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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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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 지지자는 ‘화합의 유인구’를 원한다

문-안 두 사람을 둘러싼 여론의 흐름… 어느 한쪽 찍어누르는 데 동의하지 않아, 사랑받았을 때는 덧셈을 보여주었을 때
등록 2015-09-22 07:28 수정 2020-05-02 19:28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부산 시내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함께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2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부산 시내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함께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보수는 많은 부분이 달라도 하나만 같으면 우리 편이지만, 진보는 많은 부분이 같아도 하나만 다르면 적이 된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보수가 부패로 망할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의 진보를 보면 분열과 이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망하는 방향으로 달려간다는 견해가 다수설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이런 다수설에 또 하나의 논거를 보태고 있다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 안 의원은 당의 혁신 방안이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며 정풍운동을 할 기세다. 문 대표는 자신의 재신임 여부를 국민과 당원에게 묻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두 사람의 불편한 동행은 내년 총선을 앞둔 새정치연합에 어떤 결말을 가져올까.

안 vs 문, 새 정치 vs 국정 운영에 대한 기대

한국갤럽이 지난 9월11일 발표한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조사에서 문 대표는 전체 응답자의 12%(3위), 안 의원은 9%(4위)를 얻는 데 그쳤다. 안철수 의원은 ‘신당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한때 지지율이 32%까지 올라갔지만, 2013년 민주당에 입당하면서 급전직하했다. 올해 당대표로 취임하면서 25%까지 올라간 문 대표의 지지율도 4·28 재·보궐 선거 참패 이후 크게 떨어졌다. 2012년 두 사람이 야권의 대통령 선거 후보 자리를 놓고 경쟁하며 받았던 국민의 기대는 사라진 것일까. 이 물음에 다가가기 위해 두 사람을 둘러싼 여론의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2012년 대선 상황으로 돌아가봐야 할 것 같다. 당시 여론조사기관 미디어리서치에서 진행한 조사 가운데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를 각각 지지한다고 응답한 층에게 지지 이유를 물은 항목이 있었다. 문 후보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정 운영에 대한 기대’(49%)로 나타났다. 안 후보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새 정치에 대한 기대’(60%)였다. 안정감과 국정 능력이 문 후보의 지지율을, 새 정치와 변화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안 후보의 지지율을 떠받치는 요인이었다. 이 요인은 두 후보와 유권자 사이를 튼튼하게 연결해주는 고리이자, ‘다른 역량과 대체 가능하지 않은’ 핵심 역량이었다. 이러한 핵심 역량이 지금도 건재할까.

안 의원이 새 정치를 위해 신당을 창당하겠다는 계획을 포기하고 민주당에 입당할 때부터, 문 대표가 당의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면서부터 여론이 두 사람에게 기대했던 핵심 역량이 서서히 소실되기 시작했고, 지금도 소실되는 중이다. 국민의 기대를 받던 정치 리더의 역량 소실은 대한민국의 정치적 자산까지 잠식한다는 측면에서 국민에게도 손해이며 해당 정치인에게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일까. 이를 만회하기 위한 두 사람의 행동이 분주해 보인다. 며칠 전 안 의원은 새정치연합을 탈당하고 호남 맹주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천정배 의원(무소속)과 회동했다. 지금은 당의 혁신 방향 등을 놓고 문 대표와 첨예하게 각을 세우고 있다. 문 대표 또한 당의 장악력을 높이기 위해 재신임 투표라는 초강수를 뒀다. 마치 타협이 없는 ‘치킨게임’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원래 싸움은 이기는 자가 승리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문재인과 안철수의 싸움’도 그럴까.

세간에선 문 대표의 지지층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층에서, 안 의원의 지지층을 1992년 대선 당시 정주영 후보부터 이인제·정몽준·문국현으로 이어지는 탈정치적 제3후보의 지지층에서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2012년 9월, 여론조사기관인 유니온리서치에서 실시한 조사 결과는 이러한 분석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의 지지층 비슷하게 양분

당시 조사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두 후보의 지지층 사이의 상관성을 알아보는 ‘회귀분석’을 시도했는데, 문재인 후보가 0.27, 안철수 후보가 0.25로 대등한 수치를 나타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상관성도 알아봤는데 안 후보가 0.12, 문 후보가 0.09를 기록했다.

이는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두 전직 대통령(김대중·노무현)의 지지층을 비슷하게 양분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처럼 두 사람은 처음부터 야권의 지지층을 독점하지 않고 나눠가졌는데, 두 사람이 각을 세우는 요즘 들어 야권 유권자층의 지지가 똑같이 빠지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 대목을 보려면 3년이 지난 지금도 ‘김대중·노무현 지지층’이 문재인과 안철수란 정치인을 비슷하게 지지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9월 둘쨋주에 실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여론조사는 이 물음의 답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자료를 제공한다. 이 조사를 보면, 야권의 정치인 중 ‘김대중, 노무현 정신을 잘 계승할 인물은 누구인가’란 물음에서 문재인 대표(23%), 박원순 서울시장(22%), 안희정 충남도지사(12%), 안철수 의원(7%)의 순으로 결과가 나타났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배출한 당의 대표이자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 대표가 1위를 차지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엔 수치가 압도적이지 않다. 안 의원도 2012년에 비해 초라해진 결과다.

