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제2의 31번째 환자 막으려면, 중소병원 ‘검사 의뢰’ 허하라

코로나19 ‘지역사회 감염’ 새 국면…
제2의 31번째 환자 막으려면 검사 병원 늘려 감염자 찾는 게 관건
등록 2020-02-22 05:05 수정 2020-05-02 19:29
대구 남구청 보건소 관계자들이 2월20일 오전 대명동 신천지교회 인근에서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 남구청 보건소 관계자들이 2월20일 오전 대명동 신천지교회 인근에서 방역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의 감염 진행이 매우 엄중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 지역사회 감염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김강립 중앙사고수습본부 부본부장(보건복지부 차관)은 2월20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 상황을 ‘지역사회 감염’으로 정의 내렸다. 이날 국내에선 처음 코로나19 확진자의 사망 소식이 나왔다. 보건 당국은 경북 청도 대남병원에서 확진자 ㄱ(63)씨가 사망했다고 밝혔다. 20년 넘게 대남병원에 입원했던 ㄱ씨는 19일 오전 폐렴 증세로 사망했고, 사망 뒤 진행한 코로나19 검사로 다음날 확진 판정을 받았다. 대남병원에서는 ㄱ씨를 포함해 15명이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환자와 직원 등 120명에 대한 검사가 진행 중이어서 추가 환자가 나올 수 있다.

한동안 증가세가 주춤했던 확진자 수는 19일(20명)과 20일(53명), 이틀 사이에 크게 늘었다. 2월20일 저녁 8시 기준으로 전체 확진자 수는 104명에 이른다. 중국(7만4577명 감염, 2118명 사망)과 일본(크루즈 포함 712명 감염, 3명 사망)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확진자 수가 많다.

감염 경로 파악 못한 환자 수두룩

전체 확진자 중 감염 경로를 파악하지 못한 환자가 수십 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더 큰 위험 요소다. 언제, 어디서 추가 감염환자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으로 전개되면서 한국에서 코로나19는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1월20일 한국에서 첫 환자(35)가 확진 판정을 받은 지 꼭 한 달 만이다. 전문가들은 보건 당국이 감염환자의 동선을 확인하고 추가 환자를 막기 위해 분투했던 ‘봉쇄’ 전략에서 ‘완화’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사회에서 대규모 감염이 이미 시작됐기에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감염자를 최대한 빨리 찾아내 조기에 치료하고 사망률을 낮추는 것이 관건이다.

지역사회 감염에 대한 우려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은 2월16일 29번째 환자(82)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다. 외국을 방문한 기록이 없고, 확진환자와 접촉한 적이 없어 전혀 관리·감독이 되지 않았던 29번째 환자가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보건 당국은 초긴장 상태에 들어갔다.

2월5일부터 기침·가래 증상이 있어 서울 종로구에 있는 의료기관 4곳을 여러 차례 방문한 29번째 환자는 15일 오전 11시45분께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병원을 찾았다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환자는 증상 이후 확진 판정을 받을 때까지 10일 동안 지역사회를 돌아다니면서 의료진 등 117명의 접촉자가 생겼다. 환자의 아내(68)도 2월17일 양성 판정을 받아 30번째 환자로 기록됐다.

하지만 29·30번째 환자가 나온 뒤에도 보건 당국은 ‘지역사회 감염’을 인정하지 않았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환자가 지역 감염 사례인지는 감염원과 감염 경로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 뒤 최종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18일 대구에서 31번째 환자 ㄴ(61)씨가 확진 판정을 받자 정 본부장은 “전국적으로 유행 상황으로 판단하긴 어렵지만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밝혀 지역사회 감염 가능성을 인정했다. 31번째 환자 역시 해외여행 이력이 없고, 확진환자와 접촉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아 방역망 밖에 있었다.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 병원 의료진들이 2월19일 오후 병원에 도착한 코로나19 의심환자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 병원 의료진들이 2월19일 오후 병원에 도착한 코로나19 의심환자를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질본, 대구 신천지 전체 신도 ‘관리’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도 감염 경로가 파악되지 않은 환자는 있었다. 119번째로 확진 판정을 받았던 평택경찰서 소속 경찰관과 178번째 환자(당시 29살)는 끝내 감염 경로가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당시는 병원 밖에서 거의 감염이 일어나지 않았기에 지금처럼 대규모 지역사회 감염으로 확산되지 않았다.

ㄴ씨가 확진 판정을 받은 이후 코로나19 사태는 대구·경북 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히 악화됐다. ㄴ씨가 다닌 대구 남구 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환자 수가 빠르게 늘고 있다. 대구시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2월20일 오후 8시 기준) 신천지교회 신도 중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은 ㄴ씨를 포함해 43명에 이른다. 전체 확진자(104명)의 41%다.

31번째 환자는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나타난 이후 2월9일과 16일 두 차례 신천지교회에 방문해 예배했다. 이 환자와 같은 시기에 교회 예배에 참석한 사람이 1천 명에 이른다. 보건 당국은 이 기간에 신천지교회에서 다수 전파가 일어난 것으로 본다. 보건 당국이 파악한 내용을 보면 조사 대상인 신천지교회 신도 1001명 중 90명이 ‘고열, 기침 등의 증상이 있다’고 대답했다. 질병관리본부(질본)는 1001명 모두 자가 격리 조치할 방침을 밝혔다. 아울러 대구 신천지교회 예배에 참가한 인원뿐만 아니라 8천 명 가까이 되는 전체 신도의 명단을 받아 관리에 들어갔다.

