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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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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옥자’? 현실의 ‘옥자’!

중국·영국 등에서 유전자가위 기술로 근육량 많고 질병에 강한 돼지 연구…

식용 안전성 미입증, 식탁 오르기까진 하세월
등록 2017-06-27 07:00 수정 2020-05-02 19:28

옥자는 슈퍼돼지다. 생명공학기업 ‘미란도’가 유전자를 조작해 덩치를 하마만큼 키운 돼지다. 게다가 맛있다. 이런 돼지를 키운다면 분명 남는 장사일 것이다. 여기서 드는 의문. 실제로도 옥자를 만들 수 있을까. 혹시 자연생태계에 문제는 안 될까. 인간이 먹고 살자고 이런 동물을 만들어도 되는 것일까. 6월29일 개봉하는 영화 는 유전자변형 동물과 관련해 여러 질문을 우리 사회에 던진다. 하나씩 답을 찾아보자. 우선, 옥자는 실현 가능할까?
돌연변이 촉진해 근육량 1.5배

영화 <옥자>에는 생명공학 기술로 유전자를 변형시켜 만든 슈퍼돼지가 등장한다. 생산성이 높고 환경친화적이며 맛이 남다르다.

영화 <옥자>에는 생명공학 기술로 유전자를 변형시켜 만든 슈퍼돼지가 등장한다. 생산성이 높고 환경친화적이며 맛이 남다르다.

“우리 슈퍼돼지는 크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일단 맛이 끝내줍니다!”

영화에서 미란도 회장은 기자들을 불러 모아 슈퍼돼지를 홍보한다. 생산성이 높고 환경친화적이며 맛이 남다르다고 강조한다. 재미있는 건 현실에도 이와 비슷한 슈퍼돼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우선 중국 옌볜대학의 ‘근육강화돼지’부터 보자. 덩치는 일반 돼지와 비슷하지만 근육량이 1.5배 이상 많다. 똑같은 사료를 먹여도 더 빨리, 더 많이 근육이 붙는다. 근육 성장을 억제하는 ‘마이오스타틴 유전자’가 망가져서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근육이 폭발적으로 붙는다. 대신 체지방이 적다. 생명공학기업 ‘툴젠’과 중국 동포 윤희준 중국 옌볜대학 교수팀이 함께 만들었다. 올해 초 논문을 발표하고, 중국과 한국에 특허등록도 했다.

근육강화돼지는 최신 유전자변형 기술인 ‘유전자가위’로 탄생했다. 유전자가위는 유전체에서 특정 염기서열만 찾아 잘라주는 초소형 가위다. 우리가 원하는 부위를 싹둑 자를 수 있다. 세포는 위대해서 유전자가 손상돼도 금방 원래대로 복구한다. 유전자가위는 복구되자마자 같은 부위를 또 자른다. 창과 방패처럼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하다보면 세포도 실수를 한다. 엉뚱한 유전자를 붙여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구옥재 툴젠 동식물사업부장은 근육강화돼지에 대해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돌연변이를 좀더 높은 확률로 일으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학자가 개입하지 않아도 자연 상태에서 마이오스타틴 유전자가 이따금 고장 나기도 한다. 소와 개는 물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뛰어난 보디빌더 중에 이 유전자가 고장 난 사례가 있다. 이 경우 손쉽게 근육질을 만들 수 있다.

마이오스타틴 돌연변이가 일어난 가축은 대체로 맛있다. 근육량이 많아지면서 근섬유가 얇아져 육질이 연하고 부드럽다. 고단백 저지방이다. 단, 지방 많은 삼겹살을 좋아하는 한국인 입맛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옥자처럼 적게 먹고 적게 싸는 슈퍼돼지도 있다. 2006년 캐나다 궐프대학 연구진이 유전자변형 기술로 만든 ‘인바이로피그’(Enviropig)다. 이름부터 친환경적이다. 인바이로피그는 기존 요크셔 돼지가 잘 소화시키지 못했던 곡물의 인(P) 성분을 잘 흡수한다. 쥐 유전자를 돼지 핵에 끼워넣은 덕분에 침샘에서 인 분해 효소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료도 적게, 배설물도 적게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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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인을 보충하는 먹이를 줄 필요가 없어졌다. 실제 배설물을 조사해보니 인이 적게 나왔다. 그로 인한 환경보호 효과가 상당했다. 다량의 인이 강물로 흘러들어가면 부영양화를 일으켜 물고기를 죽일 위험이 있었다. 인바이로피그는 10대째 혈통이 유지됐으나 지금은 볼 수 없다. 2012년 연구비가 끊기면서 전부 안락사시켰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슈퍼돼지는 영국 로즐린연구소가 지난 2월 발표한 ‘질병저항 돼지’다. 평범한 외모와 달리 ‘돼지생식기호흡기증후군’에 저항성을 가지고 태어나 생존력이 높다. 이 병은 유럽에서만 매년 1조8천억원 규모의 손실을 일으키는 위험한 전염병이다. 연구진은 세포에서 해당 바이러스가 달라붙는 부위를 없앴다. 출입구를 원천 봉쇄한 셈이다. 1996년 세계 최초로 복제양 ‘돌리’를 만든 로즐린연구소의 성과다.

