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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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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수소폭탄

북한 4차 핵실험 강행, 히로시마 원자폭탄보다 수천 배 강한 폭발력 주장. 일본 재군사화 명분 제공… 국내 이슈도 강경 보수 분위기로 뒤덮일 듯
등록 2016-01-12 05:35 수정 2020-05-02 22:17

2016년 1월6일. 우려는 현실이 됐다. 이날 오전 10시(북한시각) 북한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남쪽 갱도 쪽에서 진도 4.8 규모의 인공지진이 발생했다. TNT 폭약 6~7킬로톤(kt·1천톤) 위력의 대규모 폭발에 따른 것으로 추정됐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이 단행된 것이다.
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당중앙은 수소탄 시험을 승인한다”는 핵실험을 허락한 지 3일 만이었다. 당시 김 위원장 앞에는 “수소탄 시험 준비가 끝났음을 보고드립니다”라는 보고서가 놓였다. 지난해 12월15일 김 위원장이 수소탄 실험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대로였다. 김 위원장은 “2016년 1월6일 (실험을) 단행하라”는 글과 함께 자필로 서명했다. “2016년의 장엄한 서막을 첫 수소탄의 장쾌한 폭음으로 열어제끼라”는 지시도 내렸다.

북한이 지난 1월6일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은 1월3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당중앙은 수소탄 시험을 승인한다”고 서명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지난 1월6일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북한 <조선중앙텔레비전>은 1월3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당중앙은 수소탄 시험을 승인한다”고 서명하는 모습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진도 4.8 규모 지진

국제사회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1월6일 15개 이사국이 참여한 비공개 긴급회의 뒤 “북한의 핵실험은 안보리 결의안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안보리는 북한이 (3차 이후) 추가 핵실험을 하면 중대한 제재를 가하기로 한 상태다. 안보리는 이같은 상황을 고려한 제재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 백악관과 중국 외교부도 논평을 통해 “북한이 국제사회의 반대를 외면했고, (이 문제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의무를 이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이 ‘수소폭탄 개발의 완전한 성공’을 과시하고, 국제사회가 수소폭탄 제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상상을 넘는 살상 능력 때문이다. 수소폭탄의 위력과 위험성은 원자폭탄과 비교하면 알기 쉽다.

1945년 8월6일 아침 8시15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 ‘리틀보이’는 단숨에 6만 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갔다. 핵폭탄이 떨어진 곳의 주변 온도가 최대 4천 도까지 치솟았다. 열이 주위로 번지면서 반경 1.5km에 서 있던 건물들이 줄줄이 주저앉았다. 열의 여파로 증발된 수분이 다시 검은 비로 쏟아졌다. 리틀보이는 ‘우라늄235’ 60kg을 품었지만, 이 가운데 1% 정도에 불과한 700g만 실제로 핵분열했는데도 믿기 어려운 위력을 보였다. 사흘 뒤, 나가사키에 또 다른 원폭 ‘팻맨’이 떨어졌다. 한국인 4만여 명을 포함해 추가로 20만 명이 숨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에 투하된 두 기의 원자핵폭탄 위력은 각각 TNT 2만톤 규모로 추정된다. 그런데 제대로 된 수소폭탄의 경우, 위력은 TNT 1천만톤을 넘는다. 1952년 11월, 미국이 실험한 수소폭탄 ‘아이비 마이크’의 폭발력이 TNT 1040만톤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나가사키 원폭 때와 견주면, 산술적으로는 한번에 1억 명 이상을 살상할 수 있는 살인무기다.

미국과 군비경쟁을 벌이던 소련이 8년 뒤 실험에 성공한 수소폭탄 ‘차르봄바’는 공포 그 자체였다. 1961년 10월30일 실험 결과, 폭발력이 TNT 5800만톤에 이르렀다.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3천 배에 가깝다. 폭발 충격으로 지진파가 지구를 세 바퀴나 돌았다. 실험 지역에서 1천km 떨어진 핀란드에서 유리창이 깨졌고, 100km 지점 밖에서 핵실험에 노출된 사람이 3도 화상을 입었던 사실도 나중에 알려졌다.

