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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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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고기까지 공수해와도 불안해


전업주부·맞벌이 부부, 두 4인 가족의 일주일치 식생활로 살펴본 ‘한국인의 밥상’
등록 2009-04-07 05:14 수정 2020-05-02 19:25
“소비자가 나쁜 먹을거리를 먹게 되면, 생산자와 유통업자에게 나쁜 농업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온다. 반면 좋은 먹을거리 섭취는 개인에게 좋을 뿐만 아니라 농민들로 하여금 좋은 먹을거리 생산을 고취하고, 지속 가능한 농업을 통해 지구환경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한다. 이처럼 소비자의 음식 취향이나 선택이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지구환경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김종덕 로컬푸드연구회 회장, )
고민 없이 먹어치운 덕분에 우리의 입맛은 맥도널드와 코카콜라로 ‘세계화’됐다. 음식 나눔은 건강과 기쁨의 나눔이어야 하는데, 도시는 비만해져 아토피와 성인병에 시달리고, 농촌은 살길이 막혀 폐허가 되고 있다. 다른 삶은 없을까?
은 먼저 전업주부와 맞벌이 부부인 4인 가족 두 집의 일주일치 식생활을 통해 ‘밥상의 현재’를 들여다봤다. 이어 다음호에선 ‘지역 먹을거리 운동’(로컬 푸드 운동)에서 건강하고 윤리적인 먹을거리 생산·소비의 희망을 찾아본다. 편집자
경기 용인시 동백동의 전업주부 오승미(오른쪽)씨가 큰딸 재림(왼쪽)·작은딸 재연(가운데)이와 함께 일주일치 먹을거리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

경기 용인시 동백동의 전업주부 오승미(오른쪽)씨가 큰딸 재림(왼쪽)·작은딸 재연(가운데)이와 함께 일주일치 먹을거리를 펼쳐 보여주고 있다.

“우와, 뭐가 이렇게 많아? 엄마, 우리가 이렇게 많이 먹어요?” 3월19일, 조리대 위에 펼쳐놓은 일주일치 먹을거리를 본 재림(11)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경기 용인시 동백동에 사는 오승미(38)씨는 이날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서 일주일치 장을 보고 돌아온 참이었다. 오씨는 이날 당근, 오이, 호박, 상추, 두부, 생닭, 딸기 등 18가지 품목 5만2440원어치를 구입했다. 여기에 냉장고 등에 보관 중인 고기·생선·김·시리얼과 아이들이 먹을 간식거리 등을 꺼내놓으니 조리대가 좁을 지경이었다. 이 많은 음식들은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오씨가 구입한 식재료는 시금치(포천), 애호박(진주), 당근(제주), 딸기(논산) 등으로 대부분 원산지가 표기돼 있었다. 오이·두부·생닭은 국내산, 아이스크림은 원재료명에 국내산 원유라고 쓰여 있었고, 우엉절임·밀가루·게맛살엔 각각 중국산, 미국·오스트레일리아산, 수입산 어육 가공이라고 적혀 있었다. 1991년 도입된 원산지 표시제에 따라 수입 농산물 160개, 국산 농산물 160개, 가공품 211개 품목 등은 모두 원산지를 명기해야 한다.

‘국내산’이면 안전할까

하지만 이것만으론 생산자 정보를 완벽히 알 수가 없다. 일부 유기농 식품은 인증번호를 갖고 있어 인터넷 등으로 누가 어떻게 생산한 것인지 확인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먹을거리는 그렇지가 않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복잡한 유통체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물리적인 거리뿐만 아니라 신뢰도를 의미하는 ‘사회적 거리’도 멀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농산물 생산자가 받는 가격과 소비자가 지급하는 가격엔 서너 배 차이가 난다. 유통마진 때문이다.

오씨는 가격보단 ‘안전’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닭튀김이나 피자 같은 배달 음식은 잘 시켜먹지 않는다. 화학조미료를 전혀 안 쓰는 대신 다시마와 멸치로 육수를 내고, 표고버섯 가루와 매실 원액으로 맛을 낸다. 물도 여름엔 부여에서 가져온 맥문동을, 다른 땐 고흥에서 가져온 보리와 도라지를 끓여 마신다. 남편과 아이들에게 홍삼 진액과 종합비타민도 꼭꼭 챙겨 먹인다. 채소를 많이 먹이려고 구절판도 자주 만들어준다. 밥은 흑미·백미·보리·조·현미를 섞은 잡곡밥을 하루 두 번 압력솥에 지어 밥상에 올린다.

그때그때 사야 하는 채소류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먹을거리를 부여의 시댁이나 고흥 친정에서 가져다 먹는다. 배추김치·물김치·동치미 등 김치와 장류는 시어머니가 만들어준다. 바다를 끼고 있는 친정에선 어머니가 갈치·고등어·장어 등 생선을 직접 사서 냉동해 보내주고, 쌀·멸치·미역·김·파김치·갓김치도 택배로 부쳐준다.

