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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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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18층 목조건물을 가다

전세계 온실가스 감축 효과 주목…

공기 단축 등 경제성도 높아
등록 2018-10-20 07:49 수정 2020-05-02 19:29
지구촌 도시의 스카이라인에 조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고층 목조건물이 솟아오르고 있다. 목조건물은 지구온난화 시대에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줄일 수 있는 효과적인 대안으로 주목받는다. 목조건물 하나하나가 도시의 거대한 콘크리트 사이에 들어선 나무 숲이다. 목재빌딩 건축을 위한 내진 설계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앞서가는 캐나다와 일본의 목조 건축 현장을 9월 말과 10월 초에 둘러보았다. 캐나다 정부와 임산물협회의 지원을 받는 캐나다우드 한국사무소의 초청으로 두 나라를 현지 취재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캐나다 밴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18층 목조건물 모습. 지난해 6월 착공부터 8월 준공까지 65일 만에 시공이 마무리됐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캐나다 밴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18층 목조건물 모습. 지난해 6월 착공부터 8월 준공까지 65일 만에 시공이 마무리됐다.

9월28일, 캐나다 밴쿠버의 세계 최고층 목조건물을 찾았다. 2016년 완공한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의 18층 학생 기숙사 ‘브록커먼스’(Brock Commons)다. 실용적으로 멋을 부리지 않고 단순한 직선으로 쌓아올린 평범한 외관의 건축물이었다. 그래서인지 멀리서 보면 나무 느낌이 확 전해지지 않았다. 1층 구조물로 쓰인 목재를 눈앞에서 보고서야,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무 건물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건물 관리를 맡은 팀 헤론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 건물 하나 짓는 데 2233m3의 목재가 들어갔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건축했을 때보다 총 2432t의 탄소 배출 감축 효과를 낸 것이다. 자동차로는 551대가 1년 동안, 주택으로는 캐나다의 222가구에서 1년 동안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줄인 것과 맞먹는다. 이 정도 나무가 캐나다 산림에서 다시 자라는 데 불과 6분(캐나다 전체 산림 기준)밖에 걸리지 않는다.” 다른 지하자원과 달리, 목재는 스스로 생장하는 무한한 자원이다.

하루 1개층 거뜬히 올려
밴쿠버 외곽 지역에서 5층짜리 목조 공동주택을 짓고 있다.

밴쿠버 외곽 지역에서 5층짜리 목조 공동주택을 짓고 있다.

팀 헤론은 온실가스 감축 외에 공사 기간 단축이라는 목조건축의 또 다른 장점을 강조했다. “2년 전 6월6일 착공해 불과 65일 만에 18층 건물을 완공했다(시공 장면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GHtdnY_gnmE 참조). 인부 9명이 일주일에 2개층씩 올렸다.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벽체와 천장 등을 트럭으로 실어와 현장에서 조립하는 식으로 공사를 했기에 가능했다. 콘크리트를 굳히는 시간도 필요 없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미리 계산해, 크레인으로 목재를 끌어올려 제자리에 세우는 작업 오차도 3mm 이내로 최소화했다. 헤론은 “그때는 처음이라 미숙한 점이 많았지만, 지금 시공 능력으론 하루 1개층을 거뜬히 올릴 수 있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세계 최고층 목조건물이라지만 100% 순수한 목조건축물은 아니었다. 콘크리트로 시공한 1층과 2개의 엘리베이터 칸이 큰 무게를 떠받치는 기둥 구실을 하는 하이브리드형이었다. 아직은 고층 목조건물 건축이 초기 단계여서, 건축법상 제약이 남아 있다. 캐나다에서는 두께와 폭 2×4인치(38×89mm)의 얇고 가벼운 규격 목재를 기본으로 하는 대다수 경량목구조 건축을 아직은 6층까지만 허용하고 있다. 한옥처럼 굵은 기둥과 보로 하중을 받치는 소수의 중목(125×125mm 이상의 굵고 무거운 나무)구조 건축에 대해서는 2020년부터 12층까지 허용할 계획이다.

