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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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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대 40년, 존폐 넘어 개혁을 이끌어라

1981년 경찰 역량 강화 위해 설립… 졸업생들 ‘수사권 조정’ 일익 담당

대졸 순경 늘면서 필요성 줄고, 경찰대 출신 ‘혜택 독식’에 저항감 늘어
등록 2020-01-21 02:26 수정 2020-05-02 19:29
2017년 3월16일 오후 충남 아산 경찰대학에서 열린 경찰학생 간부후보생 합동임용식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3월16일 오후 충남 아산 경찰대학에서 열린 경찰학생 간부후보생 합동임용식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제 첫발을 내디뎠다. 왜곡된 검찰·경찰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은 형사사법제도 민주화의 출발점이다.”

황운하 경찰인재개발원장(치안감)은 1월13일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이 모든 수사에 관해 검사의 지휘를 받도록 한다’고 명시한 형사소송법이 제정 65년 만에 개정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기쁨을 나타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경찰에 1차 수사종결권을 부여하고 검찰의 수사 지휘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안(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통과시켰다.

황 원장은 검경 수사권 조정 국면의 중심에 있었다. 그는 울산 고래고기 환부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의사에 반해서는 경찰의 수사 진행이 불가능하다며 불만을 제기해왔다. 황 원장은 울산경찰서장 시절 청와대의 명을 받아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수사했다는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국회를 통과해 일단락됐지만, 황 원장과 검찰의 신경전은 진행형이다. 황 원장은 1월15일 경찰청에 사직원을 내고 총선 출마 의사를 밝혔고, 이튿날인 16일 검찰은 황 원장에게 출석을 통보했다.

엘리트 치안 인력 키워내 검찰과 맞짱

경찰대학 1기 졸업생인 황 원장은 1981년 1월13일 경찰대 합격 소식을 들었다. 경찰대 개교는 당시 많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4년 동안 학비가 전액 국비로 지원되고, 졸업 뒤 경찰간부인 ‘경위’로 임관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경쟁률이 224 대 1에 이르렀다. 황 원장은 1월15일 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경찰 조직 전체 구성원의 숙원사업이었다”며 경찰대 1기 졸업생으로서 남다른 소회를 나타냈다.

40년 동안 엘리트 치안 인력을 키워낸 경찰대가 검경 수사권 조정 과정에서 일익을 맡았다는 점은 경찰 안팎에서 인정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출범한 경찰개혁위원회, 경찰대학 개혁추진위원회에서 경찰개혁 방안을 제시했던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검찰 권력에 맞서 지속적으로 수사권 독립을 주장하고, 권력 견제 원칙을 외치며 경찰개혁까지 주도한 세력에 경찰대 출신이 많았다”며 공을 인정했다.

안문석 고려대 명예교수가 2016년 에 쓴 기고글 ‘경찰대학은 당초 경찰사관학교로 설계되었다’(부제: 경찰대학 출범의 숨은 이야기)에는 경찰대 출범 배경이 잘 나타나 있다. 안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산시스템개발 실장으로 재직하던 1970년대 말 경제기획원에서 연락을 받았다. 열악한 경찰 근무 조건과 금품 수수 관행 등이 횡행하는 원인과 그 대책을 연구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안 교수는 “당시 경찰 근무 환경은 정말 열악했다. 월급으로는 생활이 힘들 정도였고, 수사 장비는 부족했다. 교대근무가 제도적으로는 있었지만 상황이 발생하면 계속 근무했다. 생계형 금품 수수가 만연했지만 윗선에선 손을 놓고 있었다”고 했다.

연구진은 토론 끝에 경찰대학을 설립하자는 안을 제출했다. 1972년 설립된 ‘경찰대학(구)’이 있었지만 4년제가 아니었고, 정규대학으로 승인받지 않은 곳이었다. 안 교수 연구진이 제출한 안에는 육군사관학교 생도와 같이 4년 전액 국비로 학비를 지원하고, 졸업 뒤 경위로 임관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제출안에는 ‘경찰대를 통해 경찰의 역량이 향상되면 경찰의 자율적인 수사권 범위를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도 담겼다. 경찰대 출범 이전부터 경찰 조직의 역량 강화 이후에 수사권을 조정할 계획을 세웠던 셈이다. 연구진이 제출한 개선안은 경찰대 설립법에 반영됐고, 1981년 경찰대가 문을 열었다. 입학 첫해에는 여학생을 받지 않았지만 여성의 사회 진출 범위 확대 등 변화에 따라 1989년부터 입학 정원(120명) 중 5명의 여학생을 받았다. 1997년부터는 정원의 10%인 12명이 입학했다.

‘경위 임관’ 등 혜택에 경쟁률 치열

경찰대는 개교 이후 입시에서 매년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졸업생들은 경찰 업무 현장에서도 대체로 좋은 평가를 받고 승승장구했다. 2014년 경찰대 출신으로 처음 경찰청장 자리에 오른 사람은 강신명 전 청장(경찰대 2기)이었으나, 박근혜 정부 시절 정보경찰의 정치 개입과 불법 사찰에 관여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지난해 5월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현재는 보석으로 풀려나 불구속 상태로 재판받고 있다. 현 경찰청장인 민갑룡 치안총감은 경찰대 4기로 1988년 4월 수석 졸업했다.

