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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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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아파트여! 죽은 아파트여!

등록 2003-11-06 15:00 수정 2020-05-02 19:23

인생의 목표를 획일화하는 재테크의 상징… 도대체 우리 시대에 아파트란 어떤 공간일까

우리나라 이상한 근대화가 낳은 거대한 유산이라 할 수 있는 아파트. 엄청난 마력을 발휘하는 아파트는 모든 이의 꿈을 획일화하며, 거주자들은 자기만의 성을 쌓아간다. 도대체 아파트가 뭐기에 우리가 목을 매는 것일까.

1970년대 가수 윤수일씨는 우리나라 가요사에서 처음으로 ‘아파트’를 노래했다.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고 바람이 부는 갈대숲을 지나 ‘너의 아파트’에 도착한다는 가사로 미뤄볼 때 그의 노래에 나오는 아파트는 우리나라 고급 아파트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서울 여의도 시범 아파트로 짐작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20여년 뒤 윤씨의 후배 세대인 디제이덕(DJ. DOC)은 가사를 조금 고쳐 불러 변화한 시대상을 묘사했다.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오피스텔~”

불만 속에서도 아파트로 몰리는 사람들

70년대나 90년대나 경제력 있는 젊은이들은 일찌감치 부모와 떨어져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살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서민들에게 아파트 한채는 생활의 소중한 목표이자 인생의 꿈이다.

하지만 꿈은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하다. 폭등하는 집값을 잡겠다는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연이어 발표되는 가운데 최근 한국방송 1텔레비전 팀은 재건축을 앞두고 있는 잠실 주공2·3단지 7730채의 등기부등본을 발급받아 분석한 결과 실제 이곳에 거주하는 소유자는 13.9%(1080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소유주 중엔 만 12살의 중학생이 집주인인 경우도 있었고, 한꺼번에 무려 3채나 소유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교묘하게 법망을 피한 투기의 거품이 끓어오르는 한편, 서울 지역의 25.7평형 이상 아파트 분양가는 98년 분양가 자율화 뒤 5년 만에 무려 135.4%나 뛰어올랐다. 그럼에도 건설업체와 건설교통부는 분양가 원가 공개를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절박한 요구에 고개만 젓고 있다.

안정된 거주권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지만 우리 사회 한쪽에선 아파트는 사람이 살기 위한 집이 아니라 재산을 불리는 수단일 뿐이다. ‘○○평형’의 공간이 곧 얼마의 돈으로 쉽게 전환되는 아파트는 그 획일적인 모습만큼, 줄이은 청약행렬만큼 일사불란한 욕망들을 만들어낸다. 아파트 한칸 마련하지 못하면 낙오자로 취급되고 ‘20대는 20평, 30대는 30평, 40대는 40평’이라는 나이-평수 비례공식이 불문율이 된다. 성냥갑이니 궤짝 같은 집이니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사람들은 아파트로 몰려든다.

1962년 대한주택공사가 서울 마포에 처음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었을 때는 지금 상황과 천지차이였다. 연탄 아궁이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연탄보일러가 인체에 해롭다는 이유로 완공 뒤에도 10분의 1정도밖에 입주하지 않았다. 실험용 쥐를 재우며 아파트의 안전성을 입증하려 했던 주택공사는 사람들의 의혹이 쉽게 풀리지 않자 건축부장으로 하여금 연탄가스가 제일 많이 나온다고 알려진 방에 하룻밤 묵게 하는 이벤트를 벌였을 정도다. 당시 선진적인 주거문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던 문필가나 정부 고위관료들은 각종 매체에 ‘문화주택 거주 체험기’ 같은 것을 실으며 아파트 예찬론을 부르짖었다.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이처럼 낯설게 다가왔지만 사실 아파트의 역사는 2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정 로마시대 때 로마의 서민들이 살았던 ‘인슐라’는 일종의 아파트로서 1층에 점포가 있고 그 위층에는 주택이 있는 5층 정도의 주상복합건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부자들이 부동산으로 부를 불리는 방법은 똑같아서, 로마의 부자들 역시 인슐라를 여러 채 지어 파는 부동산 투기를 일삼았다고 한다. 세를 더 많이 받기 위해 날림공사로 다닥다닥 붙여 지은 집들은 화재가 나면 삽시간에 불이 옮겨붙어 인명피해가 심각했고, 개중엔 무리하게 8층까지 올려 구조결함으로 무너져내리는 사고도 빈번했다.

