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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 “기독교에서 사용자란 없다”

등록 2003-04-23 15:00 수정 2020-05-02 19:23

극동방송·기독교TV에서 파란을 겪고 ‘라디오21’에 안착한 다재다능 의욕과잉 김용민 PD

2002년 10월 어느 날, 충북 옥천 숲속에 있는 기도원에 기독교TV 직원들이 모였다. 회사의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수련회였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몸집이 남산만한 사내 하나가 마이크와 앰프를 열심히 설치하더니 “아아, 마이크를 시험하겠습니다” 목청을 가다듬기 시작했는데, 그 ‘마이크 시험’이 족히 30분은 걸렸다. 그가 성대모사를 시작하자 직원들이 모두 파안대소 뒤로 넘어가며 “와, 똑같다. 똑같애. 이번에는 아무개 부장 좀 해봐”라고 앞다퉈 주문을 했다. 그러면 큰 몸집의 사내는 천연덕스럽게 흉내를 냈다. 그가 누구 흉내를 얼마나 잘 내는지 나로서는 알 턱이 없으나, 직원들 원성이 자자한 직장상사들이 차례로 도마에 오르고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단 한번의 만남으로 평생 잊히지 않을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이 김용민(30)씨다.

김장환 목사와의 악연

중·고등학교 시절을 ‘라디오 마니아’로 보낸 김씨는 대학 1학년 때부터 라디오방송의 작가·리포터 일을 시작했다. “극동방송 리포터 일을 하느라 늘 녹음기를 가지고 다닐 때였어요. 성수대교가 무너졌는데 제가 바로 그 근처에 있었거든요. 공중전화를 잡고 극동방송에 ‘다리가 무너졌다’고 생중계를 했지요. 다리를 막 건너온 사람들에게 인터뷰를 땄어요. 다른 방송사들은 한참 뒤에야 다리 건너온 사람들을 열심히 찾아다녔고…. 한마디로 제가 ‘특종’을 한 거지요.”

대학 졸업 전인 1998년 8월, 극동방송에 PD로 취업했다. 창원, 속초를 거쳐 서울본사로 발령을 받았는데, 방송사 전체가 김장환 목사의 개인 비서실처럼 운영되는 실태를 보고 그는 선교방송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김장환 목사의 자서전 를 만드는 일을 맡았다가 오히려 그는 평안을 잃었다. 자신의 홈페이지에 교회 부조리에 대한 소신발언을 강화하기 시작한 때가 그 무렵이다.

“2000년 10월,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아들이 연예스포츠신문 를 만든다고 했을 때, 한 월간지에 실린 조용기 목사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격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교회 성도들로부터 문화선교 헌금으로 거둔 돈이 청소년들에게 유해한 언론매체를 만드는 데 쓰이는 것은 도저히 합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일인데도, 자기 아들 일이라고 계속 두둔하더군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극동방송에 공문을 보내 김씨에 대한 조처를 촉구했다. 홈페이지를 없애라는 회사의 요구에 대해 그는 사건의 전말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상세히 올리는 것으로 답했다. 훌쩍 예비군동원훈련을 떠났다 돌아온 김씨에게 김장환 목사의 면담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종교개혁을 하려면, 마틴 루서처럼 밖에 나가서 해라’ 그거였어요. 자주적 의사표현 구조가 없는 극동방송에는 더 이상 미련이 없더군요. 사표 쓰고 나왔지요.”

평소 김씨의 능력을 눈여겨본 기독교TV 상임고문 권유로 2001년 2월 기독교TV에 입사했는데, 세상은 도대체 그가 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감경철 사장 친정체제가 들어선 뒤 회사를 사유화하기 위한 수순에 직원들이 순순히 따르지 않자, 회사는 기자들과 기술감독을 신용카드 영업부서로 발령을 내는 만행을 저질렀어요. 새 사옥을 짓는다면서 교인들을 상대로 모금을 시작했을 때 직원들은 ‘기독교TV가 건물 한층을 임대 사용할 뿐인 개인소유 건물을 지으면서, 교인들을 상대로 모금을 하는 것은 희대의 사기극이다’라며 실상을 폭로했지요. 그 와중에 회사가 서울 강남의 대치동 사옥에서 쫓겨나는 일이 벌어졌는데, 구조조정 핑계를 만들기 위해 회사가 의도적으로 위기상황을 조장한 측면이 짙었어요. 열심히 맞서 싸웠지만 대한민국에서는 흑자경영 회사에서도 기업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나서면 노동자들은 뾰족한 대책이 없더군요. 2002년 11월에 직원들 절반 이상이 명예퇴직을 하면서 결국 싸움이 끝났어요.”

