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광주사태’는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됐고, ‘폭도’는 유공자가 돼 명예를 회복했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도 항쟁 관련 행방 불명자 가족들은 어느 산골, 어느 들녘에 묻혔는지 모르는 사랑하는 이들의 유골조차 찾지 못했다.”
새정부 출범을 앞둔 요즘 ‘광주 5·18 행방 불명자 가족모임’ 회장 김정길(58)씨는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는 광주항쟁 당시 행방불명된 이들의 가족 가운데 아직도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정치권에 알리기 위해 생업도 포기한 채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광주항쟁 관련 행불자 보상신청과 심사는 1990년 8월부터 2000년 1월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363건이 신청돼 이 가운데 모두 64건이 인정됐다. 항쟁 당시 실종된 김씨의 동생 성기(당시 27살)씨도 1993년 2차 보상심의 때 민주화운동 관련성이 인정됐다. 수소문 끝에 1980년 5월 당시 광주 충장로에서 동생과 함께 횃불시위에 참가했다는 인우보증인을 운좋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는 그 이후에도 가족모임을 떠날 수 없었다. 보상심의과정에서 행정착오 등으로 행불자로 인정되지 못한 이들이 주위에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2000년 12월 가족모임 회장을 맡게 된 그는 지난해 5월 보상심의위원회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항의하다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행방불명자 가운데는 넝마주이나 구두닦이 출신이 꽤 많다. 우리 사회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도 분연히 일어선 500~600명에 이르는 이들의 가족들은 보상신청조차 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새정부에서 다시 한번 법 정비가 이뤄져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 김씨에게 ‘1980년 5월 광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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