질병저항 돼지는 유전자가위 기술 중에서도 최신형(제3세대)인 ‘크리스퍼/카스9’을 사용해 만들었다. 이 기술은 요즘 생명공학계에서 가장 핫하다. 2003년 1세대 유전자가위 ‘징크 핑거 뉴클레아제’가 처음 나왔고, 2011년 말 한층 정교해진 2세대 유전자가위 ‘탈렌’이 등장했다. 2013년 초에 나온 크리스퍼/카스9은 이전 세대보다 훨씬 싸고 만들기 쉬워 빠르게 확산됐다. 현재 기술경쟁의 최전선에 있다.

방금 살펴본 돼지와 정반대로 특정 질병에 취약한 슈퍼돼지도 있다. 새로 개발한 약의 효과를 실험하기 위해 일부러 유전병에 걸리게 한 돼지다. 희생시켜 미안하지만 다른 어떤 슈퍼돼지보다 사람을 많이 구한다. 사실 가장 흔한 종류의 유전자변형 돼지기도 하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미래형동물자원센터는 지난해부터 신약 실험을 뒷받침하기 위한 질환모델 돼지를 만들고 있다. 실험에는 보통 돼지보다 작은 미니돼지를 사용한다. 몸무게 50~60kg으로 장기의 크기와 구조, 해부생리학적 특성이 사람과 비슷하다.

슈퍼돼지 사람이 먹어도 되나?

두 번째 질문은, 슈퍼돼지를 사람이 먹어도 되는지다. 영화 에서 사람들은 슈퍼돼지를 먹는다. 그것도 아주 맛있게 먹는다. 영화 속에서 슈퍼돼지고기 시식 장면은 기괴함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현재 식용 판매되는 유전자변형 돼지는 없다. 앞서 말한 슈퍼돼지는 전부 연구 단계다. 돼지뿐 아니라 동물 전체로 확대해도 살코기가 시장에 나온 사례는 거의 없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판매가 승인된 사례는 딱 하나 있다. 성장 속도를 두 배 끌어올린 유전자변형 연어다. 그러나 이 역시 아직 소비자를 제대로 만나진 못했다. 환경단체와 소비자단체의 반발이 거세고 주요 식품점이 취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벌써 생활 깊숙이 들어온 유전자변형 식물에 비하면 유전자변형 동물은 진도가 한참 늦다. 구옥재 툴젠 부장은 유전자변형 돼지가 여태 시장에 나오지 못한 이유가 “사업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중이 유전자변형생물(GMO)에 가진 거부감은 상당하다. 매우 엄격한 안전성 평가를 거쳐, 인체와 자연에 무해하다는 증거를 내밀어야 한다. 이를 증명하는 데 막대한 돈과 시간이 든다. 식물은 금방 자라고 키우기도 쉽다. 검증을 통과하면 대량으로 팔 수도 있다. 동물은 다르다.

아직 사람이 유전자변형 돼지를 먹어도 안전한지 말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안전성 평가 가이드라인이 이제 막 논의되는 수준이다. 구 부장은 “시민들이 기술 자체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기보단, 각각의 동물이 어떤 목적으로 개발됐는지 살펴봐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전자변형은 폭넓은 개념이다. 기존에 없던 유전자를 끼워넣는 기술부터 육종 수준의 미세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기술까지 다양하다. 어떤 유전자를 건드렸느냐에 따라서도 위험성이 천차만별이다. 오히려 인체에 유익한 영양성분이 강화될 수도 있다.

옥자 풀어놔도 생태계 안전할까?

유전자가위 기술로 만든 근육강화돼지(오른쪽)는 일반 돼지(왼쪽)보다 근육량이 1.5배 이상 많다. 국내 연구진이 세운 생명공학기업 ‘툴젠’과 중국 옌볜대학이 공동개발했다. 툴젠

유전자가위 기술로 만든 근육강화돼지(오른쪽)는 일반 돼지(왼쪽)보다 근육량이 1.5배 이상 많다. 국내 연구진이 세운 생명공학기업 ‘툴젠’과 중국 옌볜대학이 공동개발했다. 툴젠

영화에서 동물학자가 주인공 미자의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옥자를 이렇게 잘 키운 비결이 뭡니까?” 할아버지는 쿨하게 답한다. “산에 그냥 풀어놨어요.”

