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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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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오거돈” 야권 물밑 경쟁

민주 ‘무소속 단일후보’ 카드로 만지작
주가 오른 오거돈, 마음은 ‘안철수 꽃밭’에
등록 2014-02-19 05:34 수정 2020-05-0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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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야 그마이 개안코 똑똑한 사람 없는 거 누가 모르나. 당을 잘못 고른 기지.”

1995년 민선 1기 지방선거 당시 부산 사람들이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를 두고 했던 말이다. 20년 가까이 부산은 “당을 잘못 고른” 후보들에게 한 번도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해 선거에선 지역 맹주 김영삼 대통령의 측근 문정수 후보가 여당(민주자유당) 후보였다. 그를 상대한 노무현 후보는 일찍이 지역에서는 민주화운동가로, 전국적으로는 ‘5공 청문회 스타’로 얻은 명성에 힘입어, “이번 선거는 정당보다 인물을 뽑아야 합니다”라는 표어를 내걸었다. 초반 여론조사에서도 선두였다. 그러나 정계 복귀를 꾀하며 지원 유세를 다녔던 김대중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 이사장이 지역등권론(‘호남·충청이 영남과 동등하게 대접받아야 한다’)을 들고나오면서, 선거판은 지역주의로 급속히 빨려 들어갔다. 부산은 노무현 후보에게 민주당을 버리길 바랐다. 끝내 그에 부응하지 않은 노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4년 전 김정길은 선전했지만

1998년 2회 선거에서도 선거 초반 여론조사에서 가장 앞섰던 김기재 후보가 결국 낙선했다. 민자당 후신인 한나라당의 초선 지역구 의원이던 그는 경선에 반발하며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한나라당에선 관선 시장 출신 안상영 후보가 현역 문정수 시장을 경선에서 누르고 본선에 나섰다. 안 후보는 “김기재의 당선은 김대중 정권의 승리”라며 김대중 정부 당시 팽배했던 ‘영남 소외론’을 자극했고, 결국 2만여 표(1.69%포인트) 차로 승리를 거뒀다.

2002년 3회 선거 땐 한나라당 당내 경선에서 안상영 시장이 권철현 의원을 12표 차로 간신히 앞서 후보가 됐고, 본선에선 한이헌 새천년민주당 후보를 무난히 꺾어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안 시장은 2004년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재판 및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궐선거엔 당시 시장 권한대행을 맡았던 오거돈 행정부시장과 허남식 정무부시장이 각각 여야 후보로 나섰다. 정권 심판론과 안상영 시장에 대한 동정론 분위기 속에서 허남식 후보가 62.3%를 득표하며 압승했다. 2006년 4회 선거에선 허남식 시장이 당내 경선에서 권철현 의원을 이기며 재선에 도전했고, 상대인 오거돈 후보는 그사이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내고 돌아와 ‘리턴매치’를 벌였다. 허남식 시장은 30%포인트 차로 여유 있게 이겼다.


야권에선 오거돈(66) 전 해수부 장관을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하는 이가 많다. 열린우리당 후보로 두 차례 출마한 경험이 있는 오 전 장관은, 이번엔 범야권 단일 무소속 후보가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2010년 5회 선거는 이례적이었다. 3선에 도전한 허 시장에 1대1로 맞붙은 김정길 민주당 후보가 예상 밖의 선전을 펼쳤다. 그의 득표율(44.57%)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동정론과 이명박 정부 심판론이 팽배했던 전국적 분위기가 녹아 있었다. 이는 야당이 2년 뒤 총선과 대선에서 부산에서의 선전을 기대하는 희망의 근거가 됐다.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 야권은 부산 18석 가운데 단 2석을 얻는 데 그쳤지만, 정당투표에선 40%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민주통합당 31.78%, 통합진보당 8.42%). 같은 해 12월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도 비슷한 수준(39.87%, 부산)을 득표했다. 1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득표(29.85%, 부산)로부터 10%포인트가량 확장시켰다. 그러나 어쨌든 결과를 바꾸진 못했다. 승자는 새누리당이었다.