이후 아파트는 산업혁명이 절정에 올랐던 19세기 영국에서 도시빈민용 주거로 다시 나타났다. 일자리를 찾아 공장이 있는 도시로 무작정 쏟아져나온 시골 출신 빈민들은 방 한칸에 온 식구가 몰려살며 구석엔 화로를 걸어놓고 부엌으로 삼고, 화장실은 길거리로 대체하는 비참한 생활을 견뎌야 했다. 영국 대도시로 몰려든 아일랜드 출신 빈농들은 임금을 받으면 저축하듯 습관적으로 돼지를 사다 길렀는데 단칸 셋방 속에 일가족과 돼지가 뒤섞여 사는 엽기적 풍경도 흔했다고 전한다. 전염병이 가난처럼 창궐하는 것을 보다 못한 미국과 유럽의 정부는 점차 노동자를 위한 값싼 아파트를 대규모로 지어나가기 시작했다.

‘아파트=질 낮은 주택’이라는 인식이 바뀐 것은 스위스 출신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혁명적 사고 덕분이었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보았던 르코르뷔지에는 고층아파트를 짓되 나머지 지상의 공간은 자연녹지와 공원으로 만드는 ‘빛나는 도시’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또한 미국의 사회학자 클레어런스 페리는 ‘근린주구’ 이론을 내놓았는데 이는 하나의 블록에 초등학교를 비롯해 교회·병원·시장·극장·도서관 등 생활에 필요한 시설을 갖춰놓아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근린주구가 몇개 보여서 근린분구를 이루고 몇개의 근린분구가 모여 자족도시를 형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근린주구론은 우리나라에 수입돼 대단지 아파트를 짓는 기본 개념이 된다.

질 낮은 주택에서 자기만의 성으로 변모

하지만 주민들이 아파트단지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될 만큼 그 안에 편의시설들을 갖춰놓는 것은 결국 아파트를 도시의 맥락과는 전혀 상관없는 ‘섬’처럼 만들었다. 건축가 황두진(황두진건축사무소 소장)씨는 “우리의 아파트단지는 통로(path)는 있어도 거리(street)가 없다”고 지적한다. “군대 병영은 수류탄 투척 거리 이상 담과 건물을 떨어뜨려놓는다. 아파트의 담과 건물 배치를 보면 꼭 병영 같다. 60년대까지만 해도 메밀묵 장수가 길에서 ‘메밀묵 사려’를 외치면 사람들은 집 창문을 통해 메밀묵을 샀다. 건물의 벽이 모여 길을 만들었다. 하지만 아파트단지가 생기면 중세의 성처럼 외부 사람들은 그 안으로 지나다니기가 어렵고 바깥세계에서 완전히 고립된 자기들만의 땅이 된다.”