“라디오21 잘 해낼 겁니다”

김용민씨 얼굴에 잠시 허탈한 기색이 감도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시 활짝 생기를 띠면서 말한다. “중요한 고비마다 나에게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아내가 고맙습니다.” 어라, 총각인줄 알았는데 지난해 11월에 결혼한 신혼이란다. 중학교 때 교회에서 처음 만났다는 부인 정현주(28)씨와는 어떻게 연애를 했을까 “영화 보셨어요 그 영화에서 남자와 여자 역할만 바꾸면 우리와 아주 비슷한 상황이 됩니다. 나는 강원도 속초에 있는 라디오방송 PD였고, 그 사람은 서울에 살았고, 서울과 속초를 오가면서 서로 그리워하다가 한번 헤어졌다가…. 영화에서는 헤어지지만 우리는 결혼한 거지요. 어려운 상황에 놓일 때마다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나한테 도움을 줬어요. 극동방송 그만둘 때나 기독교TV 그만둘 때나 모두….”

기독교TV를 그만두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방송 ‘라디오21’의 모집공고를 봤다. “‘여기야말로 내 뜻과 취지에 딱 맞는 곳이다’라는 생각이 확 들더라고요. 면접 때 ‘계속 종교개혁을 하면 되지, 왜 다른 개혁에 눈을 돌리느냐’고 물었는데, ‘나는 둘 다 할 거다’라고 답했어요. 수구세력에 맞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분출되는 상황에서 ‘종교·언론·정치는 다 같은 맥이지 다른 것이 아니다’고 답했습니다.”

김 PD는 지금 인터넷방송 ‘라디오21’ 제작3팀장이다. ‘뉴스 앤 커피’, ‘뉴스21’, ‘노동과 꿈’을 제작한다. 최근 ‘라디오21’은 내홍을 겪었는데 “그 상황을 언론에 공개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가 우선 핀잔부터 들었다.

“언론에 공개할 수 있는 범위라…. 기본적으로 인터넷 매체는 다 열려 있어야 합니다. 문을 닫고 쉬쉬하는 것은 네티즌 코드에 맞지 않아요. 처음 설립하면서부터 ‘라디오21’은 수평적 리더십을 강조했어요. ‘라디오21’에서는 모든 직원이 정규직이에요. 직원 워크숍에서 김갑수 대표(잠깐, 이 김갑수씨는 영화배우 김갑수씨가 아니다)와 직원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있었어요. 김 대표가 상심해서 며칠 쉬기다가 직원들이 일괄사표를 냈다가 결국 김 대표가 물러나기로 한 것인데…. 저는 주로 김 대표 뜻을 대변하는 입장이었지만 노동자들에게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일괄사표가 요구되는 것을 보고 고민에 빠졌지요. 아내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상의했는데 ‘상식대로 해라.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상식이냐 그럼 그만둬라’ 그렇게 말하더군요. 고민의 몫이 당장 그 사람에게 넘어가야 하는 상황인데도 그렇게 말해주더라고요.”

‘라디오21’은 일단 원만하게 일을 잘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 “직원들은 좋은 방송 만들기에 전념하고, 경영상 어려운 문제들은 비대위가 책임지고 수습하는 것으로 아주 보기 좋게, 아름답게 풀렸어요. 김갑수 전 대표는 본래 방송 진행자로 발군의 실력을 가진 MC예요. 경영자라는 잘 맞지 않는 옷을 잠시 입은 것뿐이었지요. 기회는 위기를 통해 나온다는 말을 절감했습니다. 개혁언론다운 위기대처능력을 보여준 거지요. 걱정하지 말고 지켜봐주십시오. ‘라디오21’ 잘 해낼 겁니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지나친 선명성

옆자리의 안효진 작가에게 김 PD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더니 딱 여덟 글자로 정의한다. “다재다능 의욕과잉.” 역시 작가는 다르다. “의욕과잉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피곤할 때는 없느냐”고 되물었더니 “없다. 본인의 건강도 돌보지 않은 채 열심히 일한다는 뜻이다”라고 자른다.

김씨와 헤어져 여의도를 빠져나오다가 그가 기독교방송의 이진성 PD에 대해 “따뜻함과 정의로움을 같이 갖춘 사람”이라고 말한 것이 생각나 이 PD에게 전화를 했다. “김 PD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음악·종교·시사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몇 안 되는 PD 가운데 하나”라고 극찬을 한다. ‘아니, 체격 큰 사람들끼리 서로 칭찬하기로 짰나’ 싶어 “김씨의 단점에 대해서도 말해달라”고 했더니 “교회개혁에 대한, 부담스러울 정도로 지나친 선명성”이라고 답한다. 내가 알기에 이 PD야말로 기독교방송 내에서 교회개혁에 대해 가장 과격한 입장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지나치게 선명하다’고 말할 정도라면…. 에구, 무서워라. 앞으로 나는 김용민씨를 만날 때마다 신발끈을 고쳐 매고 옷깃을 다시 여며야겠다.

“기독교에서 노동자의식을 더 강조해야 돼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씀이 있잖아요. 노동자성은 기독교의 근간이에요. 사용자도 당연히 노동자여야 합니다. 자기가 노동자라는 의식이 전혀 없는 사용자들이 노동자를 탄압하고 열악한 환경에 몰아넣는 겁니다. 노동자의 반대개념은 사용자가 아니라 반노동자예요. 이 땅에 노동정의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이 노동자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김용민씨야말로 진짜 노동자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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