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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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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2공항 여론 역풍에도 강행할까

원희룡 “성산읍 공항 신설에 명운 건다”지만

관광객 감소에 ‘기존 공항 확충론’ 힘 얻어
등록 2019-08-08 02:00 수정 2020-05-02 19:29
2017년 9월 제주 서귀포시 김정문화회관에서 ‘제2공항 추진 상황 설명회’를 반대하는 도민들 모습. 연합뉴스

2017년 9월 제주 서귀포시 김정문화회관에서 ‘제2공항 추진 상황 설명회’를 반대하는 도민들 모습. 연합뉴스

“이런 예를 들어보자. 고속도로 혼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나. 하나 더 뚫는 게 확실한 방법이지만, 부담이 크다. 그래서 기존 고속도로 운행을 효율화하는 방법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하이패스를 도입해 톨게이트 통과 속도를 끌어올리고, 버스전용차선을 도입하고, 화물차 운행을 야간으로 유도하는 식이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도 고속도로 혼잡 통행을 분산하는 데 기여한다.

비유하자면, 제주 제2공항을 짓자는 쪽은 고속도로를 하나 더 뚫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급격한 관광객 증가를 감당할 방법이 달리 없다는 것이다. 반대하는 쪽은 기존 고속도로(기존 제주공항)를 개선하고 확충하자고, 그 방법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국토교통부와 제주도에서 기존 제주공항을 활용하는 안을 처음부터 배제했다는 것이다. 제2공항 건설을 당위로 밀어붙였다. 정치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제주공항 이용객 줄어드는데…

익명을 요구한 항공전문가는 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제주공항 수요예측부터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제주공항 이용자는 2010년 무렵부터 폭발적으로 늘었다. 저비용항공사(LCC) 요인이 가장 크다. 그런데 LCC는 돈 되는 곳만 간다. 제주와 일본으로 모두 몰려갔다. 현실적으로, 달리 운항할 곳도 없다.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인가, 장담 못한다. 중국 변수가 크다. 한-중 간 항공 자유화가 이뤄져, LCC들의 중국 노선 취항이 자유로워진다고 상상해보라. 항공기를 대거 투입해 경쟁적으로 중국 노선 개척에 나서지 않겠나. 그 반작용으로 전체 LCC의 제주 운항 편수가 줄어들지 말란 법이 없다.”

2015년 제주의 성산 지역을 제2공항 후보지로 발표한 ‘제주 공항인프라 확충 사전타당성 보고서’에서는 2045년 제주공항 이용객이 4560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지금의 제주공항 시설을 확충해 소화할 수 있는 이용객은 3155만 명(2020년)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시설용량과 수요예측의 차이가 1400만 명이나 되니 공항을 하나 더 지어야 한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힘을 얻었다.

하지만 실제 제주공항 이용객은 2016년 2970만 명을 정점으로 2018년까지 2년 연속 내리막길을 걸었다. 중국 관광객 감소라는 돌발 변수가 터졌다. 2016년 제2공항 예비타당성 조사와 2019년 기본계획 보고서에서는 2045년 제주공항 이용객 수요를 각각 4043만 명, 3890만 명으로 낮춰 잡았다. 이때부터 제주도민 사이에 제2공항 건설의 타당성을 의심하는 기류가 뚜렷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앞에서 말한 익명의 항공전문가는 “동남권 신공항 갈등에서 보듯이, 우리나라 공항 건설은 언제나 정치적 결정의 산물이었다”면서 “제주 제2공항 건설 방침을 먼저 결정하고 그에 맞춰 보고서를 작성하다보니, 불리한 수요예측 요인은 아예 배제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제주 같은 작은 섬에 큰 공항 2개를 운영한다는 발상 또한 기이하다”면서 “정말 공항시설을 확충해야 한다면 큰 공항 1개로 통합하는 게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대안”이라고 말했다. “제주보다 더 큰 섬인 중국 하이난도 인구가 더많은 오키나와도 공항이 1개다. 2개를 운영하면 항공사도 공항운영사도 어렵고, 하늘길이 복잡해져 관제의 안전 부담도 커진다.”

제주도민의 제2공항에 대한 불안감은 여론조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2015년 사전타당성 보고서 발표 때만 해도 제2공항 찬성률이 71.1%에 이르렀다(제주KBS 조사). 제주공항으로 들어오는 관광객과 이주민이 끝없이 늘어나면서 숙박시설과 카페, 식당 등 관광 업소가 번창하고 땅값도 치솟던 때였다. 하지만 2017년 9월 제주도청 조사에서는 63.7%로 떨어지고, 2018년 2월 제주 제2공항반대 범도민행동과 제주대의 공동 여론조사에서는 제2공항 건설 찬성률이 42.7%까지 곤두박질쳤다. 과잉관광(오버투어리즘)과 제주도 수용력이라는 새로운 이슈가 공감대를 얻으면서 여론 반전에 불을 질렀다.

