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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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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에 꼼수를 더하고 꼼수끼리 싸우는구나

1·2번 없는 비례대표 투표용지… 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은
‘다른 게 있으면 고쳐서 똑같게’ 해가며 위성정당 지원
등록 2020-04-04 05:33 수정 2020-05-02 19:29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숫자 1을 든 사람)과 이종걸 더불어시민당 상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숫자 5를 든 사람)이 4월2일 국회 본관에서 제21대 총선 합동 출정식을 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숫자 1을 든 사람)과 이종걸 더불어시민당 상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숫자 5를 든 사람)이 4월2일 국회 본관에서 제21대 총선 합동 출정식을 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여권에서 추진 중인 긴급재난지원금을 둘러싼 논쟁이 코로나19로 사라진 정책 경쟁 구도를 만들어낼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선거 시기 정책 경쟁은 대안을 모색하는 중도층에는 정치적 효능을 느낄 기회다. 특히 일반 유권자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투표에서 정당 기조와 정책이 한 표를 결정하는 데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런데 48.1㎝ 길이의 비례대표 선거 투표용지 어디를 봐도 1번과 2번인 더불어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투표용지의 시작은 3번 민생당이다. 이는 정당득표율의 절반만큼 의석수를 가져가는 30석(17석은 병합형) 안에서 두 정당이 지역구 당선자 이외의 의석을 차지하기 위해 위성정당을 만들고 자신들은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폐해 때문이라고 하지만, 제도의 흠결에도 거대정당들이 원칙을 지킨 뉴질랜드의 사례도 있다. 결국 두 정당이 향한 곳은 거대정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력화한 알바니아다.

정당이 표방하는 정책은 어디로

투표용지에 이름을 올리지 않은 두 정당은 필사적으로 위성정당의 득표전에 나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더불어시민당이, 미래통합당은 미래한국당이 사실상 한 몸이라는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3월30일 더불어시민당의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은 아예 더불어민주당 당사에서 열렸다. 3월19일 이낙연 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직접 “전개가 민망하다”고 할 정도로 비판 여론을 의식했던 것도 잠깐, 승부는 시작됐고 그 ‘민망함’조차 어딘가로 사라졌다. 창당 과정에서 소수정당으로 참여한 ‘시대전환’ 등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졸속의 흔적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3월3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더불어시민당의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대표적이다. 더불어민주당 강령뿐만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기조와 어긋나는 부분이 확인됐다. 예를 들어 ‘정책 순위 4’로 꼽힌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매달 60만원 기본소득 지급”의 경우 2020년부터 곧바로 시행할 수 있도록 기본소득법을 입법화하자는 것부터 현재 여권 내 기조와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선관위에 등록된 별개의 당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더불어시민당은 ‘다르다’는 비판을 받아들여, 더불어민주당 색깔에 맞춘 공약으로 전면 수정해 다시 제출했다. 이번에는 일방적인 수정을 두고 시대전환 등 더불어시민당 내 소수정당 그룹의 불만이 나온다.

미래통합당의 짬짜미(담합) 선거는 더 노골적이다. 황교안 대표는 미래한국당의 비례대표 명단이 자기 뜻과 다르게 작성될 가능성이 비치자 “대충 넘어갈 수 없다”는 한마디로 당대표를 한선교 의원에서 원유철 의원으로 교체했다. 결국 황 대표의 뜻이 반영된 비례대표 명단으로 공천을 마무리했다. 당의 주도권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미래통합당은 이후 정당별 순번 결정 과정에서 민생당 의원 수(당시 21명)를 넘지 않도록 당적 이동 의원 수를 17명으로 조정했다. 이는 미래통합당 후보가 인쇄된 지역구 투표용지 위치와 동일하게 비례대표 선거 투표용지에서 두 번째 위치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미래통합당의 위성정당 관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래통합당은 선거보조금 배분 막판인 3월30일 미래한국당이 원내교섭단체(20명)를 구성하도록 당내 의원들의 당적을 추가로 옮기도록 하면서 선거보조금 61억여원을 배분받았다. 미래한국당이 원내교섭단체가 아니었다면 선거보조금으로 22억여원을 받았을 것이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펼침막 왼쪽)와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가 4월1일 국회 본관에서 ‘나라살리기·경제살리기 공동 선언식’에서 서명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펼침막 왼쪽)와 원유철 미래한국당 대표가 4월1일 국회 본관에서 ‘나라살리기·경제살리기 공동 선언식’에서 서명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진보 19.6%, 중도 12% 열린민주당 지지

그러나 정치는 생물이다. 두 거대정당의 반칙으로 선거가 싱겁게 끝날 것이라는 예상을 깰 변수가 등장했다. 열린민주당이라는 ‘강성 친문’ 정당의 약진, 정의당의 반전, 국민의당의 뒷심 등이 그것이다. 두 거대정당의 속내는 복잡해졌다.