일주일 동안 뭘 먹었나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뭘 먹었나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오씨의 남편 김성국(40)씨와 재림이는 육류를 몹시 좋아한다. 3월20~26일 일주일 가운데 사흘이나 삼겹살과 닭볶음탕 등 고기를 먹었을 정도다. 김씨는 “어릴 때부터 고기를 많이 먹었다. 어머니를 비롯해 집안 식구들이 다 고기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128/98로 혈압이 조금 높은 편”이라고 했다. 그래도 먹는 고기는 다 국내산이다. 부모님은 지인이 운영하는 목장에서 두 달에 한 번꼴로 쇠고기 3근(1800g), 삼겹살 4근(2400g), 돼지고기 간 것 3근(1800g)을 사서 보내준다. 간 고기는 두부·양파·당근 등과 섞어 동그랑땡으로 만든다.

‘국내산’ 육류와 어류는 모두 안전할까? 그렇지 않다. 항생제 탓이다. 우리나라 축·수산업의 항생제 사용량은 연간 1500t인데, 축산물 생산량이 우리나라의 1.2배인 덴마크(94t)보다 무려 16배나 많은 수치다. 축산물 생산량이 우리나라의 2배인 일본도 한 해 항생제 사용은 1천t에 그친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항생제를 많이 쓰는 이유는 사용량의 절반가량이 수의사 처방 없이 농민들이 가축을 치료하는 데 쓰기 때문이다. 사용량의 40%는 가축이 먹는 배합사료의 부패·변질을 막는 데 쓰인다. 당연히 식중독 세균의 항생제 내성도 강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2006년 3월 발표한 ‘식품 중 식중독균 항생제 내성 모니터링’ 보고서는 육류의 40%에서 대장균, 장구균, 황색포도상구균 등 식중독 세균이 검출됐다고 보고했다. 특히 대장균은 항생제에 92.5%, 장구균은 90%의 내성률을 보였다. 게다가 어류는 대부분 항생제 잔류 기준치도 없어 관리·감독이 전혀 안 되는 실정이다.

집에서 먹는 바나나주스, 푸드마일 2614km

또 다른 사각지대는 빵이다. 오씨가 기록한 일주일치 식단을 보면, 3월24일 하루를 빼놓곤 매일 가족 중 누군가는 아침 식사나 간식으로 빵을 먹었다. 제과점에서 사온 소보로빵, 초코빵, 크림빵 등이었다. 빵은 밀가루, 설탕, 버터, 소금, 계란, 이스트, 우유 등이 기본 재료다. 하지만 제과점에서 빵을 구입하는 사람은 생산 정보를 알 길이 없다. 강은주 진보신당 정책연구위원은 “과자나 라면에 비해 빵에는 거부감이 적고, 밥 대신 먹는다는 인식이 많지만 빵도 ‘건강한 식품’이라고 보기 어렵다. 직접 빵을 만들어보고는 ‘아이들에겐 못 먹이겠다’는 주부들이 적지 않을 정도로 설탕과 버터가 많이 들어가 당분과 트랜스지방 섭취량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재림·재연(4)이가 먹는 간식은 어떨까? 오씨는 바나나와 딸기, 우유를 넣어 간 주스를 아이들에게 자주 만들어준다. 딸기는 국내산이지만, 바나나는 필리핀산이다. 푸드마일(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의 거리)이 1624마일(약 2614km)이나 된다. 공산품이 아닌 ‘신선식품’이 이 먼 길을 오려면 농약과 방부 처리는 필수다. 그만큼 건강에 이롭지 않다는 얘기다. 배와 트럭을 타고 오려면 기름도 태워야 한다. 대기오염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의 저자 브라이언 핼웨일은 자신의 책에서 “수입 재료로 만든 기본적인 식사는 국내 생산 재료를 사용한 식사보다 네 배나 더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고, 네 배의 온실가스를 방출한다. 영국에서 먹을거리 운송은 영국 온실가스 배출량 가운데에서 가장 비중이 크고 빠르게 증가하는 배출 원인이며,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주부 오승미씨가 집 앞 마트에서 막내 재연이와 함께 일주일치 장을 보고 있다.

주부 오승미씨가 집 앞 마트에서 막내 재연이와 함께 일주일치 장을 보고 있다.

먹을거리를 직접 장만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맞벌이 가족의 상황은 좀더 심각하다. 경기 수원의 이명희(34)·송경원(37)씨 부부는 부엌일을 분담하지만, 가족의 먹을거리를 주로 책임지는 사람은 이씨다. 식재료 대부분은 두 사람 가운데 시간이 되는 사람이 동네 슈퍼마켓에서 그때그때 구입하고, 김치와 간장·된장·고추장 등은 부산 시댁에서 담가 보내주는 걸 먹는다. 얼마 전까진 주말에 남편과 함께 대형마트를 찾아 먹을거리를 무더기로 구입했지만, 다 먹지 못해 버리는 경우도 많고 가격도 동네 슈퍼마켓보다 싸지 않아 요즘은 발을 끊었다.

