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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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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언론 사망’ 대가를 치르고 있다

코로나19 관련 의료정보 봉쇄… 영웅들 미담만 쏟아져
등록 2020-02-22 05:14 수정 2020-05-02 19:29
인천국제공항 검역소 모습. 박현숙 제공

인천국제공항 검역소 모습. 박현숙 제공

‘갇혀 산 지’ 24일째 되던 날, ‘탈출’을 결심했다. 더는 이렇게 갇혀 지내다간 심신 불안과 운동 부족으로 먼저 ‘저세상’으로 갈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숨’이 쉬고 싶었다.

베이징 내 아파트 출입관리 규정이 ‘봉쇄식’에서 ‘외출제한형’으로 더 엄격하게 변한 것도 탈출 심리에 한몫했다. 지금까지는 모든 출입자의 체온 검사와 외부인 출입 금지 등을 골자로 하는 ‘봉쇄식 관리’였지만, 열이 나지 않는 이상 장보기나 산책 등 외출에는 특별한 제한이 없었다. 하지만 2월 초를 넘기면서부터 출입증 2장만 발급돼, 이 출입증과 신분증을 가진 자에게만 외출이 허용됐다. 모든 학교에 ‘기약 없는’ 개학 연기가 통보됐고, 17일부터 ‘사상 처음으로’ 인터넷 수업이 시작됐다.

이러한데도 어찌 된 일인지 거리에 차도 없고 사람도 사라진 도시의 공기는 늘 뿌연 미세먼지가 차 있다. ‘과학적 설명’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는 20℃ 이상에선 생존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베이징 시민들이 집 안 온도를 높이기 위해 보일러 온도를 20℃ 이상으로 설정하다보니 미세먼지 농도가 평소보다 높아졌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럴싸한 해석이다. 우리 집도 코로나19 사태 이후 집 안 온도를 항상 20℃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것이 ‘과학적인 사실’이라면 당장에라도 가족을 데리고 더워서 죽을 것 같은 나라로 피신하고 싶다.

시 주석, 언론·기자에 ‘계엄령’

탈출 욕구를 자극한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아파트 봉쇄만큼이나 갈수록 심각해지는 중국 정부의 ‘정보 격리와 봉쇄’다. 시진핑 주석은 코로나19 사태를 ‘전쟁’이라고 명명하며 전시상황 같은 대처를 주문하면서, 모든 언론과 인터넷 소셜미디어에도 재갈을 물렸다. 2월7일 ‘휘슬러’ 리원량 의사의 사망 이후 ‘언론 자유’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심상치 않자, 모든 언론에 ‘계엄령’을 발동한 것이다. 정부 지침에 반하는 논조로 함부로 펜과 입을 놀리는 언론과 미디어 기자들, 공공 지식인들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우한폐렴 사태 50일, 전 중국인은 언론 사망의 대가를 감내하고 있다’라는 글을 쓴, 상하이 언론인 천지빙과 그의 글을 실은 유명 포털 사이트의 인터넷잡지도 하루아침에 봉쇄되고 격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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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빙은 삭제당한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1월20일 이후, 중국 언론의 주요 임무가 변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별일 아니라며 ‘위안’하던 언론들이 이후로는 돌변해서 ‘격려와 고무’ 그리고 ‘감동’을 전하느라 바쁘다. 1월20일을 전후해 보도 행태가 변했는데, 공통점은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1월24일 우한을 취재하던 기자는 의료인들의 감염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의료진을 취재하려 했지만, 질병관리본부에서 모든 의료인의 언론 인터뷰를 불허하며 현장 상황 외부 유출 금지령을 내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언론 재갈 물리기 수법은 사회 안정을 가져오기는커녕 일어나지 않아야 할 수많은 사회모순과 충돌을 일으킬 것이다. …내가 2년 전에도 썼듯이 ‘진정한 언론은 죽어가고 있고, 더 무서운 일은 아무도 그 사실을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점이다. 올바른 언론이 없는 사회란 ‘맹인이 눈먼 말을 타고 가다가 벼랑 끝에 가닿는’….”

‘언론이 죽은’ 자리에는 코로나19와 싸우는 온갖 영웅과 그들의 미담으로 채워지고, 마스크 뒤에 숨은 시진핑 주석의 ‘지시’와 ‘어록’이 매일 신문과 방송을 타고 종일 반복해서 흘러나온다. 최근 시 주석은 ‘한 손으로는 전염병을 예방하고, 한 손으로는 생산(경제)을 움켜잡아야 한다’는 ‘중요 지시’를 했다. 하지만 그는 ‘보이지 않는 제3의 손’으로 ‘정보와 진실’을 차단하는 또 다른 전쟁을 하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눈먼 말을 몰고 전쟁을 지휘하는 것이다.