비례대표 정당 번호 12번 열린민주당의 상승세는 눈에 띌 정도다. 최근 비례대표 투표 의향을 묻는 여러 여론조사에서 열린민주당은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8석 이상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들은 ‘문재인’ 정서를 디딤돌 삼았다는 점에서 지난 20대 총선의 국민의당과 비교된다. 당시 안철수 대표가 이끄는 국민의당은 거대 양당 체제에서 실패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반문’ 정서에 기대, 호남의 지역구 28석 중 23석을 차지했다. 비례대표 투표는 26.74%로 제1당인 더불어민주당(25.54%)을 앞서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당득표율의 경우 국민의당은 민주당 텃밭인 호남에서만이 아니라 서울, 경기, 인천 등에서 더불어민주당을 제쳤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20대 총선에 있었다면 국민의당은 50석에 육박하는 의석을 차지했을 것으로 추산된다.

열린민주당은 ‘문재인’을 축으로 국민의당 반대편에 위치해 ‘친문’ 정서를 자극한다. 열린민주당은 더불어민주당이 선거판에서 언급 자체를 주저하는 조국 사태와 검찰개혁을 최강욱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의 입을 통해 전면에 부각하고, 문재인 정부에 비판적인 보수언론을 겨냥해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을 내세운다. 이들은 비례대표 앞번호(2번, 4번)에 자리하고 있다.

열린민주당의 공세적 기조에 적극적인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이 움직이고 있다. 열린민주당의 약진은 지지율에서 드러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3월23~27일 전국 18살 이상 유권자 2531명에게 21대 총선 비례대표 정당 지지율을 조사한 결과, 열린민주당은 11.7%로 더불어시민당(29.8%), 미래한국당(27.4%)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1.9%포인트). 주목할 점은 열린민주당 지지 그룹의 이념 성향이 진보층(진보층 중 열린민주당 지지 19.6%)에만 머물지 않고 중도층(12%)까지 펼쳐져 있다는 것이다. 리얼미터의 3월30일~4월1일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포인트)에선 지지율이 14.3%까지 올랐다. 더불어민주당이 긴장하는 대목은 ‘지지 정당 조사’다. 더불어민주당 지지 가운데 28.1%를 가져오면서 더불어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42.3%)과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이 추세는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의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21대 비례대표선거용지 견본

21대 비례대표선거용지 견본

정의당 5% 지지도에서 반등 조짐

열린민주당의 선전 못지않게 6번 정의당이 어떤 성적표를 받을지도 관심사다. 현재 여론 추세만 따지자면 더불어민주당의 비례연합정당 참가를 거절하고 고집스럽게 지킨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원칙에 대한 유권자들의 평가는 얼음장이나 다름없다.

정의당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율이 5%대에 묶여 있다. 이대로라면 3~4석에 그치는 것 말고도 심상정 대표(경기 고양갑)의 당선도 쉽지 않다.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3월30일~4월1일)에선 지지율이 8.2%로 반등할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이 매트릭스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조사 대상 1천 명,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14.9%의 비례대표 정당 지지율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서울에선 더불어시민당을, 인천·경기에선 미래한국당을 오차범위 안에서 앞서는 결과를 보였다. 정치 성향별로는 중도라고 답한 유권자 중 가장 높은 지지율(17%)을 보여 더불어시민당과 미래한국당을 모두 따돌렸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한 차례 여론조사만으로 낙관하긴 어렵지만 정의당은 내부에서 비례정당 합류 논쟁, 비례대표 1번 후보자 논란 등으로 인한 하향세가 바닥을 친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안철수 전 의원이 정계 복귀 뒤 창당한 10번 국민의당은 최근 5% 가까운 지지율을 기록했다. 국민의당으로서는 20대 총선에서 보였던 막판 뒷심을 기대하고 있다. 안 전 의원은 대구동산병원에서의 의료봉사 뒤 지지율이 반등할 조짐을 보이자, 4월1일부터 아예 “국민의 소리를 듣겠다”며 400㎞ 국토 종주를 떠났다. 코로나19의 사회적 거리 두기 속에서 민심 대장정이 어떤 결과를 얻을지는 미지수다. 국민의당의 선전은 미래한국당의 지지 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중도층 지지에 기반을 둔 국민의당이지만, 일부 여론조사에선 보수층 지지가 두 자릿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민생당, 맨 윗자리 차지했지만

35개 선택지에서 첫 번째를 차지한 민생당도 빠뜨릴 수 없다. 민생당은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의 중심 세력이던 호남 쪽 옛 새정치민주연합 탈당파가 주축을 이룬다. 이들은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을 거쳐 민생당이라는 이름으로 총선을 치른다. 호남에서 1~2석을 노리며, 현재 여러 여론조사로 봤을 때 의석 배분의 최소기준(봉쇄조항)인 3%를 넘을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비례대표에 이름을 올린 손학규 전 대표를 비롯해 정동영, 박지원, 천정배 등 거물 정치인이 즐비하지만 낮은 당 지지율을 극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밖에 7번 우리공화당, 11번 친박신당 등 친박근혜 정당이 얼마나 선전할지도 지켜볼 일이다. 비례연합정당 참여 과정에서 혼선을 빚었던 8번 민중당, 23번 녹색당, 26번 미래당 등도 전열을 재정비해 4월15일 총선에 임한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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