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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페미니스트 계보 만들기부터 육아·사진작업 병행하는 삶의 기록까지

‘여성’ 사진가들이 페미니즘으로 보는 세상
등록 2017-07-11 11:38 수정 2020-05-02 19:28
20대 페미니스트를 찍은 윤연 작가의 ‘비화’ 프로젝트. 니나안·솔네·박미진 작가는 아이를 기르는 서로의 오늘을 찍어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왼쪽부터). 윤연 제공, 니나안·솔네·박미진 제공

20대 페미니스트를 찍은 윤연 작가의 ‘비화’ 프로젝트. 니나안·솔네·박미진 작가는 아이를 기르는 서로의 오늘을 찍어주는 작업을 하고 있다(왼쪽부터). 윤연 제공, 니나안·솔네·박미진 제공

1991년에 태어난 윤연 작가는 ‘20대 페미니스트 계보’를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 중이다. 프로젝트 이름은 ‘비화’(飛火). 그는 “페미니스트가 가진 에너지가 불똥 같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불똥이 튈까봐 두려워한다. 그 스스로는 이 ‘불똥’을 널리 퍼트리고 싶다.

여성 사진가의 연대 ‘하이드 앤드 시크’

윤연 작가는 지난 6월 ‘비화’ 프로젝트를 포함한 작업을 소개하는 강연을 했다. 사진비평가, 작가, 기획자 등이 모여 성폭력·페미니즘·사진을 주제로 강연하고 대화하는 릴레이 토크 ‘하이드 앤드 시크’(Hide & Seek)에서였다. ‘숨바꼭질’이란 뜻의 릴레이 토크는 6월 주말마다 열렸다. 사진계 여성들이 성별 때문에 일상적으로 겪는 폭력과 차별 등의 경험과 작품을 공유했다. 유지의 사진연구가는 “상업사진·예술사진 등으로 나뉘어 함께한 경험이 적은 여성 사진예술 창작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일은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윤연 작가의 ‘비화’ 프로젝트는 지난해 5월 ‘서울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계기로 탄생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됐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전의 윤연은 ‘페미니스트냐, 아니냐’라는 질문 자체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강남역에서 살해당한 여성의 죽음을 구조가 아니라 ‘운이 나쁜 한 여성의 죽음’ ‘조현병 남성의 일탈’ 정도로 규정하는 사회에 분노하고 절망했다. 분노와 절망이 혼자만의 것인 듯해 외로웠다.

그때 읽은 (이하 )이 “기록해야겠다”는 결심을 낳았다. 는 한국 여성들이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하며 싸워나간 성취의 기록이다. “저처럼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한 또 다른 누군가도 분명 쓸쓸하고 외롭고 당황스러웠을 거예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작은 무언가를 하는 나와 같은 여성들을 기록하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7월4일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윤연 작가가 말했다.

윤연 작가는 지난 3월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상에서 만나는 20대 페미니스트들을 찍기 시작했다. 여성을 가두는 시선을 주제로 회화작업 등을 해온 아티스트 허챠밍, 획일적 아름다움의 기준에 맞추느라 거식과 폭식을 반복하는 식이장애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유튜브 영상으로 공유하는 반달하늘 등이 윤연 작가가 피사체로 만난 사람들이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도 알게 됐다. 그가 말걸기를 한 사람들이 기뻐한 것이다. “제가 페미니스트로 보여요?” “와! 그건 나랑 같아요.” 20대 페미니스트 사진 기록 작업은 그렇게 동시대 여성들이 서로 공감하며 손잡는 현장이 됐다.

강요된 감정노동·미의 기준… 탈출을 꿈꾸다

미국 뉴욕에서 사진을 공부하고 ‘아시안 여성의 정체성’을 주제로 작업해온 주황 작가는 ‘하이드 앤드 시크’에서 20대 사진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작업을 공유했다. 주황 작가는 지난해 한국 사회의 외모지상주의, 여성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감정노동, ‘헬조선’에서 탈출을 꿈꾸는 여성을 사진에 담았다. 그가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이어진 20년간의 뉴욕 생활을 끝내고 한국에 들어와서 느낀 ‘불편한 낯섦’이 사진작업의 모티브가 됐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소고: 다큐멘터리’ 연작전은 화장품 광고 속 물광 도자기 피부, 단정히 빗어 넘긴 머리, 흰색 의상 등으로 획일화된 아름다움에 대한 강박증을 드러낸다. 주황 작가의 작품 속 여성은 실제로는 친구, 후배, 동네 지인 등 주변의 평범한 여성이다. 그러나 작품을 얼핏 보면 화장품 모델 같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청순하고 우월하며 아름다운 여성이 될 것을 강요당하는 게 아닐까. 주황 작가는 국내에서 드물게 정치적·계급적 입장을 솔직히 드러내는 작업을 한다. “예술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 기반한다. 지금 한국은 미국에서 아시아 여성이 인종차별을 느끼는 것처럼 여성이 성차별을 느낀다. 작가로서 이런 현실을 작품에 담아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주황)

출산과 육아의 경험이 사진가 경력에 내는 균열에 당혹감을 느꼈던 여성 사진가들도 있다. 솔네 작가와 박미진 작가는 각각 21개월, 13개월 된 아기를 키우고 있다. 솔네 작가는 잡지 피처사진, 힙합가수들의 앨범사진 등을 찍으며 개인 작업도 꾸준히 해왔다. 박미진 작가도 패션사진을 기반으로 하되 개인 작업을 쉬지 않았다. 출산·육아 이후에도 일을 쉴 생각이 없는 그들은 ‘여성 사진가’에게만 주어지는 질문에 불편하다. “아이 낳고 ‘일 쉬냐’ ‘요즘 촬영하냐’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들었다. 촬영을 하고 있는데도 그렇게 묻는다. 남성 사진가들은 아이가 생기면 ‘어깨가 무겁겠다’며 일이 몰리는데 여성 사진가에게는 마치 쉬라는 듯 말한다.”(솔네) “출산·육아 이후 의뢰 건수 자체가 줄었다. 그래서 일이 들어오면 무조건 한다. 지난해 출산 두 달 만에 일했다. 나에겐 셔터 누르는 것만으로도 해방되는 기분이다.”(박미진)

서로 기록하니 외롭지 않다

이들은 ‘아이’라는 새로운 동반자가 생긴 시기를 활용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육아와 사진작업을 병행하는 서로를 기록하는 일이다. 솔네·박미진 작가와 니나안 사진가까지 세 작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이들과 함께 만나 서로를 기록하고 전시회를 열거나 사진집을 출판할 계획이다.

여성을 기록하고, 사회를 기록하고, 삶을 기록하는 여성 사진가들. 그들의 작업으로 우리는 더 이상 외롭지 않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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