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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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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레? 한계레? 한 번 더 그러면 결례!

등록 2014-03-04 07:23 수정 2020-05-02 19:27
1995년 <한겨레21> 사무실 풍경.

1995년 <한겨레21> 사무실 풍경.

이것은 막걸리다. - 말이야 막걸리야? 말이 아닌 막걸리란 말이다. 한 번 더. 글이야 구리야? 아무래도 구린 것 같다. 용서하시라. 나무는 열 번 찍으면 넘어간다. 종이학은 1천 번 접으면 진짜 ‘학’이 된단다. 시사주간지를 1천 번 찍으면 무엇이 될까. 기념호를 한 달 내내 만들다 지친 기자들이 ‘학’을 뗄까? 유통기한이 10년이나 지난 이 칼럼을 다시 쓰는 나는 ‘자학’으로 운을 뗀다. 쉰 막걸리여, 녹슨 구리여.

창간멤버의 한 사람으로 먼저 ‘생일빵’을 해본다. 제호부터 건드린다. 겨레21인가 걸레21인가. 욕보이려는 목적으로, 겨레를 걸레라 부르는 안티 독자들에게 묻는다. 겨레는 순결하고 걸레는 불결한가. 걸레는 바닥에 몸을 낮춘 채 입을 맞추고 뒹굴며 오물과 먼지를 자신의 몸에 전이시키는 성자 같은 존재다. 걸레는 빨아도 걸레, 라는 말은 성자의 존엄을 두 번 훼손하는 ‘결례’다. 한데 신기하다. 에 ‘걸레’라 악플을 다는 인간들도 철자는 완벽하게 소화한다. ‘한결레21’ 또는 ‘한걸례21’ 또는 ‘한곌레21’로 잘못 적는 경우 한 번도 못 봤다. 한데 멀쩡한 제호는 왜 그렇게들 못 쓸까. 속 터지는 한겨례21, 한계레21, 한계례21…. 지령 1000호를 맞아 ‘한계례21’ 제호 바로쓰기 캠페인부터 벌이시라. 한·겨·레·2·1을 또박또박 1천 번 반복해 쓰도록 훈련하는 거다. 교육과정을 이수하고도 자꾸 틀리면 ‘대걸레’로 확 그냥 막 그냥! 모범 이수자에겐 컬링걸레, 스팀청소기를!

이것은 싸구려 택시다. - 모범택시가 아니다. 딱 2km만 가는 택시다. 기본요금이란 말씀이다. 그 알량한 3천원을 기사님께 드릴 때마다 시사주간지 한 권이 생각난다. 너도 택시 승차 거리 2km만큼 부담이 없구나. 1994년엔 택시 기본요금이 1천원이었다. 20년 사이 300%가 올랐다. 은 어떤가. 1994년엔 2천원이었는데, 20년 새 50%밖에 안 오른 가격의 넌센스~.

궁금해? 궁금하면 500원 더! 그렇게 약 올리며 인상하지 않은 업보일까. 1995년 여름이었다. 창간 1년6개월 만에 가격을 500원 올리던 사건이 떠오른다. 당시 막내기자 그룹에 속했던 나는 ‘뼈’까지 들먹이는 굽실굽실 문투로 한 면을 할애해 알림 문안을 썼다(1995년 7월27일치 제69호). “날로 커지는 용지대 비용 출혈분을 최소화하기 위한 ‘뼈아픈 응급조치’임을 다시 한번 밝힙니… 독자 여러분의 넓은 이해와 아량을 부탁드립니….” 자주 굽실거렸으면 부자가 됐을 텐데, 2000년 1월 한 번 더 500원을 올린 뒤 땡이었다. 대신 은 2008년 ‘뼈’를 깎으며 성형수술한 ‘아담’이 되었다, 가 아니라 ‘아담’해졌다. 거칠게 말하면 종이잡지 자해토막절단사건, 공식 용어로 하자면 비용절감 위한 판형 축소. “싸다 싸”라는 사내 여론이 비등해 ‘싸게 싸게’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지만, 걍 3천원을 고수하기 바란다. 단 택시처럼 기본요금제를 도입하면 어떤가. 표지겉핥기는 3천원, 속살을 넘길 때는 ‘기사당 궁금하면 500원’. 택시에서 내릴 땐 “기사님 고맙습니다”, 을 들출 땐 “기사님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잘 유혹하면 추가로 500원이 쏟아진단 말이야~. (흑흑 나도 못해놓고선.)

이것은 독수리였다. - 두 손의 검지만을 이용해 자판을 쪼는, 병아리 같은 독수리질. 바로 그 독수리타법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친 창간 당시 편집장 선배의 이야기다. 창간을 한 달 앞두던 1994년 2월, 편집장 자리에 앉아 ‘한메타자연습’ 프로그램에 몰입하던 그분의 모습이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1994년 한국 사회 언론사 사무실의 풍경을 에누리 없이 보여주는 한 장의 그림이었다. 그때 우리는 막 원고지에서 졸업하던 중이었다. 휴대전화는커녕 월드와이드웹이라는 ‘인터네트’(그땐 그렇게 불렀지)도 구경하기 힘들었다. 당시 20대로 ‘386 콤퓨터 좀 만졌던’ 나는 40대 후반의 편집장 선배를 비웃었는지도 모른다. 손가락 폼이 엉망인 ‘9번 타자’라고, 언제 타석에 제대로 앉겠느냐고. 이제 타자 실력쯤이야 개도 안 부러워할 20세기 넌센스다. 창간 당시 이 주창했던 ‘뉴저널리즘’의 구호만 갖고는 ‘루저~널리즘’이다. 20년이 흐른 거다. 2000호를 만들 또 다른 20년 뒤면 2034년. 미래의 후배들은, 2014년 오늘을 어떤 넌센스로 기억할까. 휴~.

고경태 토요판 에디터 k21@hani.co.kr*아이디에 21이 붙습니다. 고경태 에디터는 1994년 창간호부터 참여해 2005년 편집장이 되어 제631호(2006년 10월20일치)까지 만들었습니다. 을 떠난 뒤 ESC를 만들고, 편집장을 지내고, 토요판의 첫 삽을 떴습니다. 시사넌센스는 제500호(2004년 3월18일치)에 고 에디터의 너스레 공간으로 마련됐고, ‘부글부글’로 꼭지명을 달리해 여러 명의 입담 센 기자들을 거치며 최근(제979호 2013년 9월30일치)까지 비슷한 방식으로 독자들을 유혹했습니다. 이번 청탁에 고 에디터는 “이 나이에 내가 까불어야겠냐”며 까불어주었습니다. 고 에디터의 활약상은 책 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책이 그대로 의 산 역사입니다. 그 역시 의 산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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