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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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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슬로바키아 다○엘을 막아라”

세계로 진출한 ‘무노조 글로벌 경영’
등록 2020-03-07 14:37 수정 2020-05-06 06:30
2012년 4월 브라질 ‘마나우스 자유무역지대’에 있는 삼성전자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2년 4월 브라질 ‘마나우스 자유무역지대’에 있는 삼성전자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엘. 소속: 삼성전자 슬로바키아 LCD. 개인정보: 사원, 남, ○○살, 미혼, ○○○○년 ○월 입사. 동향: 구글 전자우편을 통해 ‘유니온삼성’이라는 제목으로 노조 가입을 권고하는 전자우편 발신”(삼성 노조 와해 판결문 범죄일람표 중)

외국인 노동자 이름과 소속만 지우고 보면 삼성그룹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를 위해 개인정보를 무단 수집해 관리한 협력업체 직원 800여 명과 다를 바 없었다. 삼성은 기획 폐업, 노조 탈퇴 종용, 표적 감사 등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흔들림 없는 비노조 경영” 철학을 지켜왔다. 국외 공장이라 해서 예외는 없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재판기록 2만여 쪽과 브라질 노동검찰(MPT) 누리집 등을 보면, 초국적 기업이 된 삼성의 ‘글로벌 노사 전략’은 나라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전략이라는 외피를 둘렀을 뿐, 본질적으로 국내 노조 와해 전략과 차이가 없었다.

해외 노사 전담 인력으로 이뤄진 ‘클리닉’팀

2011년은 삼성그룹 비노조 경영 방침의 주요 변곡점이었다. 값싼 노동력 등을 노린 한국 기업의 국외 진출이 확대되면서 삼성전자 국외 인력이 처음으로 국내 인력을 앞지른 해였다. “글로벌 비노조 기업”을 위한 글로벌 노사 전략이 수립됐다. 국외 노사 이슈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법인과 지역총괄, 해외 인사 간 상시 정보 공유 체계가 만들어졌다. 평소에는 상황별 시나리오를 숙지해 사전 교육과 모의 훈련을 하고 대내외 동향 파악을 했다. “노조 설립이라는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노조 조기 와해와 장기 고사화를 우선 과제로 삼았다.

국외 노사 전담 인력으로 ‘클리닉’(Clinic)팀도 꾸렸다. 본사 1명과 본사·사업부의 국외 인사 1명 등 모두 5명으로 구성됐다. 클리닉팀은 최근 신설한 국외 생산법인용 조직관리 매뉴얼을 만들었다. 폴란드, 슬로바키아, 인도, 멕시코 등 각 나라의 노동법 등을 고려한 맞춤형 방안도 세워졌다. 노조 와해를 위한 국내 ‘SWAT’(특공대)팀을 확대한 ‘글로벌 SWAT’팀이었다.

클리닉팀의 첫 성공 사례는 “2010년 10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진행한 인도연구소 조직과 인력 운영 컨설팅 지원”이었다. 삼성이 2011년 작성한 내부 문건을 보면, 인도 노이다 삼성전자 공장에서 발생한 작업 거부 사례와 관련해 “사전 징후 포착에 따른 정확한 상황 판단”과 “원칙 대응에 대한 경영진의 확고한 의지로 조기에 상황을 종결”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국내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10년 10월 인도 노이다 공장 노동자 6명이 “2010년 상반기 생산성 격려금(PI)이 전년보다 낮다”며 약 5시간 작업을 거부한 사건이 발생했다. 작업 거부에 동참한 야간과 오전 교대조 500여 명이 운동장에 모였다. 삼성은 같은 해 7월 이미 ‘임금 인상 요구’ 등 징후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본사에서 즉각 파견한 대응팀이 집단행동 가능성을 판단해 대응 시나리오까지 미리 짜둔 뒤였다.

