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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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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65살 되면 ‘정년퇴임’

피 없이 입헌군주국 전환한 세계 유일국… 산골 14시간 걸어 방문하는 왕에 국민들 감동, 빠르게 민주화 길 걸어
등록 2015-10-08 08:42 수정 2020-05-02 19:28
2005년 부탄의 4대 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왼쪽 사진 맨 오른쪽)가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REUTERS

2005년 부탄의 4대 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왼쪽 사진 맨 오른쪽)가 인도의 만모한 싱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REUTERS

권력은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다. 텔레비전 사극의 단골 주제인 이성계와 이방원, 선조와 광해군, 인조와 소현세자, 영조와 사도세자의 갈등이 좋은 예다. 조선시대의 왕위는 적장자 계승 원리를 따랐다. 그럼에도 조선 514년 27명의 왕 가운데 정통성에 문제가 없었던 왕은 10명뿐이다. 1907년 통일왕국을 이룬 부탄의 현재 왕은 5대 왕인데, 지금까지 왕위 계승에 아무런 갈등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드라마틱한 것은 4대 왕으로부터 5대 왕으로의 왕위 계승이다.

4명 부인을 둔 건 왕이 ‘희생’한 결과?

부탄의 4대 왕 지그메 싱기에 왕추크는 1972년 16살의 어린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아버지 3대 왕이 43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이다. 3대 왕은 의회제도, 근대적 교육과 의료제도를 도입하는 등 진보적 정책을 시행해 근대화의 초석을 닦았다.

4대 왕은 아버지의 진보정치를 계승했을 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한 사람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로, 인민이 자신의 힘으로 결정하는 것이 좋다”는 신념으로 절대군주제를 입헌군주제로 전환하는 부탄 헌법 초안을 마련했다. 4대 왕은 자신이 왕위에 있으면 민주화와 분권화의 원활한 이행에 장애가 된다고 판단해 2006년 불과 51살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나 아들에게 양위했다.

당시 절대왕제에 익숙했던 부탄 국민은 4대 왕의 선위와 절대군주제 폐지에 맹렬하게 반대했으나 4대 왕은 앞장서서 다음과 같이 백성을 설득했다. “미래의 부탄 왕들이 모두 좋은 왕이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좋은 왕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왕도 있을 수 있다. 그런 왕이 내린 결단은 나라를 한순간에 붕괴시킬지도 모른다. 국가는 왕보다 중요하다.”

왕위를 계승한 현 5대 왕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2008년 민주헌법을 제정해 선포했다. 이처럼 부탄은 세계사에서 처음으로 혁명이나 전쟁 없이 국왕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절대군주국에서 입헌군주국으로 전환한 나라이다.

부탄의 현재 왕인 5대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가 시민들에게 선물을 주는 모습. REUTERS

부탄의 현재 왕인 5대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가 시민들에게 선물을 주는 모습. REUTERS

올해는 4대 왕이 환갑을 맞이한 해이다. 전국에서 4대 왕의 환갑을 축하하는 행사가 다채롭게 열리고, 온 천지에 5대 왕과 더불어 4대 왕의 사진이 걸려 있다. 4대 왕에 대한 부탄 국민의 존경심은 절대적이다. 4대 왕은 왕비가 4명이다. 부탄은 오늘날 일부일처제가 보편적이지만 일부다처제 혹은 일처다부제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왕이 4명의 왕비를 두는 게 이상할 것 없다.

재미난 것은 네 왕비가 모두 같은 자매이고, 같은 날 동시에 결혼했기 때문에 왕비들 사이에는 서열이 없고 모두 정식 왕비라는 거다. 원래 왕은 가장 큰언니를 사랑해서 결혼하려고 했는데, 부탄의 최고 라마승이 왕의 안위와 국가의 번영을 위해서는 4명 모두와 결혼해야 한다고 했단다. 왕이 백성을 위해 희생(?)한 것이라고 칭송한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왕이 첫날밤을 어떻게 보냈을까 수군거린다.

