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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돌려준 주5일 저녁 찾아줄 주52시간

주52시간제는 주5일제 이어 노동시간 단축 위한 2단계 방안…

한국 사회 ‘워라밸’ 가져올 수 있을까
등록 2018-07-10 07:38 수정 2020-05-15 11:30
2004년 7월1일 종사자 1 천명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주5일제가 시행됐다. 연합뉴스

2004년 7월1일 종사자 1 천명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주5일제가 시행됐다. 연합뉴스

“1만불에서 아직도 8년째 헤매고 있는 대한민국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뱁새가 황새를 쫓아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지고 말 것입니다. 의원님 여러분의 현명한 판단, 국가를 위한 현명한 판단을 기다립니다.”

“이 법안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가 아니라 ○○○○ 도입을 위한 ○○○○ 법안입니다. 목적이 실종되고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린 이와 같은 법률안은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반대 토론을 마치겠습니다.”

2003년 8월29일 국회 본회의에서 ○○○○를 도입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처리 표결을 앞두고 진행된 찬반 토론 중 일부 의원들의 발언이다.

○○○○은 무엇일까? ○○○○은 지금은 익숙한 ‘주5일제’다. 7월1일 직원 300명 이상 사업장부터 시행된 ‘주52시간 근무제’처럼 2004년 7월1일 시행된 주5일제 역시 노동계와 재계가 큰 방향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각각 강한 우려를 표명하며 시행에 진통을 겪었다. 당시 노동계는 “삶의 질 개선이 임금 하락으로 이어지면 안 된다”고 걱정했고, “기업은 생산성 하락과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다. 한국 경제가 휘청인다”고 울상을 지었다. “중소기업이 받는 충격이 크다”는 걱정 역시 14년 전에 나왔다.

14년 전 주5일제 도입의 데자뷔

하지만 주5일제는 현재 보편적인 제도로 정착해 직장인들에게 주말을 찾아줬다. 주5일제가 주말을 돌려줬다면 주52시간 근무제는 직장인들에게 저녁을 찾아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물론 제도가 연착륙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은 남아 있다. 주52시간 근무제도 주5일제처럼 한국 사회의 풍경을 바꾸고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가져올 수 있을까.

사실 주52시간 근무제는 주5일제 도입 때 풀었어야 할 숙제를 14년 만에 푼 것이다. 2004년 이전에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64시간이었다. 법정 근로시간 44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 일요일 휴일근로 8시간을 더한 수치다. 주5일제 도입은 법정 근로시간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주5일제 도입으로 한국 노동자들의 주당 최대 노동시간은 68시간이 됐다. 4시간을 줄였는데 이전보다 4시간이 늘어난 것이다. 이런 기막힌 일은 왜 일어났을까? 이를 이해하려면 “일주일이 며칠이냐”는 ‘철학적(?) 질문’을 던져야 한다. 모두 ‘일주일은 7일’이라고 답하겠지만 고용노동부만 ‘일주일은 5일’이라고 답했다. 이는 지금까지 ‘과로 사회’가 유지되는 바탕이 됐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행정해석(행정기관이 독자적으로 법을 해석하는 것)을 통해 일주일은 7일이 아니라 평일 5일이라는 견해를 유지해왔다. 한국의 노동시간은 근로시간(주 40시간)에 노사 합의에 따라 12시간 이하로 제한되는 연장근로 시간, 휴일근로 시간을 합쳐 산정한다. 정부는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뒤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와 별개로 해석해왔다. 즉, ‘평일은 5일’이라는 해석에 따라 토·일요일 휴일근로 16시간이 새로 추가됐다. ‘주당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토·일 휴일근로 16시간=68시간’이라는 ‘기묘한 계산식’이 탄생한 배경이다. 노동시간 단축이 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경영계의 주장을 정부가 의식하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국회가 지난 2월28일 처리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일주일에 토·일요일이 포함된다”는 내용을 명문화해 토·일요일 최대 16시간 초과근무를 못하게 만들어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바로잡은 것이다.

주52시간 근무제 도입은 주5일제 도입 논의 초기 “연간 노동시간을 2천 시간 밑으로 줄이자”는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을 20년 동안 더디게 풀어온 결과물이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노동시간 상위권 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한 과정에 주52시간 근무제가 놓인 것이다. 주5일제 논의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뒤 1998년 노·사·정이 맺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올랐다. IMF 외환위기로 실업률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노동계가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제 등을 논의하는 대신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요구한 게 배경이었다. 2000년 5월 노·사·정 위원회 안에 근로시간단축특별위원회가 구성됐고, 노·사·정은 2000년 10월23일 “현재 연간 2497시간에 달하는 근로자의 일하는 시간을 근로시간 단축과 임금·휴일·휴가제도 개선을 통해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2천 시간 이하로 줄인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근로시간 단축 관련 합의문’에 서명했다. 당시 OECD 회원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이 약 1800시간인 데 견줘 한국의 노동시간이 너무나 과도하다는 데 노·사·정이 공감대를 이루었다.

