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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야 김부타스의 여신 발굴

등록 2005-07-14 15:00 수정 2020-05-02 19:24

[김재희의 여인열전]

▣ 김재희/ <이프> 편집인 franzi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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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과 독일과 폴란드의 싸움에 새우등 터지던 발트해 연안 3국, 1991년 이들의 독립은 소련 해체의 결정적 계기가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저항정신이 투철한 사람들의 나라 리투아니아의 몹시도 열정적이고 지적인 부모님 사이에서 마리야가 태어난 1921년, 수도 빌뉴스에 있던 그녀 아버지의 병원은 볼셰비키 치하의 리투아니아 독립운동본부나 다름없었다.

소녀 마리야는 부모님과 떠난 피난 행렬에서 시골 사람들의 온갖 입담을 받아적고 구전을 모아 5천편이 넘는 민요를 수집하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이를 토대로 언어학 공부를 시작하는데, 곧이은 나치의 침공으로 숲에 숨어 살면서 레지스탕스 운동에 가담한다. 졸업 논문으로 리투아니아 장례풍습에 대한 글을 쓰고 고고학 분야로 관심을 넓히지만 1944년, 이번엔 독일을 무찌른 소련 군대가 리투아니아를 점령하자 또 피난을 떠나 독일의 시골마을 튀빙겐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에서 고대 문헌을 번역하고 유럽 고대사에 대한 연구 활동을 계속한다.

이 기간 동안 어머니는 리투아니아에서 발굴된 청동기 유적을 꼼꼼히 그려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 동봉하고, 딸은 동유럽의 선사 및 인도유럽어의 기원에 대한 획기적 논문도 발표하며 경력을 쌓는다. 1960년 마침 모스크바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한 틈을 타 꿈에도 그리던 고향을 찾아 이틀 동안 가슴 벅찬 모녀상봉을 하고 서둘러 귀국하는데, 미국은 그녀를 소련의 첩자로 기소해 상당한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60년대 UCLA에 자리를 얻어 15년가량 지중해 주변 유고 및 마케도니아 지역 신석기문화 발굴단장으로 활동하던 그녀는 인류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견하는 놀라운 성과를 기록한다. 그녀의 손을 통해 선사시대 여신문명의 존재가 밝혀지고 청동기문명권의 침입과 함께 남성 중심의 폭력적이고 가부장적 사회가 건설되는 과정의 유물들이 확인되면서, 역사 저편에 존재했던 최소 2만5천년 지속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종교적으로 양성이 평등하고 평화로웠던 모계 사회의 면모들이 드러난 것이다.

어렸을 적 고향 마을에서 기독교 이전의 전설과 신화에 대해 그녀가 주워들었던 이야기는 여신문명을 발굴하고 재현하는 상상력의 토대가 되고 고대 유럽의 흩어진 단편들을 재구성하는 통찰력이 되지만, 그녀의 생소한 작업은 논란을 일으키고 질시를 받기도 했다. 구닥다리 유산을 분류해 창고에 쌓는 것을 넘어 기존의 선입견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해석과 의미를 추구하는 그녀의 고고학은 인류문명의 병폐를 치유하는 비전을 제시하고, 그가 밝혀낸 선사시대 여신의 표상은 자연과 인간을 하나의 생명으로 잇는 상징이 된다. 동굴과 무덤과 언덕, 물과 바람과 새와 동물, 꽃과 나무와 인간의 삶과 죽음까지 관장했던 그 힘을 호흡하려는 ‘여신문명’의 열광자들에게, 1994년 우리 곁을 떠난 마리야 김부타스는 또 하나의 여신으로 부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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