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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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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전쟁의 판도라 상자 열리다

연동화된 시리아-이라크 내전이 배태한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

문제는 이스라엘이 상대하는 건 국가가 아닌 수많은 얽히고설킨 종파라는 점
등록 2014-07-22 06:45 수정 2020-05-02 19:27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이기는 했지만, 이처럼 전쟁이 만연한 것은 처음이다.
지금 중동은 온통 전쟁터다. 중동 분쟁의 원조 팔레스타인 땅에서 시리아, 이라크까지 유혈이 낭자하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내전은 이미 연동화돼, 하나의 전장이 되었다. 여기에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가열되면서 본격적인 지상전이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7월17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지상군 투입을 감행했다. 가자지구를 당분간 완전히 점령해서 평정하려는 의중이 깔려 있다.
팔레스타인에서의 지상전은 분쟁을 주변 지역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팔레스타인 분쟁은 과거처럼 레바논으로 불똥이 튈 개연성이 높다. 이 경우 중동은 팔레스타인-레바논-시리아-이라크로 이어지는 거대한 광역전쟁의 불길 속에 휩싸일 수 있다. 고립된 별개의 전쟁이 아니라 서로 연동돼 얽히고설키는 거대한 전장이 될 수 있다.

이라크 침공으로 시작된 ‘정권의 공백’

중동에 광역전쟁의 먹구름을 끼게 하는 요인은 많다. 무엇보다 역내의 기존 국가와 정부가 몰락하거나 약화된 것이 배경이다. 이 공백을 각종 종파들이 메우고 있다. 종교·민족·부족·이념 등에 기반한 각종 종파, 정치학 용어로 말하면 ‘비국가 인자’(non-state actor)들이 각개약진 혹은 합종연횡하며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 모든 시작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중동에 잠재해 있던 모든 분쟁의 판도라 상자를 열었다. 먼저 중동에서 세력 균형의 한 축이던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이 몰락했다. 이를 대체할 체제는 들어서지 못했다. 이라크 내외에서 생긴 거대한 세력 공백은 각종 종파 분쟁으로 채워졌다.
이라크 내에서의 공백은 먼저 이슬람 종파인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쟁이 채웠다. 형식은 종교 종파 분쟁이나, 내용은 입장이 바뀐 주류와 비주류 주민 사이의 분쟁이었다. 이라크에서 소수이나 주류를 차지했던 수니파 주민들이 비주류로 밀려나자 미군에 저항하는 내란을 주도했다. 후세인 체제에 복무했던 수니파 군인과 경찰 등 보안세력, 바트당 관료 등이 내란의 불을 댕겼다. 수니파 주민들도 부족 중심으로 자기 지역에서 내란에 가담했다.
여기에 알카에다 등 국제 이슬람주의 세력인 지하디스트 무장세력들이 본격적으로 끼어들었다. 이들은 내란을 수니파 대 시아파의 본격적인 내전으로 비화시켰다. 9·11 테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멸 직전까지 갔던 알카에다는 물론 다른 국제 이슬람주의 세력도 이라크에서 회생의 기회를 찾았다.
시아파 역시 궐기했다. 시아파 이슬람주의에 영향받은 과격한 사드르군 등 시아파 민병대도 미군에 맞서 사드르시티 등에서 무장투쟁을 벌였다. 시아파 민병대는 나중에 자신들에게 도발하는 알카에다 등 수니파 이슬람주의 세력에 맞서 본격적인 내전을 벌인다. 이라크 북부의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은 후세인 체제 몰락의 공백에서 자치와 독립으로 나아갔다.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의 몰락은 중동 지역 전체에도 거대한 세력 공백을 낳았다. 세속주의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는 이 지역 세력 균형의 한 축이었다. 이란-시리아-레바논의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시아파 축을 견제하는 최전선 국가였다. 또 바샤르 아사드 정권의 시리아와 함께 중동 핵심부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을 막는 대표적인 세속주의 체제였다.

중동 7대 분쟁 응축된 시리아 내전

후세인 체제의 몰락으로 이런 힘의 균형이 붕괴되고 세력 공백이 생겼다. 이란-시리아-레바논의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시아파 연대는 이라크에서 시아파와 시아파 정부의 지원으로 세력 확장에 나섰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수니파 보수왕정들은 이에 위협을 느꼈다.

