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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 먹고 무죄’ 국민의 이름으로 용서치 않겠어

등록 2012-09-05 03:58 수정 2022-11-08 09:59

공무원이 돈을 받으면 무조건 처벌하는 법이 8월22일 입법 예고됐다. 국민권익위원회가 내놓은 ‘부정청탁 금지 및 이해충돌 방지 법안’(부정청탁금지법)이다. ‘스폰서’나 ‘떡값’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게 입법 취지다. 행정부처·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물론 국회의원·검사·판사·공공기관 직원에서 교사까지 모든 공직자가 대상이다.

뇌물수수죄로 기소된 고위 공직자들은 금품을 받았다고 인정하면서도 대가성이 없었다고 무죄를 주장한다.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에서 1억6천만원을 받았다는 혐의 등으로 법정에 선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마찬가지다. 박 전 차관이 지난 5월 2일 대검에 출두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태형

뇌물수수죄로 기소된 고위 공직자들은 금품을 받았다고 인정하면서도 대가성이 없었다고 무죄를 주장한다. 파이시티 인허가 과정에서 1억6천만원을 받았다는 혐의 등으로 법정에 선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마찬가지다. 박 전 차관이 지난 5월 2일 대검에 출두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태형

“사기죄까지 덧씌워 처벌해야”

형법상 뇌물수수죄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하면 처벌받도록 돼 있다. 바꿔 말하면 돈을 받았더라도 직무와 관련이 없거나 대가성을 인식하지 않았으면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것이 정치인이나 공직자가 법망을 빠져나가는 교묘한 수단이다. 국민권익위는 “부패 행위 규제의 사각지대”라고 지적한다.

이 취업 포털 ‘인크루트’와 함께 직장인 847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했더니 응답자의 83%가 ‘공직자가 금품·향응을 받은 경우 무조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8명은 부정청탁금지법을 지지한다는 뜻이다. 특히 법원이 무죄로 결론 낸 뇌물수수 사건(3건)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90%를 웃돌았다.

첫 번째 사례는 8천만원을 받은 옛 해양수산부(현 국토해양부) 공무원의 뇌물수수 사건이다. 그는 2005년 해운회사 대표 등에게서 중국 선박이 운항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8차례에 걸쳐 돈을 받았다. 문제는 중국 선박의 운항 허가는 중국 교통부의 전속 권한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해양부 공무원은 운항 허가를 내줘야 한다는 문서를 중국 교통부에 팩스로 보내고 휴가 때 중국을 방문해 해당 공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대법원은 지난해 5월 무죄를 선고했다. 외국 선박의 행정처분은 한국의 해양부 공무원이 좌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직무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공무상 지위를 이용해 (중국 교통부 공무원과) 사적인 교섭을 했는데 징계 사유가 될 수는 있지만 공무원의 직무상 행위라 보기는 어렵다.” 공무원이 수천만원을 받았어도 ‘직무상 행위’가 아닌 ‘사적 행위’라면 형법상의 뇌물죄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논리다.


해양수산부 공무원은 중국 선박이 운항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힘써달라는 부탁과 함께 8차례에 걸쳐 8천만원을 받았다.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한국의 해양부 공무원이 좌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직무와 관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상식적으로는 언뜻 이해가 안 되지만 설명하면 이렇다. 애초에 뇌물죄는 부정한 공무원을 처벌하는 법이 아니다. 부당한 공무집행을 처벌하는 게 입법 취지다. 다시 말해 공무집행을 돈을 주고 매수할 수 없도록 해 공무집행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거다. 따라서 8천만원을 받은 공무원은 사람이 잘못해서 징계를 받아야 하지만, 공무집행은 잘못한 것이 없어서 뇌물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거다.

이런 법 논리에 동의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이 설문조사를 해보니 94.9%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처벌하지 말아야 한다’는 응답은 3.8%에 그쳤다. “해양부 소속 공무원이 아니었다면 중국 교통부와 교섭하는 게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해운회사 대표가 8천만원이나 주고 청탁한 거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인데도 공무원이 돈을 받고 해결해줄 것처럼 속였다면 사기죄까지 덧씌워 처벌해야지 무죄라니 어이가 없다.”(회사원 김승유(33)씨)

