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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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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전쟁, 최우수각본상은 누구에게?

화웨이 후계자 멍완저우 캐나다에서 체포

출발부터 삐걱거리는 미-중 무역전쟁 90일 휴전
등록 2018-12-15 04:06 수정 2020-05-02 19:29
12월11일 캐나다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풀려난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 멍완저우가 법원 밖으로 나서고 있다. AFP 연합뉴스

12월11일 캐나다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풀려난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 멍완저우가 법원 밖으로 나서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4월 서로를 겨냥해 ‘보복관세’를 부과하면서 시작된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휴전’에 들어간 건 12월1일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앞으로 90일 동안 추가 보복관세 부과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그날 캐나다 밴쿠버 국제공항에서 벌어진 일만 없었다면, 7개월여 날 선 공방을 벌여온 미-중 관계도 오랜만에 훈풍을 만났을 터다.

스마트폰 판매량 세계 2위의 화웨이

“미국에서는 ‘아카데미 최우수각본상’을 놓고 경쟁이 벌어지는 것 같다. 아이폰이 감청될까 걱정된다면 중국의 화웨이 스마트폰을 쓸 수 있다. 그것도 두렵다면 외부 세계와 연락을 끊고 사시라.”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0월25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날 미국 일간 가 미 정보 당국자의 말을 따 “중국이 미-중 무역전쟁을 피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의 아이폰을 도청하고 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화 대변인이 아이폰의 대항마로 화웨이를 언급한 것은 이유가 있다. 1987년 설립된 화웨이는 통신장비 판매 세계 1위 기업으로, 2018년 2분기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에서 애플을 제치고 처음으로 삼성에 이어 2위에 올랐다. 휴대전화 외에 컴퓨터와 반도체, 통신장비 등을 생산하는 첨단기업인 화웨이의 올해 매출은 1천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업체가 ‘중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멍완저우(46) 화웨이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자타가 공인하는 그룹의 후계자로 꼽혀왔다. 창업자인 런정페이(74) 회장의 딸인 그는 창업 초기인 1993년 일찌감치 입사해, 여러 계열사를 거치며 경영 수업을 해왔다. 2011년 최고재무책임자에 오른 데 이어, 올 3월엔 이사회 부의장에도 지명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악수를 나누던 무렵, 홍콩을 출발해 멕시코로 향하던 멍완저우는 캐나다 밴쿠버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려다 체포됐다.

캐나다 당국이 멍완저우 체포에 나선 것은 미국 쪽의 ‘협조 요청’에 따른 결정이었다. 화웨이의 자회사가 미국의 대이란 제재 조처를 어기고, 이란 쪽과 거래했다는 게 주요 혐의다. 등 미국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멍완저우에 대한 체포영장은 지난 8월27일 뉴욕 법원이 발부했다. 미 재무부 쪽은 멍완저우가 홍콩에서 캐나다를 거쳐 멕시코로 향할 것이란 정보를 지난 11월 입수한 뒤, 캐나다 쪽에 체포 협조를 요청했다. 캐나다 법원은 멍완저우 체포 전날 이를 허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레 이뤄진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멍완저우 체포 소식은 나흘 뒤인 12월5일에나 외부로 알려졌다. 캐나다 외교부 쪽은 “체포 당일 중국 당국에 통보했으며, 영사 조력을 받도록 했다”고 밝혔다. 체포 사실이 공개되기 전까지 중국 쪽이 물밑 석방 노력을 기울였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다. 캐나다 주재 중국 대사관은 언론 보도가 나온 뒤에야 “권리침해” “인권유린” 등의 표현을 써가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미-중 무역전쟁 ‘90일 휴전’도 출발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멍 체포는 무역정책과 관련 없다”

“전체 상황에 유의해 우선순위를 어디에 둬야 할지를 판단해야 한다. 무역협상을 통해 두 정상이 이뤄낸 합의사항을 어겨선 안 된다.”(왕이웨이 인민대 교수)

“멍완저우 체포와 무역협상을 연관시킬 필요가 없다. 되레 중국을 압박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용해, 협상 과정에서 양보할 수밖에 없을 수도 있다.”(천펑잉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소 선임연구원)

