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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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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주식은 안녕하십니까

정보 취약과 불공정 시장 탓으로만 돌릴 수 없는 개미들의 실패기…
비합리적 기대, 능력 과신, 고통 회피 심리가 거듭된 낭패 부른다
등록 2013-07-03 01:58 수정 2020-05-02 19:27
‘G2’ 쇼크는 강했다. 미국에선 마구 풀어댔던 돈줄을 죄겠다는 선언이 터져나오고 중국에선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주식시장 은 속절없이 추락했다. 5월 말만 해도 2000선이던 코스피지수는 6월 말 한때 1700선까지 후퇴했다. 이처럼 시장의 불확실성이 고조됐을 때 가장 화끈하게 대응 한 건 개인투자자였다. 개인투자자는 주식시장이 곧 반등한 뒤 다시 상승장을 이어갈 것이란 낙관적 전망에 베팅했다. 시장의 상승장을 이끌 대장주나, 코스피지수 의 수익률을 2배로 따라가는 상장지수펀드(ETF)를 하루에도 수천억원어치씩 사들인 것이다. 외국인이 주식을 대거 팔아치우고, 기관투자가는 조심스럽게 순매수 에 나선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나 불행히도, 개인투자자의 과감한 베팅은 결과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역대 전적을 보면 개인투자자는 늘 외국인과 기관 투자가와 달리 손실을 입거나 쥐꼬리만 한 수익을 내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인투자자가 지는 게임만 해온 이유는 뭘까? 투자자 자신은 물론 주류 경제학 자와 증권업계도 흔히 취약한 정보와 불공정한 시장구조를 꼽아왔다. 합리적인 자신과, 인간과, 고객은 절대 그릇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분 석이다. 그러나 개인투자자들이 더 큰 손실을 보기 전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주위엔 정보 부족과 시장의 횡포와 상관없는 이유들로 손실을 본 개인투자자가 얼마 든지 있다. 이들이 왜 비합리적 판단과 충동적인 감정으로 투자를 스스로 망쳤는지, 주류 경제학의 보완책으로 각광받는 행동경제학과 신경경제학 이론의 도움을 받아 투자 단계별로 분석해봤다. 인터뷰에 응한 개인투자자는 모두 익명을 원했다. _편집자

강동철(32)씨는 대학 시절부터 주식투자를 활짝 열린 ‘기회의 땅’으로 동경해왔다. 미래를 두고 아 무리 셈을 해봐도, 직장인 월급으로는 적금을 꼬박꼬박 부어봤자 신혼집 전세금을 마련하기도 불가 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대신 주식투자를 하면 적어도 매년 10~20%씩, 대박이 나면 무제한으로 돈을 불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는 7년 전 입사한 뒤 꿈에 그리던 기회의 무대로 발을 디뎠다. 2~3년 만 에 종잣돈 1천만원이 2배로 불어났다. 그러나 행운은 딱 거기까지였다. 결국엔 전세금을 마련하기는 커녕 중형차 1대 값을 날렸다. “처음엔 주식으로 떼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단 기매매를 하니 이익은 취하되, 위험은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 보면 허황된 꿈이었다.”

한겨레 자료

한겨레 자료

① 투자 결정 단계 시장에 대한 지나친 낙관

개인투자자의 비극은 주식시장에 대한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에서 시작된다. 행동경제학자들 은 인간에게 부정적인 일보다 희망적인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중에 서도 자신에게는 긍정적인 일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성향이 있다고 본다. 개인 투자자에 대입하면 주식투자의 기대수익은 하늘에 달렸으되 위험은 무시할 만한 수준인데다, 덤으 로 대박의 행운이 자신에게 다가올 확률까지 높아 보이는 것이다. 조준현 부산대 교수(경제학)의 설 명이다. “인간은 주류 경제학이 설명하는 것처럼 완전히 합리적이지 않다. ‘대충 합리적’이다. 그러니 불확실한 상황에선 이성이 아니라 주관적 감정에 영향받곤 한다. 그중에서도 낙관적 결과를 기대 하는 성향이 강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주식투자를 하면서 ‘주가가 떨어졌을 때 어떻게 대처하지’라 고 걱정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무질서 속에서 패턴(일정한 형태)을 찾으려는 인간의 본능은 낙관적 기대를 더욱 부풀린다. 어떤 상황이든 질서를 발견하려는 뇌 좌반구의 작동에 따라 개인투자자들은 끊임없이 무작위적으로 보 이는 과거의 주가 흐름 속에서도 특정 패턴을 찾아헤맨다. 이때 개인투자자는 패턴을 알아내기만 하면 미래 주가를 예측해 대박을 칠 수 있다는 상상의 나래를 펴게 된다. 게다가 개인투자자에게는 ‘나는 평균 이상’ ‘나는 특별하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까지 내재돼 있으니, 이런 착각에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② 종목 선택 단계 과거 경험에 근거한 추정 판단

