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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비긴

손수현 “두부구이 드셨다고요? 나도 모르게 채식 한끼 한 거죠”

책 <밥을 먹다가 생각이 났어> 공저자 손수현 배우 인터뷰
비건 지향, 이기심에서 비인간 동물 위한 실천으로 확장 “거창하지도, 어렵지도 않다”

제1424호
등록 : 2022-07-31 18:12 수정 : 2022-08-03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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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수현 배우가 2022년 7월25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진수 선임기자

*초록색 글씨는 책 <밥을 먹다가 생각이 났어>에서 인용했습니다.

“타인을 위한 것도, 동물권이라는 엄청난 신념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었어요. 저는 저를 위해서 시작했어요.”

시작은 어쩌면 궁여지책이었다. 2017년 손수현 배우가 반려고양이 슈짱, 앙꼬와 함께 살 때다. 느닷없이 고양이 알레르기가 생겼다. 식단 조절이 알레르기 없애는 데 도움된다는 말을 듣고 채식에 발을 들였다. 다큐멘터리영화 <몸을 죽이는 자본의 밥상>은 쐐기를 박았다. 영화는 육식 위주의 산업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건강을 위해서는 육식을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2019년 비건 지향을 시작했다. 이기심의 발로였다.

그러나 ‘나’에서 시작된 비거니즘은 ‘비인간 동물’의 권리를 만났다. 그리고 ‘요리의 처음과 끝 어디에도 생명은 불필요’한 세계로 확장됐다. “지향하다보니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이건 알레르기가 나아도 지향해야 하는 가치구나.”

책 <밥을 먹다가 생각이 났어>는 손수현 배우와 신승은 감독 두 여성 창작자가 번갈아 써내려간 비거니즘 일기다. 손수현 배우는 2017년 단계적 채식을 시작으로 현재 비건을 지향한다. 신승은 감독은 같은 가치를 지향하는 친구이자 동료다. 밥을 먹다가 생각난, 먹는 일에 대한 단상은 동물권, 여성 창작자로서의 삶, 연대라는 가치로 무한히 뻗어나간다. 2022년 7월25일 손수현 배우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났다.

반려고양이 앙꼬와 한솥밥 먹는 사이. 열린책들 제공

음식물로 버려지는 사체 없는 밥상
나를 위한 선택에 내가 아닌 존재가 끼어든 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친구가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돼지에게 물과 음식을 주는 비질(Vigil)에 참여했는데 현장 영상을 보여줬다.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현실을 보았죠. 이기적으로 시작한 무언가가 확장되는 기분이 들었어요. 모든 약자성에 대해 벼락 맞듯 아는 순간이 있잖아요. 각자의 속도가 있는데 제 속도는 이거였던 거 같아요.”

비건은 동물성 식품뿐 아니라 동물을 착취해 만든 모든 것을 소비하지 않는 삶의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는 다만 인간으로 살아가며 비인간 동물을 착취하지 않고 살 수 없다는 아이러니함을 알기에 비건 지향이라는 말을 쓴다. 비건 지향 초기 ‘목숨이 없는 밥상’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밥을 다 먹었는데 음식물로 버려지는 사체가 없어요. 뼈가 없고, 머리도 없고…. 어떤 부위라는 게 없는 거예요.”

사먹을 수 있는 게 적으니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에 익숙해졌다. ‘야채의 맛은 텅 비어 있다고 생각했다. 메인인 육식에 곁들이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야채의 무수한 변신을 기대할 수 없게 만들었다. 야채가 메인이 된다면?’ 미나리 감자탕, 당귀나 두릅, 세발나물, 아보카도 김밥, 콩가스, 비건 떡갈비…. 고기를 찬조하는 데 그쳤던 식재료가 주연급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줄이고 절제하는 삶은 마이너스일 것만 같은데 그의 책은 재발견으로 인한 플러스로 가득하다.

“논비건일 때는 음식 아까운 줄 몰랐어요. 먹고 싶은 거 시켜도 다 못 먹고 버리고…. 이 음식이 뭐로 만들어졌는지 생각해본 적 없었죠. 그런데 비건 지향하고 나서는 이 음식이 뭐로 만들어졌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음식을 자주 해먹다보니 재료의 원래 모양을 접하게 되고 그 재료가 어떻게 무궁무진하게 변할 수 있을까 호기심도 생기고요. 맛있게 먹으려는 욕구가 늘었어요. 예전에는 잘 챙겨먹어야 한다는 말이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와닿아요. 잘 챙겨먹지 못하면 저를 잘 돌보지 못하는 느낌이 들어요.”

