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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교육대 피해자 모두 모여라

등록 2001-08-08 15:00 수정 2020-05-02 19:22

국가의 정신적 피해보상 판결로 명예회복… 10여년 소송에 피해자들 뿔뿔이 흩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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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뿔이 흩어진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을 찾습니다. 대법원에서 위자료 지급 판결이 났으니 어서 모여서 보상을 받아야죠.”

자리에 앉기도 전부터, 지팡이에 노구를 의지한 채 여든둘의 노인 문동수(전국삼청교육대피해자동우회 회장)씨는 “꼭 모여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1980년 신군부의 주도로 실시된 삼청교육대 피해자에 대해 국가가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은 그동안 군부독재 시절, 국가폭력의 희생자들 중 유일하게 보상을 받지 못했던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에게 새로운 보상길을 열어주었다.

80년대 내내 숨죽이고 살던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에게 처음 희망이 비친 때는 88년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88년 여소야대 국회에서 과거청산문제가 제기되자 특별담화 형식으로 삼청교육대 피해자에 대한 명예회복 및 보상방침을 발표했다. 88년 12월부터 89년 1월까지 신고기간 동안 삼청교육대 피해자 3215명이 신고를 했다.

3천여명에 대한 88년의 보상약속 수포로

신고를 하고 기다려 보았지만 정부의 보상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이 너나없이 나서 탄원서를 보내도, 관계 법률이 국회 계류중이니 기다려보라는 기약없는 답변만 되풀이해 돌아올 뿐이었다. 91년에는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이 동우회를 결성하고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에 나섰다. 수백명이 항의시위도 하고, 1천여명이 개인 또는 집단적으로 법원에 소송을 내보았지만 모두 허사였다. 법원은 “삼청교육대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시효가 소멸됐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결을 고수했다. 국가를 상대로 한 피해보상청구소송 시효인 5년이 지난 탓이었다. 마지막 남은 국회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지만 실망은 거듭되었다. 12대, 13대, 14대 국회에 연이어 피해보상법률안이 상정되었지만 번번이 통과되지 못했다.

눈앞에 보이던 희망이 사라지면서 삼청교육대피해자동우회의 회원들도 지쳐 떨어져나가기 시작했다. 한때 하루 수십명이 들락거리던 사무실은 점점 비어갔고, 수백명이 모이는 집회를 개최할 만큼 단단했던 조직력도 허물어졌다. 96년부터 회장을 맡은 문동수씨만이 외롭게 7년째 공덕동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문씨는 끈질기게 이 문제에 매달리는 이유를 “씻을 수 없는 한 때문”이라고 말한다. 80년 7월 빼앗긴 집안 땅을 되찾으려다 엉뚱하게 경제 폭력범으로 몰린 문씨는 7개월이 넘게 혹독한 삼청교육을 받았다. 함께 끌려온 아들은 문씨보다 2개월을 더 고생을 한 뒤에야 풀려나왔다. 억울하게 당한 폭력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인 83년, 아들은 삼청교육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문씨는 “아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을 포기할 수 없었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한만 쌓여가고,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 세월이 10년 넘게 이어졌다. ‘이제는 포기해야지…’ 하는 생각을 할 무렵인 올 여름, 뜻밖의 희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7월10일 대법원이 삼청교육대 피해자인 김주열씨 등 5명이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정부가 88년 대국민담화를 통해 삼청교육 피해자들에게 명예회복조치 및 피해보상을 약속해놓고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음으로써 원고들의 국가에 대한 신뢰를 깨뜨렸다”며 “국가는 원고들의 신뢰 상실에 따른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비록 삼청교육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은 아니지만, 위자료라는 형식을 통해 피해를 간접 구제한 것이다. 원고들이 받을 위자료는 원심인 대구고법에서 확정한 개인당 1천만∼1300만원이다.

희소식을 누구에게 전해야 하는가

희소식이 전해졌지만, 문씨는 그 기쁨을 함께 나눌 사람들의 연락처를 알 길이 없다. 세월이 흐르면서 위자료 지급 대상이 되는 삼청교육대피해자 동우회 회원 3215명에게 연락할 길이 끊겨버린 것이다. 문씨는 “이 소식을 모르고 있는 피해자들도 많을 것”이라며 “판례가 만들어졌으니 어서 빨리 모여서 소송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서두른다. 판결이 나자마자 벌써 변호사 선임까지 마친 문동수씨. 이 애끓는 할아버지에게 연락하려면 전국삼청교육대피해자동우회 사무실(02-714-5223) 또는 개인 휴대폰(011-9878-3758)으로 전화하면 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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