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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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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예약한 탄생

폐가 발달하지 못해 탄생의 숨이 죽음을 불러일으킨 아기, 죽음의 반대말은 탄생일까
등록 2022-11-02 13:09 수정 2022-11-04 23:17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진이 수술하는 모습.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의료진이 수술하는 모습.

차가운 수술실에 누운 엄마의 생살이 메스로 날카롭게 잘려나갔다. 선홍빛 피가 순식간에 흘러내렸다. 노란 버터 빛깔의 지방층을 지나 벌건 근육이 고개를 내밀었다. 근육의 결대로 복근이 갈리고 분홍색 아기집이 드러났다. 다시 메스로 얇게 베자 선명한 빨간색의 피가 튀었다. 산부인과 의사의 손이 자궁 안으로 쑥 들어갔고 아기 머리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어둡고 따뜻한 엄마 배 속이 아닌, 시리도록 하얀 수술실 조명 아래 아기는 온 힘을 다해 울었다. 세상을 다 깨우려는 듯한 얼굴이었다. 마치 자신의 탄생을 세상이 몰라줄까 두려운 듯 목숨 걸고 우는 것 같았다. 얼굴 근육이 맹렬하게 부르짖고 있었다. 서늘한 수술실이 그 울음의 파장으로 울려 터질 것 같았다. 수술실이 아니라 전쟁터, 아니 사지의 모습이었다.

축복이어야 할 분만실에 절망의 눈물만

이상하게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누군가 내 머리 안에서 음성 소거 버튼을 꾹 누른 것 같았다. 아기는 다시 한번 큰 숨을 들이켰다. 모든 생명체는 생을 향해 나아가도록 설정돼 있다. 이 아기도 살려고 모든 힘을 한데 모아서 숨을 쉬었다. 다시 정적이 흘렀다. 아기 엄마에게 연결된 모니터에서 ‘띠띠’ 소리가 드문드문 났고 산부인과 의사는 제왕절개수술을 침묵 속에 마무리했다. 이따금 쟁그랑쟁그랑 철제 쟁반 위에 들어 올리고 내리는 수술 도구 소리만이 분만실 정적을 깨웠다.

고통스럽게 울던 아기는 싸개에 곱게 싸여 아빠에게 건네졌다. 아기 아빠는 방역복을 입고 작은 의자에 앉아 온몸을 떨며 엄마 옆을 지키고 있었다. 수술대에 십자 모양으로 묶여 있던 엄마도 고개를 돌려 아기를 봤다. 엄마 얼굴이 아기가 방금 짓던 표정과 닮아 있었다. 이제 아기 얼굴에는 표정이란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작은 생의 기색도 없었다. 새파란 외과용 가리개 천과 아기의 얼굴색이 한데 뒤섞였다. 아직도 온기가 남은, 심장이 간간이 뛰는 아기를 아빠는 꼭 안았다. 누군가 아기를 훔쳐갈세라, 누군가 아기를 해칠세라 꼬옥 안고 있었다.

아마 죽음의 천사가 곧 아기를 데려갈 것이다. 몇 분 몇 초 남지 않은 아기의 생이 연장될까, 아빠는 아기를 죽음에서 끌어내 당기고 또 당기는 것처럼 보였다. 아기는 죽음을 향해 울다 지쳐 빨려가듯 날아갔다.

“혹시 나중에라도 궁금한 게 있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꼭 알려주세요.”

아빠의 갈색 눈이 흐릿하게 더 연해졌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두 눈 밖으로 이제 눈물이 비처럼 내렸다. 그 눈물이 닿아 마스크로 가려진 입술이 지진이 난 것처럼 들썩였다.

나중에 뭐가 필요할까요

“뭐가 필요할까요? 그걸 내가 알 수나 있을까요? 나중에 나에게 뭐가 필요할지, 지금은 모르겠어요.”