4대 왕이 백성에게서 존경받는 것은 그가 부탄 민주화의 토대를 마련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재위한 34년 동안 부탄은 사회·경제 부문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구 소국임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한 위상을 갖게 되었다. 그의 재위 기간에 농촌 개발이 추진되고, 도로·교육·의료서비스가 크게 확충됐으며, 산간 오지까지 전기가 들어가게 되었다. 아동 취학률이 거의 90%에 달하고, 평균수명은 66살로 크게 늘어났다. 그는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허용하고 외국인에게 문호를 개방해 적극적으로 관광객을 유치하는 한편, 수력발전을 개발해 수출함으로써 경제발전에 필요한 외화를 조달했다. 그 결과 부탄의 국내총생산(GDP)은 1985~2006년 15배 증가했다.

20시간 차를 달려 14시간 자갈밭을 걸어
부탄의 수도 팀푸의 한 건물에 걸린 왕과 왕비의 사진. 박진도

부탄의 수도 팀푸의 한 건물에 걸린 왕과 왕비의 사진. 박진도

특히 4대 왕이 칭송받는 것은 이같은 사회·경제적 발전에 만족하지 않고, 그것이 국민 행복에 기여하는지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그는 “국내총생산(GDP)보다는 국민총행복(GNH)이 더 중요하다”는 유명한 말을 하고, 국가 정책의 비전을 국민총행복에 두었다. 그는 국민 행복을 위한 문화와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한 나라의 정체성은 국부나 군사력이 아니라 독자적 문화를 갖는 것”이라고 강조해 전통문화를 유지·발전하기 위한 정책을 실시하고, 동시에 환경 보전을 위한 여러 정책을 도입했다. 그는 분권화를 추진해 비록 임명직이지만 종카그(district)의 종다(우리나라의 도지사에 해당)에게 각 지역의 재정 운영과 발전계획 조정권을 부여했다.

5대 왕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는 2006년 26살에 왕위에 올라, 선대왕이 초석을 마련한 국민총행복(GNH) 정책을 잘 계승·발전시키고 있다. 그는 검소한 생활과 서민적 행보로 백성의 사랑을 받고 있다. 5대 왕은 2011년 31살 때 10살 아래의 평민 출신을 왕비로 맞이했다. 이들의 러브스토리가 흥미롭다.

왕과 왕비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데 그들이 처음 만난 것은 왕이 17살, 왕비가 7살 때의 가족 나들이에서였다. 첫눈에 반한 왕자는 소녀에게 무릎을 꿇고 “내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하지 않았고 네가 미혼이라면 나는 너와 결혼하겠다”고 말했다 한다. 결혼식은 전통예법으로 거행됐고 국왕의 결정에 따라 나라 살림을 고려해 검소하게 준비됐으며 외빈을 일절 초청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외국인 기자 160여 명이 취재 경쟁을 벌일 정도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부탄 왕이 백성에게서 사랑받고 존경받는 이유 중 하나는 생활이 검소하고 대중과 잘 소통하기 때문이다. 부탄 왕실은 다른 나라의 왕실과 달리 왕실 소유 재산이 거의 없다. 그들은 헌법에 정해진 연금을 받아 생활하기 때문에 생활에 여유가 없다.

실제 부탄 왕들의 생활은 매우 검소하다. 5대 왕이 왕비와 함께 거처하는 왕궁은 부탄 정부종합청사 옆에 있는 아주 작은 건물이다. 당초 4대 왕이 집무 중 잠시 쉬는 장소로 사용하던 곳이다. 정부종합청사 내에 있는 왕의 집무실은 작은 방에 책상과 접견실이 있는 정도로 장관 집무실보다 훨씬 좁다고 한다.

내가 부탄의 동쪽을 여행하면서 잠시 머물렀던 로열게스트하우스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검소했다. 왕과 왕비의 침실에는 침대와 간단한 가구가 놓여 있고, 10여 명이 회의할 수 있을 정도의 접견실이 전부다. 왕의 처소라고는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관리인에게 정말 왕이 와서 자느냐고 물었다.