팔레스타인에서의 지상전은 분쟁을 주변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팔레스타인 분쟁은 과거처럼 레바논으로 불똥이 튈 개연성이 높다. 이 경우 중동은 팔레스타인-레바논-시리아-이라크로 이어지는 거대한 광역전쟁의 불길 속에 휩싸일 수 있다 .


2010년 말에 시작된 중동의 민주화운동인 ‘아랍의 봄’의 영향으로 시리아에서도 아사드의 독재체제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다. 사우디 등 수니파 보수왕정들은 시아파 세력 견제를 위해 개입했다. 시아파 연대의 중간축인 아사드 정권을 타도하는 데 적극 나섰다.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도 곧 개입했다. 애초 아사드의 권위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민주화 시위로 시작된 시리아 사태는 곧 중동의 모든 분쟁이 응축된 내전으로 발화됐다.
시리아 내전은 중동의 7대 분쟁이 고스란히 응축된 전쟁이 됐다. 수니파 대 시아파라는 이슬람 종파분쟁, 권위주의 체제 대 시민사회라는 민주화투쟁, 세속주의 대 이슬람주의의 분쟁, 서방 대 반서방의 분쟁, 다수민족 대 소수민족의 민족분쟁, 이슬람 대 기독교의 종교분쟁, 중동 역내 국가 간의 분쟁이다. 크게 아사드 진영 대 반아사드 진영으로 나뉘어 이 7대 분쟁이 녹아들었다.
아사드 진영은 시아파, 권위주의, 세속주의, 러시아와 중국 등 반서방, 소수민족, 이슬람, 이란-시리아-레바논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이란 진영을 대표한다. 반아사드 진영은 수니파, 시민사회, 이슬람주의, 미국 등 서방, 다수민족, 기독교, 사우디로 대표되는 수니파 보수왕정 축이 얽혀 있다.
아사드 진영은 아사드 정부를 중심으로 비교적 단일 대오를 유지하는 반면, 반아사드 진영은 각개약진하며 혼란스런 이전투구까지 벌이고 있다. 아사드 독재체제에 반대하는 시민사회, 수니파 다수 주민, 비이슬람 소수 종교 주민, 친서방 반군, 알카에다 등 반서방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이 얽혀들었다.
또 반서방 이슬람주의 세력도 알카에다와 반알카에다로 분화됐다. 당초 이라크 전쟁에서 시작된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가 이 시리아 내전에서 세력을 키우며 ‘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ISIL)로 성장했다. 이 세력이 시리아 내전에서 반아사드 진영의 주도권을 잡았다. 시리아와 이라크 전역에 대한 자신들의 관할권을 주장하며 알카에다와 절연했다. 알카에다 역시 ISIL을 자신들의 조직이 아니라고 선언했다.

‘비국가 인자’의 부상과 ISIL의 득세

ISIL은 올해 들어 이라크 북부를 통해 바그다드 쪽으로 진공하며 유례없는 이라크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시리아와 이라크 국토를 합친 면적의 3분의 1을 장악했고, 많게는 절반 정도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지난 6월29일 이들은 자신들이 장악한 지역을 칼리프 국가인 ‘이슬람 국가’로 공포했다.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칼리프로 등극됐다고 선포했다.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 사후 이슬람 제국인 칼리프 국가와 그 지도자 칼리프를 자처했다.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모든 무슬림의 공동체임을 의미한다.


주변에서 자신을 향한 도발이 발생하면 이스라엘은 그동안 명분이 없어 자제하던 시리아 내전에 개입할 수도 있다. 중동에서 가장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이스라엘의 개입은 시리아 내전의 물줄기를 바꿀 최대 요인이다. 미국과 사우디 등은 이스라엘의 개입에 뒷짐을 질 공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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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IL의 칼리프 국가 선포는 중동 지역에서 무너지는 근대 이후 민족국가(nation state) 질서를 반영한다. 이라크와 시리아는 국가와 정부가 붕괴된 공백에 새로운 ‘비국가 인자’들이 부상했음을 말해준다. ISIL의 부상에는 그 지역의 수니파 부족, 과거 후세인 체제하의 군경과 바트당 세력, 각국에서 몰려든 초국적인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의 광범위한 연대가 바탕이 됐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된 것은 이라크 전쟁, 특히 시리아 내전을 ‘프락시 전쟁’(대리전쟁)으로 만든 미국과 중동 역내 국가들의 개입 때문이다. 특히 시리아 내전에서 미국과 사우디 등 수니파 보수왕정들은 이라크 전쟁 이후 영향력을 확산하는 이란-시리아-레바논의 헤즈볼라로 이어지는 시아파 이란 진영을 붕괴시켰다. 민주화 시위에 직면한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을 차제에 타도하려 했다. 이런 미국과 사우디 진영의 개입은 반아사드를 표명한 종파·민족·부족·이념의 ‘비국가 인자’들의 부상을 부채질했다. 그 결과가 ISIL의 득세다.

