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암 경험자들의 ‘또, 다시 봄’

20∼40대 암환자·암 경험자 모임 ‘또봄’에서 만난 5명의 고민과 바람
등록 2019-07-29 00:27 수정 2020-05-02 19:29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이정훈(38)씨는 2015년 7월 암 선고를 받았다. 혈액암 4기였다. 힘겨운 투병이 시작됐다. 그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예전처럼 다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열망 덕분이었다. 실제로 퇴원하고 80일간 세계 여행을 떠났다. 이씨는 “내가 ‘여행’을 통해 삶에 의지와 희망을 품었듯 다른 젊은 환우들도 그렇게 암을 이길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2016년 12월 ‘당신을 또 봅니다’(또봄)를 만들었다.
또봄(https://m.cafe.naver.com/iseeuagain)은 20~40대 암환자와 암 경험자를 돕는 모임이다. ‘당신의 건강한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와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 또, 다시 봄’이라는 뜻이다. 회원은 70여 명. 사는 지역, 겪은 암은 다르지만 그들의 공통분모는 결혼, 취업, 학업 등 인생 설계를 할 시기에 암을 겪었다는 것이다. 또봄에서는 그들을 위해 ‘살기 위한’ 여행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지난해 6월 여행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를 쓰는 여행포토버킷북을 만들어 크라우드펀딩(온라인에서 대중에게 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했다. 그 수익금으로 암 극복 의지를 줄 포토북 300권을 제작해 치료받는 암환자를 돕는 데 썼다. 이렇게 또봄에서는 암환자와 암 경험자를 여행을 매개로 이어준다. 서로를 살리며 사회와 단절되는 것을 막는다.
또봄으로 다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 그들은 다시 어떤 꿈을 꾸는지,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암 이후의 삶’ 2부에서는 인생을 설계하고 꾸려나가야 할 시기에 있는 20~40대 암 경험자들의 고민과 바람을 담았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수화 통역, 새 꿈을 꿉니다

#35살 송민서씨

7월10일 오전 충남 천안에 있는 한 미용실. 헤어디자이너 송민서씨가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송씨는 2014년 3월 위암 3기 진단을 받았고 올해 암 완치 판정을 받았다. 재발 없이 건강하게 일하고 있다. 혼자 미용실을 운영하는 그는 손님이 없는 시간에 짬짬이 수화 통역 공부를 한다. 송씨는 수화통역사라는 새로운 삶을 준비한다. 7월 중순 수화 통역 시험이 있다. “우연히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화통역사가 별로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분들의 언어를 배우고 싶었던 차에 이쪽으로 일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올해 처음 시험을 쳐요. 한번 도전해보려고요.”

송씨가 새 삶을 계획하고 살아갈 수 있었던 건 남편의 응원과 지지 덕분이다. 사귄 지 한 달쯤 됐을 때 암 진단을 받았지만 남편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의 옆에 있다. 그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준 존재다.

그러나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여전히 불편하다. 미용실 손님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늘어놓다보면 자신의 암 투병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러면 어김없이 듣는 말이 있다. ‘젊은 나이에 왜 그랬냐’ ‘술을 많이 마셨냐’라는 거다. 그는 “자기 관리 못하고 막산 사람이라는 듯한 시선으로 봐요. 그런 말 들으면 억울하죠. 저 막살지 않았는데요”라며 웃었다. 그리고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있다. 방송에서나 인터넷에서 자주 등장하는 ‘암 유발자’ ‘암 걸리겠다’라는 것이다. “암 투병을 하며 힘들게 그 시간을 보낸 저로서는 그 말을 듣기 힘들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암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하는 것 같아요.”

송씨는 손님이 “하루에 5명이 채 안 될 정도”로 장사는 안되지만 “출퇴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한다. “아침에 출근 준비하고 저녁에는 퇴근하고, 그런 것 자체가 삶의 활력소가 돼요. 크게 돈 벌 욕심도 없고요.” 긍정적인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려 노력한다는 그는 해마다 남편과 함께 마라톤대회에 참가한다. “내 두 다리로 뛰고 있을 때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비록 성적은 안 좋지만 그렇게 뛸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죠.” 그러고 보니 미용실 한켠에 마라톤 메달이 여러 개 걸려 있다. 송씨는 암을 통해 “인생이 리셋(다시 시작)됐다”고 생각한단다. 그렇게 그는 다시 시작하는 제2의 삶을 살고 있었다.

