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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정착·군 개혁 모두 함께 해야 한다”

타이 진보 역사학자 통차이 위니차쿤 교수 인터뷰
등록 2015-07-10 07:05 수정 2020-05-02 19:28

통차이 위니차쿤 교수(사진)는 대표적인 타이 진보 역사학자다. 타이의 386세대라 할 만한 ‘10월 세대’로 탐마삿대학에 재학 중이던 1976년 ‘탐마삿 학살’을 경험하고 2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당시의 기억을 담아 현재 책을 쓰고 있다. 은 일본 교토에 머물고 있는 통차이 교수를 전화 인터뷰했다. 그의 답변은 냉정했다. 해석과 예측은 최대한 지양하는 태도를 보였다.

최근 학생 시위를 어떻게 봤나.

지지한다. 그러나 무슨 큰 항쟁의 불씨라도 될 것처럼 섣부르게 해석하지 말자. 그렇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명한 자는 사건이 일어난 뒤 그걸 설명하지, 미리 예단하지 않는다.

쿠데타 이후 레드셔츠가 역할을 잃어가는 거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반면 ‘다오딘’처럼 스스로 독립적이라고 강조하는 이들이 저항하고 있다.

내가 보기엔 (그들) 모두 레드셔츠 운동에 속한 이들이다. 레드셔츠 운동은 매우 방대한 동맹체다. (친탁신계) 반독재민주주의연합전선(UDD)이 아닌 사람이 많다는 말이다. 솜밧(‘레드선데이 그룹’ 대표)은 탁신 팬이 전혀 아니고, 나도 레드셔츠라 말할 수 있지만 탁신 팬이 아니다. UDD는 데미지를 입었다. 이제 시위조차 하지 않는다. 탁신과 너무 가까운 그들의 한계다.

얼마 전 1932년 시암 혁명 83주년이 지났다. 당시와 현 상황에서 연계점을 찾을 수 있나.

매우 다르다. 1932년 혁명(혹은 쿠데타, 당신이 뭐라 부르든)은 항쟁에 의한 혁명이 아니다. 혁명을 치른 인민당 주류는 군 엘리트들이었다. 그들은 왕정을 법치 아래 두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1932년 혁명의 의제가 사라진 건 아니다. 의제만 놓고 보면, 현재와 연결 지점이 있다.

당신은 어느 강연에서 ‘로열리스트 민주주의’(Royalists Democracy)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지속 가능할 수 없는 체제라고 덧붙이며.

선출되지 않은 로열리스트(왕정주의자)들이 거의 모든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단 한 번도 ‘공식적’이었던 적은 없다. 그들은 선출된 권력 위에 군림해왔고, 변화를 거부하며, 일반 민중은 멍청해서 ‘1인1투표권’이 타이의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19세기 마인드다.

선거민주주의 정착이 우선인가.

무엇에 우선한다는 의미인가? 나는 선거 시스템이 군 개혁에 우선한다고 보지 않는다. 모두 같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 푸어타이당과 UDD는 선거만 기다리는 것 같다.

= 푸어타이는 쿠데타 시스템으로 싸우지 않을 것이다. 정당들은 더 광범위한 지지 기반을 누리지만 보통 한계를 갖고 있다.

- 탁신 전 총리를 몰아냈던 2006년 군사 쿠데타가 없었다면 당시 고조되던 안티탁신운동(옐로셔츠)이 (일종의) 부패한 탁신 정권을 몰아낼 수 있었으리라 보는가.

= 역사적 가정법은 별 의미가 없다. 나중에 찬찬히 분석해보니 당시 안티탁신운동 지도부는 (2006년) 쿠데타 음모의 일부였다.

- 2010년 (친탁신계) 레드셔츠 운동이 왕정주의자들과 군의 지지를 받던 민주당 정부에 선거를 요구하며 시위하다 군의 유혈 진압으로 90여 명이 학살당했을 때 ‘내전’이란 단어가 자주 거론됐다. 지금은 어떤가.

= 당시에는 (내전) 가능성이 높았다. 지금은 사그라들었지만 분쟁은 아직 그대로다.

방콕(타이)=글·사진 이유경 Lee@Penseur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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