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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세계와 한국

노르웨이, 인종차별 정말 없나?

제345호
등록 : 2001-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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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골적 차별은 사라졌지만 비서구문화에 대한 폄하와 ‘후진성’ 담론은 계속된다

사진/투쟁하는 팔레스타인 청년들. 이슬람에 대한 노르웨이 사람들의 의식은 아직도 왜곡된 면이 많지만, 팔레스타인의 헌신적인 생존권 투쟁은 커다란 호의와 지지를 얻는다.(AP연합)
“거기에도 인종차별이 있나요?”

이는 노르웨이에 대해서 한국인들이 필자에게 가장 자주 하는 질문 중 하나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라는 필자의 고민은 적지 않다. “비교적 없는 편이다”라고 말하면 가장 진실에 가까울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인종주의자들이 흑인이나 아시아인들을 가끔 죽일 수도 있는 미국이나 독일, 그런 일이 없어도 국외 추방을 당하는 외국인(주로 아시아, 아프리카인) 불법체류자들을 지나치게 가혹하게 다루는 일로 2000년 ‘국제사면기구’(AI)의 연례보고서에서 비판을 받은 스웨덴과 덴마크에 비해서, 노르웨이의 ‘인종주의 근절’ 실적(?)이 훨씬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인종주의가 없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드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노르웨이가 포함되는 구미지역 중심의 세계 체제의 차원에서 이야기하자면, 그 시발점인 16세기부터 최근까지 그 체제의 배경 심성과 이론적인 합리화를 제공하는 것은, 바로 여러 형태의 인종주의였다. 16세기의 미주 토착문명의 파괴, 17∼18세기의 흑인 인신매매, 19세기의 아시아·아프리카 식민화…. 대륙마다, 나라마다 차례차례 약탈·예속되는 과정의 심정적·이론적 배경은, 바로 철저한 인종 우열론이었다.

‘아시아 여성 불임수술’ 학술적 논의


물론 1905년까지 노르웨이를 통치했던 덴마크와 스웨덴도, 1905년 이후의 독립국 노르웨이도 이렇다 할 만한 독자적인 해외 약탈과 식민화를 시도할 만한 군사력이나 재력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서구 열강들의 세계 약탈에서 이들이 간접적으로 이득을 보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전반에 미국에 이민간 약 200만명의 노르웨이 사람들은, ‘당당한 백인’으로서 미군에 의한 토착민 (인디언) 섬멸 작전에 참전하기도 하였고, 토착민에게 빼앗긴 땅에서 정착하기도 했다. 비서구지역의 수공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서구 대량 생산품을, 노르웨이의 수많은 상선들이 날라주기도 했다. 그리고,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서구지역의 독자적 문화·신앙의 파괴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해외 선교’에서, 독실한 루터교 국가인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의 성직자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그런 일에 뛰어들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노르웨이는 서구에 의한 세계 약탈의 ‘주범’은 아니었지만, ‘틈새 이득’을 노리는 ‘공범’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면, 과연 ‘공범’은 ‘주범’들의 ‘범죄철학’을 따라 배우지 않을 리가 있을까?

1940∼50년대에, 노르웨이에서 몇 되지도 않는 아시아 계통의 여성들에게 불임수술을 의무적으로 해서, ‘열등 인종의 번식’을 막아야 하지 않느냐는 학술적인 논의가 노르웨이 정부와 언론에서 심오하게 일었었다는 사실만 봐도, 전유럽적인 광기로부터 노르웨이도 역시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광기시대’의 잔재들은 지금도 알게 모르게 특히 나이든 사람들의 뇌리에 새겨져 남아 있다.

아시아인(주로 베트남, 파키스탄 출신)들의 대량 이민이 개시된 1970년대 중·후반에, 이미 그때까지 약 30년 동안 사회 민주주의적 성향의 노동당 치하에 있어왔던 노르웨이는, 종래의 인종주의 편견을 상당히 많이 탈피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현재 약 9만∼10만명(입양인, 국제결혼 제외)에 이르는 아시아 계통의 이민자에 대해서 몇 차례에 걸쳐(예를 들어서, 1990∼91년에) 극우적 색채의 젊은이에 의한 소규모 집단 폭력(점포 파괴, 주택 난입)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노르웨이 전국은 깊은 수치심에 잠기곤 하였다. 집단폭력은 물론이고, 아시아·아프리카인의 자녀들이 가끔 학교에서 ‘왕따’가 되어 심한 놀림을 당한다는 보도들도 노르웨이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이와 같은 충격의 결과로, 1998년에 지역자치개발부의 산하에 ‘인종차별 근절센터’(SMED)가 설치되고, 곧 이어 ‘인종차별 근절법’도 채택되었다. SMED의 홈페이지(www.smed.no)에 올린 최근 2년간의 인종차별의 피해사례를 들여다보면, “학생증이 없다”는 핑계로 젊은 흑인의 디스코 출입을 막았던 경비원에 대한 고발이나, “노르웨이 사람에게만 세를 놓는다”는 어처구니없는 광고를 낸 한 부동산 주인에 대한 소송 등 일상생활 차원의 간헐적 차별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우들이 언론의 반응을 당장 일으켜 사법 처리로 귀결되는 것이 다반사이니, 노골적인 인종차별은 차근차근 그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다.

