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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지 말고 탄핵하라”

‘박근혜 사당’ 인증한 새누리당 떠나는 남경필 경기지사가 남은 이들에게
등록 2016-11-29 13:34 수정 2020-05-02 19:28
바야흐로 탄핵 정국이다. 100만이 넘실대는 촛불 민심 앞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은 벽창호다. 검찰 조사 요구에 귀를 막은 채 특검과 국정조사, 탄핵의 끝까지 가보겠다는 태도다. 견디다 못한 새누리당 안에서 탈당 신호탄이 올랐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11월22일 “헌법 가치를 파괴하고 사익을 탐하는 대통령은 최고 권위를 위임받을 자격이 없다”며 김용태 의원과 함께 탈당했다. 반면 서청원 의원을 중심으로 한 새누리당 내 강성 친박계 의원들과 극보수단체는 ‘박근혜 지키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_편집자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남경필  경기지사  약력


1965년 경기도 용인 출생
1988년 연세대 사회사업학 학사
1996년 미국 예일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15대(1996년)~19대(2014년 5월) 국회의원
2010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위원장
2011년 7~12월 한나라당 최고위원
2014년 7월 경기도 도지사
2016년 11월22일 새누리당 탈당


11월24일 수원시 경기도청 도지사실에서 만난 남경필(51) 지사의 표정은 홀가분해 보였다. 그는 “훨씬 자유로워졌다”고 했다. 이틀 전 새누리당 대선 주자 가운데 한 명이던 남 지사는 ‘박근혜 게이트’ 이후 처음으로 탈당 깃발을 들었다. 남 지사는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지켜나갈 의지와 능력이 없고, 정당다움을 잃어버린 새누리당을 역사의 뒷자락으로 밀어내겠다”고 선언했다. ‘새누리당 개혁이 곧 정치개혁의 지름길’이라고 여긴 그의 믿음이 멈추는 순간이었다. 1998년 보궐선거로 당선돼 5선을 하는 동안 그는 당내 쇄신과 변화를 추구한 미래연대-새정치수요모임-경제민주화실천모임 등을 이끌어왔다.

남 지사는 이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선봉에 서겠다고 강조했다. 새누리당에 남아 있는 의원들에게 “어떤 외압에도 쫄지 말고 망설임 없이 박 대통령 탄핵에 찬성해달라”고 당부했다. 아울러 탈당 과정에서 조직폭력배 두목에 가까운 협박을 한 서청원 의원을 민심을 거스른 채 버티기로 일관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배후라고 지목하며 “즉시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고 했다.

십수년 간 최태민 일가 검증 안 한 ‘부메랑’ 탈당 결심의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가.

박근혜 대통령 연설문이 담긴 최순실의 태블릿PC 이야기가 나올 때만 해도 설마했다. 그러나 11월20일 검찰 수사 결과 발표 뒤 청와대는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이라고 발뺌했다. 당은 그래도 민심을 담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적반하장이었다. ‘아, 여기서 안 되겠구나’ ‘이젠 당이 죽었구나’ 싶었다. 새누리당이 정당으로서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새누리당이 회생 불능 상태가 된 원인은 무엇인가.

아무도 박 대통령의 본질을 몰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아우라만 봤다. 2002년 대선 후보 경선 때 최태민 일가의 문제가 나왔지만 박 대통령이 얼버무렸고, 검증을 못했다. ‘사당화’도 치명적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때인 18대 총선 공천에서 친박이 공천 학살을 당했다. 19대에선 친박이 더한 공천 학살로 복수했다. 이 과정에서 당이 완전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당이 됐다.

지난 4월 총선 패배 뒤 극복할 계기가 있었지만 친박 일색의 지도부가 들어서면서 박 대통령이 저렇게 문제가 있고 황당한 액션을 취해도 민심을 전달할 통로가 없어졌다. 새누리당은 회생의 골든타임을 놓쳤다. 당에서 비상대책위를 꾸린다는데 그렇게 해도 친박, 비박이 서로 지분이나 방식을 두고 다툴 수밖에 없다. 10여 명의 친박 핵심들이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협상할 것이다. 결국 마지막 남은 것은 해체다. 방법이 없다.

과거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의 위기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천막 당사 때와 지금은 어떻게 다른가.

그땐 모든 잘못을 인정했고 살려달라고 했다. 크게 실망했던 국민도 회초리를 들려다가 “너희가 잘못하고 뉘우친다고 하니 한 번 더 두고 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박 대통령이 완전히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 나는 잘못한 거 없다”는 태도다. 당이 박 대통령에게 고언을 해야 하는데 외려 비호한다. 친박계 지도부는 가라앉는 배를 다시 고쳐보겠다는 당내 목소리를 무시한 채 물러나지 않고 있다.