옥자는 유전자변형 동물과 관련해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야생에 풀어놔도 될까?’ 동물을 자유롭게 풀어놓는다는 건 실험동물이나 가축처럼 사람의 감시 아래 두는 것과는 또 다르다. 다른 동물을 잡아먹거나 잡아먹힐 수도 있고, 짝짓기를 할 수도 있다.

옥자처럼 유전자변형 동물 몇 마리를 자연에 방사해 생태계가 망가질 가능성은 낮다. 근육강화돼지는 언뜻 세 보이지만 에너지효율이 낮아 생존경쟁에서 도태되기 십상이다. 야생생물은 수만~수백만 년을 거치며 나름대로 환경에 최적화돼 살아남은 존재다. 인간의 손이 닿았다고 자연에서 우월적 지위를 가질 거란 상상은 오만일 수 있다.

다만 수천, 수만 마리를 동시에 풀어놓을 땐 생태계 교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플로리다주 남쪽 끝자락에 있는 작은 섬 키헤이븐에선 현재 놀라운 실험이 진행 중이다. 유전자변형된 이집트숲모기를 섬에 퍼뜨려 무리를 말살하는 작전이다. 명분은 간단하다. 지카, 뎅기열, 치쿤구니아 등 모기 매개 전염병 억제다.

영국 생명공학기업 옥시텍은 세균으로 모기 수컷의 유전자를 조작해 번식 능력을 망가뜨렸다. 유전자변형 수컷이 정상 암컷과 짝짓기해 낳은 자손은 애벌레 단계에서 96% 확률로 죽는다. 유전자가 시간을 두고 터지는 폭탄 구실을 하는 것이다. 암컷이 다른 정상 수컷과 교미할 기회도 뺏어 결국 모기 수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실험 시작에 앞서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들은 반대했다. 유전자변형 뒤에도 살아남은 4% 모기가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모기를 먹는 물고기나 새가 피해를 입고, 식물도 꽃가루를 옮길 매개자가 사라져 곤경에 처한다는 주장이 뒤를 이었다. 자흐 아델만 미국 텍사스A&M대학 곤충학과 교수는 학술지 와의 인터뷰에서 “변형유전자가 모기의 짝짓기, 숙주 선택, 알낳기 등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자료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실험이 안전하다고 발표했다. 모기가 변형유전자를 인간에게 옮길 가능성이 낮으며 생태계 먹이사슬 피해도 곧 회복된다고 설명했다. 옥시텍이 앞서 브라질, 케이맨군도, 파나마, 말레이시아 등에서 같은 실험을 했을 때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1년 안에 모기가 80~90% 감소하는 짭짤한 효과를 봤을 뿐이다. 키헤이븐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지카 등 전염병이 창궐한 중남미를 마주 보는 지역이다. 모기를 죽였을 때 생길 위험보다 얻는 이익이 크다는 주장이 나왔다.

논쟁 끝에 주민투표까지 갔다. 키헤이븐이 속한 먼로카운티에서 2016년 11월8일 미국 대선일에 맞춰 찬반 투표를 한 결과 찬성 57%로 시한폭탄 모기 방출이 선택됐다. 지방정부는 지난 4월20일부터 12주 동안 매주 4만 마리씩 수컷 모기를 실험실 밖으로 내보냈다. 정작 실험이 진행되는 키헤이븐에선 반대표가 65%로 높았지만. 어쨌든.

플로리다 모기 방사 실험과 영화 는 비교하기 좋은 사례다. 영화에서 미란도는 옥자를 유전자변형으로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를 철저히 숨긴다. 자연에서 우연히 발견했다고 사기를 친다. 악덕 생명공학기업의 전형이다. 미란도는 옥시텍이 키헤이븐에서 했던 것처럼 안전성 입증 실험과 주민 설득에 공을 들여야 했다. 지방정부도 최소한 주민투표라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거쳤어야 한다. 그래야 지역주민들도 유전자변형 동물 방사 실험의 득과 실을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동물연구 사회적 말문 트는 계기 되길

우리 사회에서 동물 유전자변형 기술이 이슈화된 사례는 드물다. 송봉석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질병과 식량 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지만 위험성도 있으므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가 첨단 생명공학 기술과 동물윤리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구옥재 부장은 를 미리 봤다.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봉준호 감독이 시놉시스 단계에서 그에게 유전자변형 기술을 자문했다. 덕분에 영화 크레디트 끝자락에 그의 이름도 들어갔다. 영화는 유전자변형을 부정적으로 다루지만, 그래도 구 부장은 가 좋다고 했다.

“유전자변형을 통해 생산된 옥자가 괴물이 아니라 인간 미자의 둘도 없는 친구라는 점이 좋았습니다. 영화는 동물을 오로지 ‘고기’로만 보는 비윤리적 식육산업을 지적합니다. 기술이 사육 환경 개선, 희생동물 수 감소, 시험관 고기 실용화 등에 응용돼 인간과 동물의 공존에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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