이슬람은 다 공격적·배타적?

사진/내란 속에서 팔을 잃은 한 시에라리온 사람의 아이 사랑. 제3세계의 비극을 극명하게 잘 보여주는 한 노르웨이 작가의 이 예술사진은, 올해의 노르웨이 예술사진 우수상을 받았다.
근·현대사 4세기에 걸쳐 유럽인들의 사유를 지배해왔던 ‘인종’ 담론에 대한 이 정도의 반성은 실로 역사적인 진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를 과연 ‘인종 담론’의 완전한 종식이라며 낙관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필자의 체감으로는, ‘종식’되었다기보다는 또다른 차별주의적 담론으로 재편·변모됐다는 것 같다. ‘인종’ 담론의 후신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문화’ 담론과 ‘후진성’ 담론이다.

‘문화’ 담론은, 우파 계통의 지식인을 비롯한 많은 노르웨이 사람들이 이제 내면화된 사회적 검열로 말미암아 수치스럽게만 느껴지는 ‘피부색 이야기’를 더이상 자유롭게 꺼낼 수도 없지만, 그 대신 비서구 문화들의 ‘내재적 결함’과 ‘열등성’, 그리고 ‘서구 가치와의 공존 불가능성’ 등을 자주 거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르웨이에 사는 비서구 계통 이민자들의 대다수를 이슬람지역 출신들이 차지하는 이유로, 자연히 ‘최신형 차별주의’의 일차적인 비판 대상으로 되는 것은 이슬람의 가치와 문화다. 적지않은 노르웨이 사람들이 이슬람이 광신주의와 공격성·배타성만을 장려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고, 사실상 최근의 한 경향일 뿐인 이슬람 근본주의를 이슬람 문화 전체와 거의 동일시하려 한다. 온건하고 포용적인 ‘우리’와, 과격하고 배타적인 ‘그들’을 대조시키는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의 ‘타자화’의 논리이다. 최근의 이슬람 근본주의를 자극한 것이 바로 서구와 그 첨병인 이스라엘의 근동 침략과 전쟁 범죄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우습게만 보이는 논리이지만, 이슬람에 대한 비방을 일종의 ‘전공필수’로 삼는 서구·미국의 언론들을 그대로 믿는 많은 노르웨이 사람들은 중동 출신들을 ‘문화상 테러리스트가 쉽게 되는 부류’, ‘문화상 폭력을 용인하는 사람’, ‘광신적 경향이 강한 문화의 소유자’로 집단적으로 분류하는 경향이다.

웃지 못할 일이지만, 만약 중동 출신의 여성이 취직 면접에서 “나는 회사에서도 차도르(이슬람 문화에서 여성의 얼굴을 가리는 숄)를 계속 쓰고 싶다”고 말하면, 성공적으로 취직될 확률이 극히 적은 곳이 또한 인권국가임을 자랑하는 노르웨이의 이면이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서 자신의 문화유산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이슬람 신도들의 굳은 의지가, 역사적으로 침략자의 편에 서서 틈새 이득을 노려왔던 노르웨이의 토박이들에게 ‘비이성적인 광신주의’로만 보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한다.

피와 공격의 광기로 얼룩진 서방의 과거를 완전히 극복한다는 것은, 실로 쉬운 일이 아니다. ‘후진성’ 담론의 형태는 매우 다양한데, 교육을 비롯한 비서구지역의 일체의 제도들을 무조건 폄하하는 일면도 있다. 유럽 밖의 대부분 나라들의 석·박사 학위들을 아예 인정하지 않거나, 서구 학위에 비해서 ‘열등한’ 것으로 보고 그 소지자에게 취직 때 불이익을 주는 관행은, 바로 이 ‘후진성’ 담론과 직결된다. 해당국가의 교육제도와 현실에 대해서 충분한 정보도 구비하지 못한 채 이와 같은 임의적인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이미 뇌리에 새겨져 있는 ‘인종 담론’의 영향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극우단체 강제 해산될 듯

그러면 이제, “노르웨이에 인종차별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과연 어떻게 대답해야 할 것인가. 옛 성현의 말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자기 자신, 즉 자신의 선입견과 편견들, 길들여져 버린 그릇된 인식들이다. 노르웨이사회는 지금, ‘자기 자신의 극복’ 즉, 과거의 여러 편견들에 대한 극복 과정중에 있다. 제국주의가 이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지금도 여러 형태의 침략을 자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계의 일부인 노르웨이에서도 이 ‘자기 극복’의 과정은, 단순치도 간단치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올바른 인식의 방향에 의해, 지금까지도 상당한 성과가 있었고 앞으로도 많은 그러한 성과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추신

원고가 탈고된 뒤인 1월26일 노르웨이 역사 처음으로 인종주의로 인한 살해사건이 일어났다. 노르웨이 극우청년단체 회원들이 아프리카 이민자의 아들(15)을 죽인 것이었다. 용의자 4명이 이미 경찰에 붙잡혔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이유와 경위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이번의 사건은 미증유의 범국민적인 충격을 일으켜 일부 극우단체의 금지, 강제 해산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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