수소폭탄, 상상을 넘는 살상능력

수소폭탄은 이름에서 ‘물폭탄’ 같은 느낌을 주지만, 정확히는 수소 원자의 ‘핵융합’ 반응을 이용한 원자핵폭탄이다. 수소 원자의 특성은 남성보다 더 강인한 여성적 에너지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작은 원자핵끼리 서로를 끌어안는 순간, 질량이 줄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내는 성질이 있다. 이런 반응을 핵융합이라고 한다. 지구까지 1억4400만km를 넘어 빛과 열기를 보내는 태양에너지가 수소(또는 헬륨)의 핵융합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걸 무기화하면 공포스러운 살상무기가 된다. 수소의 동위원소 가운데 중수소, 삼중수소가 있다. 같은 계열이지만, 다른 성질을 띠는 일종의 ‘배다른 형제’라고 보면 된다. 특히 삼중수소는 강력한 핵융합 성질을 보이기 때문에 수소폭탄 개발에 필수 재료로 꼽힌다. 북한이 삼중수소를 직접 생산했거나 국제 암거래를 통해 확보했는지에 국제사회가 촉각을 세우는 이유도 실제 수소폭탄 개발 여부를 가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1~3차 북핵 실험이나 일본 원폭 때 원료로 쓴 우라늄(U-235)이나 플루토늄(PU-239)은 ‘맞고 깨질수록’ 강해지는 남성적 에너지다. 우라늄 계열인 이들 원자핵 하나를 중성자로 때리면, 원자핵이 반으로 갈라지면서 2억4천만 전자볼트의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수소폭탄이 원자끼리 끌어안으면서 에너지를 쏟아내 ‘핵융합형’으로 불리는 반면, 우라늄 계열 원자폭탄이 ‘핵분열형’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대규모 핵분열이 점진적으로 일어나게 통제하면 원자력발전소에서 전력원이 된다. 하지만 핵분열이 제어되지 않고 날뛰면 원폭처럼 무시무시한 전쟁무기로 변한다. 우라늄은 원석을 기체로 농축한 뒤 다시 고체 상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얻을 수 있다. 또 다른 원폭 재료인 플루토늄은 원자로에서 사용한 우라늄 핵연료나 폐연료를 질산 같은 화학품으로 재처리하는 ‘퓨렉스’ 공법을 거쳐 얻을 수 있다. 핵분열을 일으키기 위해 우라늄이 20kg 이상 필요한 반면, 플루토늄은 8kg 정도면 핵무기 하나를 제조할 수 있다.

북한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수소폭탄을 실제 제조했는지에 대해서는 분석이 엇갈린다. 북한은 이날 성명을 통해 “새롭게 개발된 시험용 수소탄의 기술적 제원들이 정확하다는 것을 완전히 확증하였으며 소형화된 수소탄의 위력을 과학적으로 해명하였다. 수소탄 시험이 가장 완벽하게 성공함으로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수소탄까지 보유한 핵보유국의 전렬에 당당히 올라서게 되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실험에 따른 폭발력은 6~7kt으로 추정되고, 인공지진 규모도 진도 4.8 정도로 측정되고 있다. 북한이 분열형 핵폭탄을 실험했던 3차 때(6~7kt·진도 4.9)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수치다.

수소폭탄 제조에 필요한 삼중수소나 리튬6 같은 물질이 국제적 수출입 통제 품목으로 분류된 점도 수소폭탄이 아닐 것이란 추정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들은 불법 무기 시장에서도 소량만 거래되고, 그나마 아주 고가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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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진짜 수소폭탄을 만들었나

이 때문에 이번 핵실험이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중간 단계인 ‘증폭핵분열탄’의 일종일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증폭핵분열탄은 말 그대로, 위력을 끌어올린(증폭) 우라늄 계열 원자폭탄(핵분열탄)이란 뜻이다. 폭발력을 증폭시키기 위해 원자폭탄에 핵융합 기술을 일부 더하는 방식이다. 기술적으로는, 우라늄과 플루토늄 기폭제를 사이에 두고 안쪽은 핵융합 원료(중수소·삼중수소)를, 바깥쪽은 고성능 화약으로 둘러싸 만든 핵폭탄이다.

그렇다면 실제 북한은 수소폭탄을 만들 수 있을까? 국방부 직할부대인 국군화생방방호사령부(국군화방사)는 1월3일 낸 ‘합동 화생방 기술정보’ 보고서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새로 갱도를 굴착하는 활동이 핵융합 무기 실험을 위한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풍계리에 있는) 원자로와 연결된 소형 건물은 삼중수소 분리 시설로 추정할 수 있고, 신축 중인 경수로와 그 아래 건축물이 중성자를 조사(내리쬠)할 수 있는 시설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어 국군화방사는 “현재까지 핵기술 연구와 지하 핵실험, 발사체 실험, 핵 소형화 기술력 구비, 핵개발 경과 기간 등을 고려할 때 북한은 핵융합 무기 기반을 갖추고 있다”며 “북한이 삼중수소를 제조하면 증폭핵분열탄과 수소폭탄 개발의 길을 연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통일연구원도 2014년 ‘북한의 핵전력과 한국의 대응전략’에서 “북한이 삼중수소를 대량생산하기 위한 시설로 (3년 전 재가동을 선언한) 영변에 있는 5MWe 흑연감속로가 단연 유력한 후보”라며 “북한이 삼중수소 생산의 핵심 원료인 리튬6을 확보하는 데 어떤 기술적 장벽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북한은 이미 2003년 시작된 제2차 과학기술발전 5개년 계획에서 국가과학원 연구과제로 ‘중수소·삼중수소 핵융합’과 ‘리튬6을 천연 리튬에서 분리하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2010년 이미 3천 명에 이르는 핵 관련 전문 인력을 두고 전력을 기울인 만큼 상당한 기술력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북한 발표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소형화된 수소탄의 위력을 과학적으로 해명하였다”고 밝힌 대목이다. 핵탄두는 미사일에 실려 빠르고 멀리 이동해야 실전 무기화할 수 있다. 북한은 2012년 12월 장거리로켓 ‘은하3호’ 발사에 성공했다. 사거리가 1만km에 이르러 사실상 바다를 넘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취급을 받는다.