김민주 제공

김민주 제공

10년 경력 무용지물됐지만

#40살 김민주씨

2017년 12월 유방암 진단을 받은 김민주씨는 뭘 하고 먹고살지 걱정이다. 혼자 벌어 생활하는 그는 한 달 전부터 집 근처 애견숍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한다. 6월2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김씨는 현재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유방암 환자들은 수술한 쪽 팔을 쓰면 안 돼요. 무거운 걸 그 팔로 들어서도 안 됩니다. 림프부종이 오면 그게 평생 가요. 저는 왼쪽 팔을 수술해서 그쪽을 쓰면 안 돼요. 그런데 애견 미용 일을 하면서 팔을 써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애견 미용 일은 계속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는 동물을 좋아해 애견 미용 일을 선택했다. 그 분야 경력이 10년 넘는 베테랑이다. 하지만 암을 겪고 그동안 쌓은 경력이 무용지물이 됐다.

지난해에는 암 진단을 받고 그만뒀던 직장에도 다시 갔지만 상처를 받았다. “전 직장에서 알바해보라고 연락이 왔어요. 상담 예약하는 자리로요. 수술한 지 얼마 안 돼 팔을 쓸 수 없으니 다른 일을 하게 됐죠. 다시 예전 자리로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른 데 가서도 내 경력은 의미가 없겠다 싶고. 몸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단 걸 깨달았어요.”

그곳에서 마지막 근무하던 날이 기억에 또렷이 남았다. “사장님이 급한 마음에 주머니에서 현금 몇만원을 꺼내 봉투도 없이 주더군요. 이틀 일한 값을 그렇게 준 거예요. 제가 그때 알바비를 받지 말아야 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존심이 많이 상했어요. 이젠 계속 그런 대우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게 너무 속상 했죠.”

정신적으로도 힘든 날을 보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힘들어요. 항암으로 피부가 검어지고 외모도 달라지고. 상실감이 컸죠.” 호르몬약을 먹으니 갱년기 증세를 겪는다. “감정 기복이 심해요. 눈물 나는 일이 많고요.”

김씨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암 경험자 모임을 찾았다. 또봄에도 참여하고 암 경험자들의 음악 모임인 ‘룰루랄라합창단’에서 훌라댄서로 공연도 한다. “암 경험자라면 아무것도 못하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아요.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 이 사회에서 일할 기회를 얻지 못했을 뿐이에요.”

손기봉 제공

손기봉 제공

생각보다 20대 암환자가 많더군요

#28살 손기봉씨

손기봉씨는 국외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려고 신체검사를 받았다. 검사받다가 생식세포암이라는 희귀암을 발견했다. 그때가 2016년 12월이었다.

7월3일 오후 대구역에서 기자와 만난 그는 2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암이라는 질병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친구들은 대학에 다니거나 클럽에 다니며 한창 놀 때인데, 전 암 선고를 받은 거죠. 많이 힘들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고 쉰 적도 없었어요.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는 참이었는데, 그 계획이 무너졌어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신과 같은 젊은 암환자들을 알게 됐다. “생각보다 20대 암환자가 많더군요. 그렇게 알게 된 분들과 SNS로 연락했어요. 그때 또봄도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말이 통하고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생겼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다시 일해야 하는 그는 지난해 항암 치료를 받으며 직업훈련학교에 다녔다. 자동차 정비를 배웠다. “직업훈련 학교에 다닐 때 일하면 안 돼서 대출을 받았어요. 그걸 지금도 갚고 있어요.” 현재는 집 근처 자동차 정비 회사에서 일한다. 일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이 크다. 암 치료를 하느라 일할 수 없던 때 늘어난 대출금과 카드값을 갚아야 한다.

몸은 예전 같지 않다. 항암 부작용으로 폐결핵을 앓아 폐 일부를 잘랐다. 계단을 오르면 숨이 찬다. 청력 손상도 왔다. “일을 계속한 친구들을 보면 대리, 주임 정도 됐어요. 전 치료받는 동안 공백도 있고 경력도 쌓지 못했어요. 그냥 막내 사원이죠.”

손씨는 여전히 암이 재발하는 꿈을 꾼단다. “감정 기복이 심해요. 우울감은 기본으로 갖고 있는 것 같아요. 검사하러 가기 며칠 전에는 더 심해져요. 혹시 재발되진 않았을까 생각하다 기분이 처져요. 시간이 지나면 좀 괜찮아졌다가 다시 우울해지고, 반복돼요.”

그런 그가 가장 좋아한 것은 여행과 사진 찍기다. “암에 걸리기 전, 25살 때 스위스에 갔어요. 아직도 기억나요. 풍경이 무척 예뻤어요. 한 번 간 곳이지만 다시 가고 싶어요. 언젠가 다시 가고 싶은 곳이에요.”