새누리당도 민주당도 이런 역사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새누리당은 이번 시장 선거에 대해 “이기는 건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고, 민주당에선 “민주당 후보로 나가면 볼 것도 없이 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민주당 간판으로 도전장을 내민 김영춘 전 의원마저 2월9일 인터뷰에서 “(2010년 이후 선전한 것은) 민주당에 대한 기대, 전폭적인 지지는 아니다. 반한나라당 정서이고 부산을 바꿔야 한다는 열망이 야권 후보에 대한 지지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김두관 모델’ 성사될까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가는 상황에서, 안철수 의원이 주도하는 신당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결과를 얻을지는 여야 모두에 큰 관심거리다. 부산고를 나온 안 의원은 물론, 신당 준비모임 새정치추진위원회(이하 새정추)를 이끈 김성식 공동위원장(부산고)과 송호창 소통위원장(동고) 등 요직에 부산 출신이 포진한 것도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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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은 부산을 지방선거 승패의 바로미터로 본다. 정기남 새정추 공보팀장은 “부산은 신당에 핵심적인 지역이다. 전국적 대안세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의미 있는 후보와 성적을 내야 한다. 지금 민주당이 엄두도 못 내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도 본격적으로 선거전에 들어가면 부산에서 상주하다시피 하면서 선거를 치르려 한다”고 말했다. 지역 구도를 뛰어넘는 정당을 만든다고 공언한 마당에, 부산에서 가능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다만 후보는 아직 백지상태에 가깝다.

지난해 말부터 야권에선 오거돈(66) 전 해수부 장관을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하는 이가 많다. 열린우리당 후보로 두 차례 출마한 경험이 있는 오 전 장관은, 이번엔 범야권 단일 무소속 후보가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다. 이른바 ‘김두관 모델’이다.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2002년 지방선거에선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2006년엔 열린우리당 후보로 도전했다가 각각 고배를 마셨고, 2010년 무소속 야권 단일후보로 당선됐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가능한 시나리오로 본다. 민주당 소속으로 출사표를 던진 김영춘·이해성 두 후보가 당 지지층을 결집해 최소한의 컨벤션 효과를 달성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 뒤 오거돈 전 장관과 ‘합리적 절차를 거친 사이좋은 단일화’를 거치며 오 전 장관이 무소속 단일후보로서 최대의 효과를 거둔다면 해볼 만하다는 얘기다. 다만 당 소속 후보를 희생시키는 쉽지 않은 과정이 전제돼야 한다. 당 안팎에선 ‘김두관 모델’을 시도하기에 오 전 장관이 참신성이 떨어진다거나, 본선 경쟁력이 처질 거란 비판도 나온다.

신당은 안 의원 본인이 “선거만을 위한 연대는 없다”고 했지만, 막상 선거가 시작되면 각 지역 개별 후보 간 논의는 어차피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연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한 신당 관계자는 “안 의원이 최근 부산에 두 차례 다녀오면서 신당 지지율이 높아졌다. 오거돈 전 장관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는 것도 그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

안철수·오거돈의 ‘꽃밭 선문답’

새누리당에선 오 전 장관이 지역 여론 주도층에 호소력이 높아 일부 표를 잠식한다고 보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영입설도 나오지만, 오 전 장관 쪽은 “영입시켜 고사시키려는 것”이라며 손사래를 친다. 오히려 오 전 장관은 신당 쪽에 본격적인 ‘러브콜’을 보내는 중이다. 오 전 장관은 설 연휴를 앞둔 1월30일 페이스북에 “꽃 한 송이 핀다고 봄인가요. 다 같이 피어야 봄이지요”라는 노래 가사로 새해 인사를 전했다.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의원이 인용한 바 있는 시구에 대한 화답으로 읽힌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마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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