도시마다 고층 목조건물 실험

밴쿠버의 브록커먼스가 더이상 아주 특별하고 예외적인 실험은 아니다. 이미 캐나다 다른 도시와 영국, 미국, 노르웨이,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 건축된 10층 이상 목조건물이 17개에 이른다. 핀란드와 스웨덴, 스페인, 스코틀랜드에는 7~8층 목조건물이 세워졌다.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24층 ‘호호 비엔나’ 빌딩의 완공이 가까워지고 있다. 올해 안에 새로운 세계 최고층 목조 건물로 등극할 예정이다. 영국, 노르웨이, 뉴질랜드처럼 목조건물의 높이 제한을 아예 없애는 나라들도 생겨나고 있다.

지진이 많이 나는 일본에선 지난 2월 목조건축업체인 스미토모린교가 2041년까지 70층 목조건물을 건축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부 구조를 철강으로 보강하고, 목재를 90% 쓴다는 청사진이다. 기존 일본 최고층 빌딩은 2014년 완공한 오사카의 60층 ‘아베노하루카스’다. 목조건물 내진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일본에선 고층보다는 5~6층 규모의 중층 목조건물이 생겨나고 있다.

아주 간단한 산식으로, 1m3 콘크리트를 1m3 목재로 대체하면 1t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세계의 도시들이 너나없이 대형 목조건물 건축에 나서는 가장 큰 이유는, 이처럼 목재가 일석삼조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먼저, 어떤 건축자재보다 목재를 생산하는 데 에너지가 가장 적게 들어간다. 알루미늄은 목재의 790배, 철강은 190배, 콘크리트는 3.5배의 에너지가 소비된다. 철근과 콘크리트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온실가스가 전체 배출량의 3~5%일 정도로 막대하다. 게다가 산림에서 자라는 목재는 베어 쓴다고 해서 없어지거나 줄어드는 게 아니다. 나무를 다시 심어, 영구히 재생산할 수 있다.

둘째, 목재는 탄소의 저장고다. 죽은 나무의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고 나무 안에 가장 오래 저장하는 안정적인 방법이 목재로 쓰는 것이다. 나무가 죽어 썩거나 탈 때는 탄소를 다시 공기 중으로 내뿜기 때문이다. 또, 나무는 다 자라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능력도 급속도로 떨어진다. 50년 이상 된 나무는 베어내 목재로 쓰고, 왕성하게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나무를 새로 심는 것이 지구를 살리는 최선의 길이다.

죽어서도 탄소 저장하는 ‘도심 허파’
밴쿠버 외곽의 트리니티웨스턴대학에서 지난 9월 완공한 5층짜리 목조 기숙사 모습.

밴쿠버 외곽의 트리니티웨스턴대학에서 지난 9월 완공한 5층짜리 목조 기숙사 모습.

셋째, 목재는 재사용과 재활용을 할 수 있다. 제대로 시공한 목조건물의 주요 자재는 100년이 지난 뒤에도 다시 사용할 수 있다. 그대로 쓰지 못할땐, 작게 잘라서 얼마든지 재활용할 수 있다.

그래서 2011년 유엔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에서는 목재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 효과를 국가탄소계정에 집어넣은 바 있다. 이동흡 한국목조건축협회 부회장은 “선진국에선 전체 에너지 소비의 40%가 건물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해, 대규모 목조건물 건축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목재는 많이 쓸수록 온실가스 감축에 좋다는 게 정설이고, 목재를 더 많이 쓰고 저장할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고층 빌딩 건축이다. 일본에선 목재의 탄소 저장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200년 이상 살 수 있는 5세대형 주택을 짓는 움직임이 생기고 있다.”

9월27일 방문한 캐나다 밴쿠버 근교의 트리니티웨스턴대학 사람들은 목조건물 예찬론자가 돼있었다. 대학 쪽은 올해 5월 목조 기숙사 공사를 시작해 가을 학기인 9월에 220명의 학생을 5층 건물에 입주시키는 데 성공했다. 예산 초과나 공사 기간 지연 없이 단 넉달 만에 계획된 공사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이 대학의 셰릴 웰핑 행정실장은 “단순 경비만 따지면 다른 자재로 지을 때보다 조금 더 들어갔지만, 공사 기간 단축으로 한두 학기 먼저 학생들을 받을 수 있었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경제적으로도 대성공”이라며 “공장에서 대부분 공사를 마무리한 집채를 트럭으로 옮겨와 현장에서 옆으로 맞추고 위로 세우는, 이른바 ‘모듈러’ 방식의 목조건축이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인테리어뿐 아니라 냉장고와 소파, 심지어 싱크대 서랍에 수저까지 완비한 조립용 집채를 공장에서 미리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기숙사·노인요양시설로 인기