경찰대는 2019년 말까지 4천 명 넘는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총경 이상 간부로 승진해 요직을 차지했다. 2018년 5월 기준 총경 총원 583명 중 320명(54.9%)이, 경무관은 총원 76명 중 51명(67.1%)이 경찰대 출신으로 파악됐다. 치안감 이상은 34명 중 19명(55.9%)이 경찰대 출신이었다. 이처럼 경찰 고위 간부의 과반수를 경찰대 출신이 장악하는 현상은 예견된 것이었다. 개교 이래 2015년까지 120명, 2016년 이후 100명 입학생을 받은 경찰대는 매년 100명이 넘는 경위를 배출했다. 매년 간부 후보생 50명을 경위 임관한 것의 2배에 이른다.

경찰대 출신이 아닌 경찰 간부들은 경찰대 출신으로 경찰 간부 대부분이 채워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본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찰 관계자는 “경정 중에서 총경 승진 인사를 하는데, 승진 가능한 주요 보직에 경찰대 출신이 밀집해 있다. 경찰대 출신이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승진에 용이한 보직, 예컨대 경찰청 기획 부문이나 정보국 관리관실 등으로 후배를 데려오는 거다. 앞으로 10년이면 총경 이상 간부 10명 중 8~9명은 경찰대 출신이 장악할 것으로 내다본다”고 말했다.

이 흐름 위에 ‘경찰대 폐지론’도 나왔다. 경찰대가 개교 25년을 맞았던 2005년은 경찰대 폐지론의 목소리가 가장 높았던 해다. 2005년 9월 국정감사에서도 경찰대 폐지가 언급됐다. 고등학교 때 성적이 우수했다는 이유로 너무 많은 혜택(학비 전액 지원, 기동대 소대장으로 병역 전환복무, 졸업 뒤 경위 임관)이 주어진다는 것이 폐지론의 근거였다. 1970년대에는 경찰 구성원의 학력이 낮아 경찰대 설립 필요성이 대두됐으나, 현재는 순경 공채 경찰관도 90%가량이 대학 재학 이상의 학력을 가졌다. 자연히 경찰대 출신이 누리는 혜택에 대한 저항도 커졌다.

(왼쪽부터) 민갑룡 경찰청장(경찰대 4기). 황운하 경찰인재개발원장(경찰대 1기). 연합뉴스, 한겨레 송인걸 기자

(왼쪽부터) 민갑룡 경찰청장(경찰대 4기). 황운하 경찰인재개발원장(경찰대 1기). 연합뉴스, 한겨레 송인걸 기자

‘검찰 하수인’ 자괴감에 로스쿨행 급증

경찰대 출신에 대한 내부 불만이 커지는 가운데 역설적으로 경찰대를 졸업하고 경찰이 되지 않는 사례도 늘었다.

좁은 문을 통과해 경찰대에 입학하고 경위로 임관해도 ‘검찰의 하수인’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로스쿨이 시행되면서 로스쿨로 향하는 경찰대 졸업생이 늘었다. 과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등이 발표한 자료를 종합하면 로스쿨이 첫 입학생을 받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로스쿨에 입학한 경찰대 졸업생은 188명에 이른다. 전체 로스쿨 입학생 수로는 서울대(3902명)에 한참 못 미치지만 한 해 100명 남짓 입학하는 경찰대 정원을 고려하면, 로스쿨 진학률은 15%를 넘어 서울대(13%)보다 높다. 우수한 치안 인력을 교육하기 위해 국민 세금으로 지원한 인재가 빠져나가는 것에 여론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경찰대 출신의 일탈행위가 보도되면서 이미지를 실추하기도 했다.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경찰대 2기)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조합 와해 공작에 관여한 혐의로 지난해 12월 1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았다. 삼성전자 김사필 전 전무(경찰대 3기)도 같은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에 3년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지난해 ‘버닝썬 사태’ 중에 윤규근 총경(경찰대 9기)이 연예인 승리를 소개해준 특수잉크 제조업체 대표 등에게서 경찰 고소 사건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수천만원 상당의 주식을 차명으로 받은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2017년 2월 서울 동작구 노량진 고시촌을 방문해 ‘경찰대 특권 폐지’가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지만 국정과제에는 경찰대 폐지가 포함되지 않았다. 다만 2019년 경찰대학의 학사 운영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개정해 경찰대 출신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대폭 축소했다. 2019학년도 입학생부터는 병역 혜택이 폐지돼, 개별적으로 병역을 이행해야 한다. 내년도 입학생부터는 정원도 100명에서 50명으로 대폭 축소된다. 대신 2023학년도부터 일반 대학생 25명, 현직 경찰관 25명 등 50명이 3학년생으로 편입할 계획이다. 학비와 기숙사비 전액 지원도 사라진다.

경찰대 출신들은 축소되는 경찰대 혜택에 우려하면서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삼가고 있다. 일선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경찰대 졸업생 ㄱ씨는 “최근 진행 중인 경찰대 개혁에 반대 의견이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지만, 사회적 인식 변화에 따라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우수 인력을 유치하려면 경찰대는 존치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비경찰대 출신 경찰 관계자들은 고등학교 성적만으로 경위 임관까지 이어지는 경찰대 ‘학부’ 과정은 폐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개혁 과정에서 ‘선구적’ 역할 입증해야

올해 개교 40년이 된 경찰대는 검경 수사권을 조정하면서 대학 설립 목적을 이뤘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민갑룡 청장은 1월15일 오후 회의에서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권 비대화와 권한 남용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불식시키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민들은 경찰 수사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요구하고 있다. 개방직 전문가인 국가수사본부장이 경찰 수사를 총괄하도록 하는 국민수사본부 체제를 도입해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대가 존폐 논란을 넘어 지속되려면, 검경 수사권 조정에서 보여줬듯이 경찰개혁 과정에서도 경찰대와 졸업생들의 선구적인 역할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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