한국으로 ‘탈출’했지만… 나는 ‘전파자’

인천공항도 전쟁이었다. 중국발 비행기 승객들은 모두 특별검역 대상이 되어 별도의 장소로 안내됐다. “중국에서 오신 분들은 다 이쪽으로 오세요!”라는 안내를 받는 순간, 예상은 했지만 가슴이 철렁했다. 분위기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엄청난 방역요원들이 나와서 체온을 재고, 한국 내 거주지와 연락처 등 신상명세를 적게 한 뒤 현장에서 직접 전화해 일일이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입국 후 14일간 매일 건강 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자가진단앱’을 휴대전화에 설치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검역소’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서울 공기는 차고 맑았다. 중국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불안’이라는 바이러스가 서울 하늘에는 없는 것 같았다. 다시 평온한 일상을 찾은 기분이랄까.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19세기 중엽 어느 날, ‘가정생활이 행복하고 축복을 받으면(내 나라가 안전하다는 전제하에) 정치는 부차적인 문제가 된다’라는 일기를 썼다고 한다. 서울에 도착한 그날, 나도 비슷한 일기를 쓰고 싶었다. ‘갇혀 있던 중국을 떠나니 행복하고 축복받은 날들이 시작될 것만 같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이제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당장 다음날부터 현실이 돌변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중요한 정치 문제’였다. 자가진단앱에 매일 내 건강 상황을 신고하는 걸 깜빡했더니, 질병관리본부로부터 ‘빨리 신고하라’는 재촉 전화를 받았다. 베이징에서도 거의 한 달을 자가 격리했는데, 서울에 와서도 2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눈도 침침하고 가슴도 답답해서 온 김에 건강진단을 받으려고 병원에 연락했더니 ‘될 수 있으면 2주 뒤에 오라’는 ‘정중한’ 거절도 당했다. “평소 원수진 사람들은 오자마자 만나도 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은 2주 뒤에 만나라”는 지인의 ‘웃픈’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덤으로, 어디 가서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중국에서 이제 막 들어왔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라는 ‘고급진’ 충고도 함께.

혼자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옆자리에 앉아 식사하던 일가족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중국 코로나19 관련 뉴스를 보다가 무심결에 하는 말을 들었다. “중국 사람들 싹 다 못 오게 해야 해! 이러다 우리도 우한 꼴 나겠어. 바이러스가 공기로도 전파된다잖아. 중국 사람들 오면 그게 다….” 밥 먹던 숟가락에 힘이 빠지고 갑자기 소주라도 한잔 마셔야 할 것 같았다. 내 안에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바이러스를 알코올로 소독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그제야 실감했다. 나는 바이러스에서 탈출한 게 아니었다. 이곳 사람들에게 나는 바이러스를 몰고 온 ‘전파자’였다. 그토록 갈구했던 ‘마음의 평화’는커녕 빅토리아 여왕의 일기 같은 배부른 소리는 감히 입 밖에 낼 수도 없었다. 또 누군가 했던 말도 생각났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과 관련되지 않는 일일 때만 도덕과 인류애를 논한다’고.

먹다 남은 김치찌개 국물에 소주를 한 병 시켜서 마시고 있는데, 베이징 집에 갇혀 있는 딸이 전화했다. “엄마, 혼자 살아보겠다고 한국에 가니까 좋아? 매일 혼자서 맛있는 거 먹고 다니니까 좋아? 우리는 왜 안 데리고 갔어?”

알베르 카뮈의 소설 에는 페스트가 생겨난 도시 오랑에 우연히 취재를 왔다가 도시가 봉쇄돼 발이 묶인 기자 랑베르가, 결국에는 탈출을 포기하고 도시에 남아 함께 페스트와 싸우기로 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나는 이 도시에서 이방인이니까 여러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러나 내 경험에 비추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도 이곳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 사건은 우리 모두와 관련돼 있으니까요.”

한국도 ‘봉쇄 전쟁’ 시작될까

잠시라도 ‘혼자만 살아보겠다’고 아이들까지 남겨두고, 무작정 혼자 서울로 ‘탈출’했던 나는 결국 며칠 만에 다시 돌아간다. 아파트도, 사람도, 언론도 봉쇄된 그곳에는 또 무슨 ‘봉쇄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까. 뉴스에서 한국에도 50번째 환자가 발생했다는 속보가 들려온다. 조만간 한국에서도 ‘전쟁’이 시작되는 것일까. 돌아가서 외치리라. “한국, 힘내세요!”

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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