IMF 이후 수면 위 오른 주5일제

하지만 휴일의 개념을 재정립하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라 노동계와 경영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3년 넘게 논의가 진행됐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삭감을 수용할 수 없다는 노동계와 임금 삭감을 전제로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경영계의 입장이 충돌했다. 연·월차 휴가 일수 조정, 주5일제 시행 시기 등을 두고도 진통이 있었다. 사회적으로는 주5일제 도입이 실제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늘릴 것이냐는 전망을 두고 의견이 엇갈렸다.

결국 국회는 노사가 합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2003년 8월29일, 당시까지의 ‘절충안’이 반영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노동자의 임금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되, 기업들의 충격을 최소화한다는 취지로 기업 규모별로 주5일제 적용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주5일제가 일찍부터 모든 기업에서 시행됐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당시 국회에서 처리한 법안에 따라 주5일제는 2004년 7월1일 직원 1천 명 이상 사업장을 시작으로 2011년 5명 이상 20명 미만 사업장까지 여섯 단계에 걸쳐 적용됐다.

주5일제, 우려와 달리 연착륙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7월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 백화점에 변경된 영업시간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7월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한 백화점에 변경된 영업시간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중소기업 노동자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계속 제기됐지만 주5일제는 시행 이전의 우려와 달리 대체로 연착륙했다는 평가가 따른다. 2004년 주5일제가 시행되고 1년 뒤 나온 현대경제연구원의 2005년 7월 보고서는 “주5일제를 적용받은 근로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2003년 50.0시간에서 2004년 46.1시간으로 평균 3.9시간이 감소됐다” “노동시간 및 생활에 대한 만족도를 소폭 상승시켰다. 자기계발, 여행 등 해당 근로자들의 실생활에도 변화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의 ‘주40시간 근무제가 노동자 여가생활에 미친 영향’(2011년)이란 논문을 보면, “주40시간 근무제(주5일제)는 실근로시간을 11.3% 단축시키고, 장시간 근로 확률을 1/5로 축소시킨다. 생활에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로는 10명 중 7명이 ‘가족과 함께하는 여가시간 증가’(52.2%),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 증가’(15.7%) 등 긍정적 응답을 했다”고 분석했다.

물론 ‘일주일은 5일’이라는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에 기반한 주5일제의 한계는 명확했다. 노동시간이 애초 기대만큼 크게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휴일근로를 포함한 장시간 노동으로 임금을 높이는 시스템에 적응해야 했다. 김유선 이사장은 ‘주52시간 상한제의 사회경제적 효과’라는 글에서 “실노동시간은 주40시간 근무제가 본격화된 2000년대에 다시 단축되기 시작했지만, 법정 노동시간 단축 효과가 소진된 2013년 이후 더 이상 단축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2016년 국내 취업자 1인당 연평균 노동시간은 2069시간으로 멕시코(2255시간)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OECD 회원 35개국 평균(1764시간)보다 305시간 많았다.

결국 주52시간 근무제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2단계 방안’이다. 2010년 6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2020년까지 전 산업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을 1800시간으로 줄이기 위해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19대 국회에선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주52시간제 법안을 발의했고, 지난해 대선에서 각 후보들은 ‘1800시간 시대’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칼퇴근법’ 등의 아이디어도 나왔다.

불 꺼진 판교 ‘오징어 배’

주52시간 근무제 역시 주5일제 도입처럼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감소,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 증가 등의 문제가 남아 있다. 5~49명 사업장까지 적용되는 2021년 7월까지 노동자 간의 노동시간 격차 문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7월1일 300명 이상 사업장에서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 뒤 기업과 노동자들의 풍경은 눈에 띄게 바뀌고 있다. 이미 법 시행을 앞두고 주52시간 근무에 대비해온 기업들은 퇴근 시간이 되면 컴퓨터가 저절로 꺼지는 ‘PC오프제’,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정하는 자율출퇴근제 등 유연근무제를 올해 초부터 도입해왔다. 꺼지지 않는 빌딩 불빛 때문에 ‘오징어 배’란 불명예를 얻었던 경기도 판교 테크노밸리도 야근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 이는 자연스레 맞벌이 부부의 육아 부담 감소, 직장인들의 자기계발·여가활용 등으로 연결되며 ‘워라밸’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저녁이 있는 삶’이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현실의 달콤할 열매가 될지 한국 사회의 노동자들이 지켜보는 상황이다. 참고로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6월26~28일 전국 성인 1001명에게 한 여론조사(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에서 주52시간 근무제에 대한 긍정평가는 49%로 부정평가(32%)를 앞섰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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