서청원 “김무성에 당 주면 친박 싹 잘린다”
남경필 경기지사가 새누리당 의원이던 2012년 10월10일 경제민주화실천모임 회의에서 대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남경필 경기지사가 새누리당 의원이던 2012년 10월10일 경제민주화실천모임 회의에서 대표 인사말을 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기자

탈당 과정에서 친박 좌장인 서청원 의원이 모욕과 회유를 하며 조폭적인 행태를 보였다고 했는데.

탈당 직전 서 의원이 격하게 언성을 높이며 모욕적인 이야기를 했다. 개인적 일까지 들먹였다. 이튿날은 다시 전화를 걸어와 전혀 다른 톤으로 “남 지사가 앞으로 큰일을 해야 하는데 당에 그런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회유했다. 서 의원에게 스스로 물러나라고 했더니 “김무성에게 당을 주면 친박 싹이 다 잘린다. 그건 죽어도 안 된다”고 하더라. 전당대회를 해서 친박 지분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5선 의원 뒤 도지사를 하는 나에게 그렇게 하는데, 당내 초·재선 의원들에게는 오죽하겠는가.

버티기로 일관하는 박 대통령의 배후에 서청원 의원이 핵심 역할을 한다고 보는가.

그렇다. 지금 박 대통령 주변에는 정무적 조언을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최순실도 없고 정윤회도, 우병우 전 민정수석도 없다. 김현웅 법무부 장관이나 최재경 민정수석도 사의를 표하지 않았나. 사람들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배후라고 지목하는데 나는 다르다. 서청원 의원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서 의원을 비롯한 친박 핵심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대책회의를 한다고 한다. 내가 회의를 목격한 것만 해도 두 차례나 된다. 서 의원을 포함해 국정과 당이 이렇게 망가질 때까지 인사권과 공천권, 예산권을 주물렀던 사람들은 즉시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

탈당 뒤 어떤 일에 집중할 것인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다. 여기 모든 노력을 쏟을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대다수 국민이 탄핵을 바란다. 국민이 박 대통령을 우리의 대통령이 아니라고 하면 물러나야 하지만 버티고 있다.

친박계는 외려 여론을 자극하면서 탄핵을 유도하고 있다. 이들은 최후의 반전을 노린다. 서청원 의원이 내게 했던 것처럼 새누리당 의원들을 협박하고 회유해서 탄핵안을 부결하는 시나리오를 생각한다. 외길로 탄핵이란 상황을 몰아놓고 부결시켜 한 방에 되치기를 시도하려는 것이다.

방법은 탄핵안을 가결하는 것밖에 없다. 새누리당에 있는 의원들께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탄핵 찬성을 하는 데 ‘쫄지 말라’는 것이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양심과 소신을 가지고 어떤 외압이나 망설임 없이 정치생명을 걸고 탄핵안에 찬성해주시길 부탁한다. 이미 생명이 다한 새누리당과 일부 핵심 친박, 지도부에 겁먹지 말아야 한다. 박 대통령과 몇 안 되는 당내 광신도들, 그 뒤에 숨어 자기 이익을 챙기는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지 말고 소신껏 역사 앞에 투표해주시길 바란다.

남 지사는 11월26일 서울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석한 경기도민의 귀가를 도우려 서울∼경기 주요 광역버스 운행 시간을 늘리겠다고 했다. 경기도는 촛불집회가 끝날 때까지 매주 토요일 서울에서 출발하는 광역버스 막차 시간을 새벽 1시까지 연장한다. 공인으로 성장 못한 박근혜 박근혜 대통령을 한나라당 대표로 밀어준 주역이 남 지사를 비롯한 원희룡 제주지사, 정병국 의원 아니었느냐는 비판이 있다.

책임을 통감한다. 지난 대선 때도 열심히 도왔다. 박근혜라는 사람의 본질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저 브랜드만 보고 간 것이다. 비판은 달게 받겠다. 정치인으로서 이런 사태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책무이자 속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게이트가 발생한 원인을 어떻게 보는가.

박근혜 대통령 개인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공익과 사익을 구분 못한 것이 가장 큰 패착이다. 박 대통령의 말을 보면 아직도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권력 운용을 그대로 따르는 것 같다. 당시에도 기업들을 윽박질러 이득을 취했다. 이 과정을 보고 자란 박 대통령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공인으로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권력은 나눠야 커지는 것도 몰랐다. 박 대통령은 권력을 나누려 하지 않았고 최순실 등에게 위임하고 의존했다. 권력자의 선한 의지로 투명하게 권력을 운용한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

기존 청와대 수석 제도는 없애야 한다.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 비서관과 일할 게 아니라 장관들과 직접 소통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내각에는 다양한 정당 출신 인물들이 들어와야 한다. 내가 주장한 대로, 세종시로 수도를 이전해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이 유착할 수 없게 물리적 거리를 떼어놓을 필요도 있다고 본다.

