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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유족의 고통, 2천만원이라니…

‘바이러스 취급’ 당한 80번째 환자 유족, 손배소 1심 “모욕적 승소”
등록 2020-02-22 06:17 수정 2020-05-02 19:29
메르스 80번째 환자였던 고 김병훈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대리인들이 기자회견 중이다. 연합뉴스

메르스 80번째 환자였던 고 김병훈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대리인들이 기자회견 중이다. 연합뉴스

“피고 대한민국은 원고에게 2천만원을 지급하라. 피고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서울대학교병원에 대한 청구는 기각한다.”

2월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80번째 환자이자 38번째 사망자인 김병훈(사망 당시 35살)씨 죽음의 책임을 묻기 위해 제기했던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1심 판결이 나왔다. 2016년 6월 제기한 소송의 1차 결과가 3년8개월이 훌쩍 지나서야 나왔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는 동안 고 김병훈씨의 아내 배아무개(41)씨 눈빛이 흔들렸다. 기대하지 못한 결과라는 표정이었다. 왼손은 9살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다. 이날 판결은 코로나19가 유행하는 가운데 나와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많은 기자가 법정을 채웠다.(제1299호 ‘남편을 바이러스 취급 했다’ 참조)

감염 책임 인정, 사망 책임 불인정

배씨는 2월19일 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소송을 제기해 오히려 남편의 죽음을 모욕한 것은 아닌지 생각될 정도로 모욕적인 승소였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배씨는 “2015년(남편 사망 때) 받았어야 할 사과를 받지 못했다. 남편의 생명이 보호받지 못한 일에 영원히 사과받지 못하는 건 아닐까 우려되는 판결이었다”며 울먹였다.

판결문을 보면 법원은 “대한민국 소속 공무원들의 과실로 김씨가 메르스에 감염됐으므로, 피고 대한민국은 김씨와 원고에게 메르스 감염으로 생긴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했다. 2015년 보건 당국의 방역 실패로 한국에서 메르스가 유행했고, 김씨에게까지 메르스가 전파됐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법원은 김씨의 ‘감염’에 정부의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김씨 ‘죽음’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삼성서울병원과 서울대병원 의료진의 치료로 메르스 관련 증상이 사라졌고, 메르스 감염으로 항암치료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김씨의 기저질환이었던 악성림프종에 영향을 줄 만큼 늦어지지는 않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김씨의 메르스 관련 증상이 사라졌다고 인정하면서도 증상이 사라진 김씨에게 격리 해제를 하지 않은 정부와 병원의 책임은 묻지 않은 것이다.

배씨는 “남편은 2015년 7월부터 메르스 감염력이 없었는데 정부는 메르스가 끝났다고 보면서도 남편의 격리를 해제하지 않았다. 과학적 근거도 없이 사회적 공포에 편승해 개인의 생명권을 침해했는데 남편의 죽음이 이렇게밖에 평가받지 못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배씨는 1심에 불복해 항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감염력 없는데도 항암치료 못 받아”

배씨의 소송대리인인 최재홍 변호사는 과 한 통화에서 “1심 재판에서 인정된 감염에 따른 위자료만 놓고 보더라도 배씨와 아들 김군이 느꼈을 고통이 너무 적게 평가됐다”고 했다. 최 변호사는 “김씨 가족이 메르스 감염 검사를 삼성서울병원에 서둘러 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검사가 지연된 부분도 인정되지 않았다. 메르스 감염력이 없는 김씨에게 격리 해제가 되지 않아 정상적인 항암치료를 받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 평가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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