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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이런 법이_싱가포르] 벌금 천국에서의 하루

등록 2005-09-07 15:00 수정 2020-05-02 19:24

▣ 싱가포르=서영철 전문위원 uzseo@hanmail.net

싱가포르는 ‘깨끗한 나라’ 그리고 ‘벌금의 나라’다. 어떤 이는 싱가포르가 청결을 유지하는 것이 벌금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청결이 먼저인가 벌금이 먼저인가라는 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질문과 같다. 그런데 얼마나 벌금을 많이 내는 것일까. 한국 사람 김씨가 싱가포르에서 한국에서처럼 행동할 때 하루 동안 벌금을 얼마나 낼지를 알아보자.
보통 싱가포르 공항에 내리면 지하철(MRT)로 도심 중심까지 갈 수 있다. 김씨는 들고 있던 음료수를 지하철 내에서 마셨다. 벌금은 500싱가포르달러(31만5천원). 벌금을 내고 나오던 김씨는 스트레스를 받아 담배를 뽑아물었다. 그 순간 그는 또다시 벌금 1천싱가포르달러(62만원)를 내야 했다.
김씨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으로 가서 싱가포르 전통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그는 가방 속에 있던 껍을 꺼내서 길을 걸었다. 김씨는 단물이 빠진 껌을 길거리에 뱉었다. 이에 대한 벌금 500싱가포르달러(31만5천원).
김씨는 말레이시아에 가는 버스표를 사기 위해 터미널 앞 거리를 건너갔다. 이것으로 벌금 50싱가포르달러(1만4천원). 일단 버스표를 산 뒤 필요 없을 것 같아 요금 영수증을 길에 던졌다. 벌금 1000싱가포르달러(62만원).
김씨는 호텔 방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때울까 하고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 한개를 샀다.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라이터 충전용 가스를 구입했다. 한 손에 햄버거를 다른 손에는 충전용 가스를 들고 지하철에 탄 김씨는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햄버거 냄새를 못 견디고 한입 베어물었다. 벌금은 500싱가포르달러(31만5천원). 그건 한 손에 든 물건에만 해당하는 것이었다. 다른 손에 든 충전용 가스에 대한 벌금은 5천싱가포르달러(315만원). 인화성 액체나 가스 물질을 가지고 지하철에 탈 경우에 물리는 벌금이다. 햄버거가 잘못됐는지 설사를 하게 된 김씨. 그런데 깜박 잊고 물을 내리지 않았다. 이 벌금은 150싱가포르달러(10만원).
김씨가 하루 동안에 문 벌금은 총 1만7400싱가포르달러(1097만원). 싱가포르 여행객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한 금액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직까지 김씨의 경우처럼 벌금 전액을 지불한 사람은 없다. 현지인들도 좌우를 둘러보며 조심스럽게 무단횡단을 하고 길거리 여기저기서 담배꽁초를 볼 수 있다. 여행을 망칠 정도로 긴장하지는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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