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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대답이 아닌 질문을 던진 것”

다큐멘터리 <세월X> 만든 네티즌 수사대 ‘자로’ 인터뷰… “세월호 특조위 부활이 가장 핵심 주장”
등록 2017-01-03 06:05 수정 2020-05-02 19:28
네티즌 수사대 ‘자로’가 만든 다큐멘터리 <세월X>의 도입부 영상. 세월호 침몰 원인에 주목해 만든 이 영상은 참사 발생 시각에서 따온 총 8시간49분02초 분량이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네티즌 수사대 ‘자로’가 만든 다큐멘터리 <세월X>의 도입부 영상. 세월호 침몰 원인에 주목해 만든 이 영상은 참사 발생 시각에서 따온 총 8시간49분02초 분량이다. 유튜브 화면 갈무리

8시간49분02초. 네티즌 수사대 ‘자로’가 만든 세월호 다큐멘터리 의 총 영상 시간이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49분을 의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자는 시간 빼고 하루의 꼬박 절반을 쏟아야 볼 수 있는 긴 영상을 유튜브에서 시청한 사람만 2016년 12월30일 낮 12시 기준 450만 명이 넘었다.

8시간49분02초, 450만 명 시청

다큐멘터리는 자로가 2년 넘게 개인적으로 수집한 자료들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영상 공개 전후로 ‘잠수함 충돌설’이 부각됐지만, 정작 관련 부분은 얼마 안 된다.

에서 잠수함 충돌 의혹을 제기하는 부분은 세월호 항적 등을 보면 조타 실수나 과적을 이유로 침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외력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특히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급변침을 하던 시점에 레이더 영상에 나타난 물체가 정부 발표대로 컨테이너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 외력설을 뒷받침한다.

오히려 에서 주목할 부분은 이 결론을 내리기까지 과정이다. 는 평형수, 세월호 적재 화물 문제부터 시작해 고의 침몰 의혹까지 광범위한 쟁점을 다루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침몰 원인을 검증한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세월호 침몰 원인의 모든 내용을 다뤘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는 평형수, 세월호 적재 화물 문제부터 시작해 고의 침몰 의혹까지 광범위한 쟁점을 다루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침몰 원인을 검증한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세월호 침몰 원인의 모든 내용을 다뤘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자로는 오래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오늘의 유머’ 등에서 주로 활동하던 그는 2013년 국가정보원 대통령선거 여론 조작 사건 당시 트위터에서 활동한 국정원 직원들의 아이디를 정리해 공개한 적이 있다. 강제 수사권은 물론 자료 접근에도 한계가 있는 일반인 자로가 공개한 아이디들은 이후 대부분 국정원 직원들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뒤로 국군 사이버사령부 여론 조작 사건, 정성근 문화체육부 장관 내정자의 정치 편향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글 공개 등 다양한 활약을 해왔다.

많은 사람이 를 기다린 이유는 자로의 활약이 그만큼 뛰어났기 때문이다. 처음 만든 의 용량은 54기가바이트. 유튜브에 올리기에는 너무 큰 용량이었다. 19기가바이트로 용량을 줄여 업로드했지만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영상은 예정일보다 하루 미뤄 12월26일 공개됐다.

반향은 컸다. 네이버·다음 등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에 오른 것은 물론 한국의 언론사 대부분에서 연락이 왔다고 한다. 12월28일 저녁 자로를 만났다. 가족의 일상과 직장 생활의 평온을 깨고 싶지 않았던 그는 자신을 40대 직장인으로만 기사에 써달라고 부탁했다.

국정원 댓글 조작 의혹 밝힌 ‘네티즌 수사대’ 국정원 대선 여론 조작 사건 때부터 본격적으로 ‘네티즌 수사대’로 활동했다

맞다. 당시 국정원 직원들의 트위터 아이디가 일부 공개됐다. 트위터는 미국 본사에서 정보를 받아야 하는데 가입자 정보를 잘 안 준다. 그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보통 사람들이 같은 아이디를 여러 사이트에서 사용하니까 네이버·다음·네이트 등 포털 사이트에 해당 트위터 아이디로 가입한 사람이 있는지 중복 체크를 해봤다. 찾아보니 국정원 직원으로 의심되는 트위터 아이디 상당수가 국내 포털 사이트에도 가입됐다. 포털 사이트뿐만 아니라 중소 커뮤니티에도 대부분 가입했다. 그 내용을 공개한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인데 이런 활동을 하는 이유는.