주식투자 결정을 했으니 이제 탄탄한 종목을 고를 차례다. 그러나 이때부터 합리적 판단을 그르치는 ‘휴리스틱’(추정 판단)이 끼어들기 시작한다. 휴리스틱은 논리적 판단이 아니라 과거 경험에 따라 주먹 구구로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만드는 인지편향을 뜻한다. 개인투자 자가 기업의 과거 실적이나 미래 가치를 꼼꼼히 따져보는 대신 자신 이 ‘꽂혀 있는’ 특정 기준만 보고 성급하게 투자를 결정하는 ‘닻 내리 기’ 오류가 대표적이다. 고광식(31)씨가 투자 결정을 한 과정을 살펴 보자. 그는 지난해 10월 삼성엔지니어링에 주당 15만원씩 총 1천만원 을 투자했다. 거액의 투자엔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그는 삼성엔지니 어링 본사 근처에서 근무했다. 가까이서 지켜보니 이 회사는 경기불 황의 직격탄을 맞아 신규 채용도 중단한 다른 건설사와 달리 꾸준히 새로 직원을 뽑았다. ‘촉’이 왔다. 게다가 국내 1위 삼성그룹의 계열사 인 만큼 어려운 시기만 견뎌내면 오랫동안 독야청청할 것이라는 믿 음도 있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최근 주가는 1년 중 최저가인 6만8 천원까지 떨어졌다. 투자금은 반토막이 났다.

본능적인 군중심리도 종목 선택에는 쥐약이다. 개인투자자는 흔 히 떼지어 주식을 사고판다. 정보가 부족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위험 을 분산하려는 몸부림이다. 동식물이 거친 자연환경에서 생존 확률 을 높이려고 집단으로 서식하면서 보상과 위험에 관한 ‘공공정보’를 나누는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러한 투자 본능은 남들보다 싸게 사 고 비싸게 되팔아야 수익을 낼 수 있는 주식시장에선 오히려 손실만 키우는 부작용을 낳는다. 오현석 삼성증권 투자전략센터 이사의 설 명이다. “개인투자자는 끝물에 들어가거나 상투를 잡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위험을 피하려고 집단적으로 의사결정을 한 뒤 다 같이 손잡 고 (시장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후행적으로 경기가 좋아지는지, 기 업의 실적은 나아졌는지, 주가는 오르는지 다 확인한 뒤 공동 투자 를 하면 어떻게 돈을 벌겠나.”