‘기존 공항 확충’ 용역 결과 왜 숨겼나

올해 들어서는 필리핀에 수출하는 쓰레기가 제주에서 유출됐다는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다. 제주에서 처리하지 못한 쓰레기가 이미 한라산 자락에 10만t 가까운 산더미를 이루고 있다는 부끄러운 보도도 나왔다. ‘청정의 섬’이 아니라 ‘쓰레기 섬’이라는 비아냥은 제주도민을 부끄럽게 했다. 제2공항 건설로 4500만여 명이 쏟아져 들어올 때, 그 쓰레기를 제주라는 섬이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반성과 의문이 제기됐다.

최근에는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라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공항컨설팅 회사의 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제주 여론을 흔들어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5월 공개된 보고서는, 기존 제주공항의 터미널과 계류장 등 시설을 확충하고 관제 역량을 개선하면 지금의 활주로로 하루 60회 항공기를 운항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연간 4천만 명이 훨씬 넘는 이용객을 소화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제주공항이 안전 문제로 동서 방향 활주로 1개만 쓰고 있지만, 보고서는 남북 방향의 짧은 보조활주로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

국토부는 2015년 사전타당성 용역 때 작성된 이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을 공식 보고서에 담지도 않아, 일부러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제주 제2공항반대 범도민행동의 박찬식 공동위원장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고 한국 사정에도 밝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 보고서가 진작에 공개됐다면, 기존 제주공항 활용이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처음부터 힘을 얻었을 것”이라며 “제2공항을 건설해 제주에 쏟아지는 돈의 파이를 키우려는 정치적 목적의식이 앞서다보니, 사전타당성 용역의 중요한 보고서를 감추었던 것이라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도민 여론은 제2공항 건설 대신 기존 제주공항을 확충하자는 쪽으로 결집되고 있다. 4월 말 여론조사에서는 “기존 제주공항 확충을 지지”하는 도민이 46.9%로 “성산읍 제2공항을 그대로 추진”(30.5%)하거나 “새로운 제2공항 입지를 선정”(9.8%)하자는 여론보다 높게 나타났다. 5월31일 JIBS제주방송 여론조사에서는 도민의 69%가 “기존 제주공항 활용 방안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지사 “기존 공항 활용은 이론적 제안” 폄하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명운을 걸고 제2공항 추진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도지사와 반대 단체가 힘 대 힘으로 맞서면서, 제주도민들 사이 갈등의 골도 한없이 깊어지고 있다. 원 도지사는 지난 3월20일 시작한 개인 유튜브 생방송 를 제2공항 추진을 위한 도민 소통 창구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4월29일 방송에서 원 도지사는 속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제주 제2공항은 제주의 경제다’라는 제목의 방송에서 “제주 관광이 정체되면서 숙박과 음식·건설업 경기가 취약해지고 파트타임 일자리도 구하기 어려워졌다”고 토로했다. “제2공항을 건설하면 공사비가 5조원 투입된다. 그 돈이 돌고 돌아 4조원의 생산유발효과와 1.8조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고용효과와 취업유발효과도 각각 4만 명씩 기대된다.” 원 도지사는 “제2공항은 제주 경제의 미래”라고 거듭 강조했다.

국토부 산하 국책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공항 공사에 투입되는 막대한 재원은 전적으로 중앙정부에서 공급한다. 천문학적 규모의 공사비가 지역으로 유입되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책임질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지방공항의 정치경제학’을 비판했다.

원 도지사는 5월14일 방송에서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의 기존 제주공항 활용안은 타당성 없다”고 거세게 공격했다. “19가지 전제조건을 내놓았는데, 현실적으로 다 충족시킬 수 없는 이론적 제안일 뿐”이라고 폄하했다. 5월23일 방송에서는 기존 제주공항의 남북 활주로 활용안을 또다시 공격했다. 원 도지사는 제주공항 전문가와 함께 나와 “탁상에서 제안할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다가 사고 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관제 역량을 끌어올리면 된다고 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란 말인가, 막연한 이야기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제2공항반대 성산읍대책위원회와 제주 제2공항반대 범도민행동 쪽은 6월 말 1300명의 서명을 받아 감사원에 제주 제2공항 추진과 관련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이들은 감사 청구 내용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의 보고서가 은폐된 이유와 과정이 합당한지 철저히 확인해줄 것. 둘째, 제주도에 필요한 공항시설 용량에 비추어 제2공항 건설이 타당한지 면밀하게 재검토할 것. 셋째, 제2공항 건설 여부는 제주도민의 삶과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므로, 제주도민의 의사를 우선적으로 존중해 사업의 정당성을 재검토할 것.

국토부, 기본계획 고시 강행

원 도지사와 제주 제2공항반대 범도민행동 쪽은 8월 한 달 동안 세 차례 방송 공개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원 지사는 제2공항을 둘러싼 논란에 토론의 초점을 맞춘다는 생각이나, 범도민행동 쪽은 기존 제주공항 활용의 타당성을 집중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제2공항 건설에서 찬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도민 공론화를 거치자는 안에 대해서는 원 도지사가 반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국토부는 ‘제주 제2공항 기본계획 수립용역 최종보고회’를 6월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연 데 이어, 올 10월께 기본계획 고시 강행을 예고하고 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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