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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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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제로만 풀기 힘들다”

비정규직법 틀 만들었던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비정규직 문제는
대·중소기업 문제 포함한 노동시장 이중 구조 개선”에 방점 찍어야
등록 2015-03-25 08:44 수정 2020-05-03 00:54

기간제·파견노동자(35살 이상)의 사용 기한을 2년에서 4년으로 늘리고 파견 업종을 확대하는 등의 내용을 뼈대로 하는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지난해 말 전 국민을 깜짝 놀라게 했다. 노동계는 고용불안만 2년 더 연장하는 효과를 가져올 거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비정규직들 사이에선 걱정이 커졌다. 정부가 던지고 노동계가 발끈해 뜨겁게 불거졌던 비정규직 종합대책 논란은 이후 다시 잠잠해진 상태다.
정부가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철회해서가 아니다. 대책안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노사정위 특위)로 논의장을 옮겨 숨고르기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노사정위 특위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등 경영계와 한국노총 등 노동계, 정부 3자로 구성돼 3월 말을 시한으로 잡고 활동 중이다. 여기서 합의안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활화산’이 될지 ‘휴화산’이 될지 갈리게 된다.

비정규직 대책, 활화산이 될 것인가

그 갈림길 위엔 특위를 주관하는 김대환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이 있다. 김대환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때 노동부 장관을 지내며 현재의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비정규직법)의 틀을 만들었다. 당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강경한 퇴진 요구 속에 자리를 떠났던 그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뒤 노사정위원장으로 다시 발탁됐다.

3월19일 김대환 위원장을 서울 정부종합청사 노사정위원장실에서 1시간 남짓 만났다. 김대환 위원장은 거침없이 답변을 이어가는 중간중간 ‘입체적’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정규직에 견줘 낮은 처우를 받는 비정규직이 사회적으로 확산되는 문제는 ‘비정규직 종합대책’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고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김대환 위원장은 노동부 장관일 때나 노사정위원장일 때나 자신의 가장 큰 과제가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대책을 어떻게 생각하나.

비정규직 대책만으로는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해결할 수 없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는 잘 알다시피 중층적이다. 정규직-비정규직 이중 구조가 있는가 하면 더 밑바닥에는 대기업-중소기업이 서로 교차돼 있다. 2014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결과를 보면, 평균 임금수준이 가장 높은 게 대기업 정규직이다. 두 번째는 중소기업 정규직이 아니라 대기업 비정규직이다.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이보다 훨씬 낮다. 이 문제는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현대자동차를 취재하면서 협력업체의 임금수준이 현대차 비정규직보다 낮은 경우를 봤다.

노동부 장관을 할 때 대학생들이 왜 중소기업에 안 가는지 실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면담을 했다. 분위기가 풀리니까 남학생들이 중소기업에 가면 장가가기 힘들다고 말했다. 지어낸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문제의 핵심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에 임금 등 격차가 큰) 노동시장 이중 구조에 있다. 대기업 직원이 되어야 주위에서 인정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게 상징적이긴 하지만 굉장히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대·중소기업의 격차 완화와 (납품단가 문제 등) 원·하청 사이의 공정성 확보 방안을 다뤄야 한다. 거기서부터 해야지, 노동문제를 노동문제로만 풀려고 하면 힘들다.

대·중소기업 격차 완화부터 다뤄야
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옮겨가는 사다리가 끊겼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단시간 근로자에 관한 법률을 입안할 때 기간 제한을 두고 고심을 많이 했다. 정확한 수치는 기억이 안 나지만, 3년 정도 하면 (비정규직 가운데) 절반 정도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라고 봤다. 그게 국회 협상 과정에서 2년으로 줄었다. 원래 이 법은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는 디딤돌로 삼고자 하는 게 취지였다. 법안의 취지에 충실하기보다 이를 우회하고 편법적으로 비정규직 형태를 유지하려는 사용자 쪽의 전략적인 대응이 있었다. 취지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편의적으로 운영된 게 아쉽다. 사용자 기업인들의 탐욕이라 매도할 수 있지만 또 나름 사정이 있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 때문이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비정규직법이) 디딤돌이 되기보다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에서 비정규직 대책을 얘기했을 때 미봉책이라 비판도 했다. 정부가 정성을 다하라는 주문이었다.

김대환 위원장은 노동시장 이중 구조 문제를 강조했다. 노동부 장관 때 생각했던 가장 큰 개혁 과제도 노동시장 이중 구조 문제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수준과 고용안정이 큰 폭으로 벌어진 노동시장 이중 구조를 “그때는 해소라고 했지만 이제는 완화”해야 한다고 표현했다.

같은 과제를 이어오고 있다.

더 절박한 문제가 됐다. 일부라도 개선됐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텐데, 10년 동안 더 악화됐다.

더 악화된 이유는 무엇인가.