이제는 내 목구멍에서 지진이 났다. 위가 조이는 것 같았다. 꼬박 하루를 굶어 아무것도 없는 위에서 위액이 솟구쳐 목구멍으로 치솟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그게 위로가 될까,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의사로서 내 임무를 다해야 했다.

“혹시 의문이 생기거나 다른 도움이 필요하면 간호사를 통해 알려주세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면 최선을 다할게요.”

아기 상태에 조금이라도 의혹이 생길 수 있다. 아기의 죽음 뒤에 있을 절차가 궁금하거나 의학적·사회적 도움이 필요할 수 있기에 문은 열어둬야 했다. 그리고 같은 부모의 입장이 되어 덧붙였다.

“귀한 아기를 잃게 돼서 너무 미안해요. 아기가 너무 예뻐요.”

위액이 긁고 지나간 목구멍에서 나온 소리는 마치 수술 도구가 철제 쟁반을 긁는 소리 같았다. 아빠의 눈에서 더 많은 눈물이 솟구치고, 나도 목소리가 마구 떨렸다. 떨리는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들어갔다. 나의 진심과 온기가 전해지길 바라며 아기와 아빠를 꼭 안아줬다. 아기가 조금 더 따뜻하기를 바랐다. 비릿한 피 냄새와 소리 없는 아기 울음의 파동, 폭포같이 떨어지는 부모의 눈물이 뒤섞인 수술실을 나왔다. 수술을 마친 산부인과 의사와 나는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마스크 너머로 생이 곧 죽음임을 목도한 방관자의 눈빛을 교환했다. 수술실 밖 의국의 공기는 아기만큼의 시간이 빠져나간 듯 고요하고 쓸쓸했다.

죽음의 반대말은 출생이다. 그 둘을 동시에 맞는 비극, 죽을 운명을 안고 태어난 아기를 가끔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살리지 못하는 의사가 될 때가 있다.

이 아기는 20주차에 초음파 검사를 받았고 그때 이미 비운의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배와 가슴 사이를 분리하는 횡격막이 잘 자리잡지 못해 위, 간, 장이 가슴까지 올라와 가슴을 가득 채워 폐가 발달하지 못한 것이다. 의사들과 충분히 상의한 부모는 아기를 낳은 뒤 자연스럽게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어떤 꽃은 피자마자 진다는 자연의 섭리처럼 생과 양립할 수 없는 폐를 가진 아기는 나오자마자 다시 온 곳으로 돌아갔다. 살려고 숨을 쉬지만 위와 장으로 공기가 들어가 그 작은 폐를 더 눌렀다. 살려고 쉬는 숨이 죽음을 불러들이는 아이러니라니. 가뜩이나 덜 발달한 폐로 산소를 공급할 수 없는 아기는 금방 숨을 거뒀다.

살려고 쉬는 숨이 죽음을 불러들이는 아이러니

강렬한 표정과 달리 묵음의 울음을 내지르던 아기의 얼굴은 뇌에 흩어져 문신처럼 각인됐다. 수많은 아기가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내가 도울 수 있어 직업적 소명을 넘어 행복한 순간이 더 많았다. 아기를 죽음의 바다에서 건져내는 그물이 되어 그 고통을 끝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 아기 앞에서는 무력했다. 죽음의 파도가 아기를 삼키는 것을 지척에서 봐야 했다. 할 수 있는데 할 수 없어서 그 파도의 물결이 더 세차게 몰아쳐서 나를 무너뜨렸다. 부모가 옳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고통의 얼굴에 마음이 무너졌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더라도 어차피 짧은 시간 내에 죽을 아기였다. 고통만이 연장될 뿐이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알려달라는 청을 하면서 나는 알았다. 이 부모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줄 수 없음을. 나에게는 두 아이가 있고 수많은 추억이 있다. 야속하게도 그들에겐 하나도, 한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스텔라 황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병원 소아과 신생아분과 교수

*여기는 신생아중환자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손바닥만 한 초미숙아부터 만삭아까지 돌보는 스텔라 황 교수가 어린 생명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스텔라 황 교수는 의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입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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