주변국과 국제사회도 비판의 목소리를 감추지 않았다.

유네스코는 곧바로 성명을 내어 “아야소피아는 건축 걸작이자 수세기에 걸친 유럽과 아시아의 교류를 보여주는 독특한 증거”라며 “터키 당국이 사전 협의도 없이 아야소피아의 지위를 변경한 것에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7월13일에는 유럽연합(EU)의 주제프 보렐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이번 결정은 필연적으로 종교공동체들 사이에 불신과 분열을 부추기고, 대화와 협력을 위한 노력을 훼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터키와 앙숙인 그리스 정부도 “(터키의 결정은) 전체 문명세계에 대한 공개적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터키는 적극 반박에 나섰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7월13일 “아야소피아의 지위 결정은 터키의 내정”이라고 되받았다. 집권 정의개발당 대변인도 “아야소피아는 앞으로도 모스크의 장엄함과 세계문화유산을 품은 위대한 장소로서 인류 모두에게 그 영광을 드러내 보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야소피아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서 제외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터키는 아야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이 종교적 결정이 아니라 자국의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논리를 편다. 터키 종교청은 7월14일 성명을 내어 “아야소피아 내부의 기독교 아이콘(성상과 성물, 돔 천장과 벽면 모자이크 성화)들은 이슬람교도의 기도와 예배 시간에만 적절한 방법으로 (보이지 않도록) 덮일 것”이라며 “기도 시간을 빼곤 모든 방문객에게 아야소피아를 개방하는 건 종교적으로 장애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에르도안 대통령을 포함해 터키 이슬람주의자들로선 유서 깊은 모스크가 서구적 가치인 세속주의 때문에 박물관으로 바뀐 것은 용납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들에게 아야소피아는 서방 기독교 세력에 대한 이슬람의 승리를 상징하는 역사적 장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2018년 연임에 성공한 대선에서 아야소피아의 모스크 복귀를 공약했다. 이는 옛 영광을 재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안으로 지지 기반을 강화하고 밖으론 강력한 주권과 이슬람 수호자의 이미지를 과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이슬람 보수주의로 권력 다지려

앞서 2016년 7월 터키 군부가 에르도안의 ‘세속주의 훼손’에 반발해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건은 에르도안의 통치 방식이 이슬람 보수주의에 더해 강력한 권위주의 색채까지 짙어진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가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에 뒤늦게 개입해 반군을 지원하고, 평화협상을 주도하며, 서방의 군사안보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이면서도 러시아와 적극 협력하며 국제 무대에서 발언권과 영향력을 키운 자신감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로 바뀐 아야소피아에서 첫 이슬람 의례는 7월24일 ‘로잔조약’ 체결 기념일에 맞춰 열릴 예정이다. 1923년 이날, 오스만제국의 뒤를 이은 신생 공화국 터키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연합국들과 스위스 로잔에서 조약을 맺고 독립국 지위와 영토 경계를 인정받았다. 마침 이날은 모든 이슬람교도가 모스크에서 주례 집단예배를 하는 금요일이다. 터키의 정치분석가 셀림 코루는 7월14일 미국 <뉴욕타임스> 기고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24일 행사를 서방이 특히 예의주시하기를 바랄 것”이라고 짚었다. “왜냐면, 이 기념식은 에르도안이 터키의 주권을 회복했다고 여기는 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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