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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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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올리버를 아십니까

등록 2003-06-13 00:00 수정 2020-05-03 04:23

고려대·이화여대 재학생과 졸업생들, 대학 도서관 전면 개방운동 벌인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병으로 앓아눕는다. 부모는 아이의 병이 지독한 희귀병이며 아직까지 치료약이 개발되지 않은 불치병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부모는 절망하지 않는다.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아들의 병과 관련한 모든 자료를 수집해 미친 듯이 읽고, 수소문하고, 실험을 한 끝에 마침내 치료약을 발명한다. 의학 지식이 없던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위대한 치료약을 발명해낸, 이 영화 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대학의 본래적 공공성을 위하여”

그러나 이 실화는, 상당한 양의 장서를 모아놓은 도서관을 어느 지역에서라도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적 조건이 갖춰진 사회에서나 실현 가능한 얘기다. 대한민국이라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주요 지역과 지방마다 한개 이상씩 있는 대학 도서관을 일반 시민들도 이용할 수만 있다면 그 가능성은 상당히 높아진다. 그러나 ‘거대한 고시원’처럼 운용되고 있는 대학 도서관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면 의 얘기는 다시 먼 나라 얘기가 된다.

이 같은 현실 속에서 고려대와 이화여대 재학생들과 졸업생 일부가 대학 재학생과 학교 당국에 의해 폐쇄적으로 독점돼 있는 대학 도서관을 지역 주민을 비롯한 모든 시민들에게 전면 개방하자는 운동을 벌여 눈길을 끌고 있다. 고려대 ‘올리브’(OLIB: Open Library의 줄임말) 운동과 이화여대 ‘올리버’(OLIBER: Open Library with Her) 운동이 그것이다.

올리브 프로젝트에는 고려대 자치모임들인 ‘불한당’, ‘생활도서관’, ‘장애인권위원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대학이 독점적으로 확보해왔던 지식과 정보를 사회에 환원해야 하며, 이 일환으로 대학 도서관의 완고한 장벽을 철폐하자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자격조건을 두지 말고 모든 이들에게 도서관 전면 개방 △이용 시민들에게 자료 개방과 함께 대출 제도도 마련 △충분한 열람공간 확보 △장애인 이용정책 획기적 개선 등을 꼽고 있다.

올리브 프로젝트는 지난 5월31일 오후 고려대 학생회관 생활도서관에서 ‘대학도서관 개방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만난 이민준(21·경제3)씨는 이 운동이 자칫 대학의 여유공간을 일반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시혜적인 운동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이 운동은 이제까지 중요하게 다뤄지지 못했던 대학의 본래적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라며 “고급 정보와 지식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시민들에게 정보를 환원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를 통해 대학의 교직원뿐 아니라 학내의 비정규직 노동자에서부터 여성, 장애인, 성적 소수자, 노동자 등 사회적·문화적 소수자를 비롯해 수많은 지역 주민들까지 대학 도서관을 함께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공성의 회복이라는 목표와 관련해 이들은 대학 도서관이 대학 구성원들의 돈과 노력만으로 운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즉, 국가가 국립대학은 물론 사립대학 도서관에도 매년 상당한 액수(고려대의 경우 10억원 안팎)를 지원하고, 대학 전체에도 막대한 국가예산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대학이 지닌 공익적 기능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대학 도서관에 집적된 엄청난 양의 지식은 특수한 계층만이 독점적으로 사용하도록 돼 있어 사회적 불평등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다.

재학생들 반대에 부닥쳐

이들은 또 대학 도서관의 개방이 공교육 정상화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임윤희(30·졸업생)씨는 “대학 도서관을 중심으로 평생교육이 이뤄지면 도서관에 쌓이는 최신의 정보와 지식을 지속적으로 습득할 수 있어 진정한 의미의 자기교육이 가능하게 된다”며 “캐나다 도서관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지역사회에 밀착해 새로운 정보와 문화를 일상적으로 창출하는 구실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확보하는 것도 이 운동의 주요한 목표다. 고려대 도서관의 경우 장애인 학생의 열람석을 왜소하게 구분해놓는 등 장애인의 도서관 이용이 외면당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화여대의 올리버 운동은 ‘지역여성과 함께하는 대학 도서관 만들기’라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이들의 문제의식은, 정보접근권에서 소외되고 있는 여성의 문제가 작게는 개인의 자아실현에서 시작해 넓게는 노동시장에서의 불평등으로까지 이어져 여성의 주변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김하나(22·철학4)씨는 “대학 도서관이 특별히 여성에게 개방되어야 하는 이유가 현실적으로 존재한다”며 “이화여대 도서관을 한국 최초의 여성도서관으로 만들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들은 특히 전업주부 등 지역 여성들이 대학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간이 탁아소나 기저귀대, 수유공간 등도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하고 있다.

두 대학의 선도적 운동에 대해 송덕여고 이덕주(36·전교조 학교도서관 분과) 교사는 “우리나라 도서관의 경우 대학 도서관처럼 소수 엘리트를 위한 서비스가 비교적 잘돼 있는 반면, 시민들의 정보접근은 무척 불편한 것이 현실”이라며 “대학 구성원들에게 도서관의 본뜻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이들 운동은 무척 소중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올리브·올리버 운동은 내부 대학 구성원들, 특히 재학생들의 반대에 부닥치고 있다. “우리 공부할 자리도 부족한데 무슨 개방이냐”는 다소 감정적인 반응이 그것이다. 고시 공부나 학과 시험에 대비한 독서실로 운용되는 현재의 대학도서관 시스템으로 보면 재학생들의 이같은 볼멘소리는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 그러나 올리브·올리버 운동 주체들은 “열람실의 확충과 개방 문제는 별개의 문제라기보다는 동시적으로 추구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한다.

어쨌든 “우물은 더 많은 사람들이 퍼내어 쓸 때 더 많아지고 깨끗해지듯이 대학도서관에 모여 있는 지식과 정보도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때 질적 수준도 높아지고 그 총량도 확대될 수 있다”는 이들의 목소리가 어느 정도의 메아리를 확보할지 지켜볼 일이다.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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