두 번째 사례는 경찰청 정보과 경찰관이 중소기업 대표에게서 금품과 향응을 받는 경우다. 이유는 외국인 산업연수생을 관리하는 업체로 선정되는 데 힘을 써달라는 거였다. 대법원은 관리업체 선정은 중소기업중앙회가 맡고 있고, 경찰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첫 번째 사례와 마찬가지로 95.3%가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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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원 이상 받으면 과태료

중소 제조업체에 다니는 박상훈(41)씨는 “법원의 판결이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비판했다. “정보를 수집하는 정보과 경찰관이라니까 인맥이 넓을 거라고 생각해 ‘빽’을 써달라고 돈을 주고 술을 사고 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돈을 받았지만 애초에 나쁜 짓을 할 능력이 없었으니 면죄부를 준다는 거 아니냐. 경찰이나 검사는 직접 수사하는 이해 당사자만 아니면 접대나 금품을 받아도 된다고 허락해주는 건가?”

세 번째 주인공은 국회의원이다. 옥외광고물 사업자가 2003년 11월 찾아와 제22회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법의 유효기간을 연장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자신에게 월 1억원 정도의 수입이 생긴다고 했다. 의원은 승낙했고 관련법이 같은 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이듬해인 2004년 2월 사업자는 5천만원의 후원금을 의원에게 전달했다. 또 그 의원이 소개한 테니스협회에도 5천만원을 운영경비로 내놨다. 대법원은 2008년 6월 테니스협회에 기부한 5천만원은 제3자의 뇌물공여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부정한 청탁과 상관없는 동기로 기부행위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대가관계가 분명하게 인정되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역시 응답자의 93.9%가 ‘국회의원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법원 판결과 국민의 상식 사이에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다. 부정청탁금지법은 그 강을 건널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다리다. 기존 공직윤리법·형법에서 정한 처벌 대상과 수위를 한 단계 끌어올려 국민의 법상식에 맞닿을 수 있도록 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첫째, 검은돈은 무조건 불법으로 규제한다.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을 따지지 않는다. 100만원이 넘는 금품·향응을 받으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받은 금액의 5배에 해당하는 벌금형에 무조건 처해진다. 3만원(공무원 행동강령의 접대 상한선)을 넘지만 100만원 이하라면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3만원이라는 기준이 터무니없지는 않다. 미국은 1회에 20달러(1년에 50달러), 캐나다는 1회에 50달러(1년에 200달러)를 공무원의 금품 수수 한도액으로 정하고 있다. 대가성도 미국과 독일에서는 이미 따지지 않는다. 독일의 부패단속법은 뇌물죄와 이익수수죄가 따로 있다. 직무수행과 관련해 공무원이 돈을 받았을 때 대가성이 있으면 뇌물로 처벌하고, 대가성이 없으면 이익수수죄로 처벌한다. 이익수수죄의 법정형은 징역 3년 이하 또는 벌금이다. 미국이 1962년 제정한 ‘뇌물 및 이해충돌방지법’도 공직자가 공무수행 중 미 연방정부 외에 다른 출처에서 돈을 받으면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벌금형을 받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의 재현을 막을 수 있다. 스폰서 검사 4명은 브로커에게 식사와 술 등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대법원에서 인정됐지만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로 모두 무죄로 풀려났다.

부산·경남 지역 건설업자였던 정아무개씨는 2008년 12월과 2009년 3월 “아는 검사를 통해 사건을 무마해주겠다”며 경찰에서 수사를 받는 이아무개씨 등 2명에게 2400만원을 받았다. 2003년부터 인맥을 쌓아온 한승철(49) 전 검사장 등이 정씨가 말한 ‘아는 검사’였다. 친분을 맺는 방식은 부서 회식 때 돈을 대신 내주는 거였다. 한 전 검사장도 식사와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정씨가 식당을 열었으니 들르라는 권유를 받고 후배 검사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우연히 식사를 제공받은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정씨가 체포됐다는 소식에 담당 검사에게 역시 전화를 걸었다. “기록을 잘 검토해달라.” 법원은 검사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향응을 받았지만 그 자리에서 구체적 청탁이 없었기 때문에 뇌물이 아니라고 했다.
2010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스폰서 검사\'는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로 최종 결론났다. 검사들이 수십만~수백만원의 향응을 받았지만 구체적인 청탁이 없어서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2010년 4월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스폰서 검사 진상규명위원회 첫 회의에 앞서 위원들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태형