경제가 불확실하면 각개약진하게 된다. 강자는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나아간다. 그 차이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게 상징적이긴 하지만 굉장히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대·중소기업의 격차 완화와 (납품단가 문제 등) 원·하청 사이의 공정성 확보 방안을 다뤄야 한다. 거기서부터 해야 한다”
노동부 장관일 때 노동시장 이중 구조 문제를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비정규직 기간 제한을 만드는 선에서 법이 만들어졌기 때문 아닌가. 위원장이 비정규직 문제에 책임이 있다는 노동계의 비판도 있다.

기본적인 방향은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은 유연화를 도입하고, 중소기업·비정규직은 보호를 강화하는 차별적인 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법으로 정규직 등 상층부를 유연화하는 건 제약돼 있다. 기업에 임금을 깎으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법적·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건 취약계층 보호·지원이었다. 그런데 국회 협상 과정에서 법안이 원점으로 돌아갔고, 시간을 끄는 바람에 정규직에 대한 조처가 부족했다. 걸핏하면 하향 평준화라고 하는데 절대 아니다. 상층부는 임금이 높고 고용도 탄탄하니 더 나아가지 말고, 그사이에 취약계층을 지원해 사회·경제적 지위를 올리자는 것이었다.


좀처럼 터지지 않는 대화의 물꼬


두 위원장의 엇갈린 요구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비정규직·통상임금 등 노동 현안이 잔뜩 올라와 있지만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특별위원회에는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정책 기조를 안 바꾸면 노사정위가 어려운 것 아닌가”라며 그 생각의 일단을 내비쳤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은 한상균 위원장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기에 앞서 먼저 특위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계가 보통 빈손으로 대통령만 만나고 싶어 한다. 의제를 먼제 제안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바로 대통령을 만나자고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김대환 위원장은 2004년 노동부 장관 시절 민주노총 집행부와 노무현 대통령의 면담을 주선한 적이 있다. 당시 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과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의 면담을 적극 주선하겠다”고 했고, 한 달 뒤 이 위원장은 청와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절 노-정 관계가 순탄하게 풀린 것은 아니었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아직 서로 만난 적도 없다. 한상균 위원장은 “노사정위로부터 만나자는 요청을 받은 적도 없고 만나자는 요청을 한 적도 없다”고 했다. ‘사회적 대화’를 내건 노사정위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1999년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한 위원장은 “노사정위에서 논의를 하는 것은 정부를 위한 명분을 만들어주는 과정일 뿐”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에 대해 “어떤 개선 방안이 있는지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에 들어와서)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 노사정위 구조는 취약한 부분이 있다. 예컨대 노동계는 이른바 조직된 근로자만 대변하는 쪽이 되어 있고, 경총과 대한상의도 사용자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 참여주체를 노동계의 비정규직과 청년까지 확대하고, 사용자 가운데 소상공인까지 확대하는 법률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라고 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김대환 위원장은 “노사정위원장으로서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것은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비정규직 사용 기한 연장 등을 반대하고 있지만, 노동계 쪽의 신뢰를 얻기엔 아직 부족하다. 노사정위원장으로서 중요한 것은 노사 양쪽의 신뢰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전날 과의 인터뷰에서 “노사정위를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중 구조 “10년 동안 더 악화”
3월 말까지 노사정위 타협은 마무리될 수 있을까.

3월 말은 노·사·정 대표들이 합의하고 약속한 날짜다. 3월 말까지 무엇이 되겠냐고 자꾸 묻는데, 나에게 묻지 말고 노·사·정 대표를 향해 약속을 지키라고 얘기해달라.

노사정위에 한국노총만 들어와 있다. 민주노총이 빠졌는데 의미가 있는 협의인가.

민주노총의 참여 문제는 민주노총의 선택이다. 한국노총이 일단 노동계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내가 알기로는 양 노총 사이에 소통과 교류가 빈번하다. 민주노총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참여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런 경로를 통해 자신의 요구를 관철할 수 있다. 대표성과 정당성 문제에서 결함 사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사정위에서 논의되는 통상임금·정년연장·근로시간 단축 등 정규직 노동자의 관심을 끄는 기사는 많이 나오는데, 비정규직 대책에 대해서는 말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 노사정위 구조 때문에 비정규직 대책이 소외돼 있지 않나.

비정규직 대책을 포함해 노동시장 이중 구조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고 노사정위에서 핵심적인 문제다. 특위 2차 워크숍(3월17일)에서 과제가 제출됐고, 전문가그룹에서 불철주야 논의하고 있다. 다음주 화요일(3월24일)에 열리는 특위에 보고된 뒤 적절한 시점에 언론에 설명할까 생각하고 있다.

아무도 ‘노사정위’를 떠올리지 않았다

김대환 위원장은 2004년 2월 노동부 장관이 되자마자 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을 “노동자의 친구”라고 표현했다. 다시 ‘노동자의 친구가 맞느냐’고 물었다. 김 위원장은 “친노동이라고 해도 부인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친구라는 말은 잘못 전달될 수 있는데, 노동계의 여러 여건에 항상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로 친노동이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설문조사 결과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노사정위를 떠올리는 노동자는 아무도 없었다.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는 서울 정부종합청사에 입주한 노사정위원회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이완 기자 wani@hani.co.kr·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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