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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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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대통령들의 나라

강원택 교수가 말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구조적 문제…

“독일식 책임총리제·분권형 대통령제가 대안”
등록 2017-03-16 09:28 수정 2020-05-02 19:28

헌법재판소가 2017년 3월10일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다. 박근혜는 파면됐다. 또 하나의 ‘실패한 대통령’이 나타났다. 우리는 왜 실패한 대통령의 역사를 반복하는 것일까? 한국적 대통령 제도의 구조적 문제는 아닐까? 5월 대선에서 선출될 새 대통령도 비슷한 결말을 맞게 될까?

3월8일 서울 경복궁 인근 찻집에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를 만나 원인과 대안을 물었다. 강 교수는 “박근혜 탄핵 선고는 주권자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대통령을 끌어내린 첫 사례가 될 것”이라며 “비극적 사건이지만 시대에 걸맞지 않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벗어던질 기회”라고 말했다.

탄핵 선고 이틀 전에 진행된 인터뷰여서, 탄핵심판 결과에 대해서는 ‘열린 결말’을 전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강 교수는 한국정치학회장, 한국정당학회장,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물러난 첫 번째 대통령박근혜가 첫 파면 대통령이 됐다.

현직 대통령이 국민의 뜻에 따라 물러난 게 1960년 4·19혁명에 이어 두 번째다. 그러나 이번에는 국민이 피를 흘리지 않았다. 우리 손으로 만든 헌법적 장치와 민주적 제도, 절차를 통해 국민의 뜻을 저버리고 부패한 대통령을 하야시킨 첫 사례다. 우리 민주주의가 어떤 상황에서도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보여준 거울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비슷한 상황으로 4월 혁명이 있었다.

우리 역사에서 이른바 ‘피통치자’들이 뜻에 맞지 않는 통치자를 자신의 손으로 바꾼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처음 배운 지 불과 10년 남짓 만에 일어난 4·19의 의미는 대단하다. 그러나 당시는 물리적이고 비제도적 방식이 동원됐다.

이번 촛불 탄핵은 민주적이고 헌법적인 틀 안에서 이뤄졌다. 국민들이 저항과 분노를 표출했고, 국회가 이 뜻을 받아 대통령을 탄핵 소추했다. 사법부가 법률적 판단을 통해 탄핵을 진행했다. 어떤 제왕적 대통령도 부패하거나 국민의 신뢰를 잃으면 정당한 절차를 통해 내쫓을 수 있다는 역사적 경험이 될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과 비교해볼 수도 있겠다.

그때는 불의한 권력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 공정하고 자유로운 선거, 주권자인 국민이 참여해서 통치자를 결정하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1차적 요구’였다. 이번에는 민주적 요구가 더 깊어졌다. 사회 전반에 퍼진 기회 불균등, 특혜, 불공정함을 더는 인정할 수 없다는 답답함이 깔렸다. 또 세월호 참사에서 보인 국가권력의 잔인함에 대한 분노도 드러났다. 4·19혁명이나 6월 민주화항쟁을 넘어야 한다는 요구는 여기서 비롯된다. 대통령 박근혜를 쫓아내는 것만이 아니라 새 국가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레이저에 참모는 좋은 말만왜 실패한 것인가.

지금 대통령제를 ‘제왕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대통령 혼자로는 안 된다. 청와대 참모들의 조언과 도움을 다양하게 얻어야 한다. 집권당과의 관계도 원활해야 하고, 국회와의 관계 역시 중요하다.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이들을 설득하고, 필요하다면 자신을 고쳐나가야 한다. 활발한 의사소통 시스템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성향이 그렇지 못했다. 대통령이 눈에서 ‘레이저’를 쏘면, 참모들은 대통령이 좋아하는 일만 했다. 잘못된 판단과 결정이 내려질 수밖에 없다. 정국이 나빠져도 대통령 눈빛만 바라볼 뿐, 누구 하나 문제를 고치려 하지 않았다. 검찰은 민정수석한테 꽉 잡혔고, 언론도 제구실을 못했다. 국정에 빨간불이 켜졌는데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권력 주변인들이 사익을 챙기려 대통령을 이용하고, 소외시켰다고 볼 수 있다. 대통령 뜻을 받아들인다며 권력을 이용해 호가호위한 것이다.