로열게스트하우스의 왕비 침대. 박진도

로열게스트하우스의 왕비 침대. 박진도

부탄 왕은 백성과 소통하기 위해 1년에 몇 차례 지방을 순시한다. 그것은 보통 고된 일이 아니다. 지난 5월 왕은 동쪽 끝 해발 3500m의 메락을 방문했다. 메락은 타시강에서 농도로 1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서 또 3시간을 걸어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이틀을 지낸 왕은 삭텡을 갔다. 메락에서 삭텡까지는 찻길이 없어 걸어서 8시간을 가야 한다.

때마침 비가 와서 무려 14시간을 걸으며 산골을 방문하는 왕과 왕비의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됐다. 왕은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며 격려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연설하기도 했다. 그리고 민가를 방문해 담소를 나누었다. 또한 의료진을 데리고 가서 주민의 건강검진을 해주고 간단한 수술도 해주었다. 20시간 이상 험한 자동차길을 달려와 14시간 동안 비를 맞으며 자갈밭을 걸어 자신들을 만나러 온 왕을 지켜본 백성들이 어찌 왕과 왕비를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막강한 권한 지녔지만 현실에선 마찰 없어

내가 얼마 전 에 실은 글을 보고 독자 한 분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보내왔다. “지도자의 선의에 기대어 이뤄진 민주주의가 얼마나 힘이 있을까? 얼마나 그 뿌리가 단단하리라고 믿을 수 있을까.” 당연한 질문이다. 부탄은 입헌군주국으로 헌법상 국왕의 권한이 막강하다. 국가원수이며, 부탄 왕국과 인민의 상징이며, 정치와 종교의 통일체이며, 군 통수권자이다. 왕은 헌법기관의 장을 비롯해 군사령관과 정부 요직, 그리고 최고 종교지도자인 제켄포(Je-Khenpo)를 임명할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왕은 이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지 않고 법에 정해진 추천과 자문을 존중하기 때문에 마찰이 생기지 않는다.

카르마 치팀은 부탄 공무원 2만6천 명의 인사를 책임지는 인사위원회 위원장이다. 그에게 어떤 절차를 거쳐 임명됐는지 물었다. 인사위원회는 5개 헌법기관의 하나인데, 헌법기관의 장은 총리, 상원의장, 하원 대변인, 대법원장, 야당 대표 등 5인이 모여 후보자를 추천하면 왕이 임명한다.

추천한 자가 왕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그런 일은 없다. 왕은 추천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추천하기 전에 왕과 조율을 하나? “그렇지 않다.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왕은 헌법에 정해진 추천 절차를 매우 존중한다.” 헌법상 왕은 의회의 결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통치는 총리를 비롯한 내각과 헌법기관에 맡기고 있다. 왕은 군림하지만 직접 통치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왕도 헌법에 의해 65살 정년이 되면 왕위를 반드시 후계자에게 양위해야 한다.

부탄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고 의회는 양원제다. 상원은 25명으로 구성되는데, 20명은 20개의 종카그에서 각 1명씩 선출되고, 이들은 정당에 소속되지 않으며, 나머지 5명은 왕이 임명한다. 하원은 헌법에 20개 종카그에서 유권자 수에 따라 최소 2명에서 최대 7명까지 최대 55명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나, 지금은 최소 2명에서 최대 5명을 선출하여 47명의 의원이 있다. 이들은 당적을 갖는다.

재미난 것은 선출 의원 수를 결정하는 유권자 수가 실제 거주인구가 아니라 등록인구라는 거다. 부탄 사람들은 이농을 하더라도 토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등록지를 바꾸지 않는다. 따라서 수도 팀푸를 비롯해 도시 지역은 이주인구가 많기 때문에 실거주인구에 비해 등록인구가 매우 적어 선출 의원 수가 적다. 예를 들어, 수도 팀푸에는 10만 명 이상이 살지만 등록인구는 7천 명에 불과해서 선출 의원 수는 최소 인원인 2명에 지나지 않는다. 반면에 거주인구가 훨씬 적은 타시강의 선출 의원 수는 5명이다.

