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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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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배우 울리는 tvN의 ‘슬기로운 시간꺾기’

드라마 제국 tvN의 반칙… 조·단역 배우들 ‘시간꺾기’로 10~40% 출연료 덜 지급

취재 나서자 CJ E&M ‘단역 출연자 권리 위한 개선 방안’ 마련… 출연료 현실화할까
등록 2018-01-30 08:28 수정 2020-05-02 19:28
tvN 누리집 갈무리

tvN 누리집 갈무리

tvN과 OCN 등 총 16개 채널을 운영하는 CJ E&M은 드라마 분야에서 가파르게 성장하며 지상파 방송사를 위협하고 있다. 광고 매출은 이미 지상파를 따라잡았고 2017년 1~3분기 영업이익은 무려 597억원에 이른다. 이런 막대한 영업이익의 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 은 CJ E&M이란 거대 방송사와 이곳에 드라마를 납품하는 외주제작사들이 을의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조연과 단역 연기자의 출연료를 ‘시간꺾기’ 방식으로 깎아 지급해왔음을 확인했다.

막대한 영업이익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

은 이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CJ E&M이 그동안 방영한 여러 드라마의 실제 편성시간과 조·단역에게 지급된 출연료를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CJ E&M 드라마에 출연한 조·단역들이 방송계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기준보다 10~40% 출연료를 덜 받아왔음을 알 수 있었다.

출연료 ‘삭감 지급’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을까.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의 출연료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정해진다. 먼저 주연과 조연급 배우 일부는 ‘회당 ○○○만원’으로 정해진 출연 계약을 맺는다. 반면 일부 조연급 배우와 단역은 편성시간(방영시간+광고시간)을 기준으로 출연료를 받는다. 노동시간이 아닌 편성시간 기준으로 출연료를 정산받는다는 점이 일반인에겐 낯설지만 방송업계의 오랜 관행이다. 주우 한국방송연기자노조(이하 한연노) 사무국장은 “배우들의 경우 촬영시간보다 대기시간이 훨씬 길고 정확한 노동시간을 계산하기 어려워 수십 년 전부터 이런 기준으로 출연료를 받아왔다”고 말했다.

방송사는 회당 출연료 계약을 맺지 않는 조·단역들의 출연료 정산을 위해 나름의 기준표를 만들어 적용해왔다. 방송사들은 연기자의 등급을 6~18등급(1~5등급은 아역)으로 나눈 뒤, 각각의 편성시간에 따라 지급해야 하는 회당 출연료를 책정해두고 있다. 등급은 연기 경력과 인지도 등을 바탕으로 방송사와 외주제작사가 연기자들과 협의해 정한다. 등급 연기자들은 자신이 몇 등급에 해당하는지는 알지만, 정확한 편성시간은 알지 못한다. 대부분의 출연 계약이 문서가 아닌 구두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지상파 3사는 한연노와 2011~2012년 임금협상을 벌여 정한 출연료 기준표를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한연노와 임금협상을 하지 않은 CJ E&M 역시 지상파 방송이 따르는 기준표를 준용해왔다.

2014년 tvN에서 방영돼 큰 인기를 모은 드라마 의 사례를 보자. 에 출연한 조·단역 연기자들의 증언을 모아보면, 이들은 업계 관행에 따라 ‘KBS 탤런트 및 코미디언 출연료 기준표’(이하 기준표)를 토대로 출연료를 받았다. 기준표를 보면 방송사들은 드라마의 종류를 ‘일일연속극’ ‘주간·주말연속극’ ‘미니시리즈·특집극’ 등으로 나누고, 연기자가 이 드라마에 출연할 때 자신이 속한 등급과 편성시간에 따라 얼마의 출연료를 받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해두었다. 이때 편성시간은 앞서 소개했듯, 드라마의 순 방영시간에 광고시간을 더한 것이다. 취재에 응한 연기자들은 “출연료가 지급되기 전까지 정확한 출연료를 알지 못한다. 추후 계좌에 찍힌 액수를 보고 방송사가 기준으로 삼은 편성시간이 얼마인지 추정해볼 뿐”이라고 말했다.