연동화된 시리아-이라크 내전은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 사태까지 치달은 지금의 팔레스타인 분쟁도 배태했다. 가자지구를 장악한 팔레스타인의 무장정파 하마스는 수니파 계열의 이슬람주의 세력이지만, 그동안 시아파인 이란과 헤즈볼라의 지원을 가장 많이 받아왔다. 중동에서 이스라엘과 가장 적대적인 이란과 헤즈볼라는 이스라엘과 가장 강경하게 투쟁하는 하마스를 종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으로 지원해왔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이 중동 지역의 전면적인 종파전쟁으로 비화하자, 하마스는 반아사드 진영에 가담했다. 이란과 헤즈볼라의 반대편 진영에 선 것이다. 이란은 하마스에 제공하던 매달 2천만달러의 지원을 끊어버렸다. 이 돈은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정부를 운영하는 데 쓰던 사실상의 모든 자금이었다.

가자지구를 점령하기는 쉽겠지만…

이에 더해 하마스는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출신의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이 군부 쿠데타로 실각하면서 더욱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새로 들어선 이집트의 군사정권은 가자지구에서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인 남쪽 국경의 터널 등을 완전히 폐쇄했다. 이미 이스라엘의 철저한 봉쇄를 받고 있는 가자지구의 하마스는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팔레스타인 내의 경쟁 정파인 서안지구에 있는 파타 계열의 마무드 아바스 수반이 이끄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단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이스라엘이 이를 인정하지 않자, 이스라엘과의 대결 자세를 더욱 강화했다. 이스라엘 10대 3명의 납치와 살해, 이에 대한 보복인 팔레스타인 소년의 화형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이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을 불렀다. 이에 하마스는 전통적인 대응인 로켓포 발사로 응수했다.

국제사회가 무조건적인 휴전을 주선하고 이스라엘도 이에 응했으나 하마스는 응하지 않았다. 이 상태에서 휴전은 하마스에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봉쇄 해제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봉쇄가 풀리지 않는 한 달라질 게 없고, 오히려 이스라엘과의 전쟁이 고사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본다.

이스라엘 군 관계자는 “가자지구를 점령하는 것은 간단하다”면서도 “안정화에는 며칠이나 몇 주가 아니라 몇 달이 걸릴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스라엘도 가자지구에 다시 들어간 이상 하마스의 무장력을 발본색원하려 할 것이다. 하마스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에 맞서겠으나, 전면적인 충돌은 자살 행위다. 이는 하마스 등 이스라엘 무장력이 외부에서 준동하는 풍선효과를 부를 것이 확실하다.

또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제거는 레바논의 헤즈볼라에 직접적인 안보 위기를 자아낸다. 비록 최근에 관계가 악화되기는 했으나, 헤즈볼라는 하마스와 순망치한의 관계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2006년 7월 레바논에서 34일 동안 전면전을 벌인 바 있다.

이스라엘 역시 주변에서 자신을 향한 도발이 발생하면, 그동안 명분이 없어 자제하던 시리아 내전에 개입할 수도 있다. 중동에서 가장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이스라엘의 개입은 시리아 내전의 물줄기를 바꿀 최대 요인이다. 미국과 사우디 등은 이스라엘의 개입에 뒷짐을 질 공산이 있다.

미국이 수렁에 빠진 것처럼

문제는 이스라엘이 상대할 대상이 실체가 분명한 국가나 정부군이 아니라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종파라는 점이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서 사담 후세인 정부를 타도했으나, 그 뒤 실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종파의 무장세력 수렁에 빠져버린 것처럼 말이다.

가자지구로의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중동 광역전쟁으로 향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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