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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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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에 금융자본

세금 징수에 소송으로 대응해 이긴 론스타,
1조1500억원 차익 내고 세금 한 푼 안 낸 뉴브리지캐피털…
등록 2010-05-27 12:38 수정 2020-05-02 19:26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 인수 뒤 투자금 대부분을 회수했고, 남은 지분(51.02%)을 팔 경우 다시 5조원의 차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4월 리처드 웨커 외환은행장이 론스타와 HSBC가 맺은 매매계약이 3개월 연장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론스타는 2006년부터 외환은행을 되팔려고 애썼지만 아직 대상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연합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 인수 뒤 투자금 대부분을 회수했고, 남은 지분(51.02%)을 팔 경우 다시 5조원의 차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4월 리처드 웨커 외환은행장이 론스타와 HSBC가 맺은 매매계약이 3개월 연장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론스타는 2006년부터 외환은행을 되팔려고 애썼지만 아직 대상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연합

2003년 외환은행을 인수한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지분 매각을 다시 추진하고 있다. 이미 2006년 국민은행, 2007년 HSBC 등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정하는 등 매각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투기자본 먹튀’ 논란까지 불거져 쉽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팔겠다고 나섰지만 아직까지 마땅한 인수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매각은 쉽지 않지만 론스타는 이미 투자금 대부분을 회수했다. 외환은행은 지난 3월2일 이사회를 열어 주당 510억원씩 3289억원의 현금 배당을 결정했다. 외환은행 지분 51.02%를 보유한 론스타는 1678억원의 배당을 받았다. 이처럼 4년 내리 배당받은 금액은 8560억여원에 달한다. 여기에 2007년 6월 외환은행 지분 13.6%를 매각하면서 받은 1조1927억원을 합하면 총 2조487억원을 회수했다. 이는 투자원금 2조1548억원의 95%에 이른다. 여기에 외환은행을 매각할 경우 지분(51.02%)과 경영권 프리미엄을 합쳐 5조원가량의 매각차익을 남길 것으로 예상된다.

론스타가 벨기에에 법인을 설립한 이유

이미 투자금을 회수한 론스타에 대해 국세청은 세금을 걷지 못하고 있다. 한-벨기에 조세조약은 ‘주식매매 차익은 법인의 소재지 국가가 과세권을 갖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론스타도 이 조세조약을 노리고 벨기에에 법인을 설립했다. 국세청이 2007년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 매각 때 두 차례에 걸쳐 1303억원과 1192억원 등 총 2527억원의 세금을 부과하자 론스타는 이 조항에 근거해 조세심판원에 소송을 냈고, 1303억원이 부당 징수로 판정되면서 국세청이 졌다. 나머지 세금에 대해서도 2년6개월째 조세심판원에 심사가 계류 중인 상황이다.

투기자본의 폐해는 비단 ‘세금 탈루’만이 아니다. 인수 기업을 망가트리기도 한다. 2005년 2월 국내 3위, 세계 6위의 브라운관 업체인 오리온전기는 미국계 펀드 매틀린패터슨에 600억원에 팔렸다. 인수 당시 매틀린패터슨은 직원 1300여 명의 고용승계와 추가 투자를 약속했다. 하지만 인수한 지 두 달 만에 오리온전기를 오리온OLED·오리온PDP·오리온CRT로 분사했다. 그 뒤 오리온CRT는 2개월 만에 홍콩계 펀드인 오션링크사에 팔린 뒤 청산됐다. 또 오리온PDP와 오리온OLED도 2007년과 2008년 중국 창홍전자그룹에 팔렸다. 이로써 청산된 오리온CRT에서 일한 1300명의 노동자는 일자리를 잃었고, 당시 신기술로 각광받던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분야의 특허기술은 중국으로 넘어갔다. 대신 매틀린패터슨은 수백억원의 매각차익을 남겼다.

김치냉장고 ‘딤채’로 유명한 위니아만도는 지난해 3월 노동자 456명 가운데 절반가량인 220명을 정리해고했다. 다국적 투자펀드인 CVC를 포함한 UBS캐피털 컨소시엄이 1999년 위니아만도를 1251억원에 인수했다. 이후 2005년까지 유상감자 및 고율배당 등을 통해 2070억원을 회수했다. 20005년 CVC가 단독으로 지분을 인수한 뒤에도 728억원의 고율배당을 받았다. 2006년 252억원 등 매년 순익을 낸 위니아만도는 2007년부터 적자를 기록했다. 결국 투자는 이뤄지지 않고 단물만 빨리다 적자가 발생하자 그 피해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셈이다.

이 밖에도 미국계 사모펀드 뉴브리지캐피털이 제일은행·하나로텔레콤 등을, CCMP캐피털(옛 JP모건파트너스)과 어피티니파트너스(옛 UBS캐피털)의 공동 설립법인 선세이지가 (주)만도를 인수한 뒤 매각하는 과정에서 수천억원대의 매각 차익이 발생해 국부 유출 논란을 빚었다. 그 사이 노동자는 해고 등의 아픔을 겪었다.

“통제와 규제 없으면 노동자가 피해”

투기적 동기로 움직이는 금융자본은 국가에 의해 통제되기는커녕 역으로 국가를 뒤흔든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기 가입을 위해 금융시장을 개방한 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았고, 이후 전개된 신자유주의 개방정책으로 해외 투기자본의 천국이 됐다.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을 겪으며 ‘눈물의 비디오’로 유명했던 제일은행은 15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된 뒤 1999년 뉴브리지캐피털에 팔렸다. 이후 뉴브리지캐피털은 2005년 제일은행을 SC그룹에 되팔면서 1조1500억원의 차익을 남겼지만, 역시 조세협약을 이용해 세금 한 푼 물지 않았다. 산업자본인 상하이자동차도 쌍용차 인수와 관련해 투기적 속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인수 초기 내건 고용승계와 투자는 하지 않았고, 핵심 기술만 빼갔다. 기업이 성장하지 못한 피해는 비정규직을 포함한 3천여 명의 실직으로 이어졌다.

투기자본감시센터의 허영구 공동대표는 “쌍용차 사태는 투자 당시의 고용 보장과 투자 약속을 지키지 않은 상하이차의 책임이 큰데도 정부는 상하이차를 제재하는 대신 노동자를 탄압했다”며 “국가가 자본에 대한 통제와 규제를 하지 않는 한 노동자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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