2번째 민주 선거에서 여야 정권 교체

2008년 부탄은 최초의 민주적 국회의원 선거를 했고, 2013년 두 번째 선거가 있었다. 헌법에는 다당제를 허용하고 있으나, 안정적 정부 운영을 위해 실제로는 양당제를 실시하고 있다. 여론조사 방식의 투표를 거쳐 상위 2개 정당이 결선투표를 한다. 따라서 예비투표와 결선투표의 결과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2013년 선거에서 부탄평화와번영당(DPT)과 인민민주당(PDP) 이외에 두 개의 정당이 참여해 예비투표를 했다. 예비투표에서 전체 유권자의 55.3%가 참여해 당시의 여당인 DPT가 44.5%, 야당인 PDP가 32.5%를 차지해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에서는 예선보다 많은 유권자가 투표에 참여했는데(투표율 66.3%), 결과는 예비투표와 달리 야당인 PDP가 54.9%(47석 가운데 32석), 여당인 DPT가 45.1%(15석)를 차지해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이는 여론조사에서 두 정당 이외에 다른 정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야당인 PDP 후보에 투표했기 때문이다. 80%라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2008년 최초의 선거에서 DPT가 67%의 지지로 47석 가운데 45석을 차지한 것에 비하면 놀라운 결과이다. 부탄 사람들은 정권 교체의 원인을 2012년의 외환위기, 집권당의 부패, 국왕과의 갈등 등 세 가지로 설명한다.

거주지와 등록지가 일치하지 않고, 교통과 도로 사정이 나빠 투표에 참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직접 투표하기 위해서는 며칠씩 걸릴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투표 이외에 우편투표를 실시하고 있으나 80% 이상의 국민은 직접투표에 참여한다. 이는 투표가 국민의 기본권이자 의무라는 것을 부단히 교육한 결과이다. 선거는 자유 공명선거로 치러졌고 선거 후유증도 거의 없다. 부탄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지 않아 사표의 가능성이 높다. 선거제도에 여전히 개선할 점이 적지 않지만 교육수준의 급속한 상승과 더불어 민주국가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왕과 의회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 한 토막을 소개한다. 부탄 의회는 왕과 상·하원으로 구성된다. 왕은 의회 개막식과 폐막식에 참여한다. 나는 2014/2015 회계연도의 폐막식에 외교사절(?)의 일원으로 초청됐다.

폐막식을 알리는 부탄 전통 나팔소리가 은은히 울리는 가운데 왕이 위쪽 문을 통해 조용히 등장한다. 먼저 내각을 대표하여 노동부 장관이 약 20분에 걸쳐 지난 1년간 내각이 한 일을 소개하고, 이 모든 것이 왕의 지혜와 멀리 보는 비전이 잘 이끌어주신 결과라고 칭송하며 왕의 건강과 왕국의 번영을 기원하는 말로 인사를 마친다. 다음에는 여당 대표와 야당 대표가 차례로 거의 같은 내용을 각 10분간 낭독한다. 마지막으로 국회의장이 지난 1년간 국회가 한 일을 소개하고 이 또한 왕의 훌륭한 지도에 따른 것임을 칭송한다. 이렇게 1시간가량 왕에 대한 칭송이 끝나자, 모든 의원들이 왕 앞으로 나아가 가벼운 종이 문서를 들고 한참 동안 전원이 함께 읽는다. 왕국의 안녕과 백성의 행복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왕도 함께 기도한다.

1시간 헌사 들은 왕의 답변은?

왕에 대한 1시간 동안의 지루한 헌사가 끝나고, 승려가 달(여러 축복을 상징하는 하얗고 긴 스카프)을 왕에게 바치고 뒷걸음으로 물러난다. 왕은 달에 잠시 머리를 숙이고 기도한다. 자, 이제는 왕께서 한 말씀을…. 그러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모든 의식이 끝나자 왕은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박진도 지역재단 이사장·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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