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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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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으로 갈아입는 세계의 도시들

런던·밴쿠버·도쿄 임대텃밭 인기… 뉴욕 초고층 건물선 수직농업 연구 활발
등록 2009-10-29 08:24 수정 2020-05-02 19:25

유엔의 한 조사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도시 주민이 소비하는 음식의 약 3분의 1이 도시 내부에서 생산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약 8억 명이 도시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 중 6억 명은 자신이 먹기 위해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다. 도시에서 넓은 토지를 차지하는 대학병원·군부대·공원 등의 부지는 도시농업을 하기에 적당한 땅이다. 최근에는 기후변화 방지 대책의 하나로 건물 옥상에 텃밭을 조성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나라별로 다양한 이름의 시티파머들이 도시농업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일본은 각 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도시농업이 발달돼 있다. 땅이 좁은 대신 건물 지하나 옥상을 적극 활용한다. 일본 도쿄 가와사키시의 시민농원. 사진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제공

일본은 각 시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도시농업이 발달돼 있다. 땅이 좁은 대신 건물 지하나 옥상을 적극 활용한다. 일본 도쿄 가와사키시의 시민농원. 사진 인천도시농업네트워크 제공

‘그린 게릴라’ 도시농부 교육·지원 사업

미국에서는 뉴욕을 중심으로 초고층 건물에서 농작물이나 가축을 기르는 ‘수직농업’ 연구가 활발하다. 1973년 리즈 크리스티라는 예술가의 역할이 컸다. 그는 이웃들과 함께 시 소유 공한지를 정리하고 도시텃밭을 조성하면서 현대적 의미의 도시농업을 싹틔웠다. 이들은 스스로를 ‘그린 게릴라’로 불렀다. 지난 30여 년간 그린 게릴라는 뉴욕에 600개의 도시텃밭을 조성했다. 교사·학생·예술가·변호사·기업인 등으로 구성된 600명의 후원자가 이 단체를 돕고 있다.

그린 게릴라는 현재 자신이 소유하거나 운영하는 도시텃밭이 없다. 대신 도시텃밭을 시작하려는 도시농부들을 교육하거나 지원하는 사업을 펼친다. ‘그린섬’ ‘브롱스그린업’ ‘공정한 먹을거리’ 등의 시민단체와 연대해 식량정의를 논하는 토론회를 개최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뉴욕시에서 도시텃밭 운동을 벌이고 있다.

영국 런던도 열악한 기후조건에도 불구하고 도시농업이 인기다. 현재 런던에는 737개의 도시텃밭이 있다. 구획 수로는 3만6천 개에 이른다. 런던 시민 3만 명이 임대텃밭 농사를 즐기고 있으며 런던 가구의 14%가 자신의 집 정원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임대텃밭은 10년 이상을 기다려야 차례가 돌아올 정도로 인기다. 런던의 도시농업을 이끄는 것은 ‘캐피털그로스’라는 단체다. 캐피털그로스는 2012년 런던올림픽 때까지 런던 시내에 2012개의 도시텃밭을 새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경작지가 부족하다 보니 최근 상자나 자루를 이용해 아스팔트 위에서 농사를 짓는 사례도 늘고 있다. 예술과 건축 작업으로 도심 공동체를 되살리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인 ‘왓이프’는 최근 런던 도심부의 한 공한지에 0.5t 정도의 흙을 담은 자루 70개를 설치했다. 지역 주민들이 알아서 채소와 과일, 꽃을 심게 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시민들의 반응은? 물론 뜨거웠다.