‘현직 대통령’으로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맞았다. 무엇이 달랐을까.

많은 대통령들이 스캔들에 연루됐다. 그러나 본인들이 노골적으로 직접 개입한 경우는 찾기 어렵다. 측근이나 친인척이 아버지나 보스의 권한을 이용해서 사고를 쳤다. 그러나 박근혜는 본인이 하고 싶은 것만 하려 했다. 이 때문에 주변 사람들 누구도 그를 보호하지 않았다. 주위의 조력을 받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되레 소외당했던 것 같다.

인터뷰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 휴대전화에서 뉴스 알림이 떴다. 헌재가 탄핵 선고 일시를 ‘3월10일 오전 11시로 확정했다’는 것이었다. 강 교수는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절차대로 헌재 선고가 진행된다면, 결과도 기대하는 대로 나올 것”이라며 “여론과 배치되는 결과가 나온다면 우리 사회의 시스템 근간을 다시 고민해야 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대통령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일까. 내가 대통령이니 내 마음대로대통령의 개인적 일탈로 봐야 할까.

개인의 일탈이란 면도 있다. 2012년 당시 박근혜 대선 후보의 모습은 지금과 달랐던 것 같다.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중요한 결단을 내리는 리더십, 책임감, 안정감 같은 게 있었다. 여기에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이 더해졌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 전혀 다른 사람이 됐다. 마치 아버지 박정희가 유신 후반, 소수 측근에 의지하고 완전한 독재를 행사한 것과 닮았다. ‘내가 대통령이니 마음대로 다 한다’거나 기업들을 불러서 ‘내가 생각하기에 좋은 일이니까 나를 도와줘라. 당신이 어려운 건 내가 도와줄게’라는 식이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생각해보면, 대통령의 낡은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등용이 굉장히 나빴다. 마치 1970년대로 돌아가기 위해 김 전 실장을 등용한 듯한 인상마저 받는다. 박근혜 리더십은 시대착오적이었다.

정부 차원의 구조적 문제도 있지 않았을까.

결국 ‘승자독식 시스템’인 한국형 대통령제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이 되면, 권력을 어느 누구와도 공유할 필요가 없고, 나누려 해도 나누기 어려운 것도 많다. 대통령 개인의 성향에 따라 국가 전체가 영향받게 된다. 이전 대통령들도 마찬가지였지만 대개는 여론의 흐름에 민감한 경우가 많았고, 정치적 반대파를 의도적으로 등용하거나 최소한 흉내라도 내려 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덜 불거졌다.


“결국 ‘승자독식 시스템’인 한국형 대통령제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이 되면 권력을 어느 누구와도 공유할 필요가 없고 나누려 해도 나누기 어렵다.”

반면 박근혜는 이런 리더십이 익숙하지 않았다. 게다가 대통령을 보좌하는 국무위원들마저 입을 다물었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나쁜 결과가 극단적으로 드러난 경우다. ‘최순실 태블릿PC’가 등장한 게 지난해 10월 말인데, 정부가 이후 4개월여 동안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원인이다. 우리 사회가 엄청나게 복잡다기하고, 규모를 키웠다. 더는 대통령이 혼자 해결하거나, 대통령 한 명에게 의지하는 방식으로는 안 된다.

우리 헌정사는 유독 실패한 대통령의 경험이 많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1960년 4·19혁명으로 하야했다. 뒤를 이은 윤보선, 최규하는 조기 퇴임하며 비극적 대통령사에 발자국을 더했다. 박정희는 장기 독재를 하다 암살됐고,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과 뒤를 이어 ‘친구’의 권좌를 물려받은 노태우는 퇴임 뒤 구속됐다. 김영삼은 튀임 뒤에도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범’ 취급을 받았고, 노무현 역시 친인척 비리가 불거졌다. 이명박도 친인척 비리 의혹과 재임 기간에 벌인 엉뚱한 대규모 토목사업 특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차별화 위해 전임자 성과 폄훼왜 우리는 성공한 대통령이 없을까.