박인석 교수(명지대 건축대)도 “가령 타워팰리스를 도곡동에서 떼어내 남산 밑에 옮겨놓는다 해도 도곡동이나 남산이나 달라질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오늘날 아파트단지는 자족적인 소생활 집단으로서 도시의 조직과 전혀 다른 결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아파트단지들이 늘어나면서 도시에는 동맥과 정맥만 남고 몸속 고루 퍼져 있던 실핏줄들은 사라져버렸다. 길과 집이 관련을 맺지 못하면 사람은 점점 이웃으로부터 소외된다. “가회동이나 삼선동 같은 도시형 한옥에 사는 사람들은 눈이 오면 자연스레 내 집 앞을 쓸었다. 요즘 아파트에선 냄새나는 자장면 그릇을 복도에 냉큼 내놓는다. 내 집 앞의 복도조차 남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박철수·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

구제금융기 이후 떨어진 구매력을 높이려는 각종 조처가 취해지면서 건설업체들의 행보도 아파트 ‘밖’보다는 ‘안’으로 향했다. 특히 98년 6월 용인 수지에 LG건설이 내놓은 60~90평형 1164가구가 불티나게 분양되면서 대형 고급 아파트 시장에 도화선을 당겼다. 고급 내장재를 쓰고 중앙집진식 청소시스템 같은 첨단 시설을 달며 단지 안에는 아름다운 조경시설을 꾸몄다. 집안을 더욱 넓게 쓰겠다는 욕심은 발코니 증축공사의 성업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파트가 처음부터 ‘현대 도시 소외’의 아이콘이었던 것은 아니다. 20세기 초 사회개혁가들은 아파트에서 사회개혁 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았다. 오언과 푸리에 같은 유토피안 사회주의자들은 개인 주거에 대해 고립적이고 낭비적이며 억압적이라고 비판했다. 푸리에는 “여성해방의 정도는 한 사회의 일반적 해방의 척도이며, 개별적 주거가 여성의 지위를 개선하는 데 가장 큰 장애요인”이라고 주장하며 부엌과 육아실·식당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통합주거 ‘팔란스트리’를 제안했다.

가사를 협동 관리하는 아이디어는 이후 페미니스트들의 강력한 지지를 받아 ‘부엌 없는 주거’라는 새로운 모델로 이어졌다. 가령 페미니스트 마리 홀란드는 엔지니어·건축가 등과 부엌 없는 아파트로 둘러싸인 36가구 규모의 블록 안에 부엌·식당·세탁장·빵집 같은 공공시설을 넣은 협동근린주구 계획안을 선보였다. 네덜란드·덴마크·스웨덴처럼 민주주의의 가치와 여성의 권리가 일찍부터 존중된 북유럽 나라들에선 혁신적인 아파트들이 자리잡았다. 스웨덴의 ‘콜렉티브후스’(kollektivehus)는 식사를 위한 시설들을 중심으로 몇개의 주거단위가 결합된 형태로 이런 대안적 아파트들은 최근에도 민간건설업체와 공공부문 모두에서 지어지고 있다. 네덜란드는 1977년 50가구가 거주하는 힐버숨 코하우징의 완공을 효시로 4~8가구가 작은 집단을 이루어 거실·부엌·식당을 공유하는 공동주택이 개발됐다.

공동체 가능성 실험… 이젠 초원을 그린다

황두진씨는 주택공급정책이 사회의 보수화를 결정짓는 주요인이라고 말한다. “네덜란드의 좌파정부는 ‘사람이 부동산을 소유하는 순간부터 보수화된다’는 이념에 따라 분양주택 대신 임대주택을 주택정책의 기본 뼈대로 삼았다. 분양주택이 대부분인 우리나라는 젊은 세대가 구세대에 경제적으로 완전히 종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이 경제적 독립을 의미하는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은 결혼과 동시에 전세자금을 빌리면서 더욱 깊숙이 부모세대에 편입된다. 신세대가 사회에서 출발하는 순간 부모에게 더욱 의존하는 사회가 어떻게 진보적일 수 있겠는가.”

집 밖으로는 굳게 닫힌 무심한 시선과 집 안을 향한 무한한 관심은 우리 사회가 도시화는 이뤄졌으되 여전히 ‘도시적 주거문화’에는 익숙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아파트 현관문을 걸어잠근 우리는 여전히 이런 꿈같은 노래를 읊조리는 건지 모르겠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백년 살고 싶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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