처음에는 몇몇 언론사에 제보를 했다. 하지만 모두 무시하더라. 답답했다. 그래서 직접 분석해 내용을 공개했다.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여론 조작 사건 때도 김광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작업했다. 이 과정에서 네티즌의 신뢰를 얻었다. 상상력이나 추리력이 좀 있는 편인 것 같다.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기자나 연구자들이 놓치는 부분이 보인다. 그 부분을 파고들어 알리는 것이 사회에 기여하는 거라 생각해 계속 하고 있다.

자로는 를 만드는 데 2명의 ‘은인’이 있다고 밝혔다. 1명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당한 수현군의 아버지 박종대씨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사고와 관련한 수많은 기록을 모아서 분석해왔다. 박씨가 자로에게 전달한 기록이 없었다면 는 못 만들었다. 다른 1명은 김관묵 이화여대 교수(화학생명분자과학부)다. 김 교수는 세월호가 외력으로 침몰했다는 주장을 오랫동안 해왔다. 자로는 에 나오는 과학적 분석은 대부분 김 교수가 주장한 내용을 일반인이 알기 쉽게 풀어놓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세월호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나.

세월호 참사 6개월 뒤인 2014년 10월께 유가족인 박종대 아버님을 아는 분이 트위터로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당시 세월호 재판 기록 중 선원들의 통화 목록이 있는데 혹시 국정원과 관련된 내용이 있는지 알아봐줄 수 있냐고 했다. 참사 이후 세월호 관련해서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그때 인연이 닿아 박종대 아버님에게 여러 자료를 받아서 분석을 시작했다. 조사하다보니 자료가 많더라.

직업이 있는데 를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았나.

본격적으로 영상을 만들기 시작한 때는 1월부터다. 그 뒤로 점심을 먹어본 적이 없다. 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정상적인 생활을 못했다. 눈도 침침해지고 건강도 상했다. 포기하고 싶은 때가 많았다.

하지만 고비마다 천운이 따랐다. 궁지에 막히면 갑자기 ‘은인’이 나타나 도움을 줬다. 우연한 곳에서 진실의 조각을 찾은 경우도 많았다. 를 완성한 시점도 절묘했다. 막바지 작업을 할 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졌다. 를 만들면서 이걸 공개하기도 전에 잡혀가지 않을까 걱정했다. 공개해도 위협이 덜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논란이 된 잠수함 충돌설
2016년 9월1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3차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정부의 방해 속에 특조위는 해산됐고 결국 세월호 침몰의 구체적 원인, 구조 과정의 문제점 등을 여전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2016년 9월1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3차 청문회가 열리고 있다. 정부의 방해 속에 특조위는 해산됐고 결국 세월호 침몰의 구체적 원인, 구조 과정의 문제점 등을 여전히 밝히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잠수함 충돌설이 큰 논란이 됐다.

나도 처음에는 잠수함 충돌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배제해야 할 관점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세월호 참사 당시 인근에 있던 잠수함의 모습이라며 네티즌이 올린 사진의 원본을 다 찾아내서 반박했다. 2015년 5월에는 내 블로그에 ‘세월호 잠수함 충돌 의혹을 역추적했습니다’라는 글도 썼다. 그동안 나온 잠수함 충돌 의혹을 반박하는 내용이었다.

그 뒤 트위터로 누군가 계속 항의글을 보냈다. ‘당신이 뭔데 잠수함 충돌이 아니라고 하냐’는 식이었다. 그분이 보낸 한 블로그 주소를 찾아갔다. 세월호와 관련된 여러 내용이 굉장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정리돼 있었다. 나에겐 완전한 신세계였다. 처음에는 국정원 직원인가 의심할 정도였다.

나중에야 트위터로 항의하고 블로그를 정리한 분이 김관묵 교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알아보니 세계적인 석학이었다. 지금까지 쌓은 업적이 대단했다. 김 교수님의 분석 내용을 꼼꼼히 살펴본 뒤 세월호가 외력 없이 침몰할 수 없다는 확신을 가졌다.

