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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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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편이 불러올 놀라운 도미노

득표-의석 간 비례성이 보장된다면 다당제로 바뀌고, 포용정치 실현돼 복지사회 건설될 것…
2016년 도입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새정치에 기대를 걸어본 만
등록 2015-02-15 02:47 수정 2020-05-02 19:27
정치 전문가들 가운데서는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누리당으로 대표되는 현재 한국의 보수 양당체계가 좋은 정치체계라고 얘기하는 이가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두 당은 공고화된 보수 양당체계를 중심으로 건설적인 정책 대결이 아닌 감정 섞인 싸움만을 벌이는 양극화 정치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민주화가 이뤄진지 28년이 흘렀지만 1987년 민주화운동 당시에 시민들이 열망했던 민주적인 정당체계를 만드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계 안팎에서는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신생 정당이 생겨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하나의 방법으로서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두 기득권 정당들이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 불리한 방향으로 제도를 개혁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를 현실화할 수만 있다면 이 개혁이 ‘제1기 민주주의’의 실패를 극복하고 ‘제2기 민주주의’를 건설하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_편집자


지난해 10월 헌법재판소는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의 인구 편차가 3 대 1에 달하는 것은 위헌”이라며 2015년 12월까지 그 편차 가 2 대 1을 넘지 않도록 선거구를 다시 획정해야 한다고 했다. 헌재의 판결에 따라 조정되어야 할 선거구는 무려 62개에 달한다. 그 조정 과정에선 각 해당 선거구의 주변 선거구들까지 거의 모두 손질해야 하므로, 이는 결국 나라 전체에 걸친 대대적인 선거구 개편 작업이 불가피해졌음을 의미한다.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기득권 정당 출신도

이같은 상황이 되자, 그동안 수많은 문제를 노정해온 현행 선거제도 자체를 이참에 아예 개혁하자는 주장이 분출하고 있다. 사실 ‘1987년 체제’라고 불리는 지금의 승자독식 체제를 폐하고 민의 반영에 뛰어난 합의제 정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1등에게만 정치권력을 몰아주는 선거제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은 이미 여러 개혁 정치가들로부터 제기돼온 터였다. 거기엔 노회찬·심상정·장석준·하승수 등 군소 진보정당 소속 정치가들만이 아니라 김두관·김성식·손학규·안철수·우윤근·원희룡·원혜영·정동영·정의화·정태근·천정배 등 양대 기득권 정당 출신 정치가들도 포함돼있다.

독일·네덜란드·스웨덴·덴마크 등 기존 합의제 민주국가들이 보여주듯 주요 계층과 집단 모두에게 ‘정치적 대표성’이 두루 보장돼 ‘포용의 정치’가 작동하고, 따라서 ‘포용경제’와 ‘포용사회’의 발전이 촉진된다.

현재 선거제도 개혁을 위해 가장 열심히 뛰는 정치세력은 물론 정의당과 녹색당 등 이념정당들이다. 지역 기반이 취약한 이 정당들은 지역주의와 결합해 작동하는 지금의 소선거구 1위대표제(한 선거구에서 1등 1명만 당선되는 제도) 중심의 선거제도가 정당득 표율에 비례해 의석이 배분되는 독일식 비례대표제 등으로 개편돼야 비로소 유력 정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양대 정당 중 하나인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도 정치혁신실천위원회를 중심으로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의 도입에 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민사회 차원의 선거제도 개혁운동도 과거 어느 때보다 그 규모와 체계를 튼실하게 갖춰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말에 사회운동체로 출범한 ‘비례대표제포럼’은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으며, ‘제2의 민주화운동’을 표방한 ‘(가칭) 민주국민행동’도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국회의장 직속기구로 ‘선거제도개혁 국민자문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한 것은 그 자체로 정치사회의 개혁 열망이 일정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웅변한다. 모두가 크게 환영할 만한 일들이다.

