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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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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 지 20년 된 세계화...각국, 각자도생의 길로

[코로나 뉴노멀]
1부 4장 G제로 시대
등록 2020-06-02 08:20 수정 2020-06-13 04:38
2019년 12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 건물 앞의 횡단보도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그즈음 중국에선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2019년 12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무역기구(WTO) 본부 건물 앞의 횡단보도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그즈음 중국에선 코로나19가 퍼지기 시작했다. 로이터 연합뉴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표준’.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짧은 시간에 인간 세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인류의 생활양식은 예전과 똑같은 궤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이른바 ‘코로나 뉴노멀’ 시대의 개막이다. 무엇보다 인간과 인간의 물리적 접촉은 더 이상 무조건적인 덕목이 아니게 됐다. ‘접촉 축소’라는 시대적 요구는 자동차와 비행기의 이동을 줄게 해 의도치 않은 맑은 하늘과 깨끗한 공기를 안겨줬다. 화석 연료로 지탱하는 지금의 에너지 구조는 더 이상 ‘이대로’를 외칠 수 없는 영역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작은 정부론’에 시달리던 국가는 영역을 확장해나갈 태세다. 코로나19 대응에 미숙함을 드러낸 미국과 중국, 두 국가는 국제적인 지도력을 잃었다. 지(G)2 시대가 저물고 지(G)0 시대가 열렸다.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코로나 뉴노멀’이 정의와 평등의 얼굴을 갖게 하기 위해 세계시민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_편집자주

‘굿바이 글로벌라이제이션’(Goodbye Globalization). 영국의 시사·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지난주(5월16~22일) 발행호에서 다룬 표지이야기 제목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세계화’는 좁은 의미로 ‘상품과 서비스, 자본과 기술,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에 바탕을 둔 통합적 국제 경제 체제’로 정의할 수 있다. 그 시작은 1989년 독일 베를린장벽 붕괴와 1991년 12월 옛소련 붕괴에 따른 동서 냉전 시대의 종말이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을 선언한 것도 바로 그즈음이었다. 이후 짧게 잡아도 25년 동안 ‘마법의 주술’ 또는 ‘절대 반지’로 통용된 세계화 신화가 맨 밑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 세계경제가 또다시 큰 위기를 맞은 것이다. 주기적인 경기변동이 아니다. 1920년대 후반 세계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국제 교역 위축되며 한국 수출액 반토막

거대한 균열의 시작은 전자현미경으로 겨우 보일 만큼 작은 바이러스가 촉발했다. 2020년 새해 벽두부터 중국을 시작으로 전세계를 휩쓰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다. 확진·사망자가 급증하고 의료체계가 붕괴할 지경에 이르자, 세계 각국은 앞다퉈 국경을 걸어 잠갔다. 상점과 공장을 폐쇄하고 전 국민의 모임과 이동을 통제하는 나라가 잇따랐다. 아직도 대다수 나라가 엄격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스테이 홈’(집에 머무르기)을 강제 집행하거나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사람이 멈추자 경제도 멈췄다. 산업생산이 급감하고, 물류가 끊기고, 소비가 얼어붙었다. 세계에서 가장 혼잡한 공항인 영국 런던의 히스로공항은 4월 이용객이 전년 대비 97%나 줄었다. 같은 달, 세계 자동차 제조사들의 생산공장이 있는 멕시코의 자동차 수출 실적이 90% 줄었다. 5월에는 태평양 항로를 오가는 전세계 컨테이너 선박의 21%가 운항을 취소했다. 글로벌 항공기 제조사인 에어버스는 생산량의 3분의 1을 줄였다. 세계경제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해온 중국은 올해 1분기 경제성장률이 -6.8%라는 충격적 수치를 기록했다. 세계화의 상징이던 아랍에미리트연합의 경제는 2022년까지 회복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4월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 세계 상품 교역량이 전년 대비 13~32%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최악의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후퇴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국내 공항의 4월 국제선 이용객은 15만4299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약 744만 명)보다 무려 97.9%나 급감했다. 국제 교역의 급격한 위축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다. 관세청 통계를 보면, 5월1~10일 우리나라의 수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3%나 줄었다. 문자 그대로 반토막이 났다. 1967년 공식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최악이다.

국제 분업 체계에 기초한 글로벌 공급망이 무너지고 세계경제 성장이 정체되는 것은 세계화의 이점이 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21세기 첨단 과학시대에 미국과 유럽이 방역용 마스크를 확보하지 못해 물량 쟁탈전을 벌이고, 자동차 공장의 조립라인을 인공호흡기 생산 시설로 개조하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관세와 국경 장벽을 한껏 높이고, 국제 유가가 한때 마이너스를 기록할 만큼 폭락한 게 단적인 사례다.

낯설다, IMF의 긴급재난지원금 촉구

앞으로 가능한 세계경제의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지금 위기를 극복하고 원상 복구되거나, 근본적으로 재편되거나,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이 나오기 전까지 험난한 각자도생의 길을 걷거나…. 전문가들도 전망이 엇갈린다. 그만큼 미래의 불확실성이 크다. 어느 쪽이든, 코로나19 이후 세계가 이전과 같지 않을 거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글로벌 경제가 ‘무정부 상태’로 빠지면서 세계 각국은 자립경제 구축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세계화의 규범은 한순간 뒷전으로 밀려났다. 대다수 나라가 자생적 경제 생태계를 강화하는 흐름이 더 거세질 것이다. 기존 세계경제 질서가 급격히 바뀔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어쨌든 코로나19 이후에는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시각과 방식이 ‘뉴노멀’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4월 미국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코로나19 대유행이 글로벌 공급사슬의 과잉 의존의 위험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면서 산업생산의 국내화 복귀를 촉진할 것”이라고 짚었다. 이 매체는 “세계화는 2008년 금융위기 직전에 정점을 찍은 이후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며 “(코로나19로) 이미 오래전부터, 기존과 달리 새롭고 더 제한적인 형태의 세계화로 나아가는 변화가 더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격화, 글로벌 공급사슬의 축소와 지역화, 경제회생기금 설치를 둘러싼 유럽연합 내부의 불협화음, 국외 공장의 자국 복귀 바람, 외국인 직접투자 급감 추세 등이 그 흐름을 뚜렷이 보여준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제 경제 거버넌스의 주도권을 장악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도 ‘세계화 드라이브’에 급제동을 걸고 방향 전환을 모색할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국면에서 IMF의 태도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재정건전성을 신봉하고 재정 적자를 극도로 금기시했던 IMF가 각국 정부의 대규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을 적극 촉구했다. 이전까지 IMF가 이른바 ‘헬리콥터 머니’의 대량 살포를 지지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새로운 세계경제 체제 만들어지려면…

언제쯤 세계경제가 회복되고 새로운 거버넌스가 세워질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국제사회가 코로나19를 완전히 통제하고, 각국이 국내 경제활동을 전면 재가동하며, 국경을 넘는 물자와 사람의 이동이 이전 수준을 회복하느냐에 달렸다고 말한다. 일찍이 2002년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저서 <세계화와 그 불만>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계화에 대한 반발은 개발도상국들에게 가해진 피해를 사람들이 인식한 데서뿐만 아니라 세계무역 체제의 불공정성에서도 힘을 얻었다. (…) 지구촌 가족들이 공존하기 위해 따라야 하는 규칙들은 반드시 공정하고 정의로워야 하며, 힘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정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기본적인 품위와 사회적 정의를 반영해야 한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에게 그 과제를 일깨우고 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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