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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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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잣대 보도, 서로 다른 뒤끝

YTN의 꽃 <돌발영상> 역대 베스트…
엄숙주의 깨는 풍자·비판으로 일관했지만 현 정부 들어선 뒤 담당자 보복성 징계
등록 2009-08-20 02:18 수정 2020-05-02 19:25

YTN의 은 2003년 4월부터 방송됐다. 방송 중단 사태는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 발생했다. 지난해 10월, 33명의 기자들이 해직 등 중징계를 당하면서 6개월간 방송이 중단됐다. 올해 4월 부활했지만 이번에 또다시 담당 기자가 중징계를 받으면서 불방됐다. 지난해 3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의 ‘백브리핑’(배경설명) 장면을 소개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편은 방송국 간부의 압력으로 아예 전파를 타지 못했다. 역시 처음 있는 일이었다.
1400여 편에 이르는 역대 은 대부분 YTN 홈페이지(http://www.ytn.co.kr)에 등록되어 있다. ‘섬네일’(작은 크기의 초기 화면)을 중심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삼은 경우를 골라봤다. 대부분 기자회견, 국무회의, 민생현장 등에서 여러 수행원 및 기자단과 함께 있을 때 대통령이 행한 언사를 담았다. 풍자와 비판의 칼끝은 두 대통령 모두에게 똑같이 겨누어졌다. 오직 다른 것은 비판 보도에 대한 정권과 YTN 간부진의 태도다. 대표적인 경우를 소개한다.
▶ 노무현 전 대통령 관련

이명박 대통령 관련 〈돌발영상〉

이명박 대통령 관련 〈돌발영상〉


2003년 7월24일 ‘‘개XX’는 간접화법’ 편

민원 관련 공무원들을 청와대로 부른 대통령. 민원인의 눈에 비친 공무원의 모습을 설명한다. “그래서 민원인들 속 터지죠.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 한참 하다가 남는 건 뭡니까? 개XX들…. 그렇죠? ’공무원 절반은 잘라내야 돼!’ (민원인들의) 그런 인식을 해소하자는 말이죠. 제대로 해소될는지 모르지만.” 비록 민원인을 빌린 ‘간접화법’이지만 대통령 입에서 공무원을 향한 쌍욕이 터져 나오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냈다. 공무원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노 전 대통령 ‘개××’ 발언 그대로 중계
2005년 3월29일 ‘오프’ 편

대통령이 출입기자단과 함께 청와대 뒷산을 올랐다. 간담회를 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화면에는 기자들의 질문만 나오고 대통령의 답변은 나오지 않는다. 자막이 흐른다. ‘답변은 보여드릴 수 없습니다. 왜?’ 곧 이은 화면에는 등산 직후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배포한 ‘대통령 발언 보도자료’가 나온다. “북핵, 한-미-일 동맹 등에 대한 모든 답변은 오프(비보도). 굵은 글씨로 강조한 대목만 보도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언론은 극히 일부만 기사화’라는 자막이 흐른다. 마지막 장면은 이날 등산 직전에 나온 대통령의 발언이다. “대통령 등산하는데, 무슨 기사가 있겠어요?” 정치 기사가 어떻게 ‘통제’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2006년 4월6일 ‘어중개비’ 편

식목일 행사를 위해 대통령이 경기 여주를 찾는다. 주민들과 널뛰기 하면서 사진을 찍고, 정자에 군수와 나란히 앉아서 사진을 찍고, 나무 심다 말고 어린이와도 사진을 찍는다. 대통령 얼굴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촬영 기사의 말에 포즈를 다시 취하는 장면까지 그대로 내보냈다. ‘오늘 하루, 사진은 원없이 찍는 듯’이라는 자막이 흐른다. ‘어중개비’는 겉으로만 아는 척 한다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다. 일하는 듯 마는 듯 행사 사진만 찍는 대통령을 비꼬았다.

2006년 9월18일 ‘부시 말 전해듣기’ 편
한-미 정상회담 뒤, 양국 대통령이 기자들을 앞에 두고 앉았다. 한국 기자가 두 나라 대통령에게 각각 질문을 던졌다. 부시 전 대통령에겐 전시작전권 환수에 대해, 노 전 대통령에겐 남북관계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부시 전 대통령이 즉흥적으로 농담을 던졌다. 이 와중에 노 전 대통령은 질문에 답할 기회를 아예 얻지 못했다. 문제는 통역자가 이런 상황을 무시한 채 애초 예정됐던 질문·답변 내용을 그대로 ‘통역’한 것이다. 얼핏 보기엔 화기애애한 분위기 같지만, 서로 동문서답을 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두 나라 대통령과 통역자, 기자들이 묻고 답하는 상황을 은 세밀하게 분석해 보여줬다.