편성시간과 방영시간 차이 악용

이 지점에서 조·단역들의 출연료를 깎는 ‘시간꺾기’가 나온다. 2014년 10월부터 12월까지 20부작 방영된 의 편성시간은 평균 84분이었다. 기준표에 따라 연기 경력이 15년 정도 되는 12등급 조·단역 연기자는 회당 139만600원(90분 기준)을 받아야 했지만, 실제 지급된 액수는 60분 분량의 출연료 92만7070원이었다. ‘시간꺾기’로 방송사 또는 제작사가 회당 46만3530원의 출연료를 주지 않은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CJ E&M 드라마는 최근 4~5년간 조·단역 연기자의 출연료를 10~40%씩 덜 지급해왔다.

다른 드라마들도 마찬가지다. 2014년 이후 방영된 CJ E&M의 드라마 상당수가 편성시간이 실제 지급된 출연료 기준보다 10~15분가량 길었다. 예를 들어 2016년 방송된 와 2017년 방송된 는 60분 기준으로 출연료가 지급됐지만, 평균 편성시간은 각각 74분과 75분이었다. 와 은 70분 기준으로 지급됐지만, 편성시간은 각각 86분과 80분이었다. 은 90분 기준으로 지급됐지만, 실제 편성시간은 102분이었다. 도 비슷한 상황이다.

CJ E&M은 편성시간을 따로 공개하지 않아 드라마의 순 방영시간에 광고시간 10분을 일괄적으로 더해 추정했다. 그렇기에 실제 편성시간과는 2~3분 정도 오차가 생길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CJ E&M 또는 외주제작사가 조·단역 연기자에게 덜 지급한 출연료의 총액은 해마다 수억~수십억원일 것으로 추정된다.

CJ E&M은 이같은 의 지적에 편성시간이 아닌 방영시간을 기준으로 출연료를 지급해도 위법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CJ E&M 관계자는 “편성시간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지상파에서 만든 기준(광고시간 포함 계산)대로 출연료를 지급해야 하는지 의문이 있다”고 말했다. 광고시간을 빼고 드라마의 순 방영시간을 기준으로 출연료를 계산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는 얘기다.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자료를 보면, 편성시간을 계산할 때 광고시간을 포함하도록 했다. 방통위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16 알기 쉬운 방송광고 모니터링 기준’ 자료에서 편성시간을 “‘해당 방송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고지(NEXT)’가 시작되는 시간부터 ‘다음 방송프로그램을 소개하는 고지(NEXT)’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시간으로 광고시간 등을 포함”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CJ E&M은 취재가 이어지자 순 방영시간을 기준으로 출연료를 지급해온 방송사의 행태가 업계의 오랜 관행과 마찰을 일으키고 있음을 인정했다. 방송사는 이후 자사 드라마에 출연한 조·단역 연기자의 출연료 지급 현황을 파악했고, 1월24일 이들의 처우 개선안이 담긴 ‘단역 출연자 권리를 위한 개선 방안’을 만들었다.

“캐스팅디렉터 갑질도 근절하겠다”

이 입수한 개선 방안에는 크게 다섯 가지 내용이 포함돼 있다(표 참조). 우선 순 방영시간이 70분인 드라마를 만들 때 지상파 3사가 편성시간 80분 기준으로 주는 출연료보다 더 높은 출연료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또 외주제작사나 캐스팅디렉터가 단역 출연자와 계약할 때 서면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하게 하고, 이 과정에서 연기자들이 감당해야 하는 수수료를 낮추도록 했다.

‘캐스팅디렉터’는 드라마를 만들 때 조·단역 연기자를 제작사와 연결해주는 이를 말한다. 방송업계 일각에선 생계 유지와 연기 인생을 이어가기 위해 드라마 캐스팅을 절실히 원하는 조·단역 연기자에게 캐스팅디렉터가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하며 ‘갑질’을 한다는 불만을 토로해왔다. 또 그동안 구두로 이뤄졌던 출연 계약을 반드시 서면으로 하게 한 것도 조·단역 연기자들의 오랜 요구를 받아들인 긍정적인 안으로 평가된다.