2010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스폰서 검사\'는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로 최종 결론났다. 검사들이 수십만~수백만원의 향응을 받았지만 구체적인 청탁이 없어서 대가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2010년 4월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스폰서 검사 진상규명위원회 첫 회의에 앞서 위원들이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태형

최초의 부정행위를 그냥 넘기지 말아야

2009년 3월 한 전 검사장과 함께 당시 접대를 받았던 부장검사 이아무개(48)씨도 똑같은 방식으로 정씨의 ‘아는 검사’가 됐다. 한 달 뒤 정씨의 아들 식당에 부서 검사 11명을 데려가 공짜 회식을 했다. 정씨가 브로커 노릇을 하다가 사기와 변호사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를 받자 담당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물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지금 잡혀간다는데 도대체 무슨 사건이냐?”

이 전 부장검사를 따라갔던 이아무개(37) 검사도 같은 길을 걸었다. 이씨는 회식 때 우연히 브로커 정씨 옆에 앉았다. 전화번호를 주고받았고 이후 자주 통화했다. 한 달 뒤에는 저녁 시간에 카페에서 따로 만나 30만원어치의 술도 마셨다. 정씨가 체포됐다는 소식에 담당 검사에게 역시 전화를 걸었다. “기록을 잘 검토해달라.” 법원은 검사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향응을 받았지만 그 자리에서 구체적 청탁이 없었기 때문에 뇌물이 아니라고 했다. ‘명예’를 회복한 한승철 전 검사장은 지난 5월10일 검찰을 떠났다. 그는 ‘나는 영웅이 아니었다. 그러나 영웅들과 함께했다’는 군가 구절을 인용하며 “정의롭고 용기 있는 사람들과 함께했던 시간을 자랑스럽게 간직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댄 애리얼리가 쓴 (청림출판·2012)을 보면 ‘부도덕성 바이러스’라는 개념이 나온다. 그는 노골적인 부정행위를 생생히 목격한 사람은 그 전례를 따라 부정행위를 더 많이 하게 된다는 사실을 실험 결과로 확인했다. “삶의 많은 영역에서 사람들은 어떤 행동이 적절한 행동이며, 또 어떤 행동이 부적절한 행동인지 판단할 때 다른 사람의 행동을 준거틀로 삼기” 때문이라고 한다.

‘스폰서 검사’ 사건을 보면, 한국의 공직자는 향응·접대에 상당히 너그럽다. 부서 회식비를 대신 내도 괜찮다는 태도다. 부정 청탁을 그 자리에서 주고받지 않았으면 처벌받을 만한 부정행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빠가 회사 물품인 연필을 한 다스 몰래 가져와 자녀에게 주는 건 괜찮지만, 아이가 옆자리 친구의 연필을 한 자루 몰래 갖는 건 안 된다는 논리와 비슷하다.

건설업체 대표로 일하는 유인상(50·가명)씨는 “공직자의 자기기만”이라고 했다.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하려고 스스로 모른 척하는 거다. 뇌물이라고 공언하며 접대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아는 사람을 통해 인사를 하고 안면을 튼다. 그 사람과 밥을 한 끼 먹고 술자리를 갖고 골프를 치고 그렇게 돈독한 인간관계를 맺는다. 친밀해지면 은근히 청탁을 넣는다. 브로커 정씨는 전형적인 수법을 따라간 거다. 밥 한 끼도 공짜가 없는 게 세상 이치다. 향응을 제공받았지만 그 자리에서 구체적인 청탁을 하지 않았으니까 무죄라고? 브로커가 할 일 없어서 공직자에게 수백만원어치 밥과 술을 사주나? 검사들이 정씨의 접대를 잇따라 받음으로써 부정한 청탁까지 이어질 수 있는 길이 열린 거다. 향응이 부정한 청탁행위의 출발선이다.”