1차적으로 새 대통령들이 인기 없는 전임자와의 차별화를 위해 이전 정부의 성과를 폄훼하거나 계승을 거부하는 문제가 구조화되고 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이 부패나 권력형 비리로 이어지고, 결국 ‘대통령은 부패하고 부도덕하다’는 이미지가 굳어진 탓이 크다. 이 때문에 전임 정부에서 가장 공들인 정책일수록 다음 정부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명박 정부 초기의 녹색성장은 괜찮은 화두였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녹색’이란 말 자체가 사라진 게 대표적이다. 박근혜 정부가 무난하게 끝났어도 ‘창조경제’의 ‘창조’라는 단어 역시 다음 정권에서 사라졌을 수 있다.

‘87년 체제’로 불리는 5년 단임제가 구조적 문제를 부른다는 지적도 있다.

5년 단임제가 하나의 원인인 게 사실이다. 1987년에 도입된 이 체제는 당시만 해도 국민이 공정한 선거, 내 손으로 뽑는 대통령, 장기 집권과 독재 예방, 정권 교체가 가능한 시스템에 대한 요구를 만족시켰다. 특히 통일·외교 문제처럼 누적된 것을 단칼에 해결하기에는 꽤 괜찮은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장기적 안목으로 미래를 향해 가는 정책들을 실현하는 데는 한계를 드러냈다. 취임 초기 시스템을 정착시키는 시간과 임기 후반 레임덕(지도력 공백 현상) 기간을 빼면, 정책에 전력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다. 출산, 교육, 실업 극복 같은 고질적 문제는 3년 정도의 정책으로 극적인 효과를 만들기 어렵다.

단임제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직 대통령은 퇴임하면 그만이어서 ‘대통령 무책임제’라는 말도 나온다.

일부 대통령들이 ‘역사가 평가해줄 것’이란 말을 남기는 게 단임제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통령이 국민과 대화해야 하는데, 5년이 끝나면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4년 중임제 얘기도 나오지만, 지금 같은 제왕적 대통령 시스템으로는 ‘8년 단임제’와 비슷해질 수 있다. 한 사람이 결정하고, 끌고 나가는 시스템은 이제 끝난 것 같다. 이번 촛불 민심도 새 정치 시스템, 새 정부 형태를 요구하는 것 같다.

이미 낡아버린 제왕적 대통령제대선과 국회의원·지방선거 주기가 불일치한 문제를 꼽기도 한다.

이 문제가 대통령 권한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을 알지만, 우리에게 순기능으로 작동하는 경우도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탄핵심판까지 오게 된 데는 ‘여소야대’ 국면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측면도 있었다.

상대적으로 막강한 국회 권력 탓이란 말도 나온다.

그건 국회의 탓이 아니라 대통령제가 갖는 숙명이다. 국회에 다수파가 만들어져야 대통령이 제대로 된 행정권을 갖게 된다. 국회와 대통령이 갈등을 빚으면 파행으로 간다. 대통령과 의회는 모두 국민이 선출했기 때문에 정통성이 뚜렷하다. 어느 쪽이 우월하다고 하기 어렵다. 대통령이 일할 때 국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게 당연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종언’을 말하는 이들도 있다. 대안이 있을까.

‘독일식 책임총리제’ 같은 것이 대안이 될 수 있겠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국민이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고 싶어 한다. 대통령과 총리가 업무를 나누는 ‘분권형 대통령제’ 같은 것도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요즘 많이 거론되는 오스트리아의 사례처럼 직선으로 대통령을 뽑되 총리 중심 내각제를 운영할 수도 있다.

강 교수는 인터뷰 말미 “이번 탄핵을 계기로 또 하나의 낡은 시대가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지금 우리가 싸우는 대상은 너무 낡았거나, 과거의 부정적인 유산이다. 올해는 1987년 이후 민주화 30년이 되는 시점이다. 때마침 대통령 탄핵으로 새 시대를 열 ‘기회’를 얻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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