허윤희 기자

허윤희 기자

급여 보존 등 지원제도 필요해요

#42살 류영민씨

한 가정의 가장인 류영민씨는 마흔 되던 해에 다발골수종(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도 제삼자에게 조혈모세포이식을 받아 완치됐다. 공기업에 다니는 그는 올해 3월 복직했다. “쉬었던 시간이 있으니 다시 나가면 회사에 잘 적응할까, 내 몸이 잘 견딜까, 재발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어요.” 복직한 그는 같은 부서에 자신과 같은 암을 겪었던 분이 있어 도움을 많이 받았단다. “그래도 아팠던 사람이 그런 사람 마음을 안다잖아요. 그분이 회사 적응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알려줬어요.”

암 때문에 휴직했던 그는 휴직하는 동안 사내 복지 혜택을 못 받는 현실이 안타깝단다. “저 같은 가장들은 일을 못하게 되면 경제적으로 아주 힘들어요. 급여 보존 등 지원제도가 필요해요.” 외벌이인 그는 하루라도 빨리 나아 일해야 할 처지였다.

복귀하기 위해 삶의 의지를 다졌던 그에게 가장 상처가 된 말도 있었다. “아픈 게 벼슬이냐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무척 아팠어요. 사람들은 내 행동 하나하나 아픈 것과 연결해 말해요. ‘아파서 예민한 거 아니냐’ ‘아파서 건망증이 심한 것 같다’라 고요.”

류씨는 요즘 동료들에게 ‘예전에는 까칠했는데 많이 유해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단다. “사고방식이 많이 바꿨어요. 돈만 생각하고 아등바등 사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 시간 투자도 하고요. 2년의 투병 세월이 제 인생 전환기였어요. 한 단계 올라가는 도움닫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그는 쉬는 동안 손뜨개도 배우고 미니어처 만들기도 해봤다. 마음의 안정도 오고 자기 손으로 창조적인 작업을 해보는 새로운 경험도 해봤단다.

류씨는 무엇보다 한순간 한순간 인생의 소중함을 느끼며 산다고 한다. 그 소중한 하루를 알차게 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앞날은 모르잖아요. 내일이 없을 수도 있으니.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보내자고 다짐해요.”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솔직히 말하면 취업이 될까요?

#33살 오주철씨

6월5일 세종 조치원읍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오주철씨. 그는 2015년 12월 고환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날이었다. 회사 건강검진을 받다 암이 발견됐다. 6개월 전 회사 정기검진에서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그는 생산직 노동자로 3조2교대로 일했다. 12시간 근무해야 하니 고된 일이었다. 그런데도 집안 형편이 안 좋아 다른 사람들 휴가 갈 때 대신 일했다. 휴가도 없이 일만 했다. 그러나 암 진단을 받았다고 하자 회사는 일주일 만에 사직을 권고했다. 치료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동료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사표를 냈다.

20대를 보내는 마지막 해에 암환자가 됐다. 항암 치료를 받자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누가 봐도 환자였다. 숨길 수 없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게 힘들었다. “마치 전염병 환자처럼 보는 것 같았어요. 그분들은 안 그렇다고 할지 몰라도 저에게는 그 벽이 보여요. 더는 그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아 가발을 샀어요.” 가발을 쓰니 사람들의 시선을 덜 받았다.

일을 못하는 그를 가족이 책임지고 있다. “한 살 어린 여동생이 생활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어요.” 그는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내가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암을 겪었던 사람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데 다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걱정돼요. 면접 볼 때 제가 암 투병했다고 솔직히 말하면 취업이 될까요? 아마도 탈락 요인이 될 것 같아요. 막상 직장에 들어간다 해도 눈치 보며 생활하는 것도 힘들 거예요. 그래서 집에서 혼자 하는 일을 찾고 있어요.” 독학으로 배운 동영상 편집일을 할 계획이다.

오씨는 암환자와 암 경험자를 보는 사회적 편견이 사라지는 날을 기다린다. “일반인이 암을 겪은 이들과 거리를 두지 않았으면 해요. 항상 전 그 거리감을 느꼈거든요. 날 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부담스러웠고요.” 그런 그가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이들이 생겼다. 또봄 회원들이다. 지난해 12월 용기를 내 서울에서 열린 오프라인 모임에도 참여했다. 오랜만에 한 장거리 외출이었다. “처음 만난 이들이지만 말이 통하고 공감대가 형성됐어요. 많이 의지가 돼요. 외롭지 않아요.”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