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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토론, 먼저 해봤습니다

<한겨레21>·공공의창 공동 주최 ‘미래세대가 말하는 개헌’ 원탁토론회

여야 3개 정당 청년 당원들, “4년 중임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해야”
등록 2017-11-10 01:45 수정 2020-05-02 19:28
지난 10월28일 서울시 NPO지원센터에서 <한겨레21>과 ‘공공의창’이 함께 주최한 ‘미래세대가 말하는 개헌’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정의당 청년 당원 49명이 8개 토론 테이블에 골고루 나눠 앉아 한국의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김봉규 선임기자

지난 10월28일 서울시 NPO지원센터에서 <한겨레21>과 ‘공공의창’이 함께 주최한 ‘미래세대가 말하는 개헌’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정의당 청년 당원 49명이 8개 토론 테이블에 골고루 나눠 앉아 한국의 권력구조와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김봉규 선임기자

“개헌은 내용에 있어서도, 과정에 있어서도 국민의 참여와 의사가 반영되는 국민 개헌이어야 합니다. …개헌과 함께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선거제도의 개편도 여야 합의로 이뤄지기를 희망합니다.”

지난 11월1일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과 선거제도의 개편 필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과정에 있어서의 국민 참여”였다. 정치권 안에서만 협의할 것이 아니라 개헌의 논의와 쟁점 사항을 온 국민이 함께 공유하자는 뜻이다.

청년 당원들 목소리를 듣다
청년 당원들이 토론 테이블에 앉아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있다(왼쪽). 지난 11월1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청년 당원들이 토론 테이블에 앉아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있다(왼쪽). 지난 11월1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의 필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서도 이미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10월31일 국회에서는 ‘개헌의 아킬레스건 정부 형태 - 국민개헌 공론화위원회가 대안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에서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를 결정한 국민 공론화위원회처럼 ‘국민개헌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이 참여하는 개헌 작업을 실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개헌 주체는 정치인이 아닌 ‘시민’이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과 ‘공공의창’은 이 흐름에 발맞춰 ‘미래세대가 말하는 개헌’이라는 주제로 각 당의 청년 당원을 모아 권력구조 개편과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묻는 ‘숙의형 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공공의창은 리얼미터·리서치뷰·우리리서치·인텔리서치·조원씨앤아이·코리아스픽스·타임리서치·휴먼리서치·한국사회여론연구소·피플네트웍스·서던포스트·신종화·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등 여론조사, 원탁회의, 데이터분석 전문가들이 모인 비영리공공조사네트워크다. 이들은 ‘우리 사회를 투명하게 반영할 수 있는 조사, 공공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공동체에 보탬이 되는 조사를 해야 한다’는 데에 뜻을 모으고 있다. 정부나 기업의 의뢰를 받지 않고 매달 ‘의뢰자 없는’ 공공조사를 실시해 발표한다. 이번 토론회는 원탁토론회 전문 기관인 코리아스픽스가 진행을 맡았다.

토론회에는 자유한국당(19명), 더불어민주당(18명), 정의당(12명) 등 3개 정당에서 총 49명의 정당 청년 당원들이 참석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에도 참가 요청을 했지만, 불참 의사를 밝혀왔다. 이번 ‘숙의형 토론회’의 참여 대상을 원내 5개 정당 청년 당원으로 정한 것은 이들이 한국 정치의 미래를 이끌어갈 세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이 정당과 일반 시민의 중간에 있어 각 정당의 이해관계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는 점도 고려했다.