특히 야권에서 지도자가 되려면 거쳐야 하는 첫 번째 관문인 호남 유권자의 평가는 두 사람에게 더 냉혹했다. 같은 조사에서 호남 지역 응답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잘 계승할 인물’에 대해 안희정 지사(29%), 박원순 서울시장(25%), 문재인 대표(20%), 안철수 의원(7%)의 순으로 응답했다. 협력적 경쟁을 펼쳤던 2012년과 달리, 치킨게임을 벌이는 두 사람에게 야권의 핵심 지지자들이 조금씩 등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다수의 국민은 외환위기 사태라는 국가 대란을 극복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정 능력을,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극복하려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열정과 희생의 덕목을 긍정적으로 보는 면이 있다. 김대중·노무현 이후 문 대표와 안 의원에게 투사했던 이런 능력과 열정의 기대가 지금은 옅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두 사람이 새정치연합의 내홍 한복판에서 보여주는 정치 행보를 여론은 어떻게 바라볼까. 여론조사기관인 우리리서치는 지난 9월15일 새정치연합 내분과 관련해 여론조사(전국 성인 700명 대상. 휴대전화 자동응답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7%)를 실시했다.

문재인 재신임 제안, 당 지지 따라 확연한 차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호남 지역 유권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계승할 야권 정치인’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안희정 충남지사를 주요하게 꼽았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최근 여론조사에서 호남 지역 유권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신을 계승할 야권 정치인’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안희정 충남지사를 주요하게 꼽았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먼저 ‘안철수 의원이 당 혁신 방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 ‘공감한다’는 여론(48%)이 ‘공감하지 못한다’는 여론(37%)보다 우세했다. 또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투표 제안’에 대해 ‘공감한다’는 여론(35%)보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여론(51%)이 더 높았다. 하지만 새정치연합 지지층만 떼어내보면, 문 대표의 재신임 투표에 ‘공감한다’는 여론(46%)이 ‘공감하지 않는다’는 여론(40%)보다 앞섰다.

이번 조사는 여론이 두 정치인(문재인·안철수) 가운데 한 명에게 일방적으로 힘을 실어주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 대표가 새정치연합의 혁신을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안 의원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재신임 투표’를 통해 당의 내홍을 수습하려는 문 대표의 결단에도 공감하는 여론이 혼재돼 있다. 2012년에 비해 두 사람(문재인·안철수)에 대한 지지도가 꺾였지만, 여론은 여전히 두 사람이 각각의 역할을 하는 ‘보완적 관계’로 바라보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커맨드가 좋은 선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평균 기량을 꾸준히 발휘한다. ‘문재인 투수’와 ‘안철수 투수’는 삼진아웃을 잡아내기 위해 재신임 투표와 당 혁신안 반대 주장을 결정구로 활용하려는 듯 보인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에 대한 팬들의 기대도 커지고 있다. 이 가을 잔치에 초대받기 위해 치열한 순위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요즘 야구 해설자가 순위 다툼의 최전방에 선 투수를 평가할 때, ‘저 투수는 커맨드가 좋다’, 또는 ‘로케이션이 좋다’는 말을 자주 한다.

‘커맨드가 좋다’는 말은 투수가 자신이 원하는 곳에 언제든지 공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정치인에 비유하면 커맨드가 좋은 정치인은 시대 과제와 자신의 삶의 궤적이 맞닿아 있는 정치인이다. 역할이 분명한 정치인이다. 반면 ‘로케이션이 좋다’는 말은 투수가 볼카운트, 주자 유무, 타자의 특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어떤 공을 던져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정치인에 비유하면 임기응변이 좋은 정치인이다. 문 대표와 안 의원은 어떤 종류의 투수여야 할까.

정치인에게 로케이션과 커맨드는 모두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만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커맨드다. 커맨드가 좋은 선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평균 기량을 꾸준히 발휘한다. 그래서 선수 생명도 길다. ‘문재인 투수’와 ‘안철수 투수’는 삼진아웃을 잡아내기 위해 재신임 투표와 당 혁신안 반대 주장을 결정구로 활용하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보다는 당내 화합을 위한 유인구를 던져보면 어떨까.

누가 커맨드 좋은 투수로 거듭날까

2012년에 비해 두 사람에 대한 여론의 시선이 조금 차가워지긴 했지만, 적어도 야권 지지층의 여론 흐름을 보면 어느 한쪽을 찍어누르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고 있다. 두 사람이 국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을 때도 2012년 대선 후보 야권단일화라는 덧셈의 과정을 보여줬을 때다.

정치는 개인 종목의 경기가 아니라 팀 경기다. 부족한 선수, 다친 선수, 새로 들어온 선수가 힘을 합쳐야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 만약 혼자만 잘하려고 애쓴다면, 나머지 사람들과 불편한 동행이 될 수밖에 없다.

내년부터 한국 정치의 코리안 시리즈 3연전이 시작된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가 연달아 기다리고 있다. 각 구단의 선발투수들은 3연전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할 것이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선발투수는 당대표였던 안 의원이었다. 지금은 문재인 대표가 선발투수다. 내년 4월 총선이 지나면 두 사람은 대선을 향해 기다리는 불펜 대기 투수가 될 것이다. 불편한 동행을 하고 있는 두 사람 가운데 누가 ‘커맨드가 좋은 투수’로 거듭날지는 지금부터 보여줄 두 사람의 정치적 역량에 달려 있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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