홍콩 일간 는 12월10일치에서 전문가들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미국 쪽에서도 엇비슷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2월10일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멍완저우 체포는 무역정책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미-중 양쪽 모두 ‘확전’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모양새다.
멍완저우 체포 소식이 전해진 직후만 해도, 중국 쪽은 날 선 반응을 보였다. 특히 중국 관영매체들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한 캐나다 쪽에 비난을 집중했다. 관영 은 12월9일치 사설에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사전에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중국 쪽에 사전 통보하기는커녕, 미국 쪽의 일방적이고 패권적인 행태를 도와주고 말았다”며 “이는 지극히 악의적인 행태로, 중국-캐나다 관계에 심각한 상처를 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산당 기관지 도 “캐나다 쪽은 이제라도 잘못을 바로잡고 중국 공민의 합법적 권리를 간섭하는 행동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심각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역전쟁을 벌이는 미국을 직접 겨냥하는 대신, ‘약한 고리’인 캐나다를 움직여 사태를 해결해보겠다는 계산으로 읽힌다.
실제 중국 당국은 캐나다에 대한 외교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캐나다 외교관 출신으로 다국적 민간 연구기관 국제위기그룹(ICG) 선임연구원으로 활동하는 마이클 코브리그가 중국 보안 당국에 구금됐다는 소식이 12월11일 전해졌다. 이튿날엔 랴오닝성 단둥을 근거지로 활동해온 캐나다 출신 대북사업가 마이클 스페이버가 ‘국가안보 위협 행위’ 혐의로 현지 보안 당국에 체포돼 조사받고 있다고 등이 전했다.
중국의 ‘강공’이 언제,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캐나다 법원이 12월11일 멍완저우를 보석으로 석방한 터라, 미-중 갈등이 사태의 본질이란 점이 더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애먼 캐나다만 때려댈 경우, 다른 나라의 반발을 살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스인훙 인민대 교수 겸 미국연구센터 소장은 12월11일치 와 한 인터뷰에서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

“미국 출장 자제하라” “중국 출장 자제하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12월1일 아르헨티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12월1일 아르헨티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한 뒤 악수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중국 당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더 많은 중국의 주요 인사가 외국에서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미국과 중국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중국은 미국을 제외한 다른 선진 개발국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캐나다에 강력한 보복 조처를 한다면, 전체 대외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중국 처지에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멍완저우 체포 사건의 후폭풍은 거세다. 중국 당국은 이미 민감한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일하는 연구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때가 아니면 미국 출장을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불가피하게 미국 출장을 갈 때는 ‘휴대전화와 노트북컴퓨터 등에서 민감한 정보를 사전에 삭제’하라고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뿐 아니라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사업하는 중국 사업가들도 해외 출장을 망설인다는 보도까지 나온다. 현지 당국이 미국의 요청에 따라 언제든 구금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탓이다.
미국 쪽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미국 정보통신 업체 시스코는 12월7일 자사 직원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필수적인 경우를 빼고는 중국 출장을 자제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쪽의 ‘보복’을 우려한 탓이다. 통신은 12월8일 “멍완저우 체포 사건과 관련해 미국 국무부가 자국민에게 중국 여행 자제 경보를 내리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도 전했다. 인적 교류가 끊기면, 정보의 질과 양도 줄어든다. 갈등이 거세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미국과 화웨이의 ‘악연’은 제법 길다. 미 하원 정보위원회는 2012년 10월8일 ‘중국 통신업체 화웨이와 중싱통신(ZTE)이 미국 국가안보에 끼칠 영향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펴냈다. 60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미 하원은 화웨이 등이 중국 정부와 당의 지시를 따르며, 산업 기밀을 훔치고,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며, 적성국과 수상한 거래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화웨이가 이란 관련 사업에 대한 미 하원의 질의에 답변을 거부했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이듬해엔 통신 등이 “화웨이의 자회사가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무시한 채, 미국 정보통신업체 휼렛패커드가 생산한 통신장비를 이란 쪽에 납품하려 했다”는 보도를 내놔 논란이 일었다. 화웨이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스카이콤이란 자회사를 통해 이란 관련 사업을 해왔는데, 당시 이 회사의 책임자가 멍완저우였단다.
미국이 중국 정보통신업체를 겨냥해 ‘칼’을 휘두른 전례는 얼마든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 하원 보고서에서 화웨이와 함께 언급된 중국 2위 통신장비업체이자 미국 내 스마트폰 판매 4위 기업인 중싱통신이다. 미 상무부는 지난 4월 이 업체가 국제사회의 이란·북한 제재를 위반했다며 ‘향후 7년간 미국 기업과 거래 금지’란 제재 조처를 부과했다.

벌금 내고 경영진까지 교체했던 ZTE
중싱통신은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부품을 미국 업체한테 수입해 사용한다. 제재가 길어지면 버텨내기 어려운 처지였다. 결국 이 업체는 14억달러에 이르는 거액의 벌금을 내고, 경영진 일부까지 교체하는 조건을 받아들이고 두 달 남짓 만에 제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상 ‘조건 없는 항복’이었다.
화웨이가 처한 상황도 엇비슷하다. 등은 “화웨이의 핵심 납품업체 92곳 가운데 33곳이 미국 회사다. 이들 업체의 납품이 중단되면 화웨이는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된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가 언제,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정보통신업계도 촘촘한 납품 공급망으로 연결돼 있다. 어느 한쪽이 다치면, 장기적으로 모두가 다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멍완저우 체포 소식이 전해진 12월5일 미국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장중 한때 3%(760포인트)나 빠졌다. 특히 화웨이의 주요 납품업체인 인텔·퀄컴·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의 주가가 폭락했다. ‘불확실성’은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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