▶ 이명박 대통령 관련
이명박 대통령 관련 〈돌발영상〉

이명박 대통령 관련 〈돌발영상〉



2008년 4월4일 ‘‘4월3일’ 청와대’ 편


진급한 군 장성의 신고식이 청와대에서 열렸다. 대통령이 밝은 표정으로 말한다. “이제 (진급에 영향주는) ‘인맥’은 없잖아요. 우리 (청와대) 경호처장도 제주도 출신 김인종 장군이 와 있는데….” 자막이 흐른다. ‘4·3 제주항쟁 60주년 기념일에 듣는 제주의 현실?’ 대통령의 말이 이어진다. “(경호처장을 향해) 제주 출신이기 때문에 인맥도 별로 없죠? 영호남, 충청쯤 돼야 인맥이 있지. 제주도는 별로 인맥도 없는 것 같습니다.” 다시 자막이 나온다. 이날 중장 진급자의 출신 지역별 분포를 알린다. ‘영남 9, 호남 3, 충청 3, 제주 0.’ 제주도민에겐 결코 잊을 수 없는 4월3일에 하필이면 제주를 폄훼하는 듯한 발언을 한 대통령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2008년 9월29일 ‘멜라민’ 편

식품의약품안전청을 찾은 대통령. 멜라민 파동에 대한 식약청의 대응방안을 묻는데, 대통령은 ‘멜라닌’과 ‘멜라민’을 자꾸 헷갈려 한다. 이어 멜라민 첨가 식품으로 적발된 과자류의 포장지를 살핀다. 첨가식품표를 자세히 읽더니 “멜라민이란 말이 없네”라고 말한다. 식약청 관계자가 “멜라민은 들어가 있을 수가 없다”고 답한다. ‘첨가해선 안 되는 독성물질… 표시하면서 첨가했을 리 만무’라는 자막이 흐른다. 식약청 관계자는 “그 식품에서 (멜라민이) 검출되어 문제가 됐다”고 추가 설명한다. 대통령도 추가 질문한다. “그런데 이게 (표시) 안 돼 있으면 (멜라민이 있는지) 모르잖아요.” 상황 파악 자체를 못하는 대통령을 은근히 비판했다.

이 대통령 반말투·사오정 같은 대화 보도

2009년 6월30일 ‘살기 좋은 세상’ 편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찾았다. 상인들이 “상권이 다 죽었다. 문 닫고 있다”고 연이어 말한다. 대통령은 그 말엔 대꾸하지 않고 “안녕하세요” 인사만 한다. 슈퍼마켓 주인이 한숨 쉬며 “장사가…” 하는데, 대통령은 뻥튀기 과자를 집어들고 수행원들에게 “야, 이것 좀 사먹어라” 반말을 한다. 빵집 주인이 “엄청나게 (장사가) 잘됐는데 다 무너졌다”고 하자, “왜 안 돼? 방학이라 학생들이 안 와서?”라고 대통령이 다시 반말로 되묻는다. 이후 수많은 상인들이 대형마트 탓이라고 하소연한다. 대통령은 “(시장 상인이) 인터넷으로 (농촌과) 농산물 직거래를 하면 됩니다”라고 말한다. 상인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묵묵히 앉아 있다. 대통령이 다시 말한다. “내가 과거에 재래시장 (노점) 할 때는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할 길도 없었어. 끽소리도 못하고. 지금은 그래도 이야기할 데라도 있으니 좋잖아. 좋아졌잖아, 세상이.”

2009년 7월15일 ‘대통령의 원대한 구상’ 편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했다. “피해당한 것 복구만 하지 말고, 영구적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산간벽지에 흩어진 집 한 채, 두 채 있잖아요. 피해 나면 마을회관에 모아가지고 있다가 돌려보내고 집수리해주고. 그런 식으로 할 게 아니고, 외딴 마을을 안전한 이런 데 한 곳에 모아서 모여살도록 하면 좋겠어요.” 행정안전부 장관이 답한다. “경북 봉화를 그런 식으로 유도하니까요, 마을 주민들이 옮겨가려 하지 않아서….” ‘원대한 구상의 걸림돌’이라는 자막이 흐른다. 대통령이 제안한 근본대책의 허황함을 드러냈다.

지난해 10월 문화연대 주최 심포지엄에서 이상길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이 혁신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엄연히 정치세계의 공식적인 일부인데도 그간 미디어가 공개하지 않았던 부분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짚은 바 있다. 기계적 중립, 단순 보도, 양시양비론, 엄숙주의, 비보도 협약 남발 등으로 오염된 한국의 정치 저널리즘에서 이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이다. 처음에는 뉴스의 한 꼭지로 시작했으나, 곧이어 독립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YTN보다 이 더 유명해졌다. 은 YTN의 꽃이었다.

만든 기자는 파면, 성가 높인 기자는 대기발령

그러나 을 구상해 정착시킨 노종면 기자는 노조위원장으로 일하다 지난해 해직당했다. 본격적으로 그 성가를 높인 임장혁 기자는 지난해엔 정직, 올해는 대기발령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간판 프로그램을 직접 일궈낸 두 기자가 훗날 그런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처음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이영은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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