두 사람 다 일을 하다 보니, 집에서 먹는 일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못한다. 특별히 건강음식이나 영양제를 챙겨 먹지도 않는다. 아침은 이씨의 경우 커피와 우유로 대신하고, 송씨는 어린이집에 다니는 다예(6)·은예(4)가 먹다 남긴 시리얼이나 과일에 우유나 한잔 더해 마시는 정도다. 외식을 하거나 음식을 사다 먹는 일도 잦다. 3월26일~4월1일 일주일 동안 이씨 가족은 네 차례 외식을 하거나 사온 음식을 먹었다. 3월27일 저녁엔 바지락칼국수와 만두, 28일 점심엔 김밥·떡볶이·순대·튀김, 30일 저녁엔 동태탕과 알밥, 4월1일 저녁엔 튀김닭을 먹었다. 송씨는 “둘 다 일을 하고 와서 피곤하면 밥을 해먹기보단 나가서 먹게 된다”고 말했다.

맞벌이 가족 외식 4차례, 아침에 과자 먹기도

이씨 가족이 사먹은 음식엔 어떤 문제가 숨어 있을까? 어떤 식재료를 사용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은 둘째치고라도, 판매 음식의 나트륨 함유량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싱겁게 먹기 센터’의 자료를 보면, 떡볶이 1인분엔 무려 6654.8mg의 나트륨이 포함돼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하루 권장 섭취량 2천mg(식염 5g)의 3배가 넘는 수치다. 음식점에서 판매하는 칼국수 한 그릇엔 3511.2mg, 만두엔 939.6mg, 김밥엔 874.2mg의 나트륨이 들어가 있다. 나트륨은 지나치게 섭취할 경우 고혈압과 부종 등의 성인병을 부른다. 게다가 이런 음식에 들어간 나트륨은 단순한 소금뿐만 아니라 글루타민산나트륨(MSG), 인산나트륨 등 조미료나 합성첨가물 형태로 들어가 있어 더욱 위험하다.

게다가 판매음식 대부분은 양이 많고 설탕·기름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열량과 지방 함유량이 높다. 외식을 하면, 집에서 직접 조리해 먹을 때보다 열량은 200~300cal, 지방은 10~16g 더 섭취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의 2005년 조사 결과, 소아·청소년 비만은 1998년 6.8%에서 2005년 12%로 두 배나 뛰어올랐고, 성인 비만도 26.3%에서 31.7%로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비만이 증가하는 주요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외식을 꼽는다.

다예와 은예는 일주일 중 네 차례 과자나 사탕을 간식으로 먹었다. 3월26일엔 아침 식사로 과자를 먹기도 했다. 대량생산된 과자류는 각종 식품첨가물 때문에 몸에 해롭다는 건 상식이 되다시피 했지만, 아이들이 그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그건 오승미씨네 재연이도 마찬가지다. 재연이는 일주일 동안 막대 아이스크림을 8개나 먹었다. 이걸 줄일 방법은 없을까?

오승미씨 가족이 3월26일 저녁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고 있다. 육류는 국내산이라도 과도한 항생제 사용 때문에 안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오승미씨 가족이 3월26일 저녁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먹고 있다. 육류는 국내산이라도 과도한 항생제 사용 때문에 안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정부는 3월22일부터 ‘어린이 식생활안전관리 특별법’을 시행하고 있다. 초·중·고교 반경 200m 범위를 ‘어린이 식품안전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이 구역에선 비만과 영양의 불균형을 초래하는 고열량·저영양 식품, 즉 과자·빵·피자·햄버거 등을 팔지 못하게 한 법이다. 하지만 이 법은 입법 과정에서 식품업계 등의 반발로 봉지라면과 닭튀김 등이 규제 대상에서 빠지고, 텔레비전 광고 제한 규정도 사라져 벌써부터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게다가 지난해 멜라민 파동 이후 정부와 한나라당이 ‘당정 합동 식품안전+7대책’의 하나로 내놓은 ‘식품 신호등표시제’(영양성분 함량에 따라 식품을 3개 등급으로 분류해 판매하는 제도)도 무산됐다.

나쁜 음식 안 사먹는 ‘소비 파업’ 어때요

강은주 연구위원은 “과자류가 해롭다는 건 누구나 알지만, 간식을 만들어줄 시간이 없다거나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쉽게 손이 가게 된다. 우선 과자류는 물론, 햄이나 소시지 같은 가공식품 등 ‘나쁜 음식’은 사먹지 않는 일종의 ‘소비 파업’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정부가 나서 강력한 규제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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