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사랑학 실험실

5살짜리도 사랑에 빠진다

소꿉놀이부터 말뚝박기까지,
성적인 표현을 흉내내고 어른들의 구애행동을 시뮬레이션하는 아이들

제728호
2008.09.24
등록 : 2008-09-24 12:02 수정 : 2008-09-25 11:23
1960년 미국의 팝가수 폴 앙카가 부른 ‘퍼피 러브’(Puppy Love·강아지 사랑)는 17살 또래 청소년들의 가슴 앓는 사랑을 노래한다.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을 ‘퍼피 러브’라고 가볍게 생각하지만, 사랑에 빠진 그들은 밤마다 울면서 상대에 대한 애끓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다는 내용이다. “섬원 헬프 미, 헬프 미 플리즈”(Someone help me, help me please)라고 절규하는 대목에선 그들의 사랑이 얼마나 절실한지 가슴에 와닿는다.

퍼피 러브, 캐프 러브… 모두가 사랑이에요

청소년 시기의 사랑을 낮춰 일컫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의 채 16살도 안 된 주인공들은 죽음만이 갈라놓는 진지한 사랑을 잘 보여준다.

‘퍼피 러브’란 청소년 시기의 사랑을 낮춰 일컫는 말이지만, 최근 심리학자들은 청소년 시기의 사랑이 어른들의 사랑과 비교해 결코 가볍게 볼 게 아니며 어른 못지않게 진지하다고 주장한다. 16세기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시절에도 청소년들의 사랑을 ‘캐프 러브’(Calf Love·송아지 사랑)라고 폄하했지만,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16살도 채 안 된 청소년들의 사랑이 ‘죽음만이 갈라놓을 수 있는’ 진지한 사랑임을 잘 보여주지 않았던가?

<청소년기의 연애관계 발전>이라는 책의 편집자이자 심리학자인 캔디스 페이링 박사는 청소년의 남녀 관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른들의 구애 행동들이 그대로 관찰된다고 주장한다. 맘에 드는 이성이 자신에게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구애 행동을 하기도 하고, 성관계를 목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상대를 성적으로 끊임없이 자극한다는 것이다. 때로 그들은 자신이 미래에 ‘좋은 남편’ 혹은 ‘좋은 아내’가 될 자격이 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학교 교육이라는 성적 억압 속에서 그들은 은밀히 어른들의 사랑을 흉내내고 시뮬레이션하면서, 짝사랑에 애가 끓고, 배려하며 거절하는 법을 배우고, 거절당하는 아픔을 감당하는 법을 배우고, 이성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법과 쿨하게 헤어지는 법을 배운다. 물론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아동발달심리학자들에 따르면, 3∼6살 아이들만 해도 부모나 선생님, 혹은 다른 어른들이나 또래 친구들에게 애정을 얻기 위해 성적 매력을 드러내는 행동을 한다. 유행가에 맞춰 섹시한 춤을 추기도 하고, 미소가 주는 막강한 힘을 이용하기도 한다. 엄마·아빠에게 자신의 애정을 말이나 행동으로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그들의 사랑을 확인하려 들며, 성적 경험이 전혀 없으면서도 모호하게나마 성적인 표현을 흉내낸다.

사랑에 빠진 정도를 설문으로 측정하는 ‘패셔네이트 러브 스케일’(Passionate Love Scale)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미 하와이대학 심리학과 일레인 햇필드 교수는 114명의 남자 어린이와 122명의 여자 어린이를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항상 _____를 생각한다”라는 질문을 4∼6살 어린이들에게 던졌더니,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_____ 안에 채워넣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햇필드 교수는 “5살 어린이도 사랑에 빠진다”고 확신한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소꿉놀이를 통해 아빠와 엄마 역할을 시뮬레이션하기도 하고, 왕자와 공주 역할을 통해 로맨스를 학습하고 꿈꾼다. 미 미네소타대학 심리학과의 앤드루 콜린스 교수는 이 시기에 하는 소꿉놀이는 어른이 됐을 때 근사한 사랑에 빠지고 결혼생활을 잘하기 위해 시도하는 역할극이라고 주장한다. 매우 의미 있는 연습 활동이므로, 그들에게 소꿉놀이를 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게 좋다는 것이다.