지난해 11월10일 국회에서 열린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도 혁신방안’ 토론회에서 원혜영 새정치민주연합 정치혁신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정치혁신위는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의 도입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지난해 11월10일 국회에서 열린 ‘선거구 획정과 선거제도 혁신방안’ 토론회에서 원혜영 새정치민주연합 정치혁신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새정치연합 정치혁신위는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의 도입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선거제도 개혁으로 득표-의석 간 비례성이 보장된다면 지구상의 모든 비례대표제 국가들이 그러하듯 지금의 양당제는 당연히 다당제로 바뀔 것이다. 이념과 정책 기조를 달리하는 여러 유력 정당들이 부상해 어느 정당도 국회의석의 과반을 차지할 수 없는 구조가 되면, 대화와 타협을 통한 정당 간 합의 정치는 자연스레 제도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선거제도 개혁으로 ‘제2기 민주주의 시대’로의 진입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독일·네덜란드·스웨덴·덴마크 등 기존 합의제 민주국가들이 보여주듯, 그러한 정치체제에서는 사회·경제적 약자를 포함한 주요 계층과 집단 모두에게 ‘정치적 대표성’이 두루 보장되는 까닭에 ‘포용의 정치’가 작동하고, 따라서 ‘포용경제’와 ‘포용사회’의 발전이 촉진된다. 선거제도 개혁을 시작점으로 하여 이른바 복지자본주의 사회를 이 땅에 건설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2년 ‘200 대 100안’ 공약했던 문재인 후보

그러나 2016년 총선 이전에 새로운 선거제도가 도입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새누리당은 물론 새정치연합의 대다수 의원들도 자기 기득권을 위협하는 선거제도 개혁안을 순순히 통과시킬 리는 없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의원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재선 가능성을 낮출지도 모를 선거제도 개혁 작업에 적극적이었던 경우는 없다. 유의미한 개혁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언제나 국민의 개혁 여론이 강력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선거제도 개혁 여론은 여전히 미미한 상태다. 시민사회단체가 열심히 나서고 있지만, 그들만의 노력으로 충분한 개혁 여론이 조성되려면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한 가지 기대할 만한 것은 문재인 새정치연합 신임 대표의 역할이다. 그는 2012년 대선 출마 당시 ‘200 대 100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역구 의원은 200명으로 줄이고, 비례대표 의원을 100명으로 늘리겠다는 개혁안이었다. 상기한 새정치연합 정치혁신위는 이 ‘200 대 100안’을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운영해보자는 수정안까지도 검토한 바 있다. 문재인 대표가 다시금 비례대표제 개혁 열정을 되살려 국민 사이에 깊숙이 파고든다면, 그리하여 개혁 여론의 정치적 동원과 결집에 성공한다면, 그는 국민이 모아준 그 힘으로 선거제도의 개혁도 성취해낼 수 있다. 그것은 심각한 위기에 처한 새정치연합을 다시 살려내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새정치 스스로 진입 장벽을 낮춘다면

현행 선거제도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받고 있는 ‘양대 기득권 정당’의 한 축인 새정치연합이 그 선거제도를 개혁함으로써 스스로 기득권을 내려놓겠다고 할 경우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과 명확히 차별화되면서 상당한 국민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시장’의 진입 장벽을 내려 이념 및 정책 정당의 약진 기회를 제공하고(스스로도 그런 정당으로 변화하며), 그럼으로써 한국 정치체제의 정치적 대표성을 제고하려는 진정한 개혁정당이라는 평가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새정치연합은 ‘새정치’를 실현하겠다는 것을 목표로 출범한 정당이었다. 불안정한 비대위 체제를 마감한 이제부터라도 초심으로 돌아가 그 실천에 나서야 한다. 그리할 때 현재와 미래의 모든 진보정당 및 개혁파 정치세력, 그리고 시민사회와의 공고한 선거 연대 형성도 가능해질 것이다.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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