다시 입증된 ‘개미 필패론’
이래도 주식투자 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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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말하면, 개인투자자의 역대 전적은 ‘백전백패’다. 외국인과 기관투자 가를 이기기는커녕 주식시장의 평균적 상승률을 따라간 적도 드물다. 한국거래소가 올해 들어 지난 5월 말까지 투자 주체별로 순매수 상위 10개 종목의 수익률을 분석한 결과, 개인투자자는 23.7%의 손실을 본 것으로 나 타났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가 0.2% 오르며 제자리걸음을 한 것에 비하 면 낙제점이다. 반면 외국인은 22.6%의 수익을 거뒀다. 기관은 2%의 손실 을 보긴 했지만, 개인투자자가 입은 손해에 비하면 미미한 정도다. 성패를 가른 건 종목 선택이었다. 외국인은 실적 기대주인 정보기술(IT)주 SK하이 닉스와 파트론, 내수주인 호텔신라와 GS홈쇼핑을 집중적으로 사들여 쏠쏠 한 재미를 봤다. 기관은 ‘구관’인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등 자동차 관련 주와 삼성생명·우리금융 등 금융주를 매집해 그나마 손실폭을 줄였다. 그 러나 개인투자자는 경기에 민감한 삼성엔지니어링·GS 등 건설주, 현대중공 업·삼성중공업 등 조선주에 기대를 걸었다가 쓴맛을 봤다.
주식시장이 하락장세를 이어간 6월엔 세 주체 모두 손실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개인투자자의 손실폭(13.1%)은 기관(6.9%)과 외국인(8.1%)의 2배에 가깝다. 개인투자자는 기관과 외국인이 수익을 거둬갈 때도 손해를 보고, 그 들이 손해를 볼 때는 더 큰 손해를 보는 것이다.
추세적으로 보면 개인투자자의 성적표는 훨씬 더 초라하다. 글로벌 금융위 기로 직격탄을 맞았던 주식시장이 급반등한 2009년 기관(114.5%)과 외국인 (91%)이 경이로운 투자 수익을 올릴 때도 개인투자자의 투자 수익률은 ‘반의 반’ 수준인 28.4%에 머물렀다.
2010년 들어 그 격차가 더 벌어진다. 개인투자자의 수익률은 5.4%로 기관 (58.6%), 외국인(50.9%)의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 뒤엔 수익은커녕 손실만 봤다. 손실률은 2011년 35.3%, 2012년 32.5%에 이른다. 같은 기간 기관과 외국인이 두 자릿수 수익을 내거나 일부 손해를 입은 것에 비하면 뼈 아픈 결과다. 조준현 부산대 교수(경제학)는 이렇게 분석했다. “개인투자자 는 주식시장에서 늘 잃기만 해왔다. 상대적으로 기관과 외국인에 비해 정보 력이 떨어지다보니 주관이나 과거 경험 등에 의존한 결과다.”

③ 종목 운영 단계 일시적 성공에 도취

직장인 이형식(33)씨는 주식에서 돈을 벌 때 짜릿한 ‘쾌감’을 느낀 다. 직전 달에 300만원을 날렸더라도 이번달에 100만원을 벌면 세 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승리감에 도취되는 것이다. 이때만큼은 직장 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훌훌 날아가고, 바닥을 쳤던 자신감도 다시 튀어오른다. “쾌감에 중독된 느낌이다. 어떨 땐 ‘내가 도박에 중독됐 구나’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종목을 운용할 때도 개인투자자가 냉철함을 되찾기란 어렵다. 일 시적 성공 경험이 주는 황홀감에 취하면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는 탓 이다. 미국 하버드대 의과대학의 신경과학자 한스 브라이터는 “자기 공명영상(MRI)으로 돈을 벌기 직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뇌와 마 약 주사를 기대하는 중독자의 뇌를 촬영한 결과, 둘의 뇌에서 뉴런 들의 활동 방식이 사실상 동일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수익에 대한 투자자의 기대감이 마약에 대한 중독자의 기대감만큼 강렬하고 간절하다는 의미다.

일단 돈을 버는 행복감을 맛보면 개인투자자는 더 큰 만족감을 얻 기 위해 비현실적 목표에 매달리게 된다. 서기철(42)씨는 올해 초 지 인의 추천으로 코스닥의 정보기술(IT)주인 크로바하이텍을 1천만원 어치 샀다. 주식을 사자마자 하루에도 10%가 오르니 욕심이 커졌다. 주가 흐름을 좇아갔다. 패턴이 보이는 듯했다. 아침에 5~6% 올랐다 가 오후에 2~3% 빠지는 식이었다. 그는 단타매매에 들어갔다. 오후 에 싸게 샀다가 다음날 오전에 비싸게 되팔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패 턴은 금세 사라졌다. 그는 한 달 뒤 결국 원금의 20%를 손해 봤다. 계속 종목을 들고 있던 지인이 같은 기간 60%의 수익을 올린 것을 보고 한동안 속이 쓰렸다.