교회는 좁은 공간에 여러 사람이 모인다는 특성 때문에, 예배 공간은 바이러스 전파에 취약하다. 21번째 환자(60)도 서울 종로구 명륜교회에서 예배를 보던 중 6번째 환자(56)에게서 감염됐다. 한국에 이어 네 번째로 감염환자가 많은 싱가포르에서도 전체 감염환자 84명 중 28명이 교회에서 감염된 것으로 확인됐다. 신천지교회는 신도들이 의자에 앉지 않고 바닥에 앉아 옆사람과 밀착한 상태로 예배를 보는 방식 때문에 더욱 많은 신도가 감염됐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신도 중 최초·다수 전파자 따로 있을 듯

ㄴ씨는 신천지교회 신자 중 가장 먼저 확진 판정을 받았으나 다수 전파 환자는 아닌 것으로 방역 당국은 추정한다. 신도 중 가장 먼저 감염돼 다수 전파를 일으킨 사람은 따로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가장 먼저 확진 판정을 받아 신천지교회 신도 중에선 환자 번호가 가장 빠르지만 질본 감염 통계 자료를 보면 31번째 환자와 같은 날 대구의료원, 경북대학교병원, 동국대학교경주병원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는 7명이 더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20일 오후 브리핑에서 “전체 신천지 관련 환자 발병일을 보면 2월7∼9일에 일부 환자가 있고 15∼17일에 정점을 보여준다. 현재로서는 31번째 환자 역시 2차 감염자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ㄴ씨는 다수 전파 환자가 아니고 2차 감염자일 가능성이 높지만, 병원에서 의사의 코로나19 검사 권유를 두 차례나 거부한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질본의 역학조사 내용을 보면 ㄴ씨는 2월6일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이튿날인 7일 대구 수성구 새로난한방병원에 입원했다. 입원 당시 ㄴ씨가 오한과 인후통 증상을 보이자 의료진이 코로나19 검사가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전원할 것을 권했다. 하지만 ㄴ씨는 의료진 말을 듣지 않았고, 입원 중이던 9일과 16일 오전 대구 남구 신천지교회에서 예배를 봤다. 15일에는 대구 동구 퀸벨호텔에서 한 결혼식에 참석해 식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도 지역사회 감염이 일어났다.

새로난한방병원은 15일께 ㄴ씨의 컴퓨터단층촬영(CT)을 하던 중 폐렴을 확인하고 재차 코로나19 검사를 권했으나, 역시 검사를 받지 않았다. ㄴ씨는 17일 병원을 퇴원한 뒤에야 대구 수성구 보건소를 찾아 검사를 받았다. 증상이 나타나고도 10일 가까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않아 1160명(2월20일 오후 2시 기준)의 접촉자가 나오자 ㄴ씨를 형사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하지만 의료 전문가들은 ㄴ씨가 검사를 꺼리고 받지 않았던 근본적인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염환자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강한 상황에서 추가로 일어날 수 있는 검사 거부를 막으려면 환자 처지에서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백재중 녹색병원 부원장(호흡기내과 전문의)은 20일 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ㄴ씨가 입원한 병원에서 바로 검사받을 수 있었다면 진료를 거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중소병원은 검체(가래와 침 등)를 채취해 코로나19 검사를 의뢰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 중소병원은 폐렴 증상으로 코로나19 감염 의심 환자가 오면 선별진료소로 보내는 것밖에 할 수 없는데, 선별진료소는 오염 지역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환자들이 방문을 꺼린다”고 했다. 백 부원장은 “ㄴ씨처럼 감염 여부를 파악하지 못한 채 중소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더 있을 텐데, 지역사회 감염 국면에선 이런 환자들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중소병원에서도 코로나19 검사를 의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심 증상 땐 응급실 대신 선별진료소로

코로나19 감염으로 목숨을 잃은 사례가 나오고 확진자 수가 기하급수로 늘면서 보건의료체계의 약점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국가지정 입원치료 병상을 운영하는 의료기관은 전국에 29곳인데 이곳에서 보유한 음압병실은 총 161곳, 음압병상은 198개에 불과해 한계에 부딪혔다. 2월20일 오전 9시 기준으로 경북은 이미 100% 활용되고, 대구는 87.5%가 가동 중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확진환자 수가 지속해서 늘면 음압병실의 격리입원이 불가능함에 따라 중증환자는 음압병실로, 경증환자는 1인 일반병실에 입원시키는 방향으로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건 당국은 대구·경북 환자가 늘어남에 따라 확진환자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환자들이 상급종합병원 응급실로 몰리면서 응급실이 잇따라 폐쇄되는 것도 큰 위험이다. 2월20일 오후 현재, 대구 상급종합병원 5곳 중 3곳(경북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영남대병원)의 응급실이 폐쇄 중인데 100명 넘는 의료진이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병원 응급실이 소독을 마치고 3일 내에 다시 열어도 진료를 볼 의료진이 부족해, 지역 응급의료에 공백이 생길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기모란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대한예방의학회 코로나19 위원장)는 “응급실이 잇따라 폐쇄되면 응급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이 추가 위험에 처할 수 있어 지역 건강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의심 증상이 나타난다고 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려가지 말고 마스크를 쓰고 선별진료소를 방문해 검사를 받아줄 것을 당부한다. 코로나19가 확산이 빠르긴 하지만 치명률이 높지 않기에 지나치게 큰 공포를 가질 필요가 없다. 다만 기저질환이 있는 노약자는 마스크를 꼭 쓰고 외출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