13명 퇴직시키고 끝난 ‘작업 거부’

경영진과 실무진은 “세력 확산 차단”을 위해 시나리오대로 작업 거부에 가담하지 않은 노동자를 바로 퇴근시켰다. 이후 정부 기관과 협조하며 노동자들의 작업 거부에 일관되게 대응했다. 지역 행정시장의 주선으로 공장장과 면담이 성사됐다. 노동자들은 오후부터 조업을 재개했지만 집단행동에 대한 징계와 부당한 처분이 뒤따랐다. “주동자급 노동자 13명은 퇴직”당했고 “법인 안정화”가 이뤄졌다.

이후 2012년은 “비노조 경영의 확고한 기틀을 다지는 노사 안정 정착의 원년”이었다. 삼성의 “글로벌 경영”에 기여하기 위해 국외 사업장 노사관리는 더 강화됐다. 비상시에는 국외 법인 자체 대응 역량을 강화해 문제 상황을 최소화했다. 국가별로 노동 관련 법령을 수집해 안내 자료집을 만들었다. 조직문화 개선도 서둘렀다. 2012년 상반기 북미·동남아 등 4개국, 5개 취약 법인에 컨설팅이 들어갔고 분기별 “Action Plan”(실행 계획)이 추진됐다.

하지만 국내 본사와 현지 법인 사이에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삼성의 글로벌 노사 전략이 “국내 언론에 그대로 노출”됐다. 2013년 8월 삼성전자 브라질 생산법인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시 브라질 연방 노동 검사 7명은 현지 노동법 위반 혐의로 삼성전자 브라질 마나우스 공장을 상대로 2억5천만헤알(당시 환율로 약 1200억원)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대규모 공공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삼성전자는 “2013년 들어 브라질 지방 노동청이 매월 법인을 직접 방문하고 연방 노동부도 네 차례에 걸쳐 현장 점검을 하는 등 정황상 표적 조사가 진행됐음에도 법인은 사안의 심각성을 간과한 채 본사에 보고도 하지 않아 삼성전자 본사는 대책을 수립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건 내용이 국내외 언론에 그대로 노출”됐다고 현지 법인을 질책했다.

인사, 홍보 등으로 구성된 팀이 마나우스 공장에 급파됐다. 본사에는 상황실이 꾸려졌다. 보름 뒤 브라질 노동법원은 삼성에 “하루 10시간이 넘는 긴 시간 노동과 파견노동자 불법 고용을 곧바로 중단하라”고 결정했다. 삼성에 대한 천문학적 규모의 공공 민사소송은 2014년 12월 삼성이 ‘행동 규범 조정 합의’(TAC)를 맺으며 일단락됐다. 삼성은 사회적 취약 계층의 노동권 보호를 위한 공공 프로젝트 등에도 모두 1천만헤알(당시 환율로 약 48억원)을 기부해야 했다.

민감 정보까지 무단 수집해 관리

마나우스 공장 사건을 계기로 삼성의 글로벌 노사 전략은 더 치밀해졌다. 법인장, 중남미 총괄 주요 임원을 대폭 물갈이했다. 필요하다면 “정무적 감각”이 뛰어난 영업 출신 등에게도 직책을 맡겼다. “해당 국가의 유력 정치인이나 저명인사 대상으로 컨설팅 계약”을 맺고 정관계 주요 현안을 확인해 경영활동에 활용했다. 이는 2012년 인사 담당 임원들에게 “반드시” 고용노동부 등 외부 협조 체계를 구축하고 유지하게 한 국내 전략과도 상당히 유사했다. 개인정보 무단 수집과 집단행동에 대한 부당한 처분, 유력 인사 관리 등 “글로벌 비노조 기업”을 견지하기 위한 삼성의 노사 전술은 국경을 넘나들며 초국적으로 실행됐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삼성의 내부 문건에서 드러난 글로벌 노사 전략은 “각국의 법률에 따라 임직원이 선택한 노조에 가입할 권리, 단체 교섭 및 평화적 집회에 참여할 권리를 존중한다”는 삼성전자의 공식 발표를 스스로 뒤집고 있었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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