향후 시대정신은 ‘공유’다. 경기도에서는 일주일에 세 차례 중요한 회의를 하는데 도지사를 비롯해 다른 정당 소속 부지사 등도 함께 참여한다. 한 차례는 실무자 60~70명이 모여 회의한다. 회의는 홈페이지를 통해 중계돼 모든 도민이 볼 수 있다. 이렇게 하면 특정인이 장난칠 수가 없고 최순실 같은 인물이 나올 수가 없다.

촛불에서 드러난 민심은 무엇인가.

분노와 부끄러움이다. 요약하자면 더는 국민을 부끄럽게 하지 말고 박 대통령이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것이다. 나는 촛불집회에서 희망을 본다. 시민 100만 명이 평화시위를 하고 있다. 외국 지도자들을 만나면 ‘박 대통령 문제로 너희 나라가 참 시끄럽고 어지럽구나’ 하는 눈빛이 느껴진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비록 대통령의 리더십이나 구조적 문제가 있긴 하다. 그러나 100만 명이 모여도 폭력 없이 집회를 하고, 장소를 깨끗이 청소까지 하는 국민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국민은 그간 쌓아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가치와 질서 체제를 믿고 있다. 대통령이 잘못하면 탄핵으로 물러나게 할 수 있는 제도를 신뢰한다. 분노 속에서도 절제하는 것은 제도를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명백한 탄핵 사유가 있음에도 국민의 뜻이 관철되지 않고 탄핵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민은 민주적 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껏 절제해온 분노가 어떻게 폭발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예 이런 제도, 체제를 갈아엎자는 행동이 터져나올 수도 있다.

범죄행위 판단에는 보수가 더 엄격해야
남 지사는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의 정계 은퇴를 촉구했다. 2014년 6월10일 그가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변화와 혁신의 길’ 토론회에서 서 의원과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남 지사는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의 정계 은퇴를 촉구했다. 2014년 6월10일 그가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변화와 혁신의 길’ 토론회에서 서 의원과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박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헌법재판소의 최종 결정이 남아 있다. 헌법 재판관 9명 중 6명이 찬성해야 탄핵이 확정되는데 헌재 재판관들의 보수 성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헌재는 2014년 12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판결을 내린 바 있다.

탄핵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헌법재판소 구성원들의 보수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헌재가 탄핵을 막는다면 헌재 무용론이 거세게 일어날 것이다. 헌재 재판관들도 법조인으로서 양심을 갖고 탄핵 판결을 할 것이다. 이들의 성향이 보수적이라는 것과 범죄행위를 판단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낙태 등 사회적 가치라면 보수·진보의 구분이 의미 있겠지만 범죄행위를 판단하는 데는 외려 보수가 더 엄격해야 한다고 본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장기전을 벌일 태세다.

그 사이에 국가 리더십은 없어지는 거다. 국가 전체적인 손해다. 중요한 결정이 제대로 내려지지 않는 상황이 온다. 외교·안보·경제 모든 분야에 공백이 생기고, 외환위기 때보다 더 심한 공백이 올 수 있다.

탈당 뒤 제4지대에서 창당할 의사를 피력했는데.

당연히 새 당을 만들 것이다. 모든 정당 구성원이 참여하고 대화로 소통할 수 있는 네트워크형 정당 구축을 고민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블록체인 기술’을 새 정당에 도입하려고 구상 중이다. 블록체인 기술은 해킹이나 조작이 불가능한 차세대 인터넷망으로 실시간 정보 공유가 가능하다. 이를 통해 정당의 각종 정책 토론과 투표를 비용 없이 투명하게 치를 수 있어 기존 정당의 부패, 불투명 구조를 해소할 수 있다.

새로운 대안과 정책을 내어 국민의 동의만 얻는다면 참여하는 사람은 금방 늘 것이이다. 제4지대는 인적 구성으로 보면 새누리당이라는 보수적 가치에 기반을 두고 정치해온 사람이 중심이 될 것이다.

대선 출마 가능성은 여전한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을 염두에 두는 순간 엉뚱한 행동을 하게 돼 있다. 탈당하는 순간 “이대로 정치를 그만해도 된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얼어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네트워크형 새 정당 만들겠다” 보수에 위기를 극복할 방안이 있을까.

새누리당은 해체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고 반성해야 한다. 국가 시스템을 무력화할 수 없도록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사교육과 부동산 가격, 대출이자 등의 문제에 대해 생활에 와닿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

박 대통령은 탄핵 국면에서도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이고 있다.

당에서 가장 먼저 반대를 표시한 게 나였다. 보수의 가치는 자유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국정교과서는 다양한 해석을 하나로 획일화한다. 보수의 가치와 정반대로 가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여전히 ‘세월호 7시간’에 대해 명쾌한 해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이 여러 가지 합리적인 의심을 하는 것이다. 국정조사와 특검이 진실을 밝힐 수도 있다. 이미 국민은 대통령이 세월호 7시간을 스스로 고백하리라는 기대를 접었고, 이젠 거두절미하고 퇴진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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