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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생들의 지지 “홍콩의 이한열들에게”

연세대·고려대 등 학생들 홍콩 시위 지지… 중국 유학생과 충돌하기도
등록 2019-11-23 06:27 수정 2020-05-02 19:29
18일 연세대학교 학생들과 홍콩인 유하생들이 ‘홍콩 정부의 국가폭력을 규탄하는 연세대학교 침묵행진’을 마치고 연세대 학생회관에 설치한 ‘레넌벽’.

18일 연세대학교 학생들과 홍콩인 유하생들이 ‘홍콩 정부의 국가폭력을 규탄하는 연세대학교 침묵행진’을 마치고 연세대 학생회관에 설치한 ‘레넌벽’.

“홍콩 시위 탄압 규탄한다.”

11월18일 오후 2시30분께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정문 앞에 홍콩 시위 지지를 위해 모인 학생 10여 명이 외쳤다. 이들 중 5명은 홍콩 유학생이었다. 무력 진압에 나선 홍콩 경찰을 규탄하고 시위대를 지지하는 구호를 외친 곳 바닥에는 ‘이한열 피격 현장’이라는 기념동판이 박혀 있었다.

발언자로 나선 노동자연대 연세대모임 소속 임재경(26)씨는 머리발언에서 “홍콩 항쟁은 정당하고, 시위대의 5대 요구는 지지받아 마땅하다. 홍콩 항쟁은 4·19혁명, 부마항쟁, 광주 민주화운동, 6월 항쟁, 촛불혁명을 떠올리게 하고 이한열 열사를 떠올리게 한다. 홍콩 민중과 아픔을 공유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내정간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국 대학생들이 홍콩 시위를 지지하고 나선 것에 일부 중국인 유학생이 ‘내정간섭’이라며 비판했는데 이를 정면 반박한 것이다.

베이징 출신도 “홍콩은 민주화 위해 싸우는 것”

이날 행사에 참가한 홍콩 출신 유학생 에밀리(가명)는 “학교에서 한국 근대사 수업을 듣다가 1987년 민주화운동 중에 목숨을 잃은 이한열 선배에 대해 알게 됐고, 당시 한국과 지금의 홍콩에서 일어나는 일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홍콩이공대에 있는 친구들이 연락이 잘 되지 않는 상황이어서 걱정된다”고 했다.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홍콩섬과 주룽반도를 넘어 한국에서도 커지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 중 이한열 열사가 쓰러졌던 연세대 정문과 이승만 정부의 독재에 맞서 싸운 학생들을 기리는 고려대 4·18기념관 등 한국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공간을 거점으로 홍콩 민중의 자유를 외치는 목소리가 집결하는 것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11월20일 저녁 7시께 서울 성북구 고려대 4·18기념관에서 열린 ‘홍콩 운동 연대가 중요하다’ 행사에선 서울 시내 대학에 유학 중인 홍콩 출신 학생 수십 명이 모여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구호를 외쳤다. 이날 행사에는 중국 본토 출신 학생들까지 모여 홍콩 시위에 대해 허심탄회한 토론을 벌였다. 베이징 출신의 한 학생(22)은 “홍콩 시위대 항쟁의 목적은 독립이 아니라 민주다. 홍콩이 시위를 통해 독립을 주장한다는 것은 중국 공산당이 왜곡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 언론은 홍콩 시위대의 폭력성을 지적한다. 한국처럼 선거로 정치권을 견제할 수 있는 국가에서 폭력을 쓰면 문제지만, 중국 공산당 일당 체제에선 민중에게 폭력시위 말고 저항 수단이 없다”고 밝히며 홍콩 시위를 지지했다.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 훼손 대학 10여 곳

그러나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중국 학생의 목소리는 이례적이다. 국내 유학 중인 중국 본토 출신 학생 다수는 국내 대학교 캠퍼스에서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대자보를 떼어버리거나 훼손하는 등 불만을 표시해왔다. ‘홍콩의 진실을 알리는 학생모임’은 11월21일 현재까지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가 훼손된 대학이 서울대와 고려대, 연세대 등 10여 곳에 이른다고 밝혔다.

11월19일 저녁 8시께 서울 서대문구 명지대 학생회관에서는 한국 학생이 붙인 홍콩 시위 지지 대자보 위에 중국 출신 학생이 반대 의견을 표하는 게시물을 붙였다가 학생들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서대문경찰서에 신고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등 형사사건으로 비화하는 모양새다.

학생들의 갈등을 우려한 한국외국어대는 11월19일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학생들의 대자보를 떼고 “한국 학생과 중국 학생의 갈등이 고조돼 물리적 충돌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외부 기관의 이름으로 작성된 대자보 부착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조치에 학생들은 “대자보 철거를 사과하고, 학생들이 민주적으로 토론하고 논쟁할 수 있도록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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