개인투자자의 마음에 새겨진 ‘심리 회계장부’도 투자에는 장애가 된다. 예를 들어 1천만원을 투자했다고 치자. 그 뒤 수익은 200만원 까지 커졌다가 결국 100만원으로 확정됐다. 그러면 실제 회계장부에 는 ‘100만원의 수익’으로 적힌다. 그러나 투자자의 심리 회계장부에 는 ‘200만원 손실’이라고 쓰인다. 돈을 벌고도 괴로워지는 것이다. 개 인투자자들이 위험이 높은 저가주를 선호하는 것도 심리 회계장부 의 영향이다. 오현석 이사의 지적이다. “1천만원을 투자한다. 100만 원짜리 우량주는 10주밖에 못 산다. 그런데 같은 돈으로 1천원짜리 저가주를 1만 주는 살 수 있다. 자기 계좌에 똑같이 1천만원이 있어 도 투자자는 저가주를 가졌을 때 더 부자가 된 것처럼 느낀다.”

④ 위험 인지 단계 위기 통제 능력 과신

갑자기 주식투자에 부정적 시그널이 번쩍인다. 내 종목이 예상보 다 부진한 실적을 냈다든가, 경쟁사가 대규모 수주 계약 결과를 발표 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투자자는 경고음을 무시해버린다. 기업 가치를 다시 점검해 내린 결론은 아니다. 내가 소중히 보유해온 종목 에 대한 애착 탓이다. 이른바 ‘소유 효과’(자산처분 회피 효과)다. 미 국 시카고대 경영대학원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보자. 학생들에 게 ‘머그잔’을 보여주며 “얼마에 사겠느냐”고 물었다. 대략 10달러 선 에서 금액이 결정됐다. 학생들에게 공짜로 머그잔을 나눠준 뒤 “얼 마에 팔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학생들은 13달러를 불렀다. 머그잔 이 자신의 소유가 되자 가치를 비합리적으로 높게 평가한 것이다. 비 슷하게 개인투자자들도 자신이 소유한 종목에 대해선 ‘매도 허용 비 용’을 과도하게 높게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부도설이 돌아도 끝까지 종목을 포기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위기를 통제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매수 포지션을 유지하게 한다. 개별 종목의 주가는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이는데도, 과거에 위기 를 넘긴 적이 있으니 이번에도 무사할 것이라는 ‘통제 착각’이다. 3년 차 전업 투자자인 최진석(34)씨에겐 ‘확신의 구간’이 있다. 수익을 올 리되 손실을 보더라도 곧 본전으로 올라올 수 있는 확률이 75%가 되는 종목별 주가의 구간을 말한다. 지금까지의 투자 경험을 바탕으로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는 확률을 직접 계산해낸 것이다. 이 구간 에선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절대 팔지 않는다. “시스템 매매에 가깝다. 지금까지 이 투자법으로 실패한 경우는 20~25%다. 낮은 확률은 아 니지만 전체적으로는 수익이 더 많이 났으니 믿을 만하다.”

개인투자자는 주식시장에서 잃기만 하는 투자를 해왔다. 여기엔 정보 부족과 불공정한 시장 등 ‘남 탓’도 있지만,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인 판단을 한 ‘내 탓’도 많다. 한 개인투자자가 휴대전화로 주가를 확인하고 있다.정용일

개인투자자는 주식시장에서 잃기만 하는 투자를 해왔다. 여기엔 정보 부족과 불공정한 시장 등 ‘남 탓’도 있지만,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인 판단을 한 ‘내 탓’도 많다. 한 개인투자자가 휴대전화로 주가를 확인하고 있다.정용일

⑤ 매도 단계 후회의 고통 회피하려 결단 지연

불행히도 부정적 시그널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이제 정말 주식을 팔아야 할 때다. 투자자도 사랑으로 키워온 종목과 작별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전망 이론’이 투자자의 바짓가랑이를 붙든 다. 인간은 이익을 얻는 것보다 손실을 보는 것에 더 민감해한다는 심 리 이론이다. 투자해서 이익이 나면 빨리 팔아치워 이익을 최소화하 면서, 손해가 나면 최대한 늦게 팔아 손해를 키우는 ‘청개구리 투자’ 가 이뤄지는 건 이 때문이다. 손절매를 하면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괴롭고, 가상의 손실이 실질 손실로 확정되는 것 도 고통스러운 까닭이다. 이에 ‘내 사전에 손절매는 없다’고 선언한 개 인투자자들은 물타기로 돈을 쏟아부으며 ‘매몰 비용’만 늘린다.