잠수함 충돌설을 뒷받침하는 것은 레이더 영상이다. 를 보면 레이더 영상에 오류가 있거나 실제 컨테이너일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관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레이더의 오류 가능성도 각종 자료를 다 살펴봤다. 레이더에도 허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허상이 생기려면 세월호와 허상이 일직선상에서 나타나야 한다. 세월호가 급변침한 그 자리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레이더 이곳저곳에서 나타나야 한다. 당시 레이더 영상을 자세히 봤지만 10분 동안이나 허상이 나오는 경우는 없었다.

컨테이너일 가능성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레이더에 잡힌 물체 크기는 물론 당시 화물이 떨어진 시점과 관성 등에 따른 이동 경로를 살펴보면 컨테이너로 단정하기 어렵다. 물론 내 의견이 무조건 맞다고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편견에 사로잡힐 수 있다. 만약 다른 객관적 증거가 있으면 얼마든지 받아들이겠다. 나 역시 앞으로 더 공부할 것이다.

자로는 세월호 참사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데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이라고 정의했다. 공개로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었다고도 덧붙였다. 그는 영상을 만들면서 폐회로텔레비전(CCTV)과 휴대전화 등에 담긴 아이들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세월호 침몰의 진실에 더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외력설이 옳은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특히 잠수함 충돌설은 가능성이 극히 적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가 세월호 침몰 원인 규명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온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음모론으로 진실 찾을 수 없다 전체를 보면 잠수함 충돌설이 핵심 주장은 아닌 것 같다.

맞다. 를 전부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의 느낌은 차이가 크다. 나는 잠수함 충돌이 맞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세월호가 기울기 전 충격음을 들었다는 선원과 승객의 증언, 비정상적으로 급회전한 항적, 해양 사고시 핵심 증거 자료로 사용되는 레이더 자료 등을 종합해서 외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오히려 하고 싶은 말은 세월호 침몰 원인 조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여러 방해 때문에 침몰 원인 조사를 제대로 못했다. 특조위가 부활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핵심 주장이다. 정답을 말한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진 것이다. 침몰 원인이 잠수함이냐 아니냐보다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제대로 조사했느냐로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의 상당 분량은 고의침몰설 등 다른 의혹을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겨레TV 에서 주장한 고의침몰설을 비판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는 지금도 아끼고 존중하는 프로그램이다. 함께 일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해야 했다.

에서는 AIS(선박 위치, 속력 등의 정보를 담은 선박자동식별장치), 레이더 영상, CCTV 등이 다 조작됐다고 주장한다. 고의침몰설의 근거가 조작설이다. 나도 처음엔 조작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조사했다. 하지만 조작 흔적이 나타나지 않았다. 검증 없는 주장은 진실을 찾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같은 편에 총질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많이 했다. 하지만 조작설과 고의침몰설은 진실을 찾기 위해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의혹을 제기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반드시 사실인 것,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것을 주장해야 한다.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 가운데 과학적이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오히려 진실을 마주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이 음모론이다.

해군이 법적 조처를 취하겠다고 했다.

해군은 영상이 공개되고 얼마 안 돼 입장을 냈다. 절대 8시간 넘는 영상을 다 보고 보도자료를 낸 것이 아니다. 해군은 해당 지역에 잠수함이 다닐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레이더에 괴물체가 잡힌 곳 인근은 대부분 수심 50m 이상 지역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곳은 수심이 낮지만 잠수함 충돌로 의심되는 지역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해군이 내용이 잘못됐다고 주장하려면 증거를 내놔야 한다. 합리적 증거가 나오면 당연히 받아들일 생각이다. 특조위 조사에 제대로 협조하지 않으면서 증거도 없이 겁박만 하는 것은 유신시대에나 하던 일이다.

의혹 조사할 수 있는 강력한 특조위를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은.

모든 의혹을 조사할 수 있는 강력한 특조위가 만들어져야 한다. 가 새로운 특조위를 만드는 데 작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특조위 활동을 했던 분들에게 존경하고 감사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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