댄 애리얼리는 “최초의 부정행위를 사소하게 봐넘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흔히 누군가 처음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용서한다. 처음 저지른 실수이고 또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초의 부정행위가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 및 그 시점 이후의 자기 행동을 바라보는 방식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는 자기신호를 보내면 부정직함의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지고 또 다른 기만적인 행위를 계속하도록 유도한다는 거다. 공직사회가 작은 반칙을 통해 조직원들이 큰 부정의 초기 단계에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부정한 청탁과 정당한 민원의 경계가 애매하다. 그 경계가 모호해서 공직사회가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검사나 판사의 재량권만 강화되고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 한 부장검사의 엄포다.
소속기관에 가족 채용 못하게 ‘후관예우’도 관리

그래서 부정청탁금지법은 학연·지연으로 얽힌 은밀한 청탁을 아예 금지한다. 직접이든 제3자를 통해서든 공직자에게 위법행위나 권한 남용을 하도록 요구·지시하거나, 정당한 직무수행의 절차를 벗어나도록 압력을 넣으면 부정 청탁으로 규정한다. 그 부정 청탁을 받아들여 일을 처리하면 공직자는 2년 이하의 징역,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정당한 의견 표명은 허용된다. 사전에 정해진 공식 절차를 밟아 이해 당사자가 투명하게 견해를 전달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연고관계나 사회적 영향력 등을 이용해 은밀하게 하는 청탁 관행만 제재하겠다는 목표다. 그래서 이해 당사자가 아니라 제3자가 공직자에게 부정 청탁을 하는 경우 더 강하게 규제하기로 했다. 이해 당사자의 부정 청탁은 과태료가 1천만원 이하지만, 제3자의 경우는 2천만원 이하다. 그 제3자가 공직자라면 과태료가 3천만원으로 올라간다.

부정청탁금지법의 마지막은 이해충돌 방지다. 공직자가 자신이나 가족의 이익이 걸린 업무를 할 수 없도록 했고,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라면 가족을 소속 기관에 채용할 수 없도록 했다. ‘전관예우’뿐 아니라 ‘후관예우’도 관리하기로 했다. 민간 부문에서 차관급 이상을 임용하면 재직하거나 자문했던 업체와 관련 있는 직무를 일정 기간 맡지 못한다. 국민권익위 박계옥 부패방지국장은 “공직자의 이해충돌은 부패행위는 아니지만 부패행위의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며 “적절히 관리하거나 해결하지 못하면 공직남용, 비위행위, 배임 등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국민권익위는 10월2일까지 40일간 부정청탁금지법을 입법 예고해 폭넓은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다. 그 이후에는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 심사, 법제처의 법제 심사를 거쳐 차관회의·국무회의 의결로 정부안을 확정해 국회에 제출한다. 이르면 11월쯤으로 내다보고 있다.

부정청탁금지법을 바라보는 국민과 공직자의 시선 사이에도 거대한 강이 흐르고 있다. 정부 내 다양한 의견을 조율하느라 입법 예고 절차까지 오는 데 14개월이 걸린 것만 봐도 그 강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부정 청탁의 처벌 강도를 형벌에서 과태료로 낮추고 법이 공포되더라도 처벌 규정은 2년 뒤에 시행되도록 유예기간을 뒀지만 은밀한 반대자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대표 그룹은 법률가들이다. 법무부는 공직자의 청렴성을 제고한다는 입법 취지에 공감하다고 밝히면서도 직무 관련성이 없는 금품·향응을 받았다고 형사처벌하는 법은 전세계에 유례가 없다고 했다. 미국이나 독일에서도 직무 관련성 요건은 반드시 포함돼 있다는 거다. 또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보다 형법이나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하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민 여론에 따라 입법자가 결정할 문제라고 한발 물러섰다. ‘스폰서 검사’로 여론의 눈총을 받아온 법무부가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기류는 분명하다. 한 부장검사의 엄포다. “부정한 청탁과 정당한 민원의 경계가 애매하다. 그 경계가 모호해서 공직사회가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검사나 판사의 재량권만 강화되고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

부패인식지수 한국 43위

지난 2월 열린 부정청탁금지법 토론회에서 신은철 국토부 감사관은 “국민들에게 부정청탁방지법을 제정할 정도로 공직사회는 부패한 집단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서 대다수 묵묵히 자신의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공직자의 사기를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유국렬 식품의약품안정청 감사담당관은 “모든 공공기관의 공직자를 법안의 적용 대상으로 삼는 것은 지나친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성을 헌법에서 보장받고 있어 부정 청탁에 대한 우려도 공무원 집단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그러한 노력을 우선 존중하고 필요한 경우 형법을 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지난해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를 보면 한국은 전년보다 네 단계가 떨어져 183개국 중 43위에 머물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4개국 중에서는 27위로 완전히 바닥권이다. 국민권익위가 조사한 인식도 조사에서도 56.%가 ‘공직사회가 부패하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공직사회가 부패하다는 인식하는 공직자는 2.9%에 그쳤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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