고광식씨는 STX조선해양 주식을 지난 4월 드디어 처분했다. 2008년 중순 주식을 산 지 5년 만이다. 하염없이 주가가 떨어졌는데 도 손절매만은 피하려다 유동성 위기로 법정관리나 워크아웃(기업 개선작업)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것이 다. “4만원대에 샀던 주식을 1만원대에 팔았다. 내 판단을 믿고 더 기다리려 했지만 정말 부도가 날 것 같았다. 지금은 3천원까지 떨어져 서 그나마 그때 판 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후회의 고통을 줄이려는 본능적 방어 기제도 주식 매도를 주저하게 한다. 인간은 ‘무작위에 의한 손해’보다 자신의 선택이 개입 된 ‘작위에 의한 손해’에 더 크게 후회한다. 투자에서도 주식을 팔지 않아 큰 손실을 봤을 때보다 주식을 팔아치운 뒤 주가가 올라 기회 비용이 생겼을 때, 투자자는 더 큰 괴로움을 느낀다. 눈앞에서 손실 이 커져도 현상 유지 심리가 강하게 발동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금 융회사에 다니는 곽도철(31)씨는 6월에만 1천만원에 가까운 손해를 봤다. 고령화 시대에 맞춰 야심차게 투자했던 헬스케어주들이 줄줄 이 30% 이상씩 미끄러진 탓이다. 그러나 아직 한 종목도 팔지 못했 다. “누가 목을 조르는 느낌이다. 그래도 내가 도망간 사이에 반등이 라도 하면 (후회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매도를) 못하고 있다.”

⑥ 실패 이후 고통과 분노, 새로운 기회 찾기

투자 실패 뒤에는 공포와 분노가 남는다. 금전 손실에서 받은 충 격은 교통사고 등으로 생물학적 충격을 받았을 때와 비슷한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실제 개인투자자가 투자금 손실로 느낀 공포와 분 노는 뇌 심층부의 편도체에 전달된 뒤 인근의 기억 중추인 해마상 융 기에 저장된다. 이후 돈을 잃을 만한 순간이 되면 과거에 느꼈던 공 포와 분노가 그대로 되살아나 투자자를 괴롭힌다. 그 덕에 경각심을 갖게 된 투자자는 신중하게 투자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중요한 순 간에 선택의 타이밍을 놓치기도 한다. 안전하게 수익을 낼 수 있을 때 투자를 망설이고, 큰 손해를 볼 때 손절매를 주저하는 것이다.

그래도 개인은 실패의 트라우마를 안고 기회를 찾아 다시 주식투 자에 나선다. 그러고는 낙관적 기대와 손절매의 고통, 쓰라린 후회를 반복한다. 주식투자 14년차인 권혁기(40)씨의 사례에선 개인투자자 가 주식시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엿보인다. 그는 지금까지 3억원 을 주식시장에 묻었다. 유망하다는 소문만 믿고 저가주에 ‘몰빵’하 는 투자 습관 탓이다. 한번은 투자한 종목이 상장 폐지돼 4천만원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1억2천만원으로 주식을 한다. 절반은 마이너스통장에서 꺼낸 빚이다. “30억원을 벌어서 은퇴한 뒤 가족과 재미있게 사는 게 인생의 목표다. 그러나 부동산 투자를 할 목돈은 없고, 펀드 투자는 결과를 기다릴 시간이 없다. 그래도 주식은 꿈을 꾸게 하는 유일한 힘이다.” 다소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인 개인들의 주 식투자는 이룰 수 없는 꿈을 좇는 열망의 다른 이름은 아닐까.

주식투자에 실패하면 트라우마가 남는다. 그러나 공포와 후회는 현명한 의사결정의 강력 한 적이 된다. 1990년 주가 폭락에 화가 난 개인투자자들이 서울 명동에서 백지전표를 뿌 리며 항의하고 있다.

참고 문헌 (로버트 코펠·2013), (제이슨 츠바이크·2007), (크리스토퍼 시·2011), (조준현·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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