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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국민 영웅

1962년 미국인 최초 지구궤도 비행하고 77살에 최고령 기록 남긴 존 글렌
등록 2016-12-21 08:13 수정 2020-05-02 19:28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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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마지막 진정한 국민 영웅”.

미국 유인 우주비행 프로젝트 머큐리 계획의 이야기를 담은 의 작가 톰 울프는 지구궤도를 여행한 첫 미국인 우주비행사 존 글렌을 그렇게 불렀다. 그의 부고를 알리는 기사들도 비슷했다. 그들은 모두 글렌이 ‘마지막 국민 영웅’이었다는 사실을 주지했다.

주적을 필요로 하는 영웅은 더 이상 불가능한 시대다. 는 ‘존 글렌의 죽음은 미국형 영웅의 종말 신호’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1962년 미국은 하나의 군사·이념적 적을 갖고 있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훨씬 더 복잡하고 잔인한 시대”라고 지적했다.

1960년대 존 글렌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국민적 인기를 누렸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에 깃발 꽂기’ 경쟁이 극심하던 시절이었다. 1957년 소련은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올렸고, 미국에선 우리도 우주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등등했다. 미국은 1958년 미 항공우주국(NASA·나사)을 설립해 유인 우주비행 계획을 추진했다. 그러나 소련이 1961년 유리 가가린이 탑승한 보스토크 1호를 쏘아올려 인류 역사상 첫 우주비행에 성공하면서, 미국은 또다시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이런 배경에서 등장한 것이 존 글렌이다.

1962년 2월20일 글렌은 역사적인 우주비행에 나섰다.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 탐사 ‘머큐리 계획’의 일환인 궤도 비행 미션이었다. 그는 ‘프렌드십 7호’에 탑승해 지구궤도를 세 바퀴 돌았고, 이 모습은 전세계에 생중계됐다. 그는 지구궤도에서 4시간55분 동안 머물렀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지구로 돌아왔을 때 그는 미국 과학기술의 승리요, ‘할 수 있다’는 미국 정신의 상징이 돼 있었다.

‘주적’ 필요했던 냉전시대 국민 영웅

그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환영을 받았고, 미 의회 연설로 박수갈채를 받았으며, 뉴욕에선 400만 명의 환영 인파가 몰린 가운데 3500t에 달하는 양의 색종이가 뿌려진 대대적 퍼레이드가 열렸다. 는 작가 월터 맥두걸의 말을 인용하며 글렌의 우주비행 임무 성공은 “비할 데 없는 국가적 카타르시스”였다고 말했다.

지구궤도 비행에 성공한 첫 미국인, 후일 24년간 미국 상원의원을 지냈으며 77살에 다시 우주로 돌아가 최고령 우주비행사 기록을 세운 존 글렌이 지난 12월8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5.

존 허셜 글렌은 1921년 7월18일 미국 오하이오주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전공했고, 1941년 대학 재학 중 파일럿 자격증을 땄다. 1943년 진주만 폭격 뒤 학교를 그만두고 나와 해군항공 장교후보생 과정을 거쳐 미 해병대로 임관했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해 150여 차례 작전에서 전투기를 몰았다. 유능함을 인정받아 7개 이상 전투 훈장을 받았다. 그는 특히 대공포화 속에서도 침착히 폭격 조준 경로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악착같은 자석’이란 별명은, 목표 전투기의 뒤를 낮게 따라가 꼬리에 붙어 절대 떨어지지 않으며 비행하는 그의 끈질긴 공격 스타일에서 비롯했다.

본격적으로 ‘탐험가’ 기질을 발휘한 것은 ‘시험비행 조종사’에 지원했을 때부터다. 시험비행 조종사는 신종 전투기가 실제 작전에 투입되기 전, 최대한계를 시험하는 등 전투기를 길들이는 조종사다. 미 해군 신형 전투기, F8U 크루세이더를 맡은 그는 이 전투기의 시험비행을 명분으로 ‘첫 논스톱 미국 횡단 초음속 비행’ 이벤트를 계획했다. 많은 반대에도 이벤트를 강행해, 결국 1957년 7월 로스앤젤레스에서 뉴욕까지 3시간23분 만에 주파하며 대륙횡단 최고속도 기록을 세웠다. 이른바 ‘불렛(총알) 프로젝트’로 알려진 이 이벤트로 글렌은 전국적 유명인사가 되었다.