CJ E&M 관계자는 “그동안 ‘관행’이라 여겨왔던 부분 가운데 변화가 필요한 부분을 끊임없이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번에는 드라마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단역배우들의 처우 개선과 권리 보호를 위해 상생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 한다”고 밝혔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한국방송연기자노조 주우 사무국장 인터뷰


“표준계약서 쓰도록 정부가 압박해야”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주우(46·사진) 한국방송연기자노조 사무국장은 20년차 연기자다. CJ E&M 드라마에도 조·단역으로 가끔 출연한다. tvN 에선 유괴당한 아이의 아버지 역할로 3회에 걸쳐 출연했고, tvN 에선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 역할로 1회 출연했다. 주 사무국장은 “CJ E&M 드라마에 출연하면 지상파보다 노동시간이 더 긴데 출연료는 비슷하게 받는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표준계약서를 쓰도록 정부가 압박해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CJ E&M이 ‘시간꺾기’로 드라마에 출연하는 조·단역 연기자에게 지상파 드라마보다 10~15분 분량의 출연료를 덜 지급해왔음이 드러났다.
조·단역 연기자 중 생계가 어려운 분이 많다. 2015년 배우·탤런트로 일해 돈을 벌었다고 국세청에 신고한 사람 기운데 상위 10%를 뺀 90%(1만3881명)는 연평균 수입이 700만원에 불과했다. 한 달로 계산하면 58만원이다. 방송만 해서는 먹고살기 어려우니 연극도 하고, 다른 일도 한다. 이들에게 10~15분 분량의 출연료는 절실하다. (12등급 연기자를 기준으로 한 회에 30만원 정도 차이가 나니) 생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금액이다.
CJ E&M 드라마는 편성시간이 길다. 방송 후반부(16부작 기준 9~16부)에는 일주일에 2회분을 촬영해 바로 그 주에 내보내는 구조라, 시간적 압박이 더 크게 느껴진다. 70분 방송을 만들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데 100분 방송은 어떻겠나. 그러려면 연기자와 스태프를 24시간 내내 돌려야 한다. 휴식 시간을 제대로 주지 못하기에 사고 확률이 커진다.
드라마의 조·단역 출연자 비율이 얼마나 되나.
보통 드라마 전체 회차에 나오는 고정출연자를 주·조연급이라 하고 일부 회차만 나오는 사람을 조·단역급이라 한다. 명확한 분류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 조·단역급 비율은 드라마별로 다르다. 연속극에선 낮고, 수사물에선 높다. 같은 수사물에선 주·조연급이 10여 명인 데 비해 조·단역급이 수백 명이었다. 매회 새로운 출연자만 10~20명씩 나왔다.
시간꺾기 외 다른 문제는?
캐스팅디렉터 문제도 심각하다. 조·단역을 제작사에 소개해주는 역할인데, 수수료를 30%나 떼간다. 기본출연료만 그런 게 아니라 야외·철야 수당, 교통비, 숙박비, 식대 등에서도 30%를 떼간다. 돈을 받아놓고 1년 동안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들에게 잘못 보이면 출연을 못하니까 여성 배우들은 성추행을 당하고도 말을 못한다.
근본적으로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나.
기본적으로는 방송사에서 제작비를 명확히 계산해 제작사에 줘야 한다. 현재 제작사는 (제작비를 적게 받아) 손해를 고려하고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돈을 아끼기 위해 스태프나 조·단역 연기자 임금을 깎는 것이다. 방송사·제작사가 표준계약서를 쓰고 일을 시키도록 정부가 나서서 압박하고, 안 지켰을 경우 처벌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방송출연 표준계약서는 2013년 7월30일 문화체육관광부 주재로 지상파 3사와 한국방송연기자노조 등이 참여해 만든 계약서다. 2년여의 노력 끝에 만들어졌지만 현재 유명무실한 상태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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