7∼12살에 이르면 아이들의 성적 표현이 좀더 노골적으로 변한다. 남학생이 여학생을 괴롭히거나 운동장에서 서로 ‘잡기 놀이’를 하는 것은 모두 성적 행동의 어린이 버전이다(우리나라에서 초등학교 때 흔히 하는 ‘말뚝박기’는 아마 그 정수에 있는 놀이일 것이다). 미 버클리대학 배리 손 교수는 아이들의 놀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성적인 의미를 담은 경우가 많다면서 “아이들은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고 해소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1986년 배리 손 교수는 802명의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또래 집단에서 하는 대화를 분석했다. 그 결과, 초등학생들은 서서히 동성 또래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하지만, 그들이 모이면 주된 대화는 이성에 대한 얘기라는 사실을 밝혀냈다(경험상 그리 놀라운 사실은 아니지만!). 초등학교는 대부분 남녀공학이지만 그들은 남자끼리, 여자끼리 모여 노는 것을 즐기며 서서히 ‘이성에 대한 낯가림’을 하지만, 동성 집단에서 주된 이야기 소재는 ‘이성’이라는 것이다.

아들의 첫경험은 아빠에게 물어봐?

그러나 남학생과 여학생이 이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과 내용은 매우 달랐다. 남학생은 좀더 노골적인 언어 표현을 통해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내며 성적 영역을 넓혀간다. 더 심한 표현, 더 노골적인 표현들을 ‘시도’해봄으로써 사랑에 대한 관심을 표현한다. 반면 여학생들은 이 시기에 성적 환상에 깊이 빠진다. 이성에 대한 환상을 구체적으로 형성하며 멋진 남자와의 근사한 사랑을 꿈꾼다. 그러니 이 시기에 여학생을 공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능력과 배려를 갖춘 쿨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력, 재력, 열정 따위는 이 시기엔 안 통한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사춘기 시절엔 이성과의 만남을 처음 시도하게 된다. 서툴게나마 소개팅이나 미팅을 하기도 하고, 교회 오빠를 만나기도 하고, 학교 선후배와 가벼운 척 진지한 만남을 시도한다. 그들의 만남은 어설픈 행동으로 실패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시행착오 끝에 우리는 이성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배운다.

우리나라에선 덜하지만, 미국에서 이 시기 청소년들에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임신과 성병이다. 미국에선 많은 학생들이 이 시기에 처음 ‘성적 접촉’을 경험하며 성관계를 맺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의 설문조사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확인된 바에 따르면, 부모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거나 결손가정의 자녀들이 첫 경험 시기가 빨랐으며 청소년 시기에 성관계도 훨씬 더 자주 갖는다고 한다. 한 예로, 캐나다 앨버타주 아동병원의 신경심리학자 트리시 윌리엄스 박사는 1959명의 미국 청소년들을 조사했는데, 11∼13살 청소년들 중에서 약 2%가 성관계를 경험했고 그들의 경우 가정의 폭력적인 분위기가 첫 경험 시기를 앞당기더라는 결과를 얻었다. 부모가 자녀를 폭력적으로 대할수록 자녀의 성적 행동이 빨리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직 그 원인은 정확히 모르고 있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메디컬리서치 연구소에서 5천 명의 남녀에 대해 그들의 첫 성관계 시기를 조사한 사례다. 조사 결과 아들의 첫 경험 나이가 아버지의 첫 경험 나이와 일치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남자들 중 72%가 아버지의 첫 경험 시기와 일치했다고 하니, 놀랍지 않은가(오늘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한번 확인해보시라)? 그에 비해 여성들은 어머니의 영향을 별로 받지 않았다.

심리학자 웬디 매닝이 2005년에 했던 설문조사에서는 청소년들의 75%가 자신의 남자친구 혹은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응답했고 60% 이상의 청소년들은 “성매매를 하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과 우발적인 성관계도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대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낯선 사람과 성관계를 가질 때는 섹스 전에 “술을 마셨다”고 대답한 경우가 많았으며, “성관계시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대답한 경우도 많았다. 청소년들은 어른들을 흉내내며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만, 우리는 그들이 상대방을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왜 어른이 되고서야 후회할까

2008년 1월 <타임>의 특별호 ‘로맨스의 과학’에서 티파니 샤플스 기자는 로맨스를 미인대회에 비유했다. 우리의 로맨스 데뷔 무대는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지만, 청소년들은 언젠가 자신에게 닥칠 로맨스 데뷔 무대를 위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은밀히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의 통계이긴 하지만, 80%의 사람들은 18살 이전에 ‘자신의 인생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이성’을 만난다. 풋풋한 짝사랑일 수도 있고, 가슴 아픈 첫사랑일 수도 있지만, 인생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람을 우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한 명쯤 갖는다는 것이다.

그 시절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지금도 낯이 뜨겁다. 그때의 기억들을 송두리째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우리는 사랑하는 데 서툴렀고, 상대방을 그다지 배려하지 못했으며, 때론 지나친 성적 욕망에 시달렸으며, 무엇보다 ‘용기’가 없었다. 왜 우리는 늘 어른이 되고 나서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면서 후회해야만 할까? 앞으로는 다음 세대들이 이런 후회를 하지 않도록, 그들에게 사랑의 기술을 친절히, 섬세하게 가르쳐주고 싶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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