이즈음 미국은 나사를 신설하고, 미국의 육·해·공군 중 첫 우주비행사가 될 만한 인물을 물색 중이었다. 글렌이 ‘머큐리 7’(머큐리 계획에 선발된 7명의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위험 상황에서도 빠르고 침착하게 항공기를 몰 수 있는, 이 계획에 누구보다 적합한 인물이었다.

당시 는 “그는 의사, 정신과 의사 등 전문가들로 이뤄진 선발위원회가 찾을 수 있는 가장 건강하고, 가장 건전한 정신에, 높은 동기부여가 되어 있고, 지능을 갖춘, 미리 선택된 종류의 사람이었다”고 썼다( 재인용). 말하자면 그는 “미국의 보이스카우트 중 가장 완벽한 보이스카우트”()였다.

“전쟁을 이해하지만 평화를 사랑”

글렌이 1962년 지구 바깥을 돌며 타전해온 말들은 오래도록 회자됐다. 미 중서부 출신 군인 글렌은 과장하거나 멋 부릴 줄 몰랐다. 무중력 상태에 이른 그는 간결한 평가를 내렸다. “제로지(무중력), 이상 없음.”(Zero-G and I feel fine.) 그 다음엔 “오, 경관이 대단함.”(Oh, and that view is tremendous.)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신비롭게 우주선 창밖을 날아다니는 “우주의 반딧불이”에 대해 말할 때조차 침착했다. (미지의 우주 현상으로 여겨졌던 그것은 나중에 우주선에서 배출된 소변 조각들로 밝혀졌다.)

은 글렌에 대해 “그는 딱딱한 중서부 말투로 ‘팩트’를 전달할 뿐이다. 그런 목소리로 ‘왼쪽으로 아프리카 해안이 보인다’거나 ‘미국의 해안선이 멋지다’고 말하는 것이다”( 재인용)라고 묘사했다.

평화로운 순간도 잠시, 지구궤도를 한 바퀴 돌았을 때 그는 지구 재진입 자동제어장치가 고장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혼란 속에 두 바퀴를 더 돈 뒤 그는 결국 수동제어장치로 우주선을 조종해, 가까스로 대서양 바다 위에 착지할 수 있었다. 그는 후일 언론에 마지막 하강 구간 동안 자신이 “떨어지는 낙엽” 같았다고 말했다.

지구로 돌아온 뒤, 그는 거대한 국민적 영웅이 되어 있었다. 그를 다시 비행 임무에 투입해 죽음의 위험에 노출시키는 것은 국가로서도 위험부담이 컸다. 케네디 대통령은 그가 다시 우주비행 임무에 투입되지 않도록 조치했다. 대신 국회의원에 입후보하라고 권했다.

글렌은 사무실에 앉은 ‘우주 셀럽’ 노릇에 지쳐 1964년 우주비행사 부대에서 사임했다. 그리고 고향인 오하이오 상원의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얼마 뒤 욕실에서 넘어져 다치는 바람에 경선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글렌은 포기하지 않고 1970년 다시 상원 예비선거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4년 뒤인 1974년 결국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이후 1995년까지 24년간 온건파 민주당원으로 오하이오주를 대표해 일했다.

정치인으로서 그의 가장 큰 업적은 1978년 발의한 ‘핵비확산법’이다. 그는 또한 남녀평등 헌법 수정안과 낙태권 등 진보의 시금석이 될 만한 이슈들을 지지했다. 그는 1980년 재선 캠페인에서 자신을 “전쟁을 이해하지만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그는 일관되고 무신경한 군대식 말투와 자유민주적 이슈에 대한 지지로 재선에서 압승했다. 1984년에는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 선거에 출마했지만 탈락했다.

77살에 디스커버리호 탑승

그가 다시 극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받은 것은 1998년이다. 그는 24년간의 상원 생활을 끝내기로 결심하고, 나사에 다시 우주비행 기회를 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그의 나이 77살이었다. 나사는 탄원을 수락했다. 그의 참여가 무중력이 나이 든 신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유용한 데이터를 제공해주리라 생각했다. 마침내 글렌은 1998년 10월29일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 탑승하게 되었다. 이로써 그는 미국의 첫 우주비행사이자, 최고령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그는 9일 동안의 비행 끝에, 이번에도 무사히 지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글렌은 언젠가 달 착륙에 성공한 버즈 올드린과 닐 암스트롱에게 질투를 느꼈다고 했다. 그는 77살에 우주비행을 마치고 돌아와 이렇게 말했다. “단지 나이 들었다는 것이, 꿈과 열망을 갖고 있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로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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