토론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토론자 49명이 5~6명씩 8개 테이블에 나눠 앉아 한국에 적합한 권력구조 방안과 선거제도 개혁 방안에 대해 1차 토론을 벌였다. 토론 중간에 자리를 뜬 참석자와 늦게 도착한 이를 합한 수다. 이후 여기서 나온 의견을 실시간 분석해 의제화한 뒤 다시 의견을 주고받는 2차 상호 토론에 임했다. 이 과정에서 토론 전, 토론 중간, 토론 이후 참석자들의 의견을 각각 집계해 토론을 거치며 참가자들이 얼마나 의견을 바꿨는지도 확인했다. 이병덕 코리아스픽스 대표는 “(개헌에 대한 정당 간의) 표면적 갈등이 아니라, 이를 둘러싼 (개인의) 잠재적 욕구를 얘기할 수 있도록 규칙을 안내했다. 이 과정에서 각각의 쟁점과 관련된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때문에 이들이 (정치권의) 중심 구성원은 아니지만 나라의 주권자로서 토론회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토론 결과 청년 당원들의 55%(26명)가 현재 한국 상황에서 ‘대통령 4년 중임제’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다음 선택한 것은 의원내각제(19%·9명)였다. 현행 5년 단임제 유지는 9%(4명),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는 4%(2명)에 불과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토론 전, 토론 중, 토론 이후 조사 결과의 변화다. 토론 전 조사에선 71%가 4년 중임제를 선택했지만, 토론 과정에서 이 수치는 64%로 줄었고, 토론 이후 다시 10%포인트 가까이 줄어 55%만 4년 중임제를 선택했다. 반면 의원내각제는 토론 전 조사에서 10%만 선택했으나 토론 과정에서 17%, 토론 이후 19%까지 늘었다. 압도적으로 4년 중임제를 선택했던 청년 당원들이 토론을 거치며 일부가 의원내각제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이 흐름은 참석자들이 내놓은 현재의 한국 권력구조 평가에서도 드러난다.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은 이는 토론 중 조사에서 15%(7명)였다. 그러나 토론을 끝낸 뒤 이 의견을 고수한 이는 1명(2%)뿐이었다. 반대로 ‘대통령의 권한 집중이 심각하다’는 평가는 토론 중 19%(9명)에서 토론 뒤 28%(13명)로 늘었다. ‘정치의 중심은 정당이므로 의원들이 국정을 수행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토론 중 11%(5명)에서 토론 뒤 20%(9명)로 늘었다. 대통령의 권한이 더욱 커질 수 있는 4년 중임제보다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의회가 중심이 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흐름이 형성된 것이다.

‘4년 중임제 필요’ 토론 전후 71%→55%

이날 토론 참석자들의 의견을 모아보면, 이들은 ‘정책 연속성’을 위해 4년 연임제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제도가 가장 좋다기보다 한국의 정치 현실을 고려할 때 현실적인 ‘차선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의원내각제가 필요하지만 낮은 한국의 정당 신뢰도를 고려했을 때 이 제도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청년 당원 남정용(32)씨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선 의원내각제가 이상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한국처럼 정치 논리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 환경에선 한계가 있다. 현재 5년 단임제도 정책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국회의원 선거와 시기를 맞춰 중간 평가를 받는 방식으로 4년 중임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견에 많은 청년 당원이 공감했다.

흥미로운 것은 자유한국당 청년 당원들의 견해였다.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 현재 각 당의 ‘당론’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대통령이 외치를 맡고 의회가 내치를 책임지는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를 선호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대선 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도 개헌 방향에 대해 “제왕적 대통령제를 폐지하고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로의 개헌”을 주장한 바 있다. 방점은 ‘4년 중임’이 아닌 ‘분권형 대통령제’에 찍힌다. 그러나 이날 토론 과정에서 자유한국당 청년 당원 19명 가운데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택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19명 가운데 다수인 13명이 ‘정책 연속성’을 이유로 ‘4년 중임제’를 선택했다. 기성 정치권과 청년 당원들의 시각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자유한국당 청년 당원 이동열(35)씨는 “자유주의가 잘 발달한 미국에서 검증된 제도인 4년 중임제로 가야 한다. 국회의원 다수가 원하는 대로 가면 대통령이 제대로 정책을 펼 수 없기 때문에 내각제가 강화되면 안 된다”는 의견을 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필요 56%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청년 당원들의 토론 결과도 흥미로웠다. 청년 당원이 가장 많이 지지한 선거제도 개편 방안은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독일식 정당명부제)였다. 절반이 넘는 56%(27명)가 이 제도를 선택했다. 국회가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있도록 다당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었다. 특히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찬성하는 의견은 토론 전보다 토론 이후에 더 많았다. 토론 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은 43%(18명)였으나 토론 과정에서 51%(24명), 토론 뒤에는 56%(27명)까지 늘었다.

다만, 정당별로 확연히 의견이 갈렸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에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택하는 비율이 높았지만, 자유한국당은 현행 소선거구제 유지 쪽 의견이 많았다. 소선거구제 유지는 토론 전 40%(17명)에서 토론 뒤 29%(14명)로 줄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도 토론 전 7%(3명)에서 토론 뒤 2%(1명)로 줄었다.