경작 희망자와 토지 소유자를 연결

영국인들의 텃밭 사랑은 경작 희망자와 토지 소유자를 서로 연결해주는 웹사이트 ‘랜드셰어’의 인기에서도 짐작해볼 수 있다. 이 웹사이트는 영국의 방송사가 운영하고 있다. 랜드셰어의 운영방식은 간단하다. 경작 희망자와 토지 소유자가 자신의 거주지와 함께 제공 가능한 토지나 경작하고 싶은 토지에 관련한 사항을 올린다.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합의가 되면 이들은 랜드셰어가 제공하는 표준계약서 양식을 활용해 계약을 맺고 도시농업을 시작한다. 현재 이 웹사이트의 회원 가입자는 4만 명. 이들은 성공담을 나누며 서로의 경작 방법을 독려한다. 최근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대주교가 탄소를 줄이기 위해 더 많은 땅에 더 많은 과일과 채소를 기르도록 촉구하고 나서면서 교회 소유의 광대한 토지도 랜드셰어의 대상이 될지 주목받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도 런던처럼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2010년까지 시내에 2010개의 도시텃밭을 만드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10 공공텃밭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밴쿠버 식량정책협의회는 텃밭에서 직접 기른 먹을거리를 저소득층에 기부하는 프로그램을 추진하고 있다. 밴쿠버시는 지난 6월 시청 부지에 30구획 규모의 도시텃밭을 만들어 일반 시민이 경작할 수 있게 했다. 시민들은 시가 제공한 도시텃밭을 1년에 20달러 정도의 사용료를 내면 이용할 수 있다. 한 조사결과를 보면, 텃밭을 이용해 먹을거리를 해결한 경험이 있는 밴쿠버 시민은 44%나 된다. 이들은 이제 푸른 잔디가 깔린 정원 대신 음식물 쓰레기를 활용한 거름이 덮인 텃밭에서 농작물을 직접 수확해 먹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특정농지대부법’ 제정해 지자체서 임대

가까운 나라 일본 도쿄도 도시농부를 키우는 데 적극적이다. 일본은 농지 유휴화가 심각해지자 1989년 ‘특정농지 대부에 관한 농지법 등의 특례에 관한 법률’(특정농지대부법)을 제정했다. 지자체나 농협이 소규모 농지를 도시민에게 빌려줄 수 있게 한 법이다. 1990년 ‘시민농원 정비촉진법 제정’, 2005년 ‘특정농지대부법 개정’ 등을 통해 일본 정부는 지자체와 농협 이외의 단체도 시민농원(우리의 주말농장 개념)을 개설할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줬다. 2006년 3월에는 시민농원에서 재배한 농작물의 판매를 허용하는 법안까지 내놓았다. 도시농업 활성화를 돕는 법 규정이 속속 나오면서 시민농원과 체험농원도 늘어났다. 시민농원은 농협이 농가에서 농지를 빌려 1구획당 10~15㎡ 규모로 나눈 뒤 일반 시민에게 1~3년간 임대해준다. 체험농원은 농가가 개설해 운영하는 새로운 형태의 도시농업이다. 체험농원의 이용자는 30㎡ 정도의 구획을 할당받은 뒤 농장주의 농사 지도를 받으면서 정해진 품목을 경작한다. 지난 3월까지 도쿄에만 2만8천여 구획의 시민농원 448개와 3600여 구획의 체험농원 63개가 조성됐다.

시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시민농원은 좀더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당일형 시민농원뿐 아니라 ‘클라인가르텐’이라고 부르는 숙박이 가능한 체제형 시민농원, 어린이농원, 복지농원과 같은 새로운 형태도 등장하고 있다. 녹화사업을 통해 지하 온실이나 건물 옥상을 활용하는 방법도 반향을 얻고 있다. 파소나 인력개발회사는 건물 지하에 텃밭을 꾸며 관광지처럼 활용하고 있다.

이렇듯 전세계 곳곳에서 활발하게 진행 중인 도시농업은 그 목적도 다양해지고 있다. 자연교육, 환경보호, 공동체 활성화, 공한지 재이용 등 도시농업의 수많은 긍정적 효과에 스스로 놀라며 적극적으로 시티파머들을 길러내고 있다.

21세기 농업은 이전 시대와 전혀 다른 의미와 위상을 지닌다. 어쩌면 국민 모두가 농사짓는 시대가 조만간 올지도 모른다. 다문화 음식축제나 유기농산물 품평회 등 도시농업 이벤트를 자주 열어 시민의 이해를 높이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은 도시텃밭법과 조례를 제정해 제도적 차원에서 도시농업을 뒷받침해야 할 때다.

이창우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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