그는 또 “여기는 환태평양 지진대여서 내진 설계 기준이 엄격한데, 우리 기숙사에서는 바로 옆 철로로 기차가 지나가는 소음과 진동도 느껴지지 않는다”며 “앞으로 60년 동안 입주 학생과 학부모들한테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캐나다에서 기숙사 목조건물이 두루 인기를 얻고 있다면, 일본에서는 목조로 짓는 노인요양시설이 많이 생겨나고 있었다. 벌써 200곳이 넘는다고 했다. 두 건축물의 공통점은 비슷한 공간 배치가 이어져, 목재를 이용한 조립건축 방식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10월5일 일본 도쿄 외곽의 깔끔하게 단장된 노인요양시설 신세이카이를 찾았다. 시설 대표인 노부히로 이시바시는 “겨울에는 조금만 난방해도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해서 노인들한테 목조건물이 참 좋다”면서 “예전엔 목조건물의 틈이 벌어져 찬바람이 잘 들어왔는데, 지금은 시공 기술이 좋아져서 단점이 별로 없고 온실가스 감축에도 기여한다”고 말했다. 캐나다우드 일본사무소의 숀 롤러 대표는 “목조건물의 장점이 알려지면서, 최근 일본에선 신축하는 노인요양시설의 절반가량이 목조건물이다”라고 전했다.

외국 견줘 열악한 국내 현실

캐나다나 일본과 달리, 우리의 목조건축 현실은 매우 열악하다. 연간 신축 단독주택의 15%에 못 미치는 1만3천~1만4천 채의 목조주택을 짓는다. 사정이 많이 다르지만, 미국과 캐나다의 90%, 일본의 45%와 비교되지 않는다. 다층 목조건물은, 국립산림과학원이 2016년 경기도 수원에 지은 4층 건물과 지금 경북 영주에서 건축 중인 5층 건물 말고는 내세울게 없다. 주요 목재제품도 거의 수입에 의존한다. ‘동네 목수’가 시공하는 식이어서, 부실 시공이 많고 기술 표준화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한목조건축협회 쪽은 “우리 조림 역사가 40년에 이르러 이제는 목재로 쓸 만한 굵은 나무가 어느정도 우거지고 있다”면서 “목재 생산부터 제작, 시공에 이르기까지 목조건축을 활성화할 수 있는 종합적인 방안을 정부가 나서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밴쿠버·에드먼턴(캐나다)·도쿄(일본)=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70년 풍파에 벽돌·콘크리트 부서져도 목재는 재사용


200년 장수하는 목조건축


10월2일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시 변두리의 웨스트마운트 교회를 찾았다. 교회가 가진 땅을 1달러에 40년 동안 쓸 수 있도록 내놓아, 이라크·수단·시리아·미얀마에서 온 16가구 난민을 위한 2층 목조 공동주택을 지었다. 1·2층에 각 8채씩, 대가족이 살 수 있는 방 4개짜리 집을 지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공동주택과 이어진 교회 건물이었다. 1950년에 지은 건물을 헐고 다시 지었는데, 68년 전의 기존 목재를 모두 재사용했다. 예배당 천장을 덮은 아름다운 목재와 이를 떠받치는 굵은 구조목, 현관에 돌출된 나무 캐노피 등 하나도 버릴 목재가 없었다.
교회 재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한 피터 아메롱언은 “건물은 낡아 벽돌과 콘크리트가 부서지는데 70년이 다 된 목재는 새것처럼 아주 깨끗했다”면서 “잘 해체한 뒤에 지붕 사이에 흡음재를 넣고 목재를 다시 세우니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로 다시 태어났다”고 말했다.
웨스트마운트 교회가 목재 재사용의 생생한 사례라면, 처음부터 재사용을 염두에 두고 시공하는 목조 건물도 최근 생겨나고 있었다. 2014년에 완공한 아름다운 3층 목조건축물 ‘모자익센터’는 상업용 건물로는 에드먼턴 최초의 에너지 제로(0) 빌딩이었다. 건물 안내를 맡은 크리스티나는 “이 건물에 들어간 목재의 97%는 나중에 해체해서 재사용될 수 있도록 시공했다. 캐나다 건물은 통상 수명이 50년인데 우리는 200년으로 지었다”고 했다. ‘모자익센터’의 건축에 들어간 558㎥ 목재는 438t의 막대한 탄소를 저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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