이번 ‘수소탄’은 적어도 원자탄 수준의 폭발력을 인정받고 있다. 북한이 탄두 무게를 500~600kg가량으로 낮추는 경량화에 이어 소형화까지 성공한다면, 머잖아 은하3호에 실을 수도 있다. 결국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보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2014년 는 북한이 플루토늄 40여kg을 보유했고, 고농축우라늄 제조와 핵무기 탄두 소형화 능력에서도 상당한 능력을 갖췄을 것으로 내다봤다.

유엔, 추가적인 중대 조처 예고

북한의 핵실험은 이번이 네 번째다. 2006년 10월9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 지하 동굴을 뚫어 만든 핵실험장 동쪽 갱도에서 첫 핵실험이 이뤄졌다. 당시 북한 외무성은 실험을 6일 앞두고 성명을 통해 “안정성이 철저히 담보된 핵시험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2009년 5월과 2013년 2월, 추가 핵실험이 이뤄졌다. 모두 “군사적 자위 조처”를 명분으로 했다. 핵실험 당시 폭발력은 1차 때, 1kt 수준이었다. 2·3차 때는 2~6kt, 6~7kt으로 강도를 높였다. 인공지진 규모도 3.9→4.5→4.9로 점점 커졌다. 실험 원료는 플루토늄에서 고농축우라늄(추정)으로 확대됐고, 핵실험장도 당초 풍계리 핵실험장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역을 넓혀왔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도발적인 핵실험 때마다 유엔 안보리를 중심으로 강력한 대응을 해왔다. 1차 핵실험 때는 유엔결의안(1718호)을 통해 북한에 무기 및 관련 품목과 사치품 공급·판매를 금지했다. 북한을 오가는 선박을 상대로 금지 물품을 적재했는지 확인하는 검색도 강제됐다. 특히 이런 제재를 위반하는 다른 국가의 개인·단체(기업)에도 금융·경제적 제재 조처가 취해졌다.

2차 핵실험 때도 유엔의 제재 결의안이 채택됐다. 북한은 무기의 수출입과 이전, 대량무기살상 개발에 관련된 금융거래, 무상원조와 외국에서 돈을 빌려올 길이 차단됐다. 3차 핵실험 때는 대량살상무기와 관련된 금융거래 금지를 강제화하고, 경주용 자동차와 고가 보석 같은 사치품의 수출입을 막아 북한 고위층을 직접 겨냥했다.

이번에도 유엔은 ‘추가적인 중대 조처’를 예고했다.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의 기업이나 개인들이 미국 금융기관과의 거래를 금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등이 거론된다. 중국이 제재에 동참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국내외 정치에도 북핵 실험이 있을 때마다 격랑이 몰아쳤다. 1차 핵실험 때는 참여정부의 포용정책이 유지되던 시기였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핵실험 뒤 “포용정책, 대화만 계속하자고 주장하기 어렵게 됐다”고 했다. 국제적으로는 일본이 추진하던 미사일방어(MD) 체제 가속화에 명분을 줬고, 미국은 일본과 함께 “북한의 돈줄을 끊고 화물을 제한하겠다”며 더 완고한 자세로 돌아섰다.

2차 핵실험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2009년 5월23일)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단행됐다. 북한이 핵협상과 관련해 ‘미국의 무시 전략’을 단숨에 전환해보려는 의도로 비쳤다. 이명박 정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을 뺀 남쪽 인원의 방북 중단”을 선언했다. 정부는 이튿날 대량파괴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를 선언했고, 남북관계는 벼랑 끝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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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3개월 앞두고 터진 4차 핵실험

3차 핵실험은 김정은 체제에서 첫 핵실험이었다. 북한은 “미국이 끝까지 적대적으로 나오면서 정세를 복잡하게 만든다면 보다 강도 높은 2차, 3차로 대응할 것”이라며 의도를 분명히 했다. 국내에선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 조작 논란에 대한 관심이 북핵 문제로 상당 부분 희석됐다. 국제적으로는 미국이 국제 공조로 북한 제재에 나서고, 일본은 대외 강경 노선과 군사화에 힘을 받는 4년 전 상황이 되풀이됐다.

이번 4차 핵실험은 국내 총선을 3개월여 앞둔 시점에 이뤄져 촉각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1월8일 낮 곧바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고, 새누리당 쪽에선 ‘핵무장론’까지 나오는 등 강경 보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부 장관과 긴급대책회의를 한 뒤 공동 언론발표문을 내어 “북한의 무모한 이번 도발은… 용납할 수 없는 도발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도발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밝혔다. 한 장관은 특히 핵사용 억지를 위한 선제적 공격을 뜻하는 ‘킬체인’(Kill Chain)을 거론하며 북한을 압박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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