단백질은 어떻게 섭취하느냐는 질문에 든든한 답이 돼주는 두부. 열린책들 제공

지역 촬영, 편의점 비건식부터 쟁여놔야
비건 지향 4년째인 지금, 큰 어려움은 없다. 익숙한 생활권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면 말이다. “왜 롯데리아 미라클버거는 다시 논비건이 됐을까” 생각한다. 일터인 촬영 현장에서의 고충도 컸다. ‘촬영 현장에 오는 밥차의 식단은 대부분 동물이 든 메뉴로 구성되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도시락에도 대개 동물이 들어간다.’ 비건이라는 말도 생소하던 4년여 전에는 밥과 양배추샐러드만 먹은 적도 있다. 그러나 차차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은 비건이라고 말하는 게 훨씬 수월해졌어요. 비건식으로 챙겨주는 현장도 있고요.” 다만 촬영하다보면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장기간 머무를 때가 있는데 그때는 여전히 고민이다. “비건 단백질 셰이크 통부터 들고 가죠.(웃음) 가자마자 편의점에서 두유랑 비건식을 많이 사서 미리 쟁여놓아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파는 비건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우기도 하고요.”

자신의 방향을 의심하지 않았으면
‘착한 척한다’ ‘채소는 안 아프냐’ 비건 지향인은 편견 섞인 발언에 노출되곤 한다.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배우로서 더 먼저 겪은 일은 아닐까. 조금 더 완벽하게 실천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끼는 비건 지향인도 있다.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조언을 구했더니 ‘트위터’에서 본 문구를 공유해줬다.

“트위터에서 ‘착한 척이라도 하라’는 말을 읽은 적 있는데요.(웃음) 누굴 죽여서 식사하거나 누굴 죽이지 않고 식사하는 두 선택지가 있다면 죽이지 않고 먹는 선택이 옳다고 생각해요.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 ‘착한 척한다’고 말하면) ‘맞아, 나는 착해’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거든요. 자신의 방향을 의심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는 자신도 “완벽하지 않다”고 말했다. “식생활에서는 완벽히 비건을 지향하지만 입고 생활하는 부분에서 완벽하게 모든 것을 다 피해갈 수는 없는 거 같아요. 동물실험 하지 않는 것을 찾고, 가죽제품은 사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을 쓰고. 최대한 노력하는 거죠.”

트렌드라도 되면 좋은가? 거기에 그치면 안 되지
비건을 지향하다보면 겪는 일은 비슷하다. 그가 사는 다세대주택 한 지붕 아래는 “누구보다 격렬하게 함께 화내주고, 누구보다 격렬하게 지지해주는” 친구이자 동료들이 이웃 지어 산다. 책의 공저자 신승은 감독과 박정원 요리사(책 <맛있어서, 하루 비건>의 저자) 등이다. 신승은 감독은 손수현 배우로 인해 비건 지향의 길을 걷게 됐고, 손수현 배우는 단계적 채식에 안주하려는 순간 신 감독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손’을 내밀어준 셈이다.

반찬을 나누거나, 레시피도 공유한다. 밥상을 함께할 때도 많다. 각자 잘하는 비건 음식이 다르다. 그는 라타투이나 양배추스테이크 같은 양식을 잘하고 신승은 감독은 된장찌개, 나물을 활용한 한식을 잘한다. 요리사 친구는 새로 개발한 비건 요리를 테스트하기 위해 친구들을 먹인다. “공동체는 단순히 같이 모여 사는 게 아니라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지향하고 실천해나가는 것에서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주변에 비건인 친구들이 있다는 게 도움이 되고 힘이 돼요.”

비거니즘이 트렌드인 시대라고 한다. 신승은 감독은 책에 ‘어쨌든 좋지만 사실은 나쁘다. 동물권이 트렌드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반문했다. 손수현 배우는 그 말에 동의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렌드라도 되면 좋은 건가” 싶다. 그러다 “트렌드에 그치면 안 되지” 생각한다. 책을 펴낸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

“작게, 열심히 실천하는 개인들이 있다는, 거기서 오는 작은 위로가 있으면 좋겠어요. 지치지 말고 한 발자국씩 더 나은 것을 향해서 가면 좋겠다는 마음. 그리고 비거니즘이 무슨 대단한 신념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고 생각보다 어렵지도 않다는 것을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오늘 점심에 한식을 먹었다, 예를 들어 두부구이를 먹었다면 자신도 모르게 비건으로 한 끼 드셨을 수 있다는 것, 그 점을 인식하고 작은 성취감을 느끼면 좋겠어요.(웃음)”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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