이런 변화는 토론 과정에서 제기된 “다양한 계층을 대표하는 방식으로 국회에서의 소수 의견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받아들여진 측면이 크다. 이 의견은 1차 토론 과정에서 9명(20%)이 냈고, 토론 이후 14명(31%)이 이 의견을 지지했다. “(1등만 당선되고 나머지 표는 버려지는) 사표의 문제를 해소해 국민 대표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처음엔 4명(9%)만 지지했지만, 토론 뒤 지지자가 7명(16%)으로 늘었다. 두 의견 모두 ‘정당 지지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받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정의당 부대표를 맡은 청년 당원 정혜연(28)씨는 “바닥 민심의 목소리가 차단되는 것이 현재의 소선거구제다. 국민이 의회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는 지지율이 낮은 정당이 국회 의석수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려면 민심 지지율에 따라 의석수가 배분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내 소수정당인 정의당의 경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 득표율에 따라 의석이 배분돼 현재보다 의석이 크게 늘어난다.

‘숙의형 토론’에 대다수 만족

이번 토론회는 각 당의 청년 당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얼굴을 맞대고 의견을 공유했다는 것 자체로도 적잖은 의미를 지닌다. 각 당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기 위한 갈등적 논쟁이 아닌, 서로 생각을 공유하고 설득하는 방식의 ‘숙의형 토론’이었다는 점에서 참석자들도 대체로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윤정 자유한국당 대학생위원장은 “미래를 이끌어갈 3개 정당 청년 당원의 개헌 관련 견해를 교류해볼 수 있는 유의미한 자리였다. 주제 토론 전후 무기명 투표의 수치 변화도 토론 중 흥미로운 포인트였다. 국가의 주요 현안에 청년들이 지속적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시민 1005명 여론조사 결과


"한국은 4년 중임제가 적합"


과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은 10월28일 열린 청년 당원 개헌 원탁토론회 결과를 가지고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개헌과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여론조사를 했다. 토론 과정에서 청년 당원들이 내놓은 의견들 가운데 의미 있는 내용을 추려 이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의식을 묻는 방식이었다. 조사는 공공의창 회원사인 ‘리서치뷰(안일원 대표)’가 시민 1005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표본 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5%포인트다.
조사 결과 일반 시민들은 한국에 적합한 권력구조 형태로 ‘4년 중임제’(49.3%)를 가장 많이 꼽았다. 숙의를 거친 청년 당원들에게 조사한 결과(55%)와 비슷한 수치다. 다만, 청년 당원이 4년 중임제 다음으로 많이 꼽은 권력구조 형태가 의원내각제(19%)였던 것과 달리, 의원내각제를 지지하는 일반 시민들의 답변은 10.5%로 가장 적었다. 여기서 의미 있는 지점은 청년 당원들도 본격적인 토론에 앞서 사전 조사를 했을 땐 10%만 의원내각제를 선호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토론회를 거친 뒤 선호도가 19%로 늘어난 것을 고려하면, 일반 시민들도 ‘숙의 과정’을 거치면 의견이 달라질 수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일반인들은 정치 발전을 위해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국가가 정책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중앙에 집중된 권한을 지방에 과감히 이양해야 한다’(34%)는 점을 가장 많이 꼽았다. 그 뒤를 이은 것은 ‘대통령 권한이 집중돼 폐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대통령 권한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23%)는 것이었다. 이 역시 청년 당원들의 답변 순위와 비슷했다. 청년 당원들 역시 토론 후 조사에서 ‘정책 연속성 유지’(41%), ‘대통령 권한 집중 심각’(28%)을 차례로 꼽았다.
선거제도 개혁 방향에 대해 일반인들은 현행 소선거구제 유지(30.9%)를 가장 선호했다. 그러나 ‘후보가 아닌 정당에 투표해 득표율만큼 의석을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27.4%)를 지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한 선거구에서 2~3명을 선출하는 중·대선거구제도를 꼽은 이도 27.2%나 됐다.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중·대선거구제를 합한 수치는 54.6%였다. 과반수의 시민들이 현행 소선거구제의 개선 필요성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선거제도를 개혁하며 우선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는 ‘국회의원의 전문성 강화’가 27.5%로 가장 높았다. 국회의원 전문성은 선거제도 개혁을 논의할 때 중요하게 논의되는 사안은 아니지만, 청년당원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을 반영하는 차원에서 항목에 추가한 것이다. 이를 통해 국회의원들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감을 엿볼 수 있었다. ‘다양한 계층 등 소수의견 확대’(21.4%), ‘비민주적 공천 방식 개선’(19.3%), ‘정당득표율 반영 등 사